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는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지만 제아무리 거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한 줄기 갈대에서
연약한 삶을 지탱해주는 한 편의 시를 발견한다. 갈대밭 풍경을 보러 저 멀리 순천만이나 해남의
고천암호, 고흥의 해창만까지 여행을 떠나기 어렵다면 화성시 우음도와 시화호 일대를 주목하자.
쓸쓸한 갈대밭이 황량하게 펼쳐진 벌판 한가운데에서 사색의 즐거움에 젖어보는 것이 이 여행의
의미이다.
우음도 갈대밭과 한 그루 나무가 어울린 풍경
겨울의 문턱에서 만난 대자연의 지평선 풍경
정호승 시인의 시집에서 <슬픔의 나무>라는 시를 읽다가 갈대밭 풍경이 그리워졌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시화호 우음도. 누런 갈대밭, 띄엄띄엄 솟아 외롭게만 보이는 나무들,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찬바람. 시화호라는 대형 인공 구조물 덕분에 ‘대자연의 지평선 풍경’을 만날 수 있다니
세상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얼마 뒤에는 신도시가 들어설 땅이지만 아직은 자연미가 살아 있어서 좋은 곳, 우음도에서 계절의 변화를 맞이하기로 한다.
갈대밭은 아무래도 오후나 석양 무렵에 찾아가야 제격이다. 태양이 머리 위에 떠 있는 한낮에는
갈대밭의 분위기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다. 갈대는 화려함이 아니라 쓸쓸함의 상징이니 날이
화창하지 않아도 좋다. 햇살과 구름이 번갈아 하늘을 차지하는 변덕스런 날씨라도 갈대밭 여행에
미치는 영향은 적다. 중요한 것은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자는 것이니까. 그리하여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잠시 숨을 고르며 확인해보자는 것이니까.
첫눈이라도 내리길 기대하며 시화호 한가운데에 있는 우음도 갈대밭으로 향하기 전 시간 조정을
위해 한 군데 여행지를 더 찾아낸다. 오전 방문지로 고른 여행 명소는 용주사와 융건릉 인근의
소다미술관이다. 먼저 이곳에서 예술 작품들의 향기로 잠자는 감성을 깨운 뒤 우음도 송산그린시티전망대에 올라 갈대밭 풍경을 감상하고, 화성 고정리 공룡알화석 산지 인근 갈대밭을 거닐며 낙조를 찍은 뒤 해물칼국수나 활어회 등으로 저녁식사까지 마무리하면 당일 여행치곤 알찬 코스가 될 것이 분명하다.
[왼쪽/오른쪽]높이 40.45m의 송산그린시티전망대 / 전망대로 오르는 길
찜질방의 운명에서 벗어난 소다미술관
버려진 찜질방에서 미술관으로 변신. 소다미술관의 탄생 비화다. 화성시 안녕동의 신한미지엔아파트 뒷길에는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이 5년 동안이나 방치되어 흉물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이 구조물은 미국에서 활동했던 건축가 권순엽 씨를 만나면서 2015년 4월 소다미술관으로 태어났다. 권순엽 씨는 “기존의 것을 부수거나 변형하지 않고 뼈대를 그대로 두어 자연스러운 느낌이 드는 공간으로 완성시키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이 미술관은 2015년 8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부문을 수상한 데 이어 지난 10월에는 ‘2015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최우수상(국무총리상)을 수상해서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는 독일의 ‘iF 디자인 어워드’, 미국의 ‘IDEA’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로 꼽힌다
콘크리트 기둥과 뻥 뚫린 벽면의 구조물 사이로 1층에는 전시실과 기념품점, 카페가 들어섰다.
2층에는 항만시설에서나 볼 법한 컨테이너를 3개씩 올렸으며, 각 컨테이너들은 나무데크로 연결
되어 있다. 옥상에 해당하는 2층 공간을 이동하다 보면 불가마, 족탕, 남성탕 등이 있던 자리를
표시해놓아 과연 찜질방에서 미술관으로의 대변신을 실감하게 한다. 컨테이너는 본래 화물을
운송, 보관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엄연한 전시실이다. 화성시가 물류 중심 도시라는 점을 상징
하기 위해서 갖다놓은 것이라고 한다.
