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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으로 승격된 뒤 처음 팔공산을 찾았다.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등로 곳곳에 데크와 계단을 깔아놓았고, 전망대도 몇 개 보였다.
그간 일반 탐방객은 엄두도 못댈 곳에도 계단을 놓은 곳도 있고...
오늘 일정은 탑골에서 출발하여 깔딱고개를 넘어 계곡을 따라 염불암에 들렀다가, 철탑네거리로 해서 동봉에 오르고 갓바위(관봉)까지 갔다가 관암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분수광장 앞에서 버스를 내리니 어느틈엔가 살짝 든 단풍이 반기는 듯 하고...
탑골 입구 들머리.
들머리를 지나면 좌측으로 캠핑장이 나오는 데 제법 많은 가족들이 가을의 정취를 즐기고 있었다.
이 부근 어딘가에 용수동사지(龍水洞寺址)가 존재했다는데 관련 문헌이 없어 연혁을 알 수 없지만 동화지구 캠프장 상단부 일대로 추정되며, 야영장 조성으로 인해 사역의 범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고, 최상단이라고 추정되는 평탄지에 석탑재를 비롯한 유구 일부가 남아 있으며, 이 유물의 양상과 석탑재로 보았을 때 사찰의 운영 시기는 고려 전기에서 조선 전기 경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계곡을 따라 잠시 올라가면,
깔딱고개로 오르는 계단이 나타나고,
제법 경사가 심한 계단을 올라서면 깔딱고개 능선에 도착하는데, 여기서 정면 계단으로 올라가면 케이블카승강장 종점이 나오고 거기서도 염불암과 동봉 갈림길이 있지만 나는 우측 계곡으로 내려서서 염불암을 들렀다 올라가기로 했다.
살짝 내려섰다가 다시 살짝 오르고 다시 내려서면,
계곡이 나타난다.
수량이 별로 없는 계곡을 계속 따라 올라가면,
동화사주차장에서 염불암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만나는데,
도로 옆으로는 자그마한 돌탑들이 쌓은 이의 염원을 안고 줄지어 서 있었다.
염불암에 도착했다. 뒤로 염불봉이 보인다.
청석탑 터.
동화사 염불암 마애불좌상 및 보살좌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
염불암 안에 있는 큰 바위의 서면과 남면에 새겨진 불상으로 여래상과 보살상을 조각하였다.
서면(좌측)의 여래좌상은 아미타불로 네모난 얼굴에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다. 연꽃이 새겨진 화려한 대좌에 앉아 있는데 대좌의 높이에 비해 무릎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다.
남면(정면)의 보살좌상은 관음보살로 추정되는데 머리에 부채꼴의 화려한 관을 쓰고 있다. 옷은 상의와 하의를 걸치는 일반적인 보살과는 달리 왼쪽 어깨를 걸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방식으로 입고 있다. 두 손목에는 꽃잎이 새겨진 팔찌를 끼고 있으며, 무릎 위에 얹은 왼손은 관음보살의 특징인 긴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이 불상들은 간결한 선으로 표현하였으면서도 힘있는 윤곽을 나타내 고려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서면(西面)의 여래좌상.
동화사 염불암 청석탑(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호).
청석탑이란 벼루를 만들던 흑색점판암으로 만든 탑으로, 이 탑은 화강암인 바닥돌 외에는 모두 점판암을 사용했다. 탑의 몸돌은 없어졌고 10층의 지붕돌만 포개진 채로 남아 있다. 하부 3층과 상부 1층을 제외한 나머지는 파손이 심해 각 층마다 빗물받이면에 돌을 괴어 지붕돌받침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고 있다.지붕의 두께가 얇고 물이 떨어지는 면은 평평하며 네 귀퉁이가 위로 솟아 있어 대단히 경쾌한 느낌을 준다. 지붕돌의 체감율은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넓은 바닥돌 위에 놓인 작은 탑이기 때문에 안정감이 느껴진다.
