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의 눈으로 볼 때 테니스 마니아들은 많이 있었다.우리들은 바쁜 일정속에서도 지방에 갈 때에도 어김없이 테니스라켓과 신발을 꼭 챙겨가지고 갔다.피감 기관 사람들을 만나면 맨먼저 물어본 것이 "어디에 테니스 장이 있느냐"는 것이었고 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그분들이 왜 그리 고맙고 반가왔는지?그것만으로도 우선 감정적으로 그분들의 입장에서는 대화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우선 쉽게 대화를 할 수 있었으니 한몫접고 들어간 셈이었다고나 할까?그렇게 우리는 자나깨나 서울에서나 지방에 갔을 때나 테니스가 모든 생활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우리과에 또 한분의 테니스 마니아가 왔다. 청와대에 파견되었다가 감사원으로 복귀하신 강태환 과장님이 바로 그분이다.강과장님은 호방하고 잘생긴 외모에다 건강한 테니스 마니아였다.그분은 테니스뿐 아니라 남자들이 야외에 나갈 때 갖추어야 할 많은 준비물에 대해서까지 꼼꼼히 챙기셨다.
우리과에 오시자 말자 곧 일요일에 전직원과 워커힐 위 산속에 있는 선경물산의 테니스장으로 가기로 했다.우리들은 좋은 테니장을 잘 모르고 있었는데 그 좋은 곳으로 즐기러가니 신났다. 2015년 가을 감우회 수첩을 받고서 오랜만에 전화드렸더니, 귀가 어두우셔서"고석홍입니다"하고 큰 소리로 멏번을 말씀드렸지만 누구인지도 모르시고 "왜 전화했느냐?"만 반복하셔서 안타까움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또 한분 주청신 프로이다.그는 당시 원호청에서 근무했는데 테니스 수준이 거의 프로급이었다. 그런데 감사원 간부의 눈에띄여 감사원으로 스카우트 되어 전입해 왔다고 했다..토요일 오후에 간부들과 주청신씨가 테니스를 치는것을 우리는 구경하고 그분의 테니스 실력에 감탄했다.
그런데 어느날 통근버스에서 주청신씨가 불광동 막 지나서 갈현동에 사신다는 것을 알고,그에게 "연신내에서 새벽에 같이 공치고 출근하면 어떻겠는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분은 쾌히 동의했다.자신도 워낙 테니스를 좋아하는 입장이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만 나로서는 큰 영광이었다. 1976년 가을 첫아들 융이를 낳았을 때 나는 불광동 산밑의 불광중학교옆에서 5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살고 있었다.연신내의 공터에 공한지세를 피하기 위해 12면의 테니스코트가 생겼다.나는 월회원으로 등록하고 매일새벽 6시 반부터 7시반까지 운동하고 통근버스로 감사원에 출근했다. 주청신씨와 나는 매일 새벽에 연신내 테니스코트에서 한시간 정도 테니스를 치고 샤워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테니스를 즐기고 출근했다.그의 스토록은 가이 폭발적이었다.오른 손으로 김숙히 왼쪽 코너로 찌르면 받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 그에게도 약점은 있었다.그는 왼쪽 리시브가 약했다.나는 싸우스포였으므로 왼쪽 깊이 찌르면 왼쪽으로 몸을 움직여서 오른손으로 받았기 때문에 가끔 실수가 있었다.그래서 나는 그의 연습상대가 되었다.그의 레슨 덕분으로 한때 전국 직장이테니스 대회에 나가 준우승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우리는 거기서 1년 남짓 테니스를 첬으나 내가 감사원에서 나오면서 그분과 테니스 칠 기회가 없어졌다.
2016년 2월 감우회 회원수첩을 보고 전화드렸더니 금방 알아보고 반가와 하셨다.그분은 40년생으로 나보다 9살위이시고, 지금 고향인 전주에서 농장을 경영하고 계신다면서 상경하면 전화주겠다고 하셨는데 아직까지 전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