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스테파노
◎세상이 성자라 부르는 분
2009년 2월 16일 한국 천주교회 지도자 한 분이 선종하시자
모든 국민들이 안타까워하며 애도의 물결로
슬픔에 젖은 적이 있었습니다.
공중파 방송은 물론 모든 언론들은
추기경의 5일장 장례날까지 매시간 생중계 방송을 하면서
그분이 일생동안 행하신 사랑과 겸손의 삶을 조명하면서
성자의 삶이었노라며 연일 대서특필한 적이 있습니다.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성자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 몰려든
추모의 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져
십여리에 네 다섯시간 기다려야 조문할 수 있는 인파를 보고
사람들은 명동의 기적이라 외쳤습니다.
조문객의 소감은 다양하지만
"평 화를 느꼈다, 빚진 것을 갚는 느낌이다,
추기경님과 한 시대를 같이 살아온 것이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로
요약될 수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사십만이라는 자발적 추모객은
사상도, 이념도, 남녀노소도 외국인도 종파도 초월한
우리 현대사의 초유의 추모인파였고,
교회와 모든 사람들이 상상치 못한 추모열기였습니다.
국가가 선포하지 않는 국장과 다름없었고 또한
한국 가톨릭 역사상 처음 치루는 명예로운 교황장이었습니다.
◎순교자의 후손
추기경님 조부(보현 37대)께서는 병인박해 때 순교하셨고,
아버지(영석)께서는 유복자로 태어난 순교자 가문입니다.
목숨까지 바쳐 삼대가 믿어온
추기경님과 관련된 가톨릭교회 기초교리
몇 가지는 알아두어야 그분을 알리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우리말로 천주교회입니다.
창조주 하느님 즉 신이 인간이 되어 오신 신비의 종교입니다.
창조주(성부) 하느님께서
동정 마리아를 택하시어 하느님의 영(성령)으로
잉태되셨다가 태어나시니 이름을 예수(성자)라 합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당신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을 악에서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 회개, 용서를 말씀(복음)으로 선포하시자,
그 당시 사회에서는 파격적인 급진 사상으로
두려움을 느낀 지배층은
그 분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버립니다.
그분은 죽었다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부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천주교회서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또 다른 세상의 시작으로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입니다.
ㆍ추기경 :
성직제도는 교황, 주교, 사제, 부제, 수도자로 되어 있으며
예수로부터 교회를 다스리는 교도권과
죄를 사해 주는 사죄권을 위임 받은 베드로는 초대 교황으로
현 베네딕도 16세 교황까지 265대로 이어집니다.
추기경은 교황을 보좌하며 교황을 선출할 수 있는
선거권과 교황으로 출마할 수 있는 피선거권을 가진
고위 성직자입니다. 교황의 왕자로서 전하의 존칭으로 호칭되며
세상에 어느 나라에 거주하든 바티칸 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ㆍ스테파노
: 세례를 받을때 세례자(영세자)는
교회의 성인성녀의 이름을 선택하여
신앙생활의 거울로 삼는데 이를 본명 또는 세례명이라 합니다.
스테파노는 예수의 열두제자 중의 한 분으로 첫 순교자입니다.
◎ 양반 중에 양반으로의 긍지를 지녀셨던 분
국민들 스스로 성자라 부르며 사랑받아온 추기경님은 21세기에서
광산김씨를 명문가문으로 도약시키는데 공헌하신 당사자로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광산인입니다.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주교님의 착좌식 때에 축사를 하셨습니다.
"주교단에 김씨성을 가진 분이
십 여명 있는데 또 김씨가 주교가 되는데 다행히
양반 중에 양반인 광산김씨가 주교가 되어 매우 든든합니다." 라는
말씀에 폭소가 터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당신께서는
광김의 후손으로 긍지를 잊지 않고 사셨던 분입니다.
◎ 민족의 영원한 성자로 승화하기위한 종친사회의 노력
신라 국교인 불교는 이차돈이라는 순교자를 내고 도입된지 200년 만에
원효, 의상 대사와 같은 고승을 배출했고,
조선의 국교 유교 또한 순교자는 없었지만
200년이 지나서 퇴계, 율곡 같은 성현을 배출하였습니다.
한국의 천주교회는
세계 가톨릭교회 역사상 선교사 없이 서학을 연구하는
실학자들에 의해 스스로 교회를 수용한 유일한 나라입니다.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그라몽 신부에게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아온 후
백년간의 모진 박해속에서 수 만명의 순교자를 낸 후 역시
200년이 지나서야 우리사회에 다양한 종교중에서 천주교회가
국민들이 사랑과 존경심의 발로로서
성자라 호칭하는 추기경을 배출하였습니다.
원효나 의상대사, 퇴계나 율곡 같은 성현의 공통점은,
시대와 종교를 초월한 민족의 스승으로 사랑을 받고있듯
추기경 또한 같은 반열에서 성자 김수환을
민족의 영원한 스승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교회에만 의존할 일이아니라
종친 사회도 '성자 추기경'의 명성과 명예와
대한민국 민주화와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서 불의와 투쟁해온
그분의 업적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
교회와 협력해야 할 부분을 찾아 함께 노력해야 할 것 입니다.
◎출생
1790년대에 광김 중흥지
연산 지방에도 천주교가 전파되었습니다.
ㆍ조부 보현(37대, 조모 강말순)은
요한이라는 세례명으로 신앙을 전파하다가
병인박해(1886년)때 순교 (대원군 집권 5년, 8000명 순교)
ㆍ아버지 영석(38대 요셉)은 유복자로 태어나시어
박해를 피해 경북 칠곡 장자골 옹기마을 교우촌으로 정착.
ㆍ김보록 신부(대구 본당 첫 사제)와 뮈델 신부(후 조선교구장)의 중매로
교우 서영서의 따님 서중화(마르티나)와 혼인,
5남 4녀 출생.
ㆍ추기경은 1922년 대구 출생, 호는 옹기, 51년 사제 수품,
43살 주교, 47세 최연소 추기경.
(중형 동환도 사제로 일찍 선종)
선국 글
대구․경북 종친회 전부회장 선국
09. 4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