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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강연시리즈] 고전강연> 강의 제 1강. 동양의 고전 : 동양 고전 이해를 위한 방법론적 서언 강연자 : 이승환(고려대학교 교수)
이승환 교수는 먼저 중국 역사에서 고전이 어떻게 정의되고 분류, 정리되는지를 돌아본 다음, 그 고전을 둘러싼 연구가 훈고(訓詁)와 의리(義理)라는 커다란 두 갈래로 상호 길항하며 흘러왔음을 개괄한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고증 없는 의리는 망탄해지기 쉽고, 의리 없는 고증은 고루해지기 때문”에 두 조류 사이의 오랜 갈등을 풀고 융합하는 것이 과제가 될 수밖에 없으며 그를 해소하는 방안의 하나로 고전 이해의 ‘해석학적 5단계’를 제시한다. 그를 통해 고증과 의리가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연속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와 함께 지금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인문, 즉 ‘인간의 무늬’가 얼마나 격조 있고 깊이 있게 인간의 존재 의의를 드러내고 인간다움을 고양할 것인가”를 살피는 데 동양 고전이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열린연단 강연 (고전 1강) – 이승환 고려대 철학과 교수 이승환 : “지금 고대 철학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현대 사회에서.” 질문을 하시는데 저는 이런 답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BC 5세기쯤에는 종이도 없고 잉크도 없고 볼펜도 없었으니까 대나무 껍질, 죽간에 글씨를 써서 칼로 새겨서 모종의 생각을 기록하고 그랬지만 나중에 종이가 발명돼서 붓으로 기록을 남기고 그 뒤에 잉크가 생겨나서 펜으로 쓰고 만년필로 쓰고 볼펜으로 쓰고, 지금 컴퓨터로 쓰고 스마트폰으로 쓰잖아요. 필기도구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해왔는데 쓰고 있는 내용은 굉장히 공통적이지 않은가. 붓으로 쓰든 만년필로 쓰든 컴퓨터로 쓰든, 옛날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고민과 그들이 찾고 있던 인간됨의 의미, 삶의 의미, 그들이 추구했던 행복, 그들이 애써 쟁취하고자 했던 어떤 정의, 이런 것들은 동일하지 않을까. 아무리 붓으로 쓰던 시대에서 컴퓨터로 쓰는 시대로 바뀌었다고 해도 기록하는 내용은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옛날 것이라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가 고전을 되짚어봐야 하는 필연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고전이라는 두 글자도 오늘날에는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옛 책’을 의미하지만, 동양 전통에서는 ‘고전’ 두 글자가 조금 더 광범위한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 첫 번째는 전장(典章)의 의미를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사회 운영의 기본이 되는 이전 시대의 원칙과 제도. 고전에는 이런 원칙과 제도라는 의미가 있고. 그다음 전적(典籍), 이전 시대 옛사람들이 남긴 주요 문헌과 기록.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고전과 같은 뜻이죠. 그리고 세 번째는 전고(典故), 근거가 될 만한 이전 시대의 모범적인 사례들. 그러니까 전통 동양에서는 항상 역사적 경험을 중시했으니까 어떤 새로운 정책을 만들거나 입안할 때 반드시 옛날 성왕(聖王)이 만든, 실행해보았던 사적(史籍)에 부합하는가, 이것이 하나의 테스트 기준이었어요.
