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태종 2년인 1402년에 이회가 제작한 「混一彊理歷代國都地圖」의 복사본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김정호의 것은 산계와 수계가 아주 또렷하고 도로망과 군현의 경계가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국토의 몸통과 그 세부가 실측의 당당함으로 뚜렷하다. 그에 반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세계 지도라고는 하지만 중국과 한반도만 상세하고 나머지는 소략되어 있어 기이한 느낌을 준다. 그 지도들을 오래 들여다보며 사람들이 오래 꾸었던, 나날의 경험과 고통스런 편력을 넘어, 세상 저 너머까지 보려는, 혹은 나아가려는 초월의 꿈을 엿본다. “그 새는 자기 몸을 쳐서 건너간다. 자기를 매질하여 一生一代의 물 위를 날아가는 그 새는 이 바다와 닿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있는, 다만 머언, 또 다른 沿岸으로 가고 있다.”(황지우, 「오늘날, 箴言의 바다 위를 나는」) 지도에 서린 인간의 “다만 머언” 저 너머를 향한 열망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있는” “또 다른 연안”을 향해 날아가는 새의 꿈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지도는 국토방위와 징세, 행정 구역의 효율적 관리라는 필요에 의해 생겨났을 것이다. 고지도들은 대개 정치, 경제, 군사적 필요에 부응하는 방위와 거리, 산맥과 강, 나무와 도로 등을 알아볼 수 있는 사실적 형상을 간소화해서 표현한다. 천문학적 지식의 축적에 따른 方位 개념의 발생과 거리를 재는 尺度法의 발달이 더 정교한 지도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고지도를 보면 높고 낮은 산과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강의 모습이 山水畵와 가깝게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조선 세종 때까지도 지도를 그리는데 풍수지리 전문가인 상지관과 畵工이 동원되었다. 그들은 실제의 지형지세를 발품을 팔아 살피고 산악․하천․도로․해안․급경사면․隘路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 지도제작을 했다. 고지도가 회화적 요소를 강조한다면, 현대 지도는 도면식 지도가 일반화된다. 회화식 지도는 도성도, 군현도, 山圖와 같이 주로 좁은 지역을 그리는데 자주 응용되었다. 회화식 지도와 명산승경을 담은 실경산수화는 하나의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현대 지도는 회화와 분리되며 정교하게 위도와 경도가 표기되고, 山形과 水系 등을 등고선과 선으로 단순 기호화하며 일체의 지리적 공간을 추상화한다.
지도는 단순한 현실적 필요의 산물뿐일까 ? 지도는 현실적 필요의 이면에 장소와 관련된 삶의 너른 가능성을 복합적인 통합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것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원초적인 욕망이 숨어 있다. 아울러 차이가 있는 입지와 경관을 가진 개별적 장소들을 의미화하고 그것을 더 큰 의미의 원근법적 조망 속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의지가 숨어 있다. 물리적 지형지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과 의미들에 의해서 하나의 장소는 다른 장소와 차별화되는 개별성을 획득하며 그 개별성의 특화로 장소의 정체성이 부여된다. 다시 말해 장소는 사람의 경험과 주관적 의도가 결합하면서 문화적․상징적 개별성을 갖는데, 그 개별성 안에서 장소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도는 경험적 삶의 자리들인 그 장소들을 하나의 평면 속에 놓고 보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지리의 모든 구성 요소들을 한 지평 안에서 일목요연하게 돌아보려는 욕망과 제가 살고 있는 현존의 지리적 공간을 의미화하려는 욕망 때문에 지도에의 열망과 장소에의 열망은 하나로 겹쳐진다. 지도 속에서 장소들은 추상화할 뿐만 아니라 지도 제작 당대의 지리관과 풍수지리관에 의해 인문적 영역을 확보한다.