높이가 1m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앙증맞게 느껴졌다.
염불암을 둘러보고 염불암 좌측에 위치한 계곡을 건너 동봉으로 향한다.
제법 경사가 있는 바위길이 이어지고,
멧돼지가 자고 간 흔적도 보인다.
마지막 급경사를 올라서면,
철탑네거리에 도착.
좌측은 케이블카승강장에서 오는 길, 정면은 수태골에서 올라오는 길, 그리고 정면에 보이는 계단을 올라 우측으로 가면 비로봉과 동봉으로 연결된다.
비로봉과 동봉으로 가려면 돌계단으로 이어진 또 하나의 깔딱고개를 10여분 올라가야 한다.
평범한 탐방객에겐 제법 힘이 들만한 곳이다.
거대한 바위와,
돌계단을 오르면 비로봉과 서봉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오늘은 동봉으로만 가니까 비로봉은 생략하고 계속 바로 올라간다.
동봉 오르기 직전 약사여래부처님에게 기도를 드린다.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石造藥師如來立像)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
이 불상은 서쪽을 향해 바로 세운 전체 높이 6m의 거대한 약사여래입상이다. 약사여래는 동방의 정유리(淨瑜璃) 세계에 있으면서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 불상도 역시 서쪽으로 향하고 있다. 정면을 향한 입상은 상투 모양의 육계(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상투모양으로 두드러진 혹 같은 모습)를 가주고 두 볼은 풍만하며 이바에 약간의 미소를 띠고 있다. 바로 선 발 끝은 드러나 있고 발가락 조각도 뚜렷하다. 옷은 두 어깨에 걸치는 방식으로 입고 치마를 걸쳤다. 오른손은 무릎 위로 늘어뜨려 바닥을 안으로 하고 있고, 왼손은 가슴 위에 올려 물건을 받치고 있다. 옷의 새김은 투박하고 전체 균형도 고르지 못하나 대체로 조화를 이룬다. 비바람에 노출되어 표면은 많이 풍화되었다. 이 불상네는 손과 발의 기형적 조각 수법이 나타나기는 하나, 잘 ㅗ화되는 옷주름이나 얼굴 모습 등의 조각 솜씨로 보아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팔공산에는 세 분의 약사여래부처님이 계시는데 이 부처님과 여기서 서봉방향 약 300m 지점에 위치한 곳에 다시 한 분이 계시고 마지막으로 관봉에 계시는 갓바위 부처님이다.
잠시 비로봉을 방향을 올려다 본다. 군기지와 우측 산성봉이 보인다.
계단을 올라서면 동봉이다.
팔공산 동봉(1,167m).
팔공산의 동쪽에 위치한 봉우리라 하여 동봉이라 부르며 팔공산 맞은 편 서쪽에는 서봉이 위치해 있다. 동봉의 또 다른 이름인 미타봉은 아미타 부처님의 준말에서 유래한다.
동봉에서 바라 본 비로봉(좌측 군기지 위치. 정상석은 기지 건물 뒤쪽에 있다)과 우측의 산성봉.
산성봉 너머 절벽에는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원효굴과 좌선대가 있다.
갓바위까지 7.3km.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니 서둘러 간다.
동봉에서 바라본 갓바위 방향.
갓바위는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대구 시가지 방면. 멀리 비슬산이 보인다.
멋진 소나무 좌측 뒤로 보이는 하트바위(누가 이름지었는지 모르겠다).
이곳도 전에 없던 나무데크계단이 생겼다.
좌측 소나무 뒤로 보이는 말등바위와 우측 염불봉.
말등바위라고 불리는 곳.
이곳에도 없던 계단이 생겼다. 아는 사람만 다니던 제법 위험한 곳인데 말이다(그리고 멋지기도 하고).
이야말로 자연훼손의 명백한 증거가 아닐까!
