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와 장마가 시작되면 꽃들이 사라진다. 식물들도 종족번식의 적기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민족의 꽃이란 무궁화는 이때쯤 꽃을 피운다. 그외에도 가까이서 볼 수 있는건 길가의 접시꽃, 담장의 능소화나 텃밭의 도라지꽃 정도이다.
그런데 외세(병충해)의 공격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이 무궁화의 흠이다. 엇그제 산악트래킹에서도 온통 시에서 공들여 심은 무궁화잎만 벌레가 먹어버린 안타까운 모습을 보았다. 약소식물...왜 방어막을 잃었을까?
갑자기 강한비 내리는 들판, 우산을 급히 꺼내들었다. 우렁이 잡는 황새처럼 고개를 떨구고 거닐다 벼포기 틈새에서 고개를 쳐든 작고 하얀 꽃을 담았다.
'보풀꽃'이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운 작고 하찮은 녀석이다. 옛날 어른들은 이름하여 '등잔걸이'라고 불렀단다. 잎의 끝자락이 날카로워 등잔걸이 같다는 표현이다.
벼논의 더부살이, 큰벼의 그늘에서 눈치보며, 설마 너도 무궁화의 상징처럼...
그런데 옛날에는 논에서 보기가 쉽지 않았다. 손으로 몇차례 논매기 작업을 하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사람이 논매기를 하지 않으니 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논이라고 아무데나 있는 것도 아니다. 논갈이, 수확과정의 그 웅장한 트렉터의 진동에도 용케 살아남아 생명을 유지하는게 기특하다.
친구들과 강에서 멱감던 삼복의 여름, 막자란 벼포기끝에 얼굴 눈찔려가며, 김매시던 아버지의 고통을 알면서도 그시절을 그리워함은 나만의 부질없는 지나친 향수와 노탐일까? 비바람 부는 푸른 들판을 보며 잠시 생각을 떠올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