2. 문학지리학을 위하여
문학지리학(literary geography)은 문학 작품 속에서 지리적 공간에 대한 경험과 의식이 어떻게 표현되었는가를 살피는 일이다. 이 용어는 1907년 영국의 샤프란 사람이 단행본으로 출판된 개인 저서에 이 제목을 붙임으로써 처음 쓰였다. 1970년대에 들어 지리에 대한 인간주의적 접근을 시도한 일단의 지리학자들이 나타남으로써 “지리학적 현상으로서의 문학 작품을 연구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땅과 더불어 산다. 땅은 장소와 지각공간의 인지와 경험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사람의 삶은 그것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그것과의 연관성 안에서 인성이 형성되고 감정이 영향을 받는 일을 배제하고는 성립될 수 없다. 몸이 공간에 속해 있으며, 몸으로 겪는 경험의 인지와 대상에 대한 지각은 공간의 지각에 의해 분명히 한다는 사실은 이미 메를로 퐁티가 지적한 바 있다. 지리적 공간의 인지는 장소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철학자 아키타스는 “모든 육체는 장소를 점유하며, 장소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고 썼다. 이렇듯 장소는 몸과 그 실존을 품고 그것이 피어나게 하는 자리며, 모든 원초적 경험의 토대이기도 하다. 장소의 의미화는 장소와 상호 연관을 맺고 거기 사는 사람의 태도․경험․의도의 연속성이라는 구조 안에서 만들어진다.
한 장소에 오래 살다보면 그 장소와 연관된 실존의 질서와 맥락이 길러지고 한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의 안정감이 생겨난다. 장소는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되어지는 것이다. 의미 있는 경험이 발생하는 장소에 대한 애착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실존의 안정적 토대로서의 장소에 대한 애착은 장소애(topophilia)로 이어지고, 장소와 자아의 능동적 융합의 바탕 위에서 사람의 지적․도덕적․정신적 가능성은 길러진다. 그래서 폴 쉐퍼드는 사람의 “사고, 지각, 의미의 조직화가 특정 장소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의 지리와 경관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데, 그 익숙함에 대한 의식과 감정이 한결같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익숙함이 끔찍한 구속으로 여겨져 “여기”를 벗어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거기”를 꿈꾼다. 그것은 현대인들이 반복되는 ‘일상’에 대해 품는 끔찍함과 유사하다. 이처럼 여행이란 장소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무의식의 욕구와, 실존의 의미 있는 사건들을 경험하는 초점으로서의 새로운 장소를 경험하고 싶다는 욕구가 겹쳐질 때 일어난다.
실존 공간에서 집이 있는 장소는 의미 속에서 경험되는 정체성의 토대 공간이며, 의미의 심원한 중심이다. 그러므로 장소는 “인간의 모든 의식과 경험으로 구성된 의도의 구조에 통합”된다. 장소에 대한 욕망의 본질은 의미를 향해 열린 욕망이며, 이것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겪는 근원적 현상이다. 얼른 떠오르는대로 적어보면 백석의 ‘통영’, 고은의 ‘문의’, 신경림의 ‘목계’, 황동규의 ‘몰운대’와 ‘미시령’, 이성복의 ‘남해금산’ 등은 바로 그런 장소에 대한 욕망이 빚은 시들이다. 장소에 대한 욕망 중에서 사람의 내면에 가장 끈질기고 깊이 고착된 것은 고향을 향한 것이다. 고향은 심미적 희열, 그리고 의미와 본래성의 심연이다. 20세기의 위대한 문학작품 중에 나타나는 실존의 기획에서 가장 감동적이며 극적인 것이 고향으로의 회귀라는 기획이란 사실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백석은 우리 시의 지리학에서 분단 이후 사라진 북방이라는 지리적 공간의 회복과 재발견이라는 점에서 보물과 같은 존재다. 지리적 공간이라는 용어는 단순히 실재와 인지의 대상인 장소, 혹은 지도상의 공간만을 뜻하지 않는다. 장소는 모든 삶의 발현의 자리며, 이 세계와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실체다. 사람은 심오하고 다양하게 분화된 의미의 공간을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장소는 경험의 자리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각과 인식의 기초적인 환경이다. 장소는 사람에게 본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삶의 의미를 만들고, 아울러 장소는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의미로 가득 차게 된다. 문학지리학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의 현상학적 기초가 되는 시인과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자연의 지형지세와 풍토적 특성에 대한 경험에서 빚어진 감정, 관점, 태도, 가치판단에 대한 자료들을 살피고 그 뜻을 밝혀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풍토적인 것은 거기서 낳고 자란 사람의 인성과 정서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정서적 근린성으로 스며들며, 그 속에서 오랜 관습과 도덕, 방언, 토속음식들은 속속들이 이해되고 포괄되는 것이다.
