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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산주의자가 본 제약 회사
다국적 제약 회사 BMS가 일명 ‘슈퍼 글리벡’이라고 불리는 백혈병 치료제 ‘스프라이셀’ 한 알에 6만 9천1백35원이라는 가격을 요구했다고 한다. 매일 이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들에게 드는 약 값은 한 달에 400만 원, 일 년에 5000만 원이다. 한국에서는 약값의 10%를 환자가 부담하기 때문에 한 달에 40만 원이 든다. 한 달에 월급을 100만 원 정도밖에 못 받는 가난한 노동자에게는 엄청난 부담이다.
여러 시민 단체나 좌파 조직에서는 이런 예를 들며 다국적 제약 회사의 탐욕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국적 제약 회사는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엄청난 부당 이득을 챙기는 악마로 묘사된다.
거대 제약 회사와 선진 산업국 정부는 가난한 나라에서 복제약(generic drug, 지적 재산권을 무시하고 성분을 똑같이 복제해서 만든 약)을 만들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 이 때에도 거대 제약 회사의 탐욕이 도마 위에 오른다.
복제약은 원약(original drug)보다 훨씬 싸다. 그 이유는 복제약에는 연구개발비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스프라이셀’ 한 알에 6만 9천1백35원이라는 가격은 제조비만 따지면 터무니 없는 가격이다. 하지만 개발비까지 따지면 어떨까?
게다가 스프라이셀을 개발하는 데 드는 개발비만 따지는 것도 문제가 있다. 만약 제약 회사에서 상품 출시에 성공한 제품의 개발비만 따져서 가격을 책정한다면 그 제약 회사는 곧 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한 신약 개발 연구에 들어간 엄청난 연구비를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시민 단체 등이 주장하는 대로 약값을 싸게 책정한다면 신약 개발을 선도하는 거대 제약 회사가 몽땅 망해서 결국은 환자들이 피를 보게 될 것이라고 자본주의자들은 반론을 편다. 환자는 약이 필요하고, 제약 회사가 있어야 약을 개발하고 만들 수 있다. 만약 제약 회사에서 연구비를 약값으로 회수하지 못한다면 결국 망할 것이다.
시민 단체에서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떼쓰기 이상이라고 볼 수 없다. 대부분의 시민 단체는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한다. 여기에 시민 단체의 딜레마가 있다.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면서 제약 회사가 몽땅 망할 정도로 약값을 싸게 책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만약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시민 단체에서 거대 제약 회사의 탐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제약 회사에서 들이는 연구 개발비(실패한 사례까지 다 포함하여)와 제조 비용 전체에 대한 실증적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공산주의자는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공산주의 체제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공산주의자는 약이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라 순수하게 인간을 치료하는 수단이 되는 공산주의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보다 훨씬 더 좋다고 선전할 것이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할 것이다. 그렇다면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손을 놓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설령 공산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보다 더 낫다는 공산주의자의 말이 맞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개선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 문제에 대한 세 가지 해결책이 있을 수 있다.
첫째, 공산주의 사회가 될 때까지만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해결책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
둘째,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부분적으로 공산주의를 실현하는 방식이 있다. 이 글에서는 이 방식에 초점을 둘 것이다.
셋째, 자본주의적 방식 내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나는 제약 회사의 문제를 공산주의 일반론과 연결시키고 싶다. 공산주의라는 개념도 정의하기 나름이다. 나는 나 나름대로 공산주의를 정의할 것이며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사회다. 나의 정의가 다른 공산주의자들의 정의와는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자세한 것은 『나는 왜 다윈주의적 공산주의자인가』에서 쓰고 있다.
첫째,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복지 제도가 대폭 확대된다. 좌파는 보통 이런 표현을 쓰기 싫어하지만 복지는 곧 가난한 사람들의 불로소득이다. 이런 면에서 공산주의 사회에서 어떤 측면에서는 불로소득이 확대된다. 자신 또는 부모가 아무리 농땡이를 쳐도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기본적인 의식주, 의료, 교육, 대중 교통 등이 공짜다.
