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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옥석(玉石) 眞짜 假짜 選別을 위한 교적부(所屬,肢體,組織,編成)행정의 해(後)💖
△새 하늘 새 땅을 소망(所望)하며,(眞짜)⇨(聖靈)✫(假짜)⇨(惡靈) 소속을 분명히 해야△ *축복(祝福)* 해방동이 행전(行傳) (玉石)⇨(正直)⇨(觀心)⇨(信賴)⇦(義理)⇦(順從)
† 신약(新約)☆(豫言書)
◇이 예언(例言)의 말씀을 읽는 자(者)와. 듣는 자(者)와. 그 가운데에 기록(記錄)한 것을 지키는 자(者)는 복(福)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계20:1-6절) 천년(千年) 왕국(王國)
Ⅱ.성도聖徒)들의 왕(王)노릇(Ⅱ)
사탄(詐誕)이 결박(結縛)된 천년(千年)동안, 이미 죽은 성도(聖徒)들과 또 우상(偶像)에게 절하지 아니한 살아 있는 성도(聖徒)들은 왕(王)노릇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0:4-5절)또 내가 보좌(寶座)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者)들이 있어 심판(審判)하는 권세 (權勢)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證言)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者)들의 영혼(靈魂)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偶像)에게 경배(敬拜)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手)에 그의 표(票)를 받지 아니한 자(者)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千年)동안 왕(王)노릇 하니”
여기서 요한은 보좌(寶座)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즉 보좌(寶座)에는 앉은 자(者)들이 있는데, 심판(審判)하는 권세(權勢)를 받았습니다. 여기 보좌(寶座)에 앉은 자(者)들은 이미 영적(靈的)인 전쟁(戰爭)을 마치고, 죽어서 그리스도 앞에 영광(榮光)스럽게 있는 성도(聖徒) 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이 세상(世上)에서는 그리스도의 증거(證據)로 인(因)하여 비참(悲慘)하게 목 베임을 받은 자(者)들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世上)에서 짐승과 그의 우상(偶像)에게 경배(敬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당한 자(者)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주(主)님 앞에서는 보좌(寶座)에 앉아서 온 세상(世上)을 심판(審判)하는 권세(權勢)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를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世上)에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들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事實)입니다. 이 세상(世上)에서 가장 비참(悲慘)하게 보이고, 어리석은 자(者)들이 신앙(信仰)을 인(因)하여 순교(殉敎)를 당하는 자 (者)들입니다. 그리고 비록 순교(殉敎)까지는 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신앙(信仰)때문에 많은 불이익(不利益)을 당하는 자(者)들입니다.
예수만 믿지 않으면, 부정(不淨)한 방법(方法)으로 취직(就職)이 될 수도 있고, 행복(幸福)
한 결혼생활(結婚生活)도 할 수 있는데, 신앙(信仰) 때문에 나쁜 정권(政權)을 만나 소중 (所重)한 교인(敎人)들 50명이 실족(失足)되고, 전재산(全財産)까지 강탈(强奪)당하여 알거지가 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적(世上的)인 눈으로 보기에는 이런 사람들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마치 부자(富者)집 앞에서 부스러기를 얻어먹는 거지 나사로와 같은 자(者)들인 것입니다.
거기에 비(比)하여 세상(世上)과 짝하여 세상(世上)에서 온갖 좋은 것들을 다 누리면서 사는 자(者)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서는 세상(世上)에서 보던 것과는 모든 것들이 정반대(正反對)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世上)에서는 알아주지도 않던 자(者)들이 모두 주(主)님의 보좌(寶座)에 앉아 있습니다. 그 이유(理由)는 신앙(信仰)은 이 세상(世上)에서 모든 것을 버리는 자(者)들이 더 큰 자(者)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 때문에 돈(錢)을 버린 자(者)는 버린 돈(錢)만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 때문에 학벌(學閥)을 버린 자(者)들은 버린 학벌(學閥)만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 때문에 자식(子息)을 잃고, 부모(父母)를 잃은 자(者)들은 그 잃어버린 부모(父母)나, 자식(子息)만큼 주(主)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잘 믿는다는 사람들의 특징(特徵)이 주(主)님을 위(爲)해 하나도 잃어버린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世上)의 성공(成功)한 것을 전부(全部) 교회(敎會)안에 다 끌고 들어와서 잘난체하는 세상(世上)이 된 것입니다. 이런 자(者)들은 예수님 앞에서*국물(?)*도 없을 것입니다. 신앙(信仰)은 기사도(騎士道)와 같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그것은 상관(相關)이 없습니다. 오로지 주(主)님 앞에서 나의 충성심(忠誠心)을 끝까지 지키다가 나중에 주(主)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기(自己)가 이 세상(世上)에서 어떻게 끝까지 충성(忠誠)했는지, 보고(報告)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선(善)한 싸움을 싸운 자(者)들만이 주(主)님과 함께 영원(永遠)히 왕(王)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352장 4절)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이 날에 접전하고 곧 개가 부르라. 승전한 군사들은 영생을 얻으며, 영광의 주와 함께 왕 노릇하리라"아-멘
주(主)님은 무엇 때문에 이 세상(世上)의 악(惡)의 세력(勢力)을 곧바로 심판(審判)하시지 않고, 내버려두셨을까? 그것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악(惡)의 세력(勢力)과 싸워서 영원(永遠)한 상급(賞給)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詐誕)을 정죄(定罪)하고, 영원(永遠)한 멸망(滅亡)에 빠트릴 심판자(審判者)의 위치(位置)에 있습니다.