아래 사진(계단이 설치되기 전)과 비교해 보시길...
이렇게 기어올라가던 곳이지만 멋진 바위가 아니던가.
말등바위 위.
역시 아래사진과 비교해 보세요.
위 사진과 같은 장소인데 계단이 생겼다.
마치 말등처럼 생겼다 해서 붙인 이름 같은데 말이지.
말등바위에서 내려오는 계단.
얼마나 보기 흉한가!
역시 아래 사진과 비교해 보세요.
바위 오른 쪽 가장자리 부분을 자세히 보면 발과 손을 넣을 수 있게 위에서 아래로 홈이 파여 있다(높이 약3m 정도).
한 쪽 발을 바위에 넣고 한 쪽 손은 구멍을 잡고 해서 내려왔는데...
염불봉을 올라와서 내려다 본 모습.
염불봉 지나 우측으로도 계단이 설치되었다.
염불봉에서 동봉방향으로 뒤 돌아 보았다.
말등바위 계단 위에 산객이 보인다.
역시 아래 사진과 비교해 보세요.
계단이 설치되기 전 말등바위에서 산객 1명이 구멍에 손과 발을 넣어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다.
염불봉의 발가락(?) 바위.
염불봉의 배게바위라는데 누가 붙였는지 잘도 갖다 붙였다. 저걸 베고 자면 목이 부러지겠다. 높이가 1m는 넘으니 말이다.
여기서 식사를 하고 간다.
바로 옆에서 본 염불봉 모습.
이렇게 보여도 높이가 2m가 훨씬 넘는다. 잡목 뒤로 배게바위도 보이고...
염불봉 조금 지나 설치된 나무계단.
이렇게 내려오는데 원래는 정면 바위 우측으로 등로가 나 있었다.
병풍바위 우측 뒤로 팔공골프장이 보이는데 팔공산을 완전히 망쳐버린 주범.
새로 설치한 전망대.
그렇게 좋은 위치는 아닌 것 같은데...
등로 좌우 곳곳에 진달래 군락이 있다.
팔공산 진달래는 그 꽃송이가 크고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태의 진달래는 술을 담그거나 삼월 삼짓날에 화전을 부쳐서 먹었던 꽃이기도 하다. 진달래를 두견화라고 하기도 하는데, 두견새는 봄이 되면 밤낮으로 슬피 우는데 특히 핏빛같이 붉은 진달래만 보면 더욱 울어댄다고 하고 한 번 우짖는 소리에 진달래꽃이 한 송이씩 떨어진다고 한다.
이곳도 새로 생긴 계단이다.
그런데 새로 생긴 계단이 많았지만 새로 설치한 계단이 벌써 지주가 빠지고 흔들거리는 곳이 제법 있었다.
급하게 서두르니 날림공사가 된 탓이리라.
공사만 많이 한다고 국립공원이 좋아지는 것도 아닐 터인데...
다시 뒤돌아보니 동봉이 꽤 멀어졌다.
삿갓봉(931m).
팔공산 코스 중 동봉에서 신령재를 거텨 능성재와 은혜봉에 가는 코스에 자리하고 있는 봉우리이다. 멀리서 보면 형태가 갓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삿갓봉으로 불린다.
팔공골프장의 흉물스런 모습. 경사가 심한 코스인데 멀쩡한 산을 깎았으니 당연한 결과.
헬기장조 지나고...
무척 넓은 곳인데 초목이 침범하여 아주 좁게 보인다.
느패재.
팔공산 동봉에서 도마재를 거쳐 은해봉으로 가는 코스 안에 있는 고개이다. 천년이 넘은 동화사를 비롯한 수십개의 사찰과 암자가 있으며, 울창한 수림, 맑은 물이 흐르는 수 갈래의 계곡 속에 이른 봄의 진달래, 가을단풍과 겨울의 설경 등이 신비의 경지를 이룬다.
