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달 전에 2월 20일 남원역에서 조원래 교수와 하태규 교수를 만나기로 언약했다. 그 전날 날씨 관계로 전주역에서 12시에 만나기로 약속 장소를 바꿨다.
전주는 내가 1973년부터 1980년까지 살았던 제2의 고향이다. 여기서 나의 4남매 자식을 모두 낳았고, 8년을 살았던 정든 곳일뿐만 아니라 많은 지인이 살고 있다. 내가 대학교 교수로 첫 부임하여 학문은 미숙했으나 학생들에게 정열을 쏟았다. 그러니 많은 추억이 주절이주절이 남은 곳이다.
20일 전날 눈이 처음으로 많이 내려 버스로 갈려다가 기차로 가기로 했다. 이날 아침 6시에 일어나 안해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수원역에 가서 8시 25분 새마을 열차를 탔다.
기차는 11시5분 정시각에 도착했다. 그런데 역을 나기기 전에 오늘 12시에 만나기로 언약한 조교수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시지 않겠는가! 우리는 반가운 마음으로 악수를 했고 역을 나가니 또 하교수님이 와 계셨다. 누구라도 어느 고향에 가도 이런 1초의 어긋남이 없는 언약이 있을까 . 나는 참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점심을 무엇을 하겠느냐고 하교수가 묻기래 전주비빔밥을 먹자고 했다. 전주비빔밥 집으로 갔다. 우리는 조선태조의 선조가 묻혀 있다고 하는 조경단(肇慶壇 이태조의 선조의 묘소)로를 통해 10분만에 도착했다. 이 집은 덕진공원가에 있다. 덕진공원은 전북대학교 옆에 있다. 전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이고 오월 단오절에는 이곳에 수만명의 시민이 모여 축제를 벌린다. 사시 사철 연꽃이 만발하는 곳이고 아주 잘 꾸며져 있어 한 시간의 산책로는 더 없는 좋은 곳이다.
전주비빔밥과 막걸리 한 병, 황포묵과 부침을 시켜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하 교수는 운전을 해야함으로 술을 권하지 않고 조교수와 내가 세 잔씩 마셨다. 우리가 들어갈 때에는 그 식당에 손님이 없더니 12시가 넘으니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래서 우리는 식사를 하고 옆에 있는 커피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 셋은 15년 전에 조직한 임진왜란사연구회 회장단이다. 하교수는 현재의 회장이시다. 연구회에 대한 공식적인 이야기를 나눈 다음 우리는 전주의 절경인 완산칠봉을 갈가 하다가 하교수의 수고로움을 생각해서 이는 포기했다.
완산칠봉에 올라가면 전주시의 전경과 금산사가 있는 정읍시, 김제군이 보이는 절경이다. 올라가는데는 30분만 걸으면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산이다. 전주의 남산이이다. 백제시대의 전주의 이름은 완산이었고 이 산이름이 그 최초의 도시 이름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
우리는 부안의 우반동 반계 유형원의 유적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유형원이 30여년간 부안 우반동에 내려와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유언에 따라 3개월 만에 자신의 부모님을 모신 용인으로 이장을 했다. 이날 사슴100마리가 와서 슬피 울었다는 기록의 이야기를 했다. 반계는 사냥군의 화살을 맞은 사슴을 구해주었는데 이장을 하는 날 자기 새끼를 데리고 왔다고 안정복이 쓴 반계연보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조원래교수님이 자신이 sbs 일요일 아침방송인 '동물농장' 을 꼭 보는데 부산에 팔려간 개가 진도까지 주인집을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동물은 절대로 자기가 입은 은혜를 잊지 않는다고 하셨다. 영리한 사슴의 이야기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닐 것이라고 말해주셨다. 하교수는 부안은 옛날부터 사슴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더 보태주셨다.
나는 지금까지 반계가 흉년에 이웃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주고 이를 돌려받지 않은 것을 사슴의 이야기로 전환된 것이라고 해석해왔다고 했다. 그랬더니 조교수가 구례의 문화유씨가와 경주 최부자집에서 흉년에 곳간을 열어 놓아 가난한 사람들이 식량을 가져가게 하였다는 이야기를 보충해주셨다. 이는 18 19세기의 고문서로 남아 있는 실화이고 세상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의 대화는 '반려동물'로 바뀌었다. 하교수는 반려라는 말은 부부간을 지칭하는데 이 용어는 잘못 번역되었다고 했다. 영어의'companion animal'을 번역한 것인데 이는 '동반동물, 또는 '동료동물' 이라고 해야한다고 했다. 조교수님은 '동반동물'은 개, 고양이 만이 아니라 인간이 수천년간 사역을 시켜온 말이나 소 그리고 돼지도 포함되어야 하며 인간은 평생동안 함께 살아온 동물에 대해서 무조건 희생물로만 생각해서는 안되고 그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우리는 장장 3시간 동안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4시 반경 전주역에 와서 나는 수원으로 조교수님은 순천으로 가셨다.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고 영원히 기억할만한 전주방문이었다. 밤 9시에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조교수님이 심혈을 기울려 간행한 "정유재란사" (하교수의 논문도 실려 있다.)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이야기 하지 못한 점이 아쉬었다. 이 책은 정유재란사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상세한 실증을 한 최초의 유일한 논문집이다. 나는 두달 전에 맨처음으로 보내주셔서 이 책을 받아 모두 읽었다. 그날 조교수님은 보급판 한 권을 가져다 주셨다.
첫댓글 교수님께서 전주에 오셨는데 흡족하게 대접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두 분 말씀으로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다음에 오시면 꼭 완산칠봉으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완산칠봉은 저는 여러번 올라갔고, 조원래교수와 함께 올라가 본 적도 있습니다. 하교수의 도탑고 정성어린 대접이 과분했습니다. 이글을 읽는 분드에게 꼭 올라가보라는 뜻으로 쓴 것입니다. 백제의 완산에서 통일신라시대 완주로 고려조에 완이라는 같은 뜻을 살려 전주로 개칭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정겨운 말씀이십니다.
지기 사이의 고류가 시공을 넘어 이어지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하는 걸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