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타 8 - 걸어서 옛 구보다성인 센슈 공원으로 올라가서는 정원을 구경하다!
어제 2022년 10월 30일 아키타역 秋田駅 에 도착해 도요코인 호텔에 체크인을 한후
기차를 타고 오가(男鹿) 로 가서는 한 정거장전인 하다테역에 내려 버스를
바꾸어 타고 동해(일본해) 오가 반도에 자리한 오가 온천 을 구경하고 돌아왔습니다.
체인 이자카야 시로키야 白木屋(백목옥) 로 가서 생맥주 나마비루에 한국식 닭도리탕과, 피자와 군만두
에 주먹밥 “오니기리” 를 시켜 안주겸 저녁으로 먹고는 역 동구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잡니다.
다음날 아침에 식당으로 내려가서 간단한 뷔페식 아침 을 먹고는 나와서
오늘은 먼저 옛 구보다성 에 조성된 센슈 공원 을 보기 위해 걷습니다.
예전에 왔을 때는 千秋久保田町 (천추구보다정) 나카도바시 도리를 걸어
남문 으로 입장했지만..... 오늘은 동문인 구로몬(黑門) 으로 찾아갑니다.
가다가 보니 옛날 구보다성의 해자로 오테몬노호리 (大手門の屈) 였던 연못을 보는데, 연못에는 니가타현
다카다성 처럼 온통 "연꽃" 이고 해자 중간에 분수 가 오르는 것은 보는 사람들이 시원하라는
뜻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해자의 물은 고인지라 산소 를 빨아들여서 녹조 를 방지 하기 위함인가 봅니다?
연못 옆 큰 문이었던 모서리에 오테몬(大手門) 터 와 센슈공원 포켓 파크를 지나서 성벽을 끼고
한 블록을 더 걸으니 왼쪽에 입구가 보이므로 걸어 올라가서 왼쪽에 동문인 고로몬(黑門) 을
들어서니 넓은 터가 보이는데 옛날 같으면 성의 공공건축물과 무사들의 주택이 있었을 것입니다.
왼쪽편으로 사타케 사료관 이 보이지만 너무 일찍은 시간이라 문이 닫혔으니 보지는 못하고
넓은 터를 지나 올라가니 정원 이 보이는데...... 정원 한 가운데에 고케쓰(胡月池) 연못 이
있고 주변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으면 작은 다리를 건너면서 보니 잉어 들도 많이 보입니다.
아키타 秋田(추전) 는 일본 동북 오우산맥의 서쪽 동해(일본해) 에 자리잡은 도시로 장대에
초롱불을 메달고 겨루는 간토 마쓰리 등 연 4회의 마쓰리가 열리며 온천 이 유명합니다.
아키타는 옛날부터 쌀과 술 의 고장으로 유명하며 견직물인 아키타 하치조, 직경 0.1mm
의 순 은실을 꼬아 만든다는 장식품인 은선 세공 에다가 이코마 옷칠기 가 유명합니다.
관광지로는 센슈 공원 구보타성 (久保田城跡) 과 지조덴 유적 (地蔵田遺跡) 이 있는데....
겨울에 산속 노천온천 등 눈꽃나라의 설경 이 좋으며 "영화 아이리스의 촬영지" 입니다!
또 "도깨비 나마하게" 가 도시의 상징물이며 츠루노유 온천 은 혼탕으로도 유명하고 아키타
시민시장 이 볼만한데... 아키타 영주 사타케 요시노부 는 1604년 구보타성 을 쌓았습니다.
아키타 비이키 (秋田贔屓) 골동품이 볼만하고 멀리 다자와 호수 는 죽기 싫은 여인이
용 이 되었다는데.... "토토로의 무대" 이자 영화 아이리스 의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여기 산 언덕에 자리한 센슈코엔 千秋公園(천추공원) 은 17세기 초 에도막부 시대에
사타케 씨의 거성이었던 구보다성 久保田城跡 에 자리잡은 공원으로 사타케
자료관 ( 佐竹 資料館) 과 고케쓰 (胡月池 호월지) 연못을 중심으로 정원이 있습니다.
