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선열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순교자 후손들의 본거지
언양 성당은 교구 내 가장 오래된 성당이며 인근 울산 장대를 비롯하여 순교 선열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순교자 후손들의 본거지다. 전국적 성소의 온상지로 70여 명의 성직자와 수도자, 20여 명의 동정녀를 배출시켰으며 교구 내 가장 많은 공소를 둔 본당이다.
언양 성당은 1888년 조선대목구 시절에 이미 본당 설립 위원회를 결성하였으나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본당 설립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절영도에 부산의 첫 본당이 설립되었다. 그러다가 1927년 당시 대구대목구 소속으로 있으면서 보드뱅(Beaudevin, 丁道平, 1897~1976, 에밀) 신부를 본당 신부로 하여 현 부산교구에서 두 번째로 본당이 설립되었다.
구전에 의하면, 언양 지역의 첫 신앙 공동체는 이 지역 출신 오한우(1760~1801, 베드로)가 1790년에 영세한 뒤 1801년 신유박해 때 충청도 지역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피안 살수형(백지사)으로 치명하였으며, 오한우와 같이 영세한 그의 육촌 매제인 김교희(일명 재권?, 1775~1834, 프란치스코)가 박해를 피해 내간월 불당골(현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로 숨어들어 교우촌을 형성하였고, 그리하여 언양 지역에는 이미 1800년대 초에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문헌 자료에 의하면 언양 지방에 처음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아마 1801년 이 지역으로 유배를 온 강이문으로부터 전교를 받은 것으로 추측되는 오치문(1804~1861, 오한우의 손자)에 의해서 인 듯하다. 이후 박해 시대인 1850년 경 부터는 번창한 신자촌으로 성장하였다.
언양 지역의 교우촌들은 병인박해 때 심한 타격을 입었다. 문헌상으로 나타나는 이 지역 최초의 순교자는 김사집(1845~1867, 필립보 또는 베드로)으로, 그는 1866년 11월 진영 포졸에게 체포되어 이듬해 5월(음)에 순교하였는데, 그때 그의 나이 23세였다. 이어 언양 대재[竹嶺] 교우촌에 살던 허인백(許仁伯, 1822~1868, 야고보), 김종륜(金宗倫, 1819~1868, 루카), 이양등(李陽登, ?~1868, 베드로) 등 3명이 1868년 9월 14일(양)에 체포되어 울산 장대에서 순교하였다.
박해가 끝난 뒤 교우촌이 재건되면서 1882년 대구(현 계산동) 본당의 주임으로 경상도 지역을 담당하게 된 로베르(Robert, 金保祿, 1853~1922, 바오로) 신부가 1883년에 살티 공소를 설립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언양읍 공소도 설립되었다. 1904년에는 순정 공소가 설립되었으며, 이 세 공소의 신자 수는 153명에 달하였다. 이 지역 신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1927년 5월 25일 언양 본당이 설립되고 초대 주임으로 보드뱅(Beaudevin, 丁道平, 1897~?, 에밀) 신부가 부임하였다. 1936년 10월 25일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고 드망즈 주교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전국적 성소의 온상지로 70여 명의 성직자와 수도자, 20여 명의 동정녀를 배출시켰다. 그리하여 대주교 1명, 주교 1명, 수도회 관구장 2명이 배출 되었고, 또한 교구 내 가장 많은 16개 공소를 둔 본당으로 순교 선열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중심지가 되었다.
◆ 언양성당 유물전시관
언양 지방 천주교 선교 200주년을 기념하여 1990년 12월 4일 개관된 유물전시관은 신앙 유물과 민속 유물 등 총 696점이 전시되어 있고, 신앙 유물은 교황청에 등록된 귀중한 자료다. 언양 천주공교협회 등 본당 단체들이 남긴 기록이 보관되어 있으며, 초기 교회 교우들이 사용하던 각종 기도서 교리서 등 고서, 그리고 미사와 전례에 사용했던 제의와 제구들도 전시되어 있다. 1800년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지역의 오래된 공소들이 사진에 담겨 진열되어 있으며, 2층에는 선조들이 생활 필수품으로 사용하여 온 민속품들을 전시하였다.
◆ 성모 동굴
언양 성당의 뒷산에 위치한 성모 동굴과 십자가의 길에 대한 구상은 1927년경에 시작 되었다. 1926년 11월에 언양 성당 부지를 매입 하였고 그 다음해 정 보드맹 신부는 성당을 짓고 바로 뒷산에는 성모 동굴을 만들어 성모님을 모시자는 의견을 제시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성모 동굴 조성사업은 실현되지 못하다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언양 성당이 순례 성당으로 지정되어 서정웅 지도 신부의 노력으로 각 공소 보수사업, 죽림굴 환경 미화 사업, 성모 동굴 조성사업 등에 전 교우들이 참가하여 과감하게 실천에 옮겨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성모 동굴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14처를 지나서 가게 되므로 성모 동굴과 십자가의 길은 다른 성당의 성모 동굴과는 달리 조성되어 있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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