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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행할 길
성경본문 : 잠언 22: 4-6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5.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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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왕 목사
끝없이 높기만 한 창공을 나는 비행기와 크고 넓은 대양을 항해하는 배는 아무 곳으로 가든지 목적지에만 도착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출항하기 사전에 허락을 받은 항로를 따라 운행되어집니다. 만일 그 항로를 무시하고 이탈하게 되면 그렇게 드넓은 곳에서도 충돌 사고가 일어나거나 무단으로 영공을 침범했다고
오인하여 미사일 공격을 받아 피격된 일이 일이 우리나라 항공계에서도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자동차나 비행기나 선박만 다니는 길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인생에게 있어서 마땅히 가야만 하는 길을 성경에 이미 정해 놓으시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신 5:32)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신 5:3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성경에서 죄라는 말은 바로 인생이 가야만 하는 그 길을 벗어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며 탈선이라는 말도 그와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 선과 악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길을 따라 살아가는가의 여부에 따라 좌우되어집니다.
운전을 해보면 길을 잘못 들어섰을 경우 일찍 깨닫고 유턴을 하면 덜 고생을 하지만 길을 잘못 들어선 줄 알면서도 계속 달려가게 되면 목적지와 더욱 멀어질 뿐이고 결국 고생만 하게 됩니다.
인생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뒤늦게 깨닫고 돌이키는 것보다 어려서부터 인생이 마땅히 가야만 하는 길이 무엇이며, 또한 생명을 걸고 최선을 다해 인생이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어려서부터 가르쳐 주어야만 어른이 된 후에도 바른 길을 따라 살아갈 수 있으며, 설령 잘못된 길을 가다가도 빨리 돌이킴으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습니다.
1. 어린이의 실체
가정의 달을 열면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날은 5월 5일 어린이날입니다. 전국 교회는 다같이 오늘을 어린이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볼 때마다 어른들에 비해 착하고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깨끗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과연 인간은 태어날 때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 상태로 태어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사람은 다 어린아이로 인생을 출발하였는데 왜 시간이 지나 공부도 많이 하고 인생의 경험도 많아질수록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죄악의 때가 덕지덕지 묻고 위선자가 되어가는 것일까요? 철학자들은 그와 같은 인간의 심성에 대한 견해가 제각각 다릅니다.
1) 어떤 이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게 태어난다는 성선설을 주장하고,
2) 어떤 이는 인간은 악한 성품으로 태어난다는 성악설을 주장하고,
3) 어떤 이는 인간은 선과 악을 함께 품고 태어난다는 혼재설을 주장하고,
4) 어떤 이는 인간은 선도 악도 이 다 없는 순수한 상태로 태어난다는 백지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과연 이 가운데 어떤 주장이 맞을까요? 각자의 생각은 네 가지 중에 어떤 것이 맞는다고 생각이 되어집니까?
그러나 아이를 낳아 키워보면 성선설이 틀리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이 어른들에 비해 순수하고 착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내면에는 누구도 가르쳐 준 적이 없는 원망과 불평과 미움과 욕심이 도사리고 있어서 때때로 그것이 뱀처럼 고개를 들고 나타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롬 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실체는 정확하게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정답은 세상에서 찾을 수 없고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유추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이 처음 인간을 지으셨을 때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상태로 죄가 티끌만큼도 없는 순수한 상태였기 때문에 성선설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범죄한 이후에 태어난 아담의 자손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성악설이 맞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새사람이 되면 원죄를 사함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내면에 선과 악이 혼재하여 때로 갈등하게 되는 것은 평신도이기 때문만이 아님을 사도 바울의 고백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롬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와 같은 갈등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의 주인으로 영접하여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속사람이 승리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때가 되어 세상을 마감하게 되는 순간 온전한 성품을 이루게 되는 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매순간마다 필요하며, 성령의 은혜로 평생 동안 성화의 과정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바로 신앙생활이며, 그 방법이 바로 성경 교육으로 인간은 오직 말씀과 기도로만이 그 심성이 거룩하게 되어질 수 있습니다.
(딤전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딤전 4: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는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모든 인간에게는 신앙이 필요한 것이며, 설령 믿음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부단한 성경 교육과 영성 훈련을 받으면서 자라가지 않으면 선을 행하기보다는 죄를 행하기가 더 쉬운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어린이 교육의 중요성
요즈음 여기저기서 꽃 전시회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아름다운 분재들을 전시한 곳에 가보면 키가 작지만 높은 산위에 비바람을 맞으며 기기묘묘한 고목과 같은 형상을 한 값비싼 분재들을 볼 수 있습니다. 구경할 수 있는데 보기가 좋고 값이 많이 나가는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산위에 고목을 파온 것이 아니라 어린 나무를 가지고 오랜 세월 공을 들여 그러한 작품을 만든 것입니다. 분재는 고목나무로는 만들 수 없고 다만 잘 휘어지는 어린 나무로만이 가능합니다.
