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 : 이 일 저 일에 관심도 많고 참견도 많이 하는
사람을 가리켜 흔히 ‘오지랖이 넓다’고 한다.
오지랖 피고 별 일이 없으면야 오지랖이 넓다고 하지
오지랖 피다가 나쁘게 되면 오지랖 떤다고 한다.
나의 남편은 오지랖이 넓다.
나는 남의 일에 신경쓰지 않고 사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남편따라 강남간 것인지 나도 오지랖이 제법이다.
남편은 남의 일에 참견한다는 것 보다 남들이 안좋은
일을 당하거나 특히 뭔가 맥가이버 손길이 필요한
집을 볼 때 머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남편은 가진 재능이 많다. 이것저것 제법 한다.
지방에 내려가서 김반장 정도 하면 될 듯 싶다.
그런데 돈 받고 하는 사업은 못할 것 같고
무료봉사를 좋아한다. 보람있다고 생각하는 듯.
그런데 아직 하나님의 움직임 싸인이 없으셔서
그냥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 나도 물질이 부족한데
구역식구가 돈 빌려 달라고 하면 -물론 큰돈은 아니다 -
내 돈 있는거 빌려주고 나는 없으면 내가 빌리든
안쓰던 살았다.
나는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푼돈 말고는
큰 돈을 빌려줘본 적이 없다.
그러다 성가대원 중 하나가 300만원을 급하게
일주일만 쓴다고 빌려달라고 했는데 내가 가진
것이 없어 지인에게 빌려서 빌려줬다.
그리고 한참을 못 갚았는데 내가 이사를 하면서
대출 받는 김에 더 받아서 지인에게 먼저 갚았다.
그리고 10년 이상 됐을까 갑자기 갚는다고 해서
돈을 받긴 했다. 하나님이 감동을 주셨다고 한다.
알고보니 암치료 중이었다.
성경은 꾸고 갚지 않는 것을 '악'이라고 한다.
나도 살면서 이런저런 빌리거나 채무관계가
있었는데 나도 어려워 죽겠는데 그것들을
갚게하셨다. 하나님하고 6개월 합채시간에.
(시편 37: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인간은 항상의인 항상악인 그런거 없다.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빌려주기도 하고
없으면 빌려쓰기도 한다.
그런데 자기도 빌리는거 싫어하고 빌리지도 않고
빌려주기도 싫어하고 한푼도 안빌려주는 사람도
있긴 있다. 극소수인거 같긴하지만.
나도 물품같은거는 빌려쓰는거 싫어해서 없으면
말고 아님 사서 내거가 있어야 맘이 편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돈이 날 싫어하나 나한테
잘 안온다. 와도 다 나간다. 그래서 빌리거나
대출을 받게 되는 상황이 된다.
이상하게 돈은 없으면 말고 없는대로 살고
안먹고 말지가 안됐다. 남편도 돈을 안쓰는
사람이 아니고 아이들이 있으니 더 안됐다.
합창단 다니고 싶었는데 가정에 돈이 자꾸
없어져서 직장을 알아보게 됐다.
동생같이 지내던 집사랑 영이 안맞는다고 끊으려고
했고, 불교 종교인인 친한분도 종교가 다르다고
슬슬 끊으려고 했는데 가정에 돈이 자꾸 없어져서
그들에게 돈을 빌리게 됐다. 돈이 나를 관리한다.
이렇게 저렇게 오지랖을 떨면서 최근에 깨달은 것은
오지랖은 좋은 것이지만-상대가 피곤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오지랖 없는 세상보다 있는 세상이 나은거 같다.
어려운 사람을 봐도 동정이 1도 없다든지 빌려달라고
하는데 1원도 안빌려 준다든지 하는 것 보다 빌려주는
오지랖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오지랖 값을 내가 문다는 것이다.
그에게 오지랖 떤 만큼 내가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다.