3. 왜 고향인가 ?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의 당시로는 중산층 개화집안에서 태어나서 오산중학을 나왔으며, 1927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청산학원(靑山學院) 영문과를 수료했다. 해방 뒤 북쪽에 남아 있다가 북쪽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변변한 작품활동도 하지 못한 채 묻혀 지내다 세상을 떠났다. 백석이 첫 시집 『사슴』을 1백부 한정판으로 상자한 것이 1936년 1월인데, 이에 대해 김기림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어데까지든가 그 일류의 풍모를 일치 아니한 한 권의 시집을 그는 실로 한개의 포탄을 던지는 것처럼 새해 첫머리의 시단에 내던졌다. 그러나 그는 그가 내던진 포탄의 영향에 대하야는 도모지 고려하는 것 갓지도 안타. 그는 결코 일부러 사람들에게 향하야 그 자신을 인정해 주기를 바라지 안는다. 아부라고 하는 것은 그하고는 무릇 거리가 먼 예의다. 그러면서도 사람으로 하여금 끗내 그를 인정시키고야 만다. 그 순결한 자세에 혹하지 안을 수 잇슬가.” 김기림은 『사슴』의 출간을 시단에 던져진 “한개의 포탄”에 비유함으로써 그것의 문학사적 의미와 비중을 예단한다. 김기림의 예단은 백석의 시세계가 갖는 범상치 않은 문학사적 가치를 미리 내다본 문학적 예지를 보여준 예다.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흰 바람벽이 있어」․「북방에서」․「국수」․「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즈랑집」과 같은 빼어난 시들은 북방에 전래되는 민담과 설화를 바탕에 깔고, 토속적 정서와 방언 지향을 통해서 이룬 것이다. 백석은 평북 정주를 동향으로 하는 김소월이나 김억에 비해 평북방언과 토속적 정서에 깊이 침윤되어 있다. 그 평북 방언이 빛을 발하는 것은 풍부하게 쓰인 덕신덕신, 장글장글, 쇠리쇠리, 달가불시며, 부숭부숭, 징기징기, 어둑시근, 잘망하니, 잠풍하니, 쨋쨋하니, 해정한, 호이호이, 재릿재릿, 선득선득, 들문들문.... 등과 같은 의성어와 의태어들이다. 백석에게 고향 정주는 근원적 심상공간이며, 백석 시가 배태된 자궁과 같은 장소다. 백석에게 고향 정주가 없었다면 백석의 시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北關에 혼자 앓어 누워서
어느 아침 醫員을 뵈이었다
醫員은 如來 같은 상을 하고 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집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 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백석, 「故鄕」
고향은 하나의 장소다. 그것은 각자의 내면에서 특권화된 지리적 공간이다. 이 세상은 온갖 장소들로 가득 차 있지만 고향을 대체할 수 있는 장소란 없다. 고향은 함께 살았던 사람들과의 유대, 토속 언어, 관습, 풍습 등에 의해 인격과 상징적 장소적 결속을 이루고 인격적 연대로 인해 특별한 의미를 얻는다. 어린 시절 부모나 친족들과의 따뜻한 유대, 그리고 잠, 음식물 섭취, 배설, 놀이, 거주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원초적 정서와 인격의 토대가 형성되는 공간이다. 차분한 어조로 낯선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 곡절을 서술하는 「故鄕」은 일견 범상한 작품이다. 아파서 찾아간 처음 보는 낯선 의사와 시적 화자는 ‘고향’을 매개로 의미 있는 관계성을 되찾는다. 처음 만난 의사가 고향 사람이며,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실은 인격적 연대의 회복에서 오는 기쁨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 인격적 연대의 회복이 불러오는 효과는 소외를 지양하고 현존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강화했을 것이다. 타지에서 병이 났을 때 외로움과 병고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때 누군가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베푼다면 한 순간이나마 깊은 정신적 실존적 유대감 속에서 평온과 내면의 질서감을 되찾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형성된 사고, 지각, 정서들은 原形的인 것으로 한 사람의 삶과 의식을 평생 지배한다. 