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호반에서
신 보 성
봄날의 호반 하염없이 걸어가니
휘늘어진 버들가지 바람 따라 춤을 추고
그리운 우리 님이 아지랑이 등을 타고
고개 넘어 오시는데
황새는 무슨 일로 날갯짓 그림자로
잔물결 흔들어서 구름꽃을 지우는가
찌그러진 벤치에 다리 꼬고 걸터앉아
푸른 하늘 바라보니
새를 품고 떠나버린 가없는 빈 하늘로
인간새 비행기들이 우주로 날아간다
머지않아 님 계시는 우주별에도
봄이 와서 꽃이 피면
그 별의 호숫가 방죽으로 놀러나 갈까
물속의 잉어들아 놀라지 마라
너 잡을 나 아니로다
무상 무변 허공에서 도를 찾는 무주의 나그네가
너를 잡아 무엇하랴
보아라
저기 님을 닮은 할머니 아주머니들 모여 앉아
뜯은 쑥 가리며
울고 웃는 모습들을
일렁이는 물결 위로 햇살 퍼지고
봄바람 불어오니
님도 나도 잉어들도 모두가 부처인 것을
이제는 울지 않으리라
신 보 성
진달래가 피었네
우리 어머니 기일 가까워오니
그리운 그 모습 붉은 혼령 되시어
꽃을 타고 오셨는가
이제는 참회의 눈물 닦고 흥분하지 말아야지
진달래 꽃밭에 코를 묻고
님의 체취 맡으며
거저 봄이 온 줄이나 알면 되리라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진달래꽃 진다해도
서러워 말자
여름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않으리라
사랑도 서운함도 마음 따라 생겨나는
번뇌의 티끌
죄스러운 마음도 내려놓아야 할
집착이라고 생각하리라
진달래가 피었다 지는데 인생인들 영원하랴
죽음이 두려운 것은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지요
진달래 피고 지고 봄이 왔다가 가도
앞으론 머리 풀어 울지는 않으리라
불면증
신 보 성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박 노인
아침 산책 나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지난밤은 두 시간 밖에 못 잤어요
눈 감으면 나도 몰래 죽을까봐 뜬 눈으로 새웠지요
그렇게 죽으면 고통 없이 가는 건데
죽을 복이 넝쿨째 굴러 떨어진 것인데
내 생각 말하진 않았지만
박 노인 불면증은 마음병이다
어디 박 노인만 그럴까
죽음의 공포가 종교를 낳고
사람은 죽음을 알기에
생래적 마음병 환자들이다
금강경 씨디 한 장 건네주며
이것 틀어놓고 잠들어 보세요
한 시간짜리 분량인데
삼십분도 안 되어 잠들거예요
보시는 바라는 마음 없이 해야 하고
금강경 한 줄 위타인설하면
삼천대천세계 칠보로 보시한 공덕보다 크다 했는데
박 노인 잠 잘 자기 바라는 내 마음은
무주상의 무외시가 아니고
최상제일희유지법이 못 된다는 말인가
씨디 듣고 잠 잘 잔 박 노인
아침 산책길에
천국이 보이면 기독교인이 되고
불생불멸 깨달으면 불교인이 되는가
제상(諸相)이 비상(非相)인데
신 보 성
이 심심산골 가파른 언덕
절 한 채 들어 있는데
사람들 모여들어 길이 생기고
산 아래
밥집 떡집 술집 줄지어 생겼네
저곳에 무엇이 있을까
진위를 알 수 없는 부처님 진신사리도
구성진 목소리의 노스님 독경소리도
실체 없는 상이거늘
상을 떠나야 부처 볼 수 있다고
한 평생 설해 놓고도 설마저 상이라고
가르쳐 주었건만
상 좇아 헤매는 무명 중생들
그러나, 할 말은 있다
허공이 무상하여 머무를 수 없지만
구름 흘러가면 없는 것도 아니고
색즉시공이나 공즉시색이라
사람이 어찌 바위가 되겠느냐고
살아서는 부귀영화 죽으면 극락
죽어라고 불러대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안 이 비 설 신 의가 분주히 돌아가네
행복의 현주소
신 보 성
농산물 달려오고 해산물은 날아오고
공산품도 뒤질세라 뒤 따라 오니
사람들도 밀려서 오고 밀려서 간다
어물전 아가씨 상기된 예쁜 얼굴 앞니 빠진 입술로
멍게 광어 도다리 전복 앞에 놓고 고함지른다
치과에 갈 시간도 없는데 연애할 시간이 어디 있겠소
나의 얼굴 보지 말고 소라 가리비라도
돈 내놓고 가져가세요
호떡 파는 아저씨 손놀림은 마술사의 신기를 닮아가고
언제나 밑지고 팔면서도 수지맞는 그 옷가게는
폐업처분 중이라는 현수막에도 나날이 가게는 넓어만 간다
참외는 성주참외 대추는 경산대추
마늘은 의성마늘만 모여들어도
굳이 원산지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
사진으로 나타난 이금희가 닭 강정 광고를 해도
광고비를 묻지 마소 초상권을 말하지 마소
여기는 서민들의 치외법권지역 따질수록 욕먹어요
돼지족발 한 쟁반이 일만 원인데
먹어보고 맛없으면 받은 돈 되돌려준다 해도
돈 받으러 오는 사람 없고
빈대떡 한 장 막걸리 한 병 금 일만 이천 원이면
세 사람 친구들이 하루 종일 즐겁다
여기는 재래시장
3일 8일 열리는 서민들의 잔칫집
자실하고 싶은 자여 잠깐! 여기로 와 보시라
인생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리라
행복의 현주소를 보게 되리라
노동의 가격
신 보 성
그대의 일당은 얼마인가
금 이만 원
죄 짓지 말아라
벌금 일천만 원 못 내면 일 년 하고도
몇 달은 더 노역장 강제노역 시달려야 한다
재벌 씨의 하루 수입은 얼마나 됩니까
글쎄요, 어림잡아 오억 원은 될 것입니다
죄 지어도 좋습니다
벌금 이백오십억 원에 처하고
못 내면 일당 오억 원으로 계산하여
오십일 간 노역장 놀면서 몸으로 때워도 됩니다
이의 있습니다
품삯을 노역장 노동력의 질과 양으로 정해야지
소유나 수입의 다과로 정하는 것은
정의에 반합니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 무식한 입 닫지 못할까
이만 원짜리 인생과 오억 원짜리 인생은
다르다
다른 것을 다르게 다루는 것이 평등이고
정의 이니라
아하, 그것이 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칙이란 것이고
억울하면 출세하란 말도 되구요
뭐라구요
정의는 언제나 갑의 편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