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머튼의 <침묵>
마음이 상했지만 답변하지 않을 때 내 마음 명예에 대한 방어를
온전히 하느님에게 맡길 때 침묵은 양선함입니다.
형제들의 탓을 들어내지 않을 때 지난 과거를 들추지 않고 용서할 때
판단하지 않고 마음 속 깊이 용서할 때 불평없이 고통을 당할 때
인간의 위로를 찾지 않을 때 서두르지 않고 씨가 천천히 싹트는 것을
기다릴 때 침묵은 인내입니다.
형제들이 유명해지도록 입을 다물고 하느님의 능력의 선물이 감춰져
있을지라도 내 행동이 나쁘게 평가되더라도 타인에게 영광이 돌려지도록
내버려 둘 때 침묵은 겸손입니다.
그분이 행하시도록 침묵할 때 주님이 현존해 있을 때 세상소리와 소음을 피할 때
그분이 아시는 것만으로 충분하기에 인간의 이해를 찾지 않을 때
침묵은 신앙입니다.
왜라고 묻지 않고 십자가를 포용할 때 침묵은 흠숭(欽崇)입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신께
-토마스 머튼의 침묵-
저는 간혹 타인으로부터 받은 인간적 모독과 저를 잘 모르는데서 오는 편견을 대할때 위의 시를 자주 외웠습
니다.또한 교만으로 인한 상대방의 무시에서 나를 자유롭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나를 상대보다 한단계 낮게
내려놓고 시작하는 삶은 매우 편안합니다.일찌기 아시시(이탈리아 지방)의 聖人 프란치스코가 그랬고 높은
사회적 직위보다 인간됨을 택한 모든 지혜로운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토머스 머튼은 미국의 중서부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원장 신부였습니다. 그분은 철저한 수도자의 정신으로 일생을 살았는데 그분이 쓴 여러권의 책을
대부분 읽어보았습니다. 칠층산(七層山)을 비롯한 기도서 등에는 삶의 애환에 얽힌 해답이 많이 들어있었지요.
그분을 통해서 저는 한때 수도자가 되려고 했지요.그리고 용서하는 방법도 배우고요,또 용서를 청하는 방법도 알고요.
우리 그렇게 삽시다.오늘 우리가 만나는 분들은 내게는 가장 귀한분이라고 생각하고 또 이 세상에서 만나는 마지막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그렇게 남은 인생 살아가도록합시다.
저서『칠층산』『가장 완전한 기도』『명상이란 무엇인가』『구원의 빛』
『침묵 속에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마음의 기도』
첫댓글 Thanks for your message
어제 밤 아니 오늘 새벽까지
제마음에 요동치는 서운 이라는 놈 과 결투를 했습니다
그리고 난후 평정을 못찾고
넉다운 되어 잠시 새벽 공기를 마시고 들어왔습니다
들어와 일송정님 글을 깨닫고 잠시 제가 혼란스러웠던 감정의 절제가 되지 않았음을 이제 알았습니다
양선함이 부족했고 인내심이 바닥을 쳤고 겸손함도 많이 시들해져가고 있었습니다
요즘 분주한 일상에 주님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신앙
즉 기도생활의 부족이었습니다
오늘 저를 다시 내려놓을수 있게 하신 말씀 감사드립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제게 가장 귀한분이 될수있기를 소원합니다
양선함, 인내, 겸손, 신앙, 흠승이 침묵의 뜻이었다는 군요.
많은 경우 침묵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깨달음과 배움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탄핵내란 이후에는 공동체의 진실과 정의를 위하고, 박근혜라는 한 고결한 분을 위해서는 침묵이 오히려 무섭고 야비한 적과의 공범이라는 인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해서 부족하지만 그때 그때 사건마다의 소회를 끄적여 일기가 되듯 쓰고 남겨두자는 결심으로 홀로만의 글을 써 왔습니다.
어쩌면 그건 실존의 몸부림이었는지 모릅니다.
부족할 지 몰라도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 자체로 한 인간이 혼란한 격동의 한 시대를 살아가며 느끼며 실존을 위한 처절한 울부짖음을 표출해 왔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는 만큼만 느낀대로 어떤 메아리가 없어도 써 보기로 한 것이 당초 펜을 들었던 때의 결심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두 곳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지킴이님의 눈에 띄었던 것이 아마도 우리 진우에 주제넘지만 시사 칼럼 한 켠을 메우게 되었던 거였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바로 침묵할 그 날을 참으로 고대하고 있다는 그 것일 것입니다.
시대가 진실과 정의가 바르게 세워지고, 위대하고 고결한 한 인간에 대한 경외가 바르게 마음껏 우러나오고 고개숙일 수 있을 때 제 졸필은 책상 서랍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더 이상 불의가 정의를 더럽히지 않을 때 오늘의 동지들과 따듯한 차 한잔을 앞에 두고 밝은 눈빛만으
로 침묵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날을 기다립니다.
그 날을 고대합니다.
그 날을 만드렵니다.
그 날까지 우리 동지님들과 함께 하렵니다.
일송정님의 글을 보고 마구 생각이 이어져 다소 길게 적었습니다.
용서하소서!
아침 수라상 차리느냐
이제 자유전사님 글을 보았습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침묵의 표현 방식이 다를뿐
우리 시민 들은 다 같을것입니다
그날을 기다림 소망 희망
이렇게 표현 해도 되겠지요
오늘 보면 무지하게 반가울것 같습니다
자유전사님의 그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저도.아침에 일송정님 글 읽는 순간
침묵하는자 공범이다.
그말이 떠올라 글에 집중되지 않아
제대로 못 읽었습니다.
서울역가는중 지하철안이라
집회 끝나고 집에가서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
두고두고 마음에 심겨질때까지
새겨야할 말씀입니다..
두번을 정독했습니다~고맙습니다
미국 켄터기주에 있는 겟세마니 트라피스트 수도원 내 머튼의 묘지. 여기 수도사들은 관도 사치라고 관도 없이 묻는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