그래서 고향은 장소이면서 국지적 지역의 협의성에 귀속되기를 거부하며, 지리적 공간을 넘어선 상징적․초월적 공간이 된다. 고향과의 유대감은 地形이나 植生과 같은 물질적인 것에 속하기보다는 정신적인 것에 속한다. 고향은 장소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기초적 환경이다. 누구나 고향에 대한 애착을 갖고 그것을 떠나 있을 때 사무친 그리움을 품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고향이 자연 경관과의 익숙한 친근감, 혈연이나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유대 관계에서 비롯된 실존의 원초적 자리라는 강렬한 느낌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삶의 물리적 환경의 변화를 넘어서서 실존의 원초적 자리에서 뿌리 뽑힘, 혹은 낙원에서 추방된다는 뜻이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木手네 지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의 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고향상실자의 억누를 길없는 회한과 쓸쓸함의 情調다. “나는 나의 옛한울로 땅으로 ― 나의 胎盤으로 돌아왔으나 /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북방에서」)라는 구절을 보면 상실의 깊이는 크다. 고향상실자는 기실 모든 것을 잃은 자다. 다음에 이어지는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라는 시구는 모든 것을 잃고 가치의 零度로 전락한 시인의 처지를 직설한다. 물론 여기에는 식민지 잔맹으로서의 상실감과 개인사적인 그것이 한데 겹쳐진 탓이다. 20세기 한국시가 거둔 최고의 수확 중의 하나인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에서 그 사실은 여실하게 드러난다. 사실 20세기의 한국시에서 고향상실자의 정서란 그지 낯설지 않다. 정지용이나 윤동주에게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한국시의 빼어난 성취로 일컬어지는 정지용의 「향수」, 「고향」,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사랑스런 추억」,「또 다른 고향」,「별 헤는 밤」 등에서도 고향상실자의 정서는 시의 중요한 모티브를 이룬다.
自傳的 요소가 짙게 배어나는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에서 고향상실의 실감은 우선 아내와 집, 부모와 형제들과 멀리 떨어진 데서 오는 아늑함이나 친밀함을 자아내는 정서적 유대의 훼손과 소실에서 뚜렷해진다. 定住의 안정감과 질서를 잃은 시적 화자는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 황폐해진다. 시적 화자는 낯선 거리를 헤매다가 가까스로 낯선 이의 허름한 방을 얻어들어 안식을 취한다. 헐벗은 방황 끝에 작은 안식을 얻자 거꾸로 그동안 잠잠했던 소외와 불행감이 내면에서 꿈틀댄다. 그 춥고 눅눅한 방에서 화로를 끌어안고 앉아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다. 그 슬픔과 어리석음의 태반은 고향을 떠난 사실에서 비롯된다. 때마침 문창에 싸락눈이 내리치는데, 고향의 여러 모습들을 떠올리다가 “굳고 정한 갈매나무”에 생각이 미친다. “굳고 정한 갈매나무”는 고향에서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표상적 기호다. 그것은 참된 삶의 감각과 관련되어 있다. 어두워 오는 저녁 즈음 눈을 맞고 있을 고향의 “굳고 정한 갈매나무”에 대한 상념은 객지 삶의 고달픔과 부박함, 그리고 거짓됨의 느낌 때문에 그 참됨을 더욱 오롯하게 한다. 존 러스킨에 의하면 참된 삶이란 “외부에 있는 것들을 주조하고 지배하는 독립된 힘”, “곧 자기 주위의 모든 것을 음식이나 도구로 변환시키는 동화의 힘”에서 나온다. 반대로 거짓된 삶이란 “외부의 무게에 짓눌려서 그것들을 동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주조되어버리는 삶”(존 러스킨, 여기서는 에드워드 랠프의 『장소와 장소상실』에서 재인용)이다.
