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덟 시 기차를 탔더라면... 초등학생 김종춘은 씨름꾼이었다. 운동이란 운동을 다 잘하고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씨름종목은 김종춘을 당할 자가 없었다. 지도교사가“전국소년체전 정읍대표 선발전을 내일 진행하니 아침 8시 기차를 타거라. 혹여 내키지 않으면 오지 않아도 된다.” 지도교사는 씨름꾼 김종춘이 워낙 공부도 잘해서 일방적으로 운동을 강요하지 않고 선택권을 그에게 준 것이다. 조금 망설이던 김종춘은 다음 날 아침 기차를 타지 않고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로 인하여 오늘 우리는 씨름선수 김종춘이 아닌 법조인 김종춘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김종춘의 선택은 익산에서 중·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서울대 법대 86학번으로 입학하면서 크게 빛을 발했다. “학생은 왜 법학과에 진학을 희망 했나?” 면접관의 물음에, “할아버지께서 어릴 적부터 저에게 판사가 되라고 말씀하셔서 법대에 진학하고자 결심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다른 수험생들의 거창한 포부에 비해 김종춘의 예상 밖 답변에 면접관은 크게 웃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언제나 사람들 앞에서 김종춘에게 판사가 되라는 말씀을 하셨다. 김종춘의 잔뼈가 굵는 동안 할아버지의 뜻이 정신에 스며들어 별다른 갈등이나 저항 없이 김종춘이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는 대학원 2년차에 제33회 사법고시 1차, 2차, 3차를 단숨에 패스하여 사법연수원 제23기를 수료한 후 군 법무관을 거쳐 1997년에 전주지방법원 판사로 부임하게 된다. “전라북도는 저를 키워 준 곳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을 지키기로 처음 판사로 부임할 때 스스로 약속했습니다.”다른 법관들이 승진이나 출세를 위해 지역을 떠났어도 판사 김종춘은 광주 고등법원 3년 생활을 제외하고는 전라북도 지역을 벗어나지 않고 법관 생활을 이어왔다. 변호사 개업 후에도 지역을 가슴으로 품으며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이 정다움으로 다가왔다. 지평선을 바라보며 할아버지 사랑 속에서 자라난 김종춘! 뒷동산에서 친구들과 뛰놀며 자연을 이해하는 마음을 얻어 스스로를 건강하게 북돋아온 멋진 소년! 이성적 판단이 더 필요한 법원가에서 애정과 경청으로 지역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선물하는 김변호사의 활동은 긍정의 샘으로 세상에 자양분을 주리라 기대한다. 김변호사가 아침 8시 기차를 타지 않은 이유가 정읍 감곡면 들판을 배경으로 들판에 푸르게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