갓바위(관봉)가 보인다. 좌측 봉우리가 그곳이다. 그 아래 선본사도 보이고...
당겨본 갓바위와 선본사.
방아덤(북방아덤, 남방아덤)과 노적봉.
북방어덤 위에서 바라본 남방아덤과 노적봉.
우측 노적봉 위 좌측의 돌탑과 그 바로 옆에 조그맣게 정상석도 보인다.
남방아덤 위로 통하는 바위굴.
굴을 지나면 우측이 남방아덤이다.
굴을 통과하여 남방아덤에 올랐다.
남방아덤에서 돌아본 북방아덤과 우측 뒤 코끼리바위, 그리고 북방아덤 좌측에 공사 중인 전망대도 보이고.
날씨만 맑았으면 정말 멋진 조망인데...
진행 방향 노적봉 위 돌탑과 정상석이 제법 뚜렷하다.
저곳에 올라가기가 좀 까다롭다. 일반탐방객은 엄두도 못낼 정도.
갓바위가 가까워졌다.
중앙 좌측 관봉, 우측 앞에 농바위, 그리고 그 뒤가 검게 보이는 환성산.
지나서 돌아본 노적봉.
농바위도 지나고...
올라가려 했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 포기.
역시 이곳도 오르기가 제법 까다로운 곳이다.
갓바위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
하지만 이 계단이 끝나면 돌계단이 또 버티고 있다.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
팔공산은 대구, 군위, 칠곡, 경산 등에 걸쳐 있다.
경상북도 경산시 팔공산 남쪽 관봉(冠峰) 정상에 앉아 계신 부처님으로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이 불상의 정식 명칭은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이나 머리 위에 마치 갓을 쓴 듯한 자연판석이 올려져 있어 속칭 갓바위 부처님으로 더 알려지고 신앙되어 왔다. 부처님 몸에서 나는 빛을 표현하는 광배가 없는데, 마치 뒤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이 이를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불상과 대좌 모두가 하나의 돌로 조성되어 있어, 매우 큰 한 바위로 조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불상의 민머리 위에는 둥글고 큰 육계가 뚜렷하게 솟아 있고, 얼굴은 풍만하며 탄력이 있으며, 백호를 두드러지게 표현하여 부처님의 상호를 나타내었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굵고 짧은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표시되어 있다. 대좌는 신체에 비해 작고, 길게 입은 옷의 끝자락으로 대좌 윗부분을 덮은 상현좌(裳懸座)로 되어 있다. 이러한 대좌의 모습은 군위 제2석굴암의 본존불 대좌형식과 유사하다. 무릎 위에 올려진 두 손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닮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지만, 불상의 왼손바닥에 조그만 약합을 들고 있어 이 불상의 존명을 약사여래좌상이라 한다. 근엄한 얼굴, 거대한 체구에 밀착되어 흐르는 유려한 옷주름선은 선각화(線刻化)되어 긴장감과 탄력성이 다소 배제된 점으로 보아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불상이다.
갓바위 부처님을 뵙고 이제 하산한다.
그냥 바로 내려가면 전부 돌계단이라 용주암 방향으로 내려가서 관암사쪽으로 하산할 것이다.
내려서면서 바라본 용주암 뒤 오른쪽으로 환성산이 구름에 덮여 있다.
관암사를 지나,
주차장으로 내려서면서 산행을 마감한다.
도상거리 14.6km, 6시간 30분 소요.
국립공원 승격 후 처음 찾은 곳인데 곳곳에 설치된 계단과 시설물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필요하지 않는 곳으로 생각되는 곳에 설치된 시설들이 자연을 파괴하는 듯한 모습을 보니 허전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정작 필요한 곳은 그냥 지나치면서 말이다.
앞으로도 얼마나 멀쩡한 곳들이 편의시설이라는 명목하에 들어서는 인공적인 구조물들로 인해 황폐해질 것인가 생각하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