객지를 헤매는 자들에게 낯선 환경은 엄혹한 실존의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백석의 시편들에서 시적 화자가 무력감과 슬픔에 젖어 있는 것은 외부 현실을 능동적으로 “주조하고 지배하는 독립된 힘”의 상실과 깊이 상관된다. 오히려 압도적인 “외부의 무게”에 의식이 눌려 불가항력적인 현실에 의해 피동적으로 주조되어버리는 자의 고달픔은 백석 시의 주요 정조인 것이다. 그런 때조차도 시적 화자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은 떠나온 고향이다. “굳고 정한 갈매나무”는 고립과 피로감에 젖은 채 거짓된 느낌의 삶에서 오는 압력에 짓눌려 있던 시적 화자에게 참된 삶에의 희구를 강렬하게 불러일으키는 심상이다. 그것이 슬픔과 한탄을 떨치고 비상한 활력을 주는 것은 그것이 고향을 상징하는 기표적 기호의 의미를 넘어서서, 자아-장소의 지각적 통합성을 일깨우고, 고향-자아가 분리되기 이전의 합일체인 까닭이다.
4. 장소애는 운명애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도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
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이 작품은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과 「국수」와 더불어 시인의 빼어난 名吟이다. 이 시에서도 시적 화자는 고향을 떠나 있다.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나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샷쯔” 등은 시적 화자가 놓인 현재의 궁색한 처지를 잘 보여준다. 영혼의 퇴락과 소외는 실향의 裏面的 진실이다. 아울러 실향은 존재의 근거에서의 뿌리 뽑힘이며, 가난과 방랑이라는 天刑의 삶으로 내몬다. 몸도 마음도 다 지친 상태에서 낯선 곳에 내팽개쳐진 채 흰 바람벽을 보면서 늙은 어머니와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을,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누리는 평온한 일상을 상상하는 일은 잠시나마 객지 삶의 고달픔을 잊는 방법이다. 시적 화자는 따뜻한 감주나 대구국 따위의 음식과, 늙은 어머니와 사랑하는 사람과의 유대를 떠올리며 위안을 얻는다. 고향은 물리적 장소와 경관이 전부가 아니다. 고향은 그곳의 지형지세와 몸에 각인된 음식과 같은 감각적 경험과 기억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총체며 융합인 것이다. 가난한 늙은 어머니와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조용히 바라보던 시절은 뜨겁고 호젓하고 슬픈 사랑으로 가득하던 시절이다. 고향에서의 삶이 내면화한 참된 의미는 소외의 止揚에서 찾을 수 있다. 자기됨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유대에서 솟아난다. 그 유대가 삶의 여러 결핍의 조건들과 적극적으로 화해하게 만들고 그렇기 때문에 가난 속에서도 삶이 충만한 행복의 느낌으로 가득 차는 것이다.