[왼쪽/오른쪽]소다미술관 / 소다미술관 실내 전시실
미래 도시를 상상해보는 즐거움
디자인과 건축을 테마로 한 소다미술관에서는 개관전으로 ‘리본(Re:Born)전’을 열었다.
비록 지어지지는 못했지만 미래를 향한 비전을 품고 있는 국내 건축가 73명의 건축 디자인이
재활용 옷걸이에 걸려 소개됐다.
지금은 동일한 주제로 외국의 건축가들이 참여한 ‘리본Ⅱ(Re:BornⅡ)전’이 열리고 있다. 덴마크,
네덜란드, 미국, 중국, 일본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들의 상상력이 섬유 프린팅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전시물들이 3차원 모형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서 아쉽기는 하지만
프린팅을 통해 상상력은 더욱 확장된다. 이 전시는 2016년 1월 말까지 계속 이어진다.
이 밖에 플라스틱 공과 망을 이용한 최성임 작가의 <클라우디 룸>, <화이트 클라우드>, <옐로우
클라우드>, 오혜선·오수연 작가의 설치작품 <물고기의 꿈>, 장인희 작가의 금속거울 <타임 투 킬>, 선을 활용한 강은혜 작가의 <인터스페이스>, 박신영 작가의 의상 디자인 등이 지상 정원과 2층 정원 곳곳에서 관람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ㄷ자 형태의 건물 중앙 잔디마당에서는 차 한 잔을 마시며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을 느끼며 쉬어가기 좋다.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창의적 건축 프로그램 ‘디자인 80×80’,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미술 수업 ‘하늘을 나는 물고기’와 ‘나도 화가’, 그림에 관심 있는 성인들을 위한 ‘만만한 화가
’ 등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월요일은 휴관이며, 입장료는 어른 5,000원, 학생 3,000원,
미취학 아동 2,000원.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놓인 컨테이너
[왼쪽/오른쪽]전시실로 활용되는 컨테이너 / 전시 작품 사진을 활용한 에코백
폐교된 우음분교 지나 전망대로 고고!
미술관에서 나와 점심식사를 하고 우음도로 이동한다. 가장 먼저 찾아가볼 송산그린시티전망대는 공룡알화석 산지에서 비포장 상태의 공룡로를 따라 3km를 더 가야 한다. 공룡로는 제2서해안고속도로와 나란히 뻗어나간다. 전망대가 가까워지자 S자로 꺾어지는 포장도로가 나오고, 그 초입에서 무성한 잡초 속에 퇴락한 슬라브 단층 건물 한 채가 보인다. 우음분교의 흔적이다. 표지석 하나가
학교의 역사를 말해준다.
시화호가 생기기 전, 우음도가 섬으로서의 생명을 이어가던 그 시절, 고정초등학교 우음분교에서는 어린이들이 배움의 꿈을 이어갔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949년 4월 개교했고 1997년 9월
1일 폐교됐다. 졸업생 수는 총 47회에 119명. 폐교를 알리는 기념비는 1998년에 세워졌다. 양철
가림막을 덧댄 건물은 우음도의 겨울바람이 조금만 거세도 바스러질 것만 같은데 기념비는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폐교 앞에서의 감상을 지워버리고 드디어 송산그린시티전망대에 도착.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 꼭대기로 오른다. 2012년 11월 완공된 전망대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이고 높이는 40.45m이다. 4층은 바람이 몸속을 파고드는 옥상전망대, 3층은 유리로 외부와 차단된 실내 전망층으로 구성됐다. 옥상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시화호 풍경은 그야말로 장쾌하다. 높이 40m 남짓한 전망대이지만 주변이 온통 평지요 호수이다 보니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다. 여객기 일등석 창가 좌석이 부럽지 않다.
[왼쪽/오른쪽]1997년 폐교된 우음분교 /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
첫댓글 갈대밭이 그립다면~시화오 우음도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