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주질환(齒周疾患)
최근 서울대학교 치의학(齒醫學)대학원 최봉규 교수 연구팀이 우리나라 성인의 70-80%가 앓고 있는 치주염(齒周炎)의 발병(發病)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치주염을 일으키는 여러 세균 중 나선형(螺旋形) 모양으로 생긴 세균인 ‘구강나선균’이 치주염 중증 환자에게 유독 많은 것에 주목했다. 구강나선균(口腔螺旋菌)은 자신의 껍질에 있는 단백질(蛋白質)을 우리 몸 세포의 단백질과 결합시켜 침투한다.
구강나선균이 침투하면 몸속 면역세포(免疫細胞)들은 면역물질을 분비해 세균이 침투한 곳에 염증(炎症)을 일으킨다. 연구팀은 구강나선균이 침투한 경우 몸속의 면역물질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분비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면역물질이 지나치게 많아지자 염증 작용이 심해졌고 이 상태가 이어져 만성적인 염증으로 발전했다.
정상적인 면역세포는 세균이 침투하면 자신의 내부의 면역물질을 쌓아주고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몸속으로 내보내 염증의 강도를 조절한다. 반면 구강나선균은 면역세포의 이러한 조절기능을 망가뜨려, 면역세포가 면역물질을 만들어내는 족족 몸속으로 내보내 염증을 심화시킨다는 것을 연구진은 확인했다. 연구 결과는 과학저널 ‘면역(Immunity)’지(誌)에 게재(2012년 5월 25일)됐으며, 최봉규 교수팀의 연구로 표적 치료제 개발의 길이 열렸다.
2010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의 치주질환(齒周疾患) 유병률은 22.9%로 5명 중 1명 이상이 치료가 필요한 ‘잇몸병’을 가지고 있다. 남성의 유병률(有病率)은 28.4%로 여성 17.3%보다 1.6배가량 높았다. 한편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9년 치주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793만9000명(2000년 445만7000명)으로 외래(外來) 다빈도(多頻度) 질환 3위를 차지했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흡연, 음주, 스트레스에 더 노출돼있으며 칫솔질이나 치과 정기검진에도 소홀한 탓으로 치주질환 유병률이 높다. 흡연(吸煙)은 입속 온도를 높이고 침 분비를 억제해 세균이 증식하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 또 담배에 포함된 니코틴, 타르 등 유해(有害)성분이 잇몸을 손상시켜 감염(感染)에 취약하게 한다. 음주(飮酒)는 잇몸 출혈을 부추기고 염증을 잘 생기게 하며, 스트레스도 면역력을 떨어뜨려 치주질환의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 모니크 헤메네스 박사가 국제치과연구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비만인(체질량지수 BMI 30 이상)은 정상인보다 치주질환에 걸릴 확률이 29%나 더 높았다. 또한 허리둘레를 엉덩이 둘레로 나눈 비율(WHR)이 높은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치주질환이 6배나 많았다. 비만(肥滿)이 최전방 면역세포(免疫細胞)를 약화시켜 면역반응이 둔화되고, 그 결과 감염에 취약해서 치주염이 쉽게 발병한다.
흔히 풍치(風齒)로 불리는 치주질환은 충치(蟲齒)와 더불어 중요한 치과질환이다. 치주질환의 진행과정은 (1) 치은염(齒齦炎ㆍgingivitis)- 잇몸이 붓고 붉어지며 칫솔질할 때 피가 난다. (2)초기 치주염(齒周炎ㆍparadentitis)- 잇몸이 붓고 들뜬 느낌이 나고 붉어지며 건드리면 피가 난다. (3)중기 치주염- 잇몸이 내려가고 치아 사이가 뜨기 시작하며 약간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4)진행된 치주염- 잇몸이 심하게 내려가고 치아 사이가 벌어지며 치아가 흔들린다.
치주질환은 치아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조직인 치주조직(齒周組織)에 생기는 질병이다. 치주조직은 치아를 둘러싸고 있는 턱뼈인 치조골, 치아와 치조골을 연결해주는 치주인대(靭帶), 치아 뿌리 부분의 단단한 부분인 백악질, 치조골을 덮고 있는 잇몸인 치은(齒齦)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치주염은 세균에 의한 염증이 잇몸과 잇몸뼈 주변까지 진행된 경우로 치아(齒牙)를 잃게 되는 주요 원인이다.
치아 주위에 집단을 이루어 공생하고 있는 세균(細菌)들은 세균 바이오필름(bio-film)이라고 하는 끈끈한 보호막을 만들어서 인체의 방어기전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며 살고 있다. 세균 바이필름이 방치되면 세균들이 내뿜는 독성물질들이 석회화되어 치석(齒石)이 된다. 치석은 잇몸 안쪽으로 파고들게 되어 염증이 잇몸에만 국한되지 않고 치주인대와 치조골까지 파급된다.