유대는 사람 사이에서만 찾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고향에서는 사람 아닌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와 같은 것들에도 인격의 고유성이 부여되고 사람과 결속한다. 그것들이 시적 화자를 충만한 행복의 느낌으로 끌어가는 것은 그것들이 사람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뜻없는 사물이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있는 뜻있는 존재인 까닭이다. 어렵고 고단한 처지에 놓인 시적 화자가 절망 속에서도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와 같은 따뜻한 운명애에 도달하는 것도 가난, 부랑, 쓸쓸함 따위와 적극적으로 화해하기 때문이다.(김재홍, 「민족적 삶의 원형성과 운명애의 진실미, 백석」(『백석』, 고형진 편). 현실의 고달픈 처지를 운명애로 수용하고 있다고 언급한 이는 김재홍이다. 백석이 가난, 쓸쓸함, 외로움 따위를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체념과 달관을 통하여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내면의 “능동적인 운명인식”으로 전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다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룻밤 뽀오얀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면 죽으며 죽으며 나며 아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울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어느 하룻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재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 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바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굳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枯淡하고 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 「국수」
평론가 유종호는 음식물과 관련된 백석의 시를 “고담한 식욕시편”이라고 명명했거니와(유종호, 『다시 읽는 한국시인』, 문학동네, 2002 백석의 음식 시편들이 단순한 섭식 풍속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윤리와 대의”에 연관된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백석의 시에 고향의 토속 음식에 대한 언급은 유난하다. 고형진은 「백석시연구」라는 평론에서 백석의 시에 다양한 토속 음식물에 관련된 시어들이 풍부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고형진이 조사한 것들만 해도 150여종에 이르고 있다.(고형진, 「백석시 연구」, 『백석』(고형진 편), 새미, 1996 고형진이 백석의 시를 조사해서 내놓은 바에 다르면 95편의 작품 중에 음식물이 나타나지 않는 시편은 불과 28편에 지나지 않는다. “청배, 다래, 붕어곰, 장고기, 매감탕, 반디젓,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 두부, 콩나물, 뽁은잔디, 고사리, 도야지비개, 무이징게국, 미역, 굴, 조개, 김, 니차떡, 청밀, 쇠든밤, 은행여름, 곰국, 조개송편, 달송편, 죈두기송편, 밤소, 팟소, 설탕든콩가루소, 돌나물김치, 백설기,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두룹순, 회순, 물구지우림, 둥굴네우림, 도토리묵, 도토리범벅, 광살구, 창복숭아, 송구떡, 참쌀탁주, 왕밤, 두부산적, 무감자, 시라리, 개구리의뒷다리, 날바들치, 신살구, 미역국, 산국, 술국, 추탕, 마른감, 머루, 서류, 송이, 옥수수, 노루고기, 참치회, 호박떡, 돌배, 떨배, 전복, 해삼, 도미, 가재미, 파래, 아개미, 호루기의젓갈, 고추무거리, 무이, 기장감주, 기장찻떡, 당콩수, 두부, 튀각, 자반, 대구, 삼, 숙변, 목단, 백봉련, 산약, 택사, 금귤, 건시, 건반밥, 명태창난젖, 오가리, 석박디, 생강, 파, 청각, 마눌, 햇콩두부, 국수, 감자떡, 메밀국수, 닭, 소주, 진장, 전복회, 골두기회, 가지, 가무락조개, 명태, 제물배, 게산이알, 섬누에번디, 취향이(梨)돌배, 귀이리차, 칠성고기, 시래기국, 소피, 도야지고기, 가얌, 귀이리, 가당엿, 호박죽, 기장쌀, 보탕, 시케, 산적, 나물지짐, 과일, 수박씨, 호박씨, 김치, 동치미국, 댕추갉, 싱싱한산꿩, 수육, 육수국, 감주, 배추(채매), 연소용(燕巢湧), 원소(元宵), 대구국, 떡국, 감자, 콩곡석, 수박, 오이, 당콩, 당세.”)「국수」는 음식 시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시편이다. 관서지방의 설화를 밑바탕에 깔고 국수를 삶는 산골 마을의 겨울밤 정경을 손에 잡힐 듯 그려내고 있다.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는 폭설의 겨울밤 산골 마을 사람들이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연 부엌”에 모여 국수 틀을 밟아 국수를 뽑아내고, 수육을 삶아 육수를 내는 광경을 그린 한 점의 풍속화 같다. 시적 화자는 쩔쩔 끓는 아랫목에서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을 희열에 차서 기다린다. 물론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국수다. 동시에 고향 마을 사람들이 지닌 품성과 윤리이기도 하다. 이 시는 고향집에서 먹던 국수에 대한 감각적 회상이지만, 이 소박한 식욕의 안팎을 둘러싼 희열과 동경 뒤에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의 공동 노동에 대한 은근한 예찬이 깔려 있음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아울러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 물상과 풍속 사이에 작용하는 同化와 親和, 그리고 단단한 결속에의 그리움이 번져 나온다.
