어리석음[痴]이란 어떤 것인가?
여태껏 지혜가 어떤 것인지 알아봤다. 그럼 이번에는 지혜의 반대개념인 어리석음은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
한국불교에서는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들 중 하나인 탐진치(貪瞋痴)를 말하면서 어떤 것이 탐(貪)이고, 어떤 게 어리석음[痴]인지 잘 모르고, 막연히 ‘욕심[貪]’, ‘어리석음’이라고만 말하고 넘어간다. 벗어나야 할 대상에 대해 명확하게 알지 못하면,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탐(貪)과 치(痴)에 대해 이번에 제대로 알아보자.
삼독(三毒)에서의 탐(貪)은 마음이 고요하게 머물러 있지 못하고, 형상[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촉감[觸], 생각번뇌[法] 등을 끊임없이 쫓아가며, 취하는 것이다.
어리석음[痴]은 그런 대상을 취하는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에 대해 어두운 것이다. 어리석음을 뜻하는 痴(치)의 산스크리트어 원어는 moha(모하)이고, 이것은 무지(無知), 무명(無明)으로 한역되기도 한다. 무명과 무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잡아함경 251경>을 한 번 보자.
<잡아함경 251경>
마하구치라 존자가 사리불 존자에게 물었다. "‘무명(無明)’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어떤 게 무명입니까?"
사리불 존자가 말했다. “무명이란 무지(無知)한 것을 일컫는 말이니, 무지한 것이 무명입니다.”
어떤 것을 ‘무지하다’고 말하는가? 눈은 무상(無常)한 것인데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무지하다’고 합니다. 눈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法]일뿐인데, 그렇게 알지 못하는 것을 ‘무지하다’고 합니다. 또 귀, 코, 혀, 피부, 의식 등도 무상한 것들인데,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무지하다’고 합니다. 마하구치라 존자여, 이와 같이 여섯 곳의 접촉해 들어오는 곳[六觸入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밝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깨어있지 못하며, 끊어지지 않고 알아차림이 지속되지 못하는 것, 어리석음, 어두움, 밝지 못함, 깜깜함 등을 ‘무명’이라고 합니다.
무지(無知)는 ‘알지 못 한다’는 뜻이고, 무명(無明)은 ‘밝지 못 하다’는 뜻이다. 어리석음은 자신한테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밝지 못한 것이고,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자신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어두운 것[痴暗치암], 잘 모르고 있는 것, 깨어있지 못한 상태 등이 어리석음이다.
어리석음을 뜻하는 痴(치)의 산스크리트어 원어 moha(모하)는 알아차림의 상실, 망상헛것에 빠져 헤맴[迷妄, 惑溺], 어리석게 돌아다님[愚行] 등의 뜻으로 痴(치), 妄(망), 愚(우), 愚癡(우치), 愚妄(우망), 愚貪(우탐), 痴妄(치망), 痴暗(치암), 愚冥(우명), 無明(무명) 등으로 한역돼 있다.
이 한역들을 보면, ‘어리석음’이라는 뜻의 치(痴), 우(愚)가 있다. 그 외에 ‘길을 잃고 헤맨다’는 뜻의 헤맬 미(迷); ‘어리석음’, ‘미혹(迷惑)’, ‘유혹(誘惑)’이란 뜻의 혹(惑); ‘탐닉(耽溺)한다’, ‘나쁜 버릇에 빠진다’는 뜻의 익(溺); ‘어리석게 탐한다’는 뜻의 우탐(愚貪); ‘참되지 못함’, ‘허망한 것’이라는 뜻의 망(妄); ‘어둡다’는 뜻의 암(暗), 명(冥), 무명(無明) 등이 있다.
이런 번역어들을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어리석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그 어리석음은 외부 대상인 형상[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촉감[觸], 생각번뇌[法] 등에 빠져,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이다.
<유식론>6에 “온갖 번뇌가 일어나는 것은 어둡기 때문이다”고 했다. 어두운 것은 망상이나 혼침(昏沈)에 빠져, 알아차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알아차리고 있는 동안에는 번뇌, 망상, 혼침이 있을 수 없다. <구사론>4에 “치(痴)는 우치(愚癡)함을 뜻하고, 우치함이 곧 무명이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어리석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봤다. 어리석음은 자신에 대해 어두워서 자신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