산속 연못 에는 연꽃 이 피어있고 바위와 나무들이 잘 배치되어 있는 연못은 한눈에 조화로우
면서도 정적인 느낌 이라.... 마음에 드니 잠시 벤치에 앉아 胡月池(호월지) 연못 을 바라
보다가 이 공원의 전신으로 사타케 씨의 거성이었던 구보다성 (久保田城) 역사를 회상해 봅니다.
히타치국 오타 (현재 도쿄 북동쪽 이바라기현) 성주 사타케 요시노부 는 히데요시 사후 동서 18만 대군이
일본의 주인 자리를 놓고 격돌한 세키가하라 전투 에서..... 중립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의
미움을 사서 아키타 로 영지를 옮기고는 여기에 구보다성 久保田城 을 쌓으면서 번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오래 전인 BC 3세기 부터 AD 3세기 까지 한반도인들이 청동기 문화와 벼농사 기술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 규슈에 도착했을 때..... 일본 원주민은 신석기 시대의 "조몬인" 으로
이들은 벼농사도 지을줄도 모르고 열매채집과 밭농사에 수렵과 어로 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한반도인들은 처음에는 청동기 그리고 나중에는 철기 를 가지고 건너왔으니 "야요이 문화"
를 이루었고...... 원주민인 조몬인들은 싸우다가 죽거나 도망쳤으며 일부는
굴복해서는 야요이 문화에 동화되니 혼혈 도 이루어져서 태어난게 "왜인" 들이라고 봅니다.
이 왜인들이 수십개의 소국 을 이루어 살던 AD 4세기 말에 김해 가야의 왕 이 건너와서
왜 소국들을 통합하니 스진왕(숭신천황) 으로 보며 그 후손인 오진왕(응신천황) 이
광개토 대왕 비문과 삼국사기에 보면.... 391년에 왜군을 이끌고 한반도로 건너옵니다.
왜군은 신라를 공격해 서라벌 에 육박하자 신라는 한차례 물리쳤으니 이후 규슈에서 왜군이 증원되고 한반도
김해 금관가야와 함안 아라가야군 이 합세하니.... 왜군이 주축인 연합군은 399년에 서라벌을 포위 합니다.
신라가 멸망직전의 위기 를 맞자 김씨왕조 내물왕 은 스스로를 노객(노비)으로 부르며 광개토대왕에게 구원군
을 애걸하자 보기 5만의 고구려군이 남진해 왜군을 추격하니 아라 성중에 왜군 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김해 종발성 까지 함락당하자 왜군과 김해 가야군은 일본으로 도주 했으며 그 4년후인 404년에 왜군은 백제의
도음으로 서해를 지나서 황해도에 상륙해 고구려땅을 침탈 하자 광개토대왕은 친히 출정해 왜군을 물리칩니다.
이후 오진왕은 선조들의 고향인 한반도 를 단념하고는 규슈를 출발해 세토나이까이를 지나
오사카 동남쪽에 상륙해 현지 세력들과의 오랜 전투 끝에 이를 제압하고 나라현
가시하라 에 나라를 세우니.... 야마토(大和 대화) 라고 하는데 그후 도읍을 아스카 로 옮깁니다.
720년에 발간된 일본서기 에는 저 동정 기사를 신무왕(진무천황) 이 직접 수행한 것으로 나옵니다만
일본의 건국 연대인 BC 2660년은 AD 420년경으로 수정 해야 하니.... 초대 신무왕과
10대 스진왕은 동일 인물이며 2~ 9대는 연대를 올리기 위한 가공의 인물이니 15대
오진왕(270~310) 이 야마토 건국자 로 일본서기에서 2갑자 120년을 내리면 얼추 연대가 맞습니다.
그후 백제인인 목만치 가 건너와 소아 만지 로 이름을 바꾸고는 그 후손인 소가씨 들은 아스카의 왜국
왕실의 외척으로 일왕(천황) 을 세우고 폐하며 죽이는등 권력을 농단하다가 원군을 빌리려
온 신라 사신 김춘추의 조언을 받은 나카노에 태자가 쿠데타 를 일으켜 다이카 개신을 이룩합니다.