이 세계가 참된 장소가 아닌 것은 그것이 고향이 아닌 까닭이다. 유아기의 신체에 새겨진 음식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탐닉을 간절하게 되새기는 것은 지금-여기의 삶을 메마름에 빠뜨리는 소외와 결핍의 止揚하려는 시적 화자의 무의식적 의지와 연관되어 있다. 지금-여기에 “국수”는 없다.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그렇듯 고향집의 국수를 먹는 일은 실현의 기약이 없는 아득한 일이다. “국수”는 고향과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블로흐가 말한 바 “아직 전적으로 도착하지 않은 실재 형태”이면서, 또 “지금 여기의 추구 내용”으로서의 고향 그 자체다.
5. 장소애의 본질과 의미
백석의 시세계는 관서 지방의 토속어로 시적 활력을 얻는다. 그의 시세계는 지금 우리 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관서 토속어의 곳간이다. 당대의 정지용, 김기림, 김광균 등의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들과 비교해도 백석의 토속어 지향은 유별난 것이다. 백석의 시세계에서 두드러진 변방의 토속어 지향과 유년기의 기억들은 장소애라는 하나의 초점으로 모아진다. 장소애의 본질은 장소가 세계를 의미 있는 사건으로 경험하는 중심점이며, 개인의 자아와 문화적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심원한 중심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사람의 의식과 정서, 삶은 태어나고 자란 장소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한 철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개인은 자신의 장소와 별개가 아니다. 그가 바로 장소”인 까닭이다. 물론 백석에게 장소애의 중심이 되는 구체적 지리공간은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다.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소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길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 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
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나도 좋을 것 같다
백석, 「膳友辭 ― 함주시초 4」
장소애는 물리적 지형이나 경관에서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자주 먹은 음식물과도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다. 고향 음식에의 탐닉도 범장소애의 표현인 것이다. “나조반에 흰밥과 가재미”는 북방의 정서를 물씬 느끼게 하는 토속 음식이다. 시인은 토속 음식을 앞에 놓고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라고 즐거워한다. 토속 음식은 신체에 새겨진 잃어버린 고향, 잃어버린 낙원의 감각적 표상이기 때문이다.
「가즈랑집」․「여우난곬족」․「고방」․「오리 망아지 토끼」 같은 시편들에서 유년기의 고향 체험을 재현하는데, 기층 언어라고 할 수 있는 방언에 의해 유년기의 심신 상관체에 새겨진 고향의 풍물과 정취의 기억은 현재적인 것으로 되살아나며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고향을 떠나는 일은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라는 시구가 말하는 바와 같이 존재를 欺罔하는 짓이다. 그걸 알면서도 고향을 등지는 슬픔을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었다”(「北方에서」)라고 쓴다. 시인이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고 避世의 변을 피력할 때, 세상을 등지고 들어가는 깊은 산골은 고향의 대체적 공간이다.