열린연단 토론 (고전 1강) – 주광호 동덕여대 교수 최장집(사회) : 저는 비전공자로서,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승환 교수 발표를 들었을 때 생기는 질문을 몇 가지 질문 드리고 싶은데요. (…) 비전공자들에게는 현대, 이 시대에서 동양 고전, 중국 유학 고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답해주시는 게 굉장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제가 그 문제에 대해서 초점이 잡히지 않아서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왜 동양 고전을 아는 것이 필요한가에 대한 대답이 듣고 싶다는 얘기죠. 일단 이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서 두 가지 측면에서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은 첫째는 서양 철학과의 비교가 상당히 중요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고요. 두 번째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동양 유학 고전을 어떻게 읽고 그것이 왜 도움이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뭔가 해답이 필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주광호 : 대략 질문을 세 가지 정도 드릴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고증(考證)인가, 의리(義理)인가에서 ‘고증과 의리로 전환해야 된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물론 동의하실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과거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게 또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컨대 『논어』가 나오고 『논어』에 대해서 후대의 어떤 사람이 주석을 달고 또다시 몇 백 년이 지나서 누가 소(疏)를 달고 이런 과정이기도 하겠습니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전의 주석을 완전히 뒤엎고 새롭게 주석을 부기함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자신의 철학적 메시지를 표현해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거지요.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러한 작업들을 성공적으로 해낸 사람들이야말로 위대한 철학자이자 철학사에서 남는 사람들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 여기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고전에 있어서, 흔히 우리가 고증과 의리의 관계에 있어서 고증을 하나의 팩트로, 하나의 사실로, 고정불변한 무엇으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의미를 줄 수 있는가, 이런 질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거기에 하나 단어를 추가하자면 ‘여백’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봤습니다.
강의록 전문 보기 강연자 소개
동양의 고전 : 동양 고전 이해를 위한 방법론적 서언(1)현대 우리말에서 고전은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닌 옛 책을 가리키지만, 전통 동양에서 고전은 다음 세 가지의 의미를 중첩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1) 전장(典章): 사회 운영의 기본이 되는 이전 시대의 원칙과 제도, (2) 전적(典籍): 이전 시대의 중요 문헌과 기록, (3) 전고(典故): 근거가 될 만한 이전 시대의 모범적 사례 등이 그것이다. 이로 볼 때 전통 동양에서 고전은 단지 읽을 가치가 있는 옛 책의 의미를 넘어, 인간 사회의 운영에 전범(典範)이 될 만한 이전 시대의 제도와 원리, 사례와 근거, 문헌과 기록 등의 의미를 망라하는 복합명사임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고전을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닌 옛 책’의 의미로 한정해서 사용하기로 한다. ■ 한대의 칠략: 중국 최초의 도서 분류 체계 르네상스 이전까지의 세계 기록 문물 가운데서 한자로 쓰인 것이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현재까지 중국의 고전 도서가 몇 권이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으나, 한(漢) • 당(唐) • 청(淸)대에 각기 만들어진 도서 목록을 통해 그 종류와 규모를 대충 짐작해 보기로 한다.
‘칠략’에 나타난 도서 분류 체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6) 천문, 역수, 오행과 같은 자연과학 지식을 시귀, 잡점, 형법 등의 점복적 지식과 함께 ‘술수략’에 포함하고 있다. ■ 당대의 『수서』 「경적지」: 경사자집의 분류 체계 ‘칠략’의 분류 체계는 후에 반고(班固)가 지은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B.C. 1세기)에 거의 그대로 계승되어 중국 도서 분류법의 효시가 되었다. 하지만 당나라 정관(貞觀) 10년(A.D. 7세기)에 만들어진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서는 6분법 대신 4분법을 채용하여, 8만 9666권의 책을 경(經) • 사(史) • 자(子) • 집(集)으로 분류하였다. 『수서』 「경적지」의 분류 체계를 도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수서』 「경적지」에 나타난 도서 분류 체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5) 도교와 불교 관련 서적을 4부 이외의 부록으로 처리함으로써 유학의 독존(獨尊)적 지위를 확고하게 하는 동시에, 신비적인 종교 사상을 정식 학문에서 배제하였다. ■ 청대 『사고전서』: 경사자집 4분법적 도서 분류 체계의 완성 『사고전서(四庫全書)』는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도서 모음으로서, 건륭제의 칙명에 따라 360여 명의 관원과 3600여 명의 문인 학자가 1773년부터 9년에 걸쳐 중국 전역의 도서를 수집해서 경 • 사 • 자 • 집의 4부(部)로 나누어 집성한 총서이다. 약 3800명의 초사(抄寫) 인원이 직접 베껴 수록한 서적의 수는 3503종(7만 9337권)으로, 책 수로는 3만 6304책, 면 수로는 230만 쪽, 글자 수로는 약 8억 자가 된다. 이 밖에도 『사고전서』에 부록으로 딸린 『존목(存目)』에는 6793종(9만 3511권)의 책 이름이 추가로 기재되어 있으니, 모두 합하여 1만 296종, 17만 2848권의 책이 청나라 조정에 의해 파악되었던 셈이다.