100%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거의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어려움을 당했다는 것은 신의 재판 결과일 수 있는데
내가 나서서 그의 징계거리를 해결해 주려는 결과로 볼 수 있다.
가끔 설교시간에도 저런 뉘앙스의 내용이 있었는데
그때는 와닿지가 않았었다. 이해도 못했고.
그러나 나에게 '도로 갚을 수 없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하나님께서 빚진 것으로 계산하셔서 주께서 갚아주신다고
했다.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게다가 인생이 계속되는 동안은 가난한 자가
끊어지지 않는다고 잘 도와주라고 했다.
(신명기 15:7~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신명기 15: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그런데
'다시 갚을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아침은 이집에서 초대되서 먹고 저녁은 우리집에서
초대해서 먹고 하는 삶은 좋은 것이지만 나에게
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좋은 세상이긴 하지만
서로에게 복이 되진 않는다. 쌤쌤.
(누가복음 14: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아픈 사람을 위해서 돌봄이를 할 때도 잘해야 하고
중보기도를 드린다고 할 때도 잘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의 아픈 것이 내게 올 수도 있음을 알게 됐다.
성가대원 중에 유방암으로 시달렸던 권사님이 있었다.
몇번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했다를 반복하던 어느날
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불쌍하고 안됐다는
마음에 내 가슴을 부여잡고 기도를 드렸다.
그후로 바로 내 가슴에 통증이 있어서 놀래서
목사님에게 기도도 받으러 갔었고 그리고도
안돼서 원자력 병원도 갔었다.
그 다음부터 그런 기도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더 커지진 않고 있지만 작은 몽울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
매년 건강검진 받을 때마다 지적되고 있다.
또 4년 전 아주 급하다는 곳에 다른 곳에서 빌려서
몇천 되는 돈을 빌려줬다.
지금 현재 그 돈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불을 걷어차고 잠에서 깨고 걱정을 하고 있다.
돈이 거짓말 한다더니 정말 그렇다.
사람이 나쁜게 아니라 돈이 나쁘게 작용을 한다.
돈을 빌려줄 때는 내가 넉넉하게 있어서 안 받아도
될 정도 될 때 빌려줘야지 없는 돈에 대출 받아서든
남에게 빌려서든 빌려주는 것은 삼가해야겠다고
아주 철저하게 깨닫고 반성하고 있다.
내가 있어서 빌려준 돈을 못받을 때는
막말로 그냥 내 돈 떼이는 것으로 그친다.
하지만 다른데서 빌려서 빌려준 때는
내가 그 돈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문제다.
나는 내 성격상 배째라 못한다.
돈 빌려주는 것은 쉬운 줄 알았다.
'돈을 빌려줄 때는 앉아서 빌려주고
받을 때는 서서 받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 말도 실제 경험해보지 않으면
그냥 문자에 불과하다.
인간은 대부분 시청각 교육이 있어야 깨닫는다.
소를 잃어봐야 외양간을 고친다.
이런 경험은 살면서 처음이다.
대출업을 정상적으로 해도 힘들텐데
아무 방침도 없이 빌려주는 것은
위험한 것이구나
시청각교육 제대로 받고 있다.
차용증을 받았다해도 법적처리까지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다.
다시는 이런 일 하지 말아야지 하고
가슴을 치면서 다짐을 한다.
보증도 마찬가지인 듯 싶다.
보증서주고 개털되는 집도 많은 듯 하다.
보증서지 말라고 성경도 말하지만
콩깍지가 쓰이면 서주게 되어 있다.
나도 돈 빌려줄때 콩깍지가 쓰였던 것 같다.
일이 아주 스므스하고 진행됐었다.
아직 보증서달라는 부탁은 안 받았는데
부자가 되면 이런 부탁 저런 부탁 많이
있을 듯 싶다.
정신 차리려고 이렇게 글로 남겨놓는다.
모든사람이 똑같지는 않다. 나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