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이야기란 남녀 노소, 고금 동서를 막론하고 인류의 영원한 흥미거리이다. 미스K는 운전하면서 중간 중간에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아 그래요?”라고 추임새를 넣기도 하면서 열심히 남의 연애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K교수는 신이 나서 과장법을 써가면서 대학 1학년 때 미팅 가서 만난 첫 번째 여자에게서 바람맞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K교수는 소설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별것 아닌 이야기에다가 그럴듯하게 살을 붙이고 피를 통하게 하는 일은 아주 쉬웠다.
얼마쯤 가다가 미스K는 주유소에 차를 세우고 기름을 넣었다. 주유하는 잠간 동안에 미스K는 차에서 내리더니 화장실에 다녀 오면서 자판기에서 커피 2잔을 뽑아 왔다. K교수는 조수석에 앉아서 미스K의 걸음걸이며 커피를 뽑는 모든 과정을 영화 보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동작 하나 하나가 아름답고 우아해 보였다. 자판기 앞에서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머리에 잠간 손을 대는 모습이며, 흡사 모델이 걷듯이 사뿐사뿐 걷는 모습이며 모두가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교수님, 커피 드시지요. 교수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시는데도 졸음이 와서 저도 커피 한잔 마셔야겠어요.”
“아이고, 내 이야기가 별로 영양가가 없었나 보군요. 조수석에 앉는 사람으로서 자격이 없나 봐요. 어떻게 하지요? 그렇다고 내리라고 하지는 마세요.”
“아니에요. 재미있는 연애 이야기인데, 제가 어제 잠을 잘 못 자서 그런가 봐요.”
“왜 무슨 잠 못 이룰 일이라도 있었나요?”
“그렇지는 않은데 너무 피곤해서 . . . 그런데, 교수님 부탁 하나 할까요?”
“그러세요. 미녀가 부탁하는데 거절한다면 남자가 아니지요.”
“운전 좀 해주시겠어요?”
순간 K교수는 난감했다. 자기는 8년 동안 기아자동차에서 나온 소형차인 프라이드를 운전했는데, 항공모함 같은 그랜져를 운전해 달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옆자리에서 보아도 그랜져는 매우 커서 폭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여기서 나 운전 못한다고 물러선다면 그것은 남자로서 자존심 상하는 비겁한 일이다. 에라 모르겠다. 나중에 사고 치더라도 일단 부딪혀 보는 수 밖에.
사실 K교수는 미국 유학 시절부터 운전을 했으니까 운전 경력은 햇수로만 따지면 거의 20년이 된다. 미국에서는 수동변속 자동차를 운전하였다. 그러나 그랜져는 자동변속이기 때문에 복잡한 시내길이 아니라면 운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용기를 내자. 서양 속담에 “용감한 사람이 미녀를 얻는다. Only the brave wins the beauty.”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자. 만일 그랜져 운전하다가 사고를 내면? 오히려 일이 잘 풀릴 지도 몰라.
“그러지요. 제가 운전 경력이 20년이나 되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지금부터 미인의 목숨과 안전을 책임지겠습니다”
막상 운전대를 잡으니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랜져 앞 후드의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가 그렇게 넓을 수가 없다. 앞 바퀴가 하얀 차선의 어디에 걸칠 것인지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앞차와의 간격을 최대한 두고서 천천히 가속기를 밟았다. 모든 신경을 운전에 집중하였다. 자기도 모르게 운전하는 손에 힘이 들어가서 운전대를 꽉 쥐게 되었다. 프라이드와 달리 그랜져는 성능이 좋아서 가속기를 조금만 밟아도 금방 가속이 되었다. 브레이크를 조금만 밟아도 제동이 아주 잘 되었다. 한 10분 쯤 긴장하며 운전하다 보니 약간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K교수는 이야기를 다시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