둘째,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이윤 논리가 중단된다. 좌파가 좋아하는 표현을 쓰자면 부자들의 불로소득이 사라진다. 즉 이윤, 이자, 도박 등의 불로소득이 사실상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복권도 도박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복권 발행자는 복권을 팔아서 거두어들인 돈 중 절반 정도만 복권 당첨자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꿀꺽한다. 이것은 카지노에서 돈을 챙기는 것과 사실상 다를 바 없다.
셋째,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이 민주화된다. 자본주의의 기업에서는 개인 또는 선출되지 않는 이사회가 기업을 운영하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의 노동자가 선출한 대표들이 기업을 운영한다.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왕 또는 선출되지 않는 귀국들이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이 국가를 운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먼저 세상에 국가가 하나만 있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하겠다. 어떤 사회에서도 제약 회사가 존재하려면 누군가 연구를 하고 약을 제조해야 한다. 즉 비용이 든다. 자본주의적 제약 회사에서는 그 비용이 결국 환자가 내는 약값에서 나온다. 반면 공산주의적 제약 회사에서는 국가가 비용을 댄다. 만약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공산주의적 제약 회사가 존재한다면 결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이 회사를 위에서 언급한 공산주의 세 가지 특징과 연결해 보자.
첫째, 약값을 받지 않는다. 약이 필요한 사람은 공짜로 약을 얻을 수 있다.
둘째, 이윤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제약 회사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약을 개발하며 사람들이 찾는 약을 만들어낸다.
셋째, 민주적이다. 어떤 식으로든 선출된 사람들이 제약 회사를 운영한다.
자본주의적 제약 회사에서는 신약을 히트 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 이 돈은 신약 개발을 위한 커다란 동기를 제공한다. 맞는 말이다. 자본주의자들은 이것을 근거로 들며 공산주의적 제약 회사가 결국 환자들에게 손해를 끼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윤이라는 동기가 없으면 애써 신약을 개발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인간 본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안간에게는 강력한 이윤 본능 또는 돈 본능만 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인간이 진화했던 과거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돈이나 이윤이 아예 없었다. 따라서 그런 본능이 진화할 수도 없었다.
아주 많은 것들이 인간에게 동기를 제공한다. 성욕, 식욕, 자식 사랑, 이성에 대한 사랑, 우정, 높은 지위에 대한 열망 등 온갖 것들이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이 많은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 돈이 있으면 여자의 성을 살 수 있고, 식욕을 채울 수 있고, 자식에게 무언가를 사줄 수 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체로 많은 돈은 높은 지위를 뜻하기도 한다.
과학자들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많은 경우 돈으로 연결된다. 뛰어난 과학자는 교수가 되기 쉽고 대체로 교수들은 많은 월급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그 과학자는 과학자 집단 내에서 그리고 전체 사회 내에서 지위가 올라간다.
돈에 대한 욕심보다 지위에 대한 욕심이 더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돈 본능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높은-지위-추구 본능이 있다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매춘 본능이라는 말보다 성 본능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에게는 성 본능이 있다. 하지만 매춘에 대한 열망은 직업적인 매춘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돈에 대한 욕심은 돈으로 굴러가는 사회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제약 회사나 공산주의적 제약 회사에 다니는 연구원들이 신약을 개발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니다. 신약을 개발하면 지위가 높아지고,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고, 남을 도왔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뿌듯해진다. 많은 사람들의 착각과는 달리 이타 본능도 본유적인 인간 본성이다. 이타 행위 자체가 인간의 쾌락 중추를 자극한다. 공산주의적 제약 회사에서는 이런 여러 동기들 중 돈이라는 동기만 줄어들 뿐이다.
나는 돈이라는 동기가 줄어들어서 연구 의욕이 어느 정도 줄어들 수는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돈을 숭배하는 것을 보면 돈이라는 동기가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수 많은 요인들을 고려해야 한다. 위에서는 인간 본성의 차원에서 여러 요인들을 고려했다. 이번에는 사회 체제의 차원에서 여러 요인들을 고려해 보겠다.