『사고전서』의 분류 체계에서 『수서』 「경적지」와 달라진 점은 다음과 같다. (5) ‘자부’ 안에 『음부경』, 『주역참동계』 등 도교 서적들을 도가류로, 『홍명집』, 『오등회원』과 같은 불교 서적들을 석가류로 분류해 정식 학문에 포함했다.(불경(佛經)과 도장(道藏)은 여전히 4부에서 제외) ■ ‘열린연단 : 문화의 안과 밖’ 2015년 고전 강좌에서 개설될 동양 고전으로는 『논어』, 『맹자』, 『노자』, 『장자』, 『한비자』, 『근사록』, 『화엄경』 등이 있다. 이 책들을 『사고전서』의 분류 체계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 고전 연구의 두 갈래: 훈고(訓詁)와 의리(義理) ■ 경전과 경학 경(經)은 원래 직물(織物)의 위에서 아래로 뻗어 있는 줄기를 가리켰으나, 이에서 연신(延伸)하여 불변의 도리(常道)를 담고 있는 고대의 전적을 가리키게 되었다. 노자의 책에도 『도덕경』이라 하여 ‘경’ 자를 붙이고 장자의 책에도 『남화진경』이라 하여 ‘경’ 자를 붙이지만, 중국의 주류 학문인 유학의 전통에서 ‘경’은 5경(주5)이나 13경(주6)과 같은 유교 경전(經傳)을 가리킨다. ■ 한대의 훈고학 한대에 성행한 경전 해석학(즉 ‘경학’)은 훈고학(訓詁學)이라 불린다. 『설문해자』에서는 훈(訓)을 “말하여 가르치는 일”이라고 풀고,(주7) 고(詁)는 “옛말을 해석하는 일”이라고 풀고 있다.(주8) 훈고학은 고대 경전의 사의(辭義), 음운(音韻), 어법(語法), 수사(修辭)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훈고(訓故), 고훈(古訓), 해고(解故), 해고(解詁)라고 하기도 한다.
■ 송대의 의리학 송대의 학문은 한 • 당대의 훈고학과 대비하여 의리학(義理學)이라고 불린다. ‘의리’란 의미(義)와 이치(理)가 합해진 말로, 북송 시대의 사상가 정이(程頤)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송대의 학자들은 경전 문자에 대한 훈고학적 탐구 대신 우주의 운행 원리와 인간의 내면 본성, 그리고 사회 • 공동체의 운영 원칙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학문의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들의 학문은 도학(道學)이나 리학(理學)으로 불리기도 한다. 송대 유학은 원시 유학의 근본정신을 바탕에 깔고 도교 • 불교로부터 도입한 형이상학과 수양론을 접목한 새로운 유학(新儒學)이었기 때문에, 상이한 유파들의 사상을 종합적으로 융회하고 체계적 일관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훈고학적 태도 대신 ‘철학적 해석학’의 학문 자세가 새롭게 요구되었다. 이들은 경전을 한 구절씩 주해하거나 개별 문자의 본래적 의미에 대해 천착하던 한학의 폐풍에서 벗어나, 경전 전체에 나타난 철학적 의미, 즉 의리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의리학은 비록 송대에 시작된 것이기는 하나 송대라는 시대적 한계를 넘어 청대 이전까지, 즉 송 • 원 • 명의 학문 경향을 포괄해서 지칭하는 것이다. ■ 청대의 고증학 청대에 들어서는 한대의 훈고학을 재평가하고 다시금 ‘한학’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 신한학(新漢學)이라고 해도 무방한 청대의 학술 풍토는 고증학(考證學) 또는 고거학(考據學)이라고 불린다. 고(考)는 ‘밝힌다’는 의미이고, 증(證)은 ‘증명하다’ 또는 ‘증거를 찾다’의 의미이다. ‘고’와 ‘증’을 연언(連言)하면 “증거를 찾아 밝히다”라는 의미가 된다. ‘고증’을 현대어로 말한다면 ‘근거를 찾아 밝히는 증명 작업(evidential research)’이라고 할 수 있다.
(차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