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무엇이 진짜 뉴스인지 분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가짜뉴스에 잘 속는 사람은 뉴스 ‘변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사전적 정의로는 辨別力 이란 “사물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가리는 능력.”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변별력은 선천적이 아닌 후천적인 것이어 근육처럼 평소에 단련 되어야 한다.
세상에는 옳은 일 같지만 알고 보면 틀린 일이고 틀린 일 같지만 알고 보면 옳은 일이 많다. 그래서 윤리적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윤리적 상상력이 결정적으로 결여되기 쉬운 집단이 있는데 바로 기독교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은매사에 ‘‘하나님 뜻이냐 아니냐?'하는 것을 구분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세상은 선과 악이 뒤섞여 있어서 쉽게 구분되어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세상이 이렇다 보니 윤리 무감각증이 걸릴 가능성도 높은 반면에 기독교인은 오히려 '윤리적 조루증'이 걸릴 가능성이 많다.
남자들에게는 조루증이 겁나는 일이듯이 윤리적 조루증은 삶을 나약하게 만들 수 있다.
상식보다 하나님 뜻을 찾다가 주변에 모여든 군중들에게 화장실을 개방하는 것에도 하나님의 뜻을 찾았던 여의도 잡복음 교회같이 되는 것이다.
10 년 전에 시드니 시내 한 카페에서 무슬림 과격분자에 의해서 인질극이 벌어져서 도시 전체가 마비가 되었고 국가 전체에 비상이 걸렸었다.
그런데 인질이 되었다가 살아난 사람들 중 몇 명이 상업방송 TV와 거액의 돈을 받고 경험담을 말해주기로 계약을 해서 논란을 빚었다.
왜냐하면 무고하게 2 명이나 희생된 비극적 사건에서 운이 좋아 살아 남은 생존자들이 이익을 보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하는 것이 논란인 것이다.
생존자들이 그들의 시련을 공개하고 대가를 받기로 한 개인적인 결정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의견의 반면에 자기를 구출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경찰, 군인들에게 구조된 대가로 거액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생존자들도 정신적 외상을 입었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하고 그 방법의 하나로 돈을 받고 방송에 출연해서 인질의 경험담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무시할 수없는 현실은 생존자들은 높은 수준의 윤리에 매어 있을 만큼 경제적 여유가 앖다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필요로 해서 인터뷰를 하게 만든 그들의 현실을 외면 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