또 하나는 왕(王)노릇하고 있다는 말입니다.*왕(王)노릇*은 도대체 무엇일까? *왕(王)이면 왕(王)이고, 아니면 아니지, 왜 *왕(王)노릇을 한다고 말씀하실까?* 그것은 왕(王)과 같은 권세(權勢)로 죄(罪)와 사탄(詐誕)의 세력(勢力)을 이긴다는 뜻입니다.
좋은 예(例)는 아닙니다만, 보통(普通) 사람들이 뱀을 보면,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땅꾼들은 뱀을 무서워하지 않고, 뱀을 보는 즉시 잡아서 자루 안에 넣어버립니다. 아무리 무서운 독사(毒蛇)나, 살모사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보통(普通) 사람들은 개(犬)들을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개(犬)장수(商人)들은 개(犬)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犬)들이 개(犬) 장수(商人)들을 알아보고, 꼼짝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약(舊約) 시대(時代) 이스라엘 백성(百姓)들은 바알과 아세라 앞에서 꼼짝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바알이나, 아세라 단(壇)을 건드리면, 죽임을 당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바알의 단(壇)을 부수고, 아세라 상(像)을 찍었지만, 죽지 않고, 잘만 살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받은 별명(別名)이 *여룹 바알*인데,*바알 킬러(killer)라는 뜻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미신(迷信)의 킬러(killer)요, *죄(罪)의 킬러(killer)요, *음란(淫亂)의 킬러(killer)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가장 존귀(尊貴)한 자(者)들의 신분(身分)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천지(天地)의 주재(主宰)이신 하나님께 나아가서 원(願)하는 모든 것들을 마음껏 요구(要求)할 수 있는 권세(權勢)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옛날 우리나라의 *암행어사(暗行御史)*와 같은 자(者)들인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世上)에 있는 동안에 우리는 주(主)님처럼 왕(王)이 아니기 때문에 인정(認定)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모욕(侮辱)을 당하고, 배척(排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존귀(尊貴)함까지 빼앗긴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기도(祈禱)할 수 있는 특권(特權)까지 빼앗긴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사면(四面)을 에워싸도 하늘까지 막을 순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보좌(寶座)앞에 나아가서 기도(祈禱)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懇求)할 수 있고, 새로운 힘을 주시도록 기도(祈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왕(王)노릇 하는 자(者)들이 누구일까? 예수의 증거(證據)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인(因)하여 목 베임을 당한 자(者)들입니다.
끝까지 신실(信實)하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든 자(者)들입니다. 그리고 또 누구일까? 짐승과 그의 우상(偶像)에게 절하지 아니하고, 이마나, 손(手)에 짐승의 표(票)를 받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있는 자(者)들입니다.
결국 살아 있거나, 죽었거나, 복음(福音)을 끝까지 붙들고, 이 세상(世上)과 타협(妥協)하지 아니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世上)과 타협(妥協)한 사람들은 *왕(王)노릇할 수 없습니다. 즉 경제적(經濟的) 고난(苦難)이나, 핍박(逼迫)이 두려워서 황제(皇帝)의 상(像)에 분향(焚香)을 하고, 표(票)를 얻은 자(者)는 주(主)님의 보좌(寶座)에 앉을 수 없습니다.
결국(結局) 이 세상(世上)을 심판(審判)하는 자(者)들이 누구일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信仰)의 양심(良心)을 지킨 자(者)들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주(主)님은 모두 다 알고 계십니다. 이 세상(世上)에서 좀 더 편(便)하게 잘 살아 보려고, 신앙(信仰) 양심(良心)을 팔아먹은 자(者)는 결코 영원(永遠)한 생명(生命)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며, 함께 믿던 형제(兄弟)들로부터 심판(審判)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자기(自己)들의 탐욕(貪慾)을 위해 복음(福音)을 방해(妨害)하고, 성도(聖徒)들을 실족(失足)케하고, *재산(財産)까지 찬탈(簒奪)한 자(者)들은 심판(審判)이 있을 것입니다.