인생이 마땅히 행할 길로 가게 하려면 나이를 먹고 죄를 더 많이 범하고 고집만 살아있는 기성세대를 고친다고 하는 것은 고목으로 분재를 만드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부는 바람 중에 하나는 조기교육, 조기 유학의 바람도 알고 보면 이와 같은 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인성의 조기 교육이 일반 학교에서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용주의 교육체재아래서 신앙과 인성을 어려서부터 바로 잡아주는 주일학교 교육이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마다 주일학교가 있고 또한 교육 투자를 하는 것이며, 그 주일학교 교육 수준은 미래의 기성세대가 가야할 항로를 좌우하기 때문에 신앙과 인격을 겸비한 좋은 주일학교 교사와 더 많은 교육투자가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들을 통해서 한 세대의 신앙과 역사의 맥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일례가 바로 노아 홍수심판 때 노아의 아들들의 자손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신 일입니다.
그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경험하였으면서도 하나님을 원망 불평하였을때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다 죽게 하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못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까? 원망 불평하던 출애굽세대가 광야에서 출산한 새로운 세대들만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갈 새로운 세대의 부모들에게 강력하게 권고하신 사항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에게 가장 강조하신 것 중에 하나가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서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신앙과 역사의 맥을 이어가게 하라고 당부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신 6:7)“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그 새로운 세대의 부모들이 그 후손들에게 약속의 땅만을 물려주는 일에만 급급하였지 정작 하나님께서 그렇게 당부하신 신앙의 조기 교육을 등한히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 후손들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비기독교적인 가나안 문화를 대적할 힘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후손들은 조상들이 믿었던 하나님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신론적인 음란한 가나안 문화에 호기심을 품고 그것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므로 말미암아 시간이 흘러갈수록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급속히 타락하여 마치 늪에 빠진 사람처럼 점점 비기독교적인 가나안 문화 깊이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은 어려서 부모들에게 그러한 잘못된 문화를 배척할만한 가치관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세속문화를 거부할만한 영적인 힘이 그 자손들에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삿 2:10)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삿 2:12)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대의 어린이들의 영적 상태는 어떻습니까? 그들이 다 자란 후에는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까?
교회가 해마다 반복해서 지키는 여러 절기와 행사가운데 굳이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빠뜨리지 않고 지키는 절기가 있습니다. 바로 가정의 달 5월에 계속되는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 교사 주일과 같은 여러 기념주일입니다.
우리가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린이를 믿음으로 올바르게 자라게 하는 주일학교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재확인하고 가나안 땅과 다름이 없는 오늘의 무신론 문화 속에서 우리 어린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깨닫고 도전받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인간이 모태에서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죄악의 때가 묻을 대로 다 묻은 어른과 비교할 때 훨씬 더 순수하며 진실되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로 삼고 사랑하며 큰 교회를 맡기고 그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마다 감사한 것은 디모데가 세상 죄악에 물들기 쉬운 청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어려서부터 성경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딤후 1:3)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딤후 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대의 어린이들의 영적 상태는 어떻습니까? 그들이 다 자란 후에는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까?
오늘의 어린이들이 더 이상 죄악에 오염되지 않고 어려서부터 올바른 신앙 교육을 통해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여 잘못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장려하는 교육과 훈련을 어려서부터 받아야만 어른이 된 후에도 믿음과 양심을 지켜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시 71:17)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
3. 어린이 교육의 내용-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교회가 해마다 반복해서 지키는 여러 절기와 행사가운데 굳이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빠뜨리지 않고 지키는 절기가 있습니다. 바로 가정의 달 5월에 계속되는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 교사 주일과 같은 여러 기념주일입니다.
우리가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린이를 믿음으로 올바르게 자라게 하는 주일학교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재확인하고 가나안 땅과 다름이 없는 오늘의 무신론 문화 속에서 우리 어린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깨닫고 도전받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우리가 공감한다면 이제는 과연 어린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교육 내용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바램은 자기 자녀들이 훌륭하게 자라주기를 바라는 것이고 그 방법은 오직 교육에 좌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공교육인 학교 교육으로 만족하지 않고 여러 학원들을 보내기 때문에 사교육비가 생활비에서 상당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감당하지 못하는 가정들이 많아져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연 아이들의 적성이나 천부적인 재능을 고려해서 거기에 맞는 사교육을 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욕심으로 적성에 맞지도 않고 아이도 원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효과적인 교육은 얼마나 많은 것을 투자하는가 하는 것 못지 않게 얼마나 적절하게 투자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교육의 내용입니다.
오늘의 교육의 주 목표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남을 제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며, 그 다음은 남을 제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교육의 지상 목표입니다.