첫째, 신약이 독점적인 지위를 제공하여 엄청난 이윤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제약 회사들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철저히 숨기려고 한다. 왜냐하면 다른 기업이 알아내면 선수를 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엄청난 비효율로 이어지고 있다. 만약 수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이 제약 회사의 마인드로 살아왔다면 지금처럼 수학과 물리학이 발달할 수 있었을까? 수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은 조금만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면 곧바로 논문으로 발표해서 누구나 (출처 인용만 제대로 하면) 마음껏 써 먹을 수 있도록 한다. 반면 제약 회사에서는 신제품이 완성될 때까지 연구의 중간 과정을 최대한 숨기려고 한다. 공산주의적 제약 회사에서는 연구의 중간 과정을 모두 공개해서 모든 연구자들이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둘째, 돈을 버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효과가 뛰어난 신약 개발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필요하지도 않은 약을 먹도록 소비자를 꼬시는 방법도 있고,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소비자에게 숨기는 방법도 있고, 약의 효과를 과장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제약 회사들은 기꺼이 이런 방법들을 사용해 왔다. 이윤에 대한 집착 자체가 없는 공산주의적 제약 회사에서는 이런 문제점들이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나는 이런 공산주의적 제약 회사가 공산주의 혁명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상 의료는 여러 나라에서 시행된 바 있다. 그것도 현재의 한국보다 일인당 GNP가 더 낮을 때부터 시작했다. 무상 의료는 공산주의의 복지 측면을 어느 정도 실현한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아픈 사람은 무조건 치료해주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쉽기 때문이다. 술을 먹고 싶은 사람에게는 무상으로 술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전혀 동의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도 아픈 사람을 무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공감대 역시 인간 본성과 연결되어 있다.
고속도로나 철도 등을 국가가 나서서 당장의 이윤을 생각하지 않고 건설한 예도 수도 없이 많다. 제약 회사의 국유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가능할 근본적인 이유는 없다. 시민 단체나 진보 정당에서 이런 방향으로 싸울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또한 위에서 묘사한 공산주의적 제약 회사보다 조금 더 후퇴한 방식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구개발의 측면에서는 공산주의적 원칙에 따르고 제조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자본주의적 방식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소비자는 제조비만 내고 약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즉 현재의 복제약의 가격으로 약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미국처럼 살벌하게 자본주의적 원리에 맹종하지는 않는 북유럽이나 서유럽 국가들이 먼저 나서서 거대한 신약 연구 조직을 만드는 것으로 거대한 개혁이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유럽 연합 신약 개발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그 회사의 개발비는 각 국가에서 GNP의 일정 비율로 댄다. 그리고 모든 개발 과정은 전세계에 완전히 공개된다. 또한 그 회사에서 나온 신약에 대한 어떤 로열티도 받지 않는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에서 마음껏 복제약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가난한 나라들을 돕는 것이 생색내기 식으로 물자를 지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신약 개발에 지대한 기여를 한 연구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 연구의 성패는 결국 제약 회사 대표의 열망이 아니라 연구원들의 열성에 달려 있다.
첫댓글 위에서 말씀하신 돈과 지위는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써 거의 같은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신약을 개발하려는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돈에 의한 Motivation의 힘이 과소평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 힘을 실측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역사로 보건대 단지 타인의 복지를 위한 선한 동기의 힘은 돈을 향한 그것보다 훨씬 더 약하다는 것입니다. 슈바이쩌같은 사람이 드문 이유가 되겠지요.
덕하씨 연구개발비는 실패한 비용도 포함되는 것 입니다.
저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게다가 스프라이셀을 개발하는 데 드는 개발비만 따지는 것도 문제가 있다. 만약 제약 회사에서 상품 출시에 성공한 제품의 개발비만 따져서 가격을 책정한다면 그 제약 회사는 곧 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한 신약 개발 연구에 들어간 엄청난 연구비를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