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독서일지 (4)
(24.05.04~05.25)
1930년대 영국(英國) 속으로
-4일차(24.05.07)
1
책을 읽는 창밖으로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차분하게 책 속의 1930년대 영국으로 떠나간다. 그런데 그전에 한 가지 뇌리에 각인시켜야 할 것이 있다. 대부분의 여건들이나 사물의 세계, 세상, 사람은 의외로(?) 변함없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변함없이 여전함.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려놓으면 인사 겸 찾아드는 지인들이 있다. 가깝게는 3년 전부터 길게는 40년 지기까지 다양하다. ‘건재함’을 알리는 일종의 메시지처럼 보인다.
모든 것은 그대로 인 것 같다. 어쩌면 여전한 지도 모른다. 그 여전함은 몇 년까지 소급할 수 있을까. 천 년? 이천 년? 기록이 남아있는 한 그 소급은 한계가 없을 것 같다. 인간은 ‘상상력(想像力)’이라는 도구가 있으니까.
그 ‘상상력’은 이제 미래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19세기에 상상했던 각종 인류의 미래가 지금 조금씩 열리고 있음을 우리는 현대 세계에서 매일 확인하고 있다.
우주로 향하는 탐사선, 개인마다 소유하는 스마트폰, 하늘을 나는 자동차, 사이보그(AI) 시대 등은 인류가 불과 백여 년 전에 상상했던 미래다. 그때는 공상(空想)이라고까지 치부했던 황당무계(荒唐無稽)지만 지금은 버젓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이것은 ‘여전함’ 속에서 종횡무진 변하는 ‘세계의 현상’들이다.
‘뫼비우스의 띠’가 떠오른다. 요즘 유행하는 ‘융합’이라는 개념도 그렇다. 안과 밖이 따로 없고 동전의 양면처럼 개념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시시비비(是是非非)’의 무의미함이 요구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그 안에서 시대를 넘어서도 변하지 않는 ‘본질’을 찾는 여행을 하고 있다. 19세기 개념인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에서 ‘문학’을 통해 과거 20세기 영국으로 떠나본다. 어쩌면 그곳에서 오늘 지금의 제 현상에 대한 많은 해답이나 단서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독서’는 그래서 유용한 것이라는 사실도 재확인하면서.
창밖 난간에는 내리는 봄비에 올망졸망 매달린 물방울이 투명하게 애처롭다. 자, 이제 책을 읽을 시간이다. 어딘가에서 읽은 ‘자연계에서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정보를 나누는 것은 인간이라는 동물이 유일하다’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2
소설 속 내용에 주인공의 회고조가 많다 보니 덩달아 지나간 과거가 떠오른다.
기억 속의 어느 날
그 날 저녁에 있을 제사 음식을 준비하느라
일가의 친척 분들이 집에 모였을 때
어머니를 이 집안에 들게 해주셨던
작은 고모 할머니도 오랜만에 오시고
집안은 금방 잔치 분위기였다
모든 게 하나하나 갖추어져 가고
술도 한 잔씩 드시던 작은 고모 할머니,
얼굴에 잔잔한 미소와 홍조가 떠오르자
부엌을 넘나들던 어머니 말씀 하신다
고모님,
이건
꿈입니더
딱히 누가 들으라고 하신 말씀은 아닌 듯,
아무도 그 말에 답을 하지 않으신 것을 보면
40년이 흐른 지금
그때를 문득 반추해보면
3
약속한 날 예정된 장소에서 일전에 오랜 기간 ‘달링턴 홀’에서 같이 근무했던 켄턴 양과의 오랜만의 조우는 예상했던 대로 작품의 가장 말미에 배치되어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피날레의 일부를 장식한다.
-내가 뛰어나가 버스에 신호를 보내는 사이에 켄턴 양도 일어나 대합실 가장자리로 나왔다. 나는 버스가 정차한 뒤에야 켄턴 양을 힐끔 쳐다보았는데 두 눈이 눈물로 얼룩졌음을 알 수 있었다.
“자, 벤 부인, 부디 몸조심해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퇴직 후의 인생이야말로 부부생활의 황금기라고. 당신과 부군에게 행복한 나날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해요. 벤 부인, 혹시 다시 못 보게 될까 싶어 당부 드리는 것이니 부디 명심하기 바랍니다.”
“명심할게요, 스티븐스씨, 고맙습니다. 여기까지 태워 주신 것도 고마웠고요. 여러 가지로 너무나 잘해 주셨어요. 다시 뵙게 되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저도 정말 즐거웠습니다.”
(<여섯째 날 저녁 : 웨이머스> 내용 중에서)
같이 오랜 시간 근무하며 집사의 ‘위대함’이란 강한 신념에 이끌려 근무에 티끌만큼도 소홀함이 없던 주인공 ‘스티븐스’ 집사와 총무 ‘켄턴’양은 서로 사랑했던 것이다. 작품 속에서 수많은 기회와 시간이 있었음에도 왜 서로는 사랑의 고백을 하지 못했을까....
영국인의 ‘일과 인생’에 대한 투철한 의식과 늘 그렇듯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이 일과 관계하는 방식, 그리고 한 인간의 허망한 삶을 예리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2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