이후 660년에 백제가 망하자 나카노에 태자와 제명여왕은 인질로 있던 의지왕의 아들(동생?) 풍왕자
에게 왜군 5천을 주어 한반도로 나가 백제 왕위 를 잇게 하고는 수도를 후쿠오카로 옮긴후
국력을 다 기울여 3만 대군을 1천척 배 에 태워 보냈으나 금강하구에서 당군의 화공으로 대패 합니다.
후퇴하는 왜군을 따라서 수많은 백제인들이 조국을 버리고 일본땅 으로 도주해 왔으며..... 이후
나카노에 태자는 천지왕에 오른후 나당연합군의 보복을 우려해 규슈와 서부일본에
백제인들을 동원해 산성 을 쌓는 것으로도 안심이 안되자 도읍을 내륙인 비와호 오쓰 로 옮깁니다.
그 후손들인 왜국왕들은 신라와 화친한후 가야와 백제등 한반도와의 탯줄을 자르고 국명도 왜국에서
일본 으로 바꾸었으며 수도를 나라 로 옮겼다가 70여년후 다시 교토 로 옮기고는..... 정이대장군
을 임명해 규슈에서 부터 달아난 조몬인들이 거주하는 동북일본 으로 진출해 일본 영토를 확장합니다.
헤이안(교토) 시절 오랜 평화시대가 계속되자 저 소가씨의 후손인 후지와라씨 가 대 귀족으로
성장해 왕실의 외척이 되어 정권을 농단하다가 자기들 끼리 분열했으며.... 무사계급인
타이라씨와 미나모토씨 도 분열해 두 진영으로 갈라져 싸우다가 타이라씨가 정권을 잡습니다.
후지와라씨는 세력이 약화되었고 멸문지화를 당한 미나모토씨는 대부분 죽임 을 당했으나 어린
아들 둘은 멀리 동북쪽에 유배를 당했으니 그중에 미나모토 요리토모 는 에도(도쿄) 입구
가마쿠라에서 호족인 호조씨의 사위가 되어 궐기해 교토를 장악하고 가마쿠라 막부 를 세웁니다.
이후 가마쿠라 막부는 몽골군과 그 앞잡이 고려군의 침공 을 받으니 2차례에 걸쳐 태풍의 도움도 있고
해서 물리쳤지만 승리했다고 해도 땅을 얻거나 재물등 전리품 을 얻은게 아니니 전쟁에
참가한 무사들에게 보상을 하지 못하자 빚을 내어 무장을 갖추어 전쟁에 참가한 무사들이 파산 합니다.
이런 흉흉한 사태에 이르자 실권을 잃고 허수아비 신세이던 고다이고왕(천황) 은 실권을
되찾고자 전국의 무사들에게 궐기 를 호소하자..... 불만이 많던 무사들이 궐기해
가마쿠라 막부가 망했지만 고다이고왕은 새로 들어선 아시카가 막부 에 권력을 빼깁니다.
아시카가 막부 는 230년간 일본을 다스리지만 쇼군(장군) 후계자 자리를 두고 삼촌과 조카가 다툰 1467년의
오닌의 난(応仁の乱) 이 일어나 내란으로 10년간 교토가 불바다가 되었지만 한쪽이 승리하지 못하니 전쟁
경비 조달로 파산한 무장들이 지방 으로 내려가 자립하니... 센고쿠 시대로 일본은 200개 나라 로 분열 됩니다.
저 200여개 나라는 자기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 이웃 나라를 침략하니 전투로 날을 새는 내란이
120년 을 계속하며 전국이 황폐화되던 중에.... 오다 노부나가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
130년간 계속된 전란을 수습해 통일했으나 임진왜란을 일으켜 전쟁 중이던 1588년에 죽습니다.
1600년 후계자 자리를 두고 세키가하라등 전국 도처에서 30만이 참가한 대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 승리해 에도 도쿠가와 막부 를 세우는데, 이 과정에서 히타치국 오타의 영주 사타케 요시노부 는
고향에서 쫃겨나서 머나먼 변경 아키타로 옮겨와 구보타성 을 쌓고 번을 연 얘기는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