주(主)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왜 성도들이 죽음이 두려워서 타협(妥協)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경제적으로 좀 고생하고, 친척(親戚)들이나, 아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양심(良心)을 배신(背信)하느냐?는 것입니다.
주(主)님은 *친(親)히 손가락질 당하고, 얼굴에 침 뱉음과 그 모든 모욕(侮辱)을 다 받고, 심지어는 자기(自己)를 키우신 어머니(마리아)앞에서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면서도 하나님의 약속(約束)을 붙들었는데, 왜 그 종(從)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복음(福音)에 불순종(不順從)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5-6절)(그 나머지 죽은 자(者)들은 그 천년(千年)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復活)이라. 이 첫째 부활(復活)에 참여(參與)하는 자(者)들은 복(福)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死亡)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權勢)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祭司長)이 되어 천년(千年)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王)노릇 하리라”
여기서 두 가지 사실(事實)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첫 번째 부활(復活)이고, 다른 하나는 두 번째 사망(死亡)입니다. 첫 번째 부활(復活)이라고 하는 것은 성도(聖徒)들이 하나님의 능력(能力)으로 부활(復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本文)을 보면, 천년(千年) 왕국(王國)이 시작(始作)되면, 믿는 자들은 먼저 부활(復活)하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죽은 상태(狀態)에 있다가 마지막 심판(審判)때에 다시 살아나서 영원(永遠)한 지옥(地獄)의 심판(審判)에 떨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본문(本文)이 부활(復活)의 정확(正確)한 순서(順序)를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生角)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지(但只) 부활(復活)의 종류(種類)를 말할 따름입니다. 하나는 분명(分明)히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生命)을 걸고, 말씀을 지키는 자(者)는 부활(復活)합니다. 즉 몸을 입고 다시 살아납니다. 이것이 첫 번째 부활(復活)입니다.
그러나 복음(福音)에 굴복(屈伏)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自己) 정욕(情慾)대로 사는 자(者)는 두 번 째 부활(復活)에 참예(參與) 하게 되는데, 이것은 영원(永遠)한 멸망(滅亡)의 부활(復活)이기 때문에 두 번째 부활(復活) 이라고 말하지 않고, 두 번째 사망(死亡)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생명(生命)이 죽는 것이 첫 번째 사망(死亡)이고, 나중에 영원(永遠)한 멸망(滅亡)의 죽음이 다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는 고통(苦痛)과 수치(羞恥)가 영원(永遠)히 계속(繼續)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탄(詐誕)이 결박(結縛)되어 있는 상태(狀態)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마음껏 복음(福音)을 위(爲)하여 사는 것입니다. 평안(平安)할 때, 자기(自己) 행복(幸福)만을 위(爲)하여 사는 자(者)는 가장 어리석은 자(者)입니다.
우리나라에 전쟁(戰爭)이 일어나기를 원(願)치 않는 자(者)는 자기(自己) 행복(幸福)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이기적(利己的)인 생각(生角)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生角)입니다. 우리는 사탄(詐誕)이 결박(結縛)되어 있는 동안 마음껏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세상(世上)에 밝혀야 합니다. 그러면 사탄(詐誕)이 전쟁(戰爭)을 일으키도록 충동질(衝動質)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악(惡)이 미쳐서(狂的) 날뛰고 있다면, 보좌(寶座) 우편(右便)에 계신 그리스도께 간구(懇求)하여 이 미친(狂的) 사탄(詐誕)을 결박(結縛)시켜 주시도록 간구(懇求)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왕(王)입니다. 이 세상(世上)에서는 나그네지만, 존귀(尊貴)한 왕(王)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왕(王)의 모습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아-멘
찬송가 352장 *십자가 군병(軍兵)들아*
| 오늘의 묵상 ◇...주(主)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能力)으로 강건(康健)하여지고, *마귀(魔鬼)의 간계(奸計)를 능(能)히 대적(對敵)하기 위(爲)하여 하나님의 전신(全身)갑주(甲冑)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血)과 육(肉)을 상대(相對)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統治者)들과 권세(權勢)들과 이 어둠의 세상(世上) 주관자(主管者)들과 하늘에 있는 악(惡)의 영(靈)들을 상대(相對)함이라(엡6:10-12) |
💖진리의 복음*축복의 통로💖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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