白狗屯의 눈 녹이는 밭 가운데 땅 풀리는 밭 가운데
촌부자 老王하고 같이 서서
밭취뚝에 즘부러진 땅버들의 버들개지 피여나는 데서
볕은 장글장글 따사롭고 바람은 솔솔 보드라운데
나는 땅임자 老王한테 석상디기 밭을 얻는다
老王은 집에 말과 나귀며 오리에 닭도 우울거리고
고방엔 그득히 감자에 콩곡석도 들여 쌓이고
老王은 치매도 힘이 들고 하루종일 白鈴鳥 소리나 들으려고
밭을 오늘 나한테 주는 것이고
나는 이제 귀치 않은 測量도 文書도 실증이 나고
낮에는 마음놓고 낮잠도 한잠 자고 싶어서
아전노릇을 그만두고 밭은 老王 한테 얻는 것이다
날은 챙챙 좋기도 좋은데
눈도 녹으며 수렁거리고 버들도 잎트며 수선거리고
저 한쪽 마을에는 마돝에 닭, 개, 즘생도 들떠들고
또 아이어른 행길에 뜨락에 사람도 웅성웅성 흥성거려
나는 가슴이 이 무슨 흥에 벅차오며
이 봄에는 이 밭에 감자, 강냉이, 수박에 오이며 당콩에 마늘과 파도 심으리라 생각한다
수박이 열면 수박을 먹으며 팔며
감자가 앉으면 감자를 먹으며 팔며
까막까치나 두더지 돝벌기가 와서 먹으면 먹는 대로 두어 두고
도적이 조금 걷어가도 걷어가는대로 두어두고
아, 老王, 나는 이렇게 생각하노라
나는 老王을 보고 웃어 말한다
이리하여 老王은 밭을 주어 마음이 한가하고
나는 밭을 얻어 마음이 편안하고
디퍽디퍽 눈을 밟으며 터벅터벅 흙도 덮으며
사물사물 햇볕은 목덜미에 간지로워서
老王은 팔장을 끼고 이랑을 걸어
나는 뒷짐을 지고 고랑을 걸어
밭은 나와 밭뚝을 돌아 도랑을 건너 행길을 돌아
지붕에 바람벽에 울파주에 볕살 쇠리쇠리한 마을을 가르치며
老王은 나귀를 타고 앞에 가고
나는 노새를 타고 뒤에 따르고
마을끝 蟲王廟에 蟲王을 찾어뵈러 가는 길이다
土神廟에 土神도 찾아뵈러 가는 길이다
백석, 「歸農」
「歸農」은 농촌에 들어와 賭地한 땅에 작물을 재배하며 정착하려는 경험을 서술한다. 백석의 다른 시편과 마찬가지로 줄거리가 매우 풍부하다. "백구둔“은 중국 만주 지역의 농촌 마을의 지명이고, 땅 임자인 ‘노왕’은 늙은이라는 뜻이 아니라 중국인 왕씨를 가리키는 말이다. ‘노’는 성 앞에 붙여 친밀함을 나타내는 접두사다. 시적 화자는 “測量도 文書도 실증이 나”서 중국인 왕씨에게 토지를 임대해 농사를 지으려 한다. “이 봄에는 이 밭에 감자, 강냉이, 수박에 오이며 당콩에 마늘과 파도 심으리라”는 농사 구상만으로도 시적 화자는 벌써 신명이 난다. 일제 식민지 아래서 만주로 흘러온 많은 조선 이주민들이 산간 경사지를 이용해 잡곡을 재배하거나 삼림을 이용해 만든 숯을 구워 내다 파는 일을 했다는 사실은 이 시의 생활사적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측량이나 문서와 관련된 일은 일제가 식민지 지배와 수탈을 강화하기 위해 행한 토지측량이나 철도부설 사업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백석이 末端 직책이기는 하지만 식민지 지배 사업에 협력하고 있다는 정치적 자각에서 심리적인 갈등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시의 중심 서사는 마을 끝에 있는 충왕묘와 토신묘를 찾아 땅을 경작하게 되었음을 고하기 위해 토지 소유주인 노왕과 동행하는 얘기다.「歸農」은 뿌리로 돌아가려는 곡절을 그린 시편이다. 백석의 유별난 장소애라는 척도에서 보자면 이 시는 단순한 생업의 변경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장소의 정체성을 되찾고 참된 삶의 느낌을 회복하려는 열망을 보여준 시편으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