정작 어려서부터 원죄를 가지고 부패한 본성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심성을 바르게 고쳐주는 인간교육과 심성 교육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청됨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인성 교육이 가정과 학교에서 전무한 상태가 오늘의 교육 현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어디서 그와 같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일그러진 인간상을 바로 고쳐주며, 정말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바로 깨우쳐주는 참 교육의 현장이 어디이며, 참교사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이 바로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잠 22:5)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잠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오늘 성경에서 ‘마땅히 행할 길’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으로 반드시 가르침 받아야 할 교육으로 그 아이의 능력, 잠재력, 본성, 기질을 고려하되 장차 그 아이가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게 하는 가르침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말씀하신 의미는 어렸을 때만이 아니라 일생동안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필수적인 교육을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야 함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심리학자들의 말처럼 3-7세에 한 개인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형성되는 때이기에 인성교육은 어려서 할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이른 봄에 아직 아무것도 심지 아니한 밭과 같아서 그 마음 밭에 악한 마귀가 가라지를 뿌려 잡초 밭이 되기 전에 먼저 좋은 씨인 하나님의 말씀을 뿌려 가득히 자라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사실을 인정하시고 어른들과 함께 예수님에게 몰려드는 아이들을 꾸짖는 제자들과 달리 아이들을 축복하신 것은 어린이 교육의 중요성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막 10:14)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물론 자녀를 위한 것이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마땅히 행할 길’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1) 여호와 하나님만이 창조주 되심을 가르쳐 어려서부터 그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지혜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시 111:10)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2)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무엇인가를 명하시는 계명과 규례와 법도를 가르쳐 삶의 잣대로 삼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굴레가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 10: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3)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약속된 미래의 축복에 대한 비전과 꿈을 가르쳐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무궁한 축복을 어려서 가르쳐 줌으로 장차 그들이 자라서 그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며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신 6: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
흔히 주일학교 시절의 신앙은 철부지 했던 것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 그리스도인 중 70%가 주일학교에 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학교에 다닌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중간에 잠시 타락했다 할지라도 나중에 돌아오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복음을 듣게 하는 일은 그 복음이 아이들의 가슴 속에 씨앗으로 심겨져서 어른이 된 후에도 결국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오늘만을 보지 말고 먼 미래를 함께 내어다 보고 투자를 하는 마음으로 공을 들이는 것만큼 아이들이 자라서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다 자란 어른들과 달리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투자하는 것만큼 효과가 나타날 때가 반드시 오기 때문입니다.
예화
유명한 교육학자가 시골에 있는 어느 학교를 방문했습니다.그는 수업중인 1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지금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 중 노란 옷을 입은 소녀와 저기 저 소년은 뛰어난 머리를 가진 천재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보살펴 주신다면 반드시 위대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
교사는 이 유명한 교육학자의 말을 받들어 지극정성으로 그 두 아이를 보살폈습니다.그 결과 두 아이는 졸업할 때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그의 예언이 적중한 것에 감동한 교사는 교육학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그러자 교육학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교사에게 보냈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사실 그 두 아이는 제가 전혀 모르는 학생들입니다. 저는 다만 눈에 띄는 아이 두 명을 골라 선생님에게 부탁했을 뿐입니다. 이로써 전 결론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선생님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게 된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무한히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이 그 가능성을 마음껏 펼쳐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마땅히 행할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붙잡아 주어야 함을 오늘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끝없이 높기만 한 창공을 나는 비행기와 크고 넓은 대양을 항해하는 배는 아무 곳으로 가든지 목적지에만 도착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운항하기 전에 허락을 받은 정해진 항로를 따라 운행되어집니다. 만일 항로를 무시하고 이탈하게 되면 그렇게 드넓은 곳에서도 충돌 사고가 일어나거나 영공을 침범했다고 미사일 공격을 받게 됩니다.
자동차나 비행기나 선박만 다니는 길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인생에게 있어서 마땅히 가야만 하는 길을 성경에 이미 제시하여 놓으셨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 선과 악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하나님이 정해 주신 길을 따라 살아가는가의 여부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죄악을 가리켜 탈선이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정로는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인생이 마땅히 가야만 하는 길이 무엇이며, 인생이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어려서부터 가르쳐 주어야만 어른이 된 후에도 바른 길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에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주어야 할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선물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는 믿음을 가슴 속에 심어주는 일입니다. 그것만이 이다음 어른이 된 후에도 오늘의 우리 어른들보다 더 하나님을 잘 믿고 또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잠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어린이들도 우리 어른과 다름이 없는 완전한 인격자로서 배울 권리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하여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야 합니다.
(잠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어린이들을 잘못 키울 때 나라도, 교회도, 가정도 앞날이 밝지 못할 것입니다.어린이가 바로 자라면 나라도 교회도 가정도 소망의 꽃이 피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로우 홀트’의 시는 우리에게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 줍니다.
"아이가 비평을 들으며 자라면
그는 남을 저주하게 될 것이고
아이가 적대감 속에서 자라면
그는 남과 싸우게 될 것이고
아이가 조소를 받으며 성장하면
그는 열등 인간이 될 것이고
아이가 수치심 속에서 자라면
그는 항상 죄의식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이가 참고 견디는 가운데 자라면
그는 인내를 배우게 될 것이고
아이가 칭찬을 받으며 성장하면
그는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이고
아이가 사랑을 받으며 자라면
그는 감사할 줄 알게 될 것이고
아이가 올바르게 자라나면
그는 정의를 알게 될 것이고
아이가 인정을 받으며 자라면
그는 세상에서 사랑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