입 속에 있는 500 여종의 세균들 가운데 독성(毒性)이 강한 세균들이 많아지거나 신체의 저항력이 약해졌을 때 치주조직에 염증이 일어나게 된다. 초기에는 잇몸의 염증만 나타나지만, 병세가 진행되면서 치아를 단단히 잡아주는 치주인대와 치조골이 파괴되어 결국에는 치아가 빠지게 된다.
치주질환의 특징은 치주질환에 걸렸다고 해서 항상 아픈 증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환자들이 잇몸에 통증을 느낀 후에야 치과병원을 찾는데, 이럴 경우 병세가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아서 적절한 치료를 통해 원래의 건강한 잇몸 상태를 되찾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치주질환 자각 증상’이 나타나면 치과를 찾아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칫솔질할 때 잇몸에서 피가 난다. ▲잇몸이 붓고 건드리면 아플 때가 있다. ▲잇몸을 누르면 피나 고름이 나온다. ▲잇몸이 내려앉아 치아가 전에 비해 길어 보인다. ▲치아가 움직이고 치아 사이에 틈이 보인다. ▲위아래 치아가 닿는 느낌이 예전과 다르다. ▲잇몸에 종기가 생긴다. ▲치석이 눈에 띄게 많다. ▲구취(입 냄새)가 심하게 난다.
치주질환 진단은 치주낭 검사와 치과방사선 검사가 기본이다. 건강한 잇몸은 치주낭(치아와 잇몸이 만나는 부분) 깊이가 1-3mm 정도인데, 치주질환이 진행되면 잇몸이 붓거나 잇몸뼈가 흡수되어 깊이가 더 깊어진다. 치주낭 측정기를 이용해 깊이를 측정해 4mm 이상인 부분이 많으면 치주질환으로 진단한다. 치과방사선 검사로 잇몸뼈가 파괴된 정도와 치근(齒根)의 형태, 치석, 치아우식증(충치) 등을 진단할 수 있다.
치주질환의 치료는 먼저 스케일링(tooth scaling)을 기본적으로 시행한다. 스케일링은 치아 표면과 치아 사이에 부착된 플라크(dental plaque)와 치석(齒石)을 제거하고 치아 표면을 매끈하고 깨끗하게 해주는 치료법이다. 스케일링은 잇몸 윗부분에 생긴 치석을 제거하는 치료이므로 잇몸 아래 숨겨진 치석을 제거하려면 ‘치은소파술’을 시행하여야 한다. 또한 치조골이 많이 상한 상태라면 잇몸을 절개해 치석과 염증(炎症) 등을 제거하는 ‘치주판막수술’을 받아야 한다.
치아우식증(충치)과 치주질환 예방을 위해 매일 치아와 치주조직을 깨끗하게 유지하도록 칫솔질을 하여야 한다. 양치질은 하루에 3번 이상, 식후(食後) 3분 이내, 3분 이상 이를 닦아야 한다는 ‘3ㆍ3ㆍ3 원칙’을 실천하여야 한다. 잇몸을 닦을 때는 작은 원을 그리며 가볍게 마사지하듯 닦는다. 간식(間食)을 먹거나 커피를 마신 뒤 3분 이내에 양치질을 하기가 여의치 않다면 물로 입안을 여러 번 행구는 ‘물양치’라도 하는 것이 좋다. 치과를 6개월에 한 번씩 찾아 치석제거 스케일링을 포함한 정기점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동(電動)칫솔은 보통 칫솔을 원활하게 사용하기 힘든 노약자나 장애인들에게 권장되며, 칫솔질이 잘 안 되는 일반인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최근에 개발된 전동칫솔은 치아와 치아 사이의 면에 더 깊이 침투가 가능한 초음파(超音波) 기술이 접목되어 있거나, 타이머가 장착되어 효율적인 칫솔질을 하도록 도와준다.
칫솔질과 더불어 치간(齒間) 간격이 치밀할 경우 사용하는 치실, 치간 간격이 넓을 경우 사용하는 치간칫솔, 수압(水壓)을 이용하여 치아를 세척하고 잇몸을 마시지 해주는 수압 세정기(洗淨機) 등 구강위생보조기구를 사용하면 세균 바이오필름과 치석이 생기는 것을 더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칫솔은 완전 건조시켜서 보관하여야 한다. 칫솔에 물기가 남아 있으면 구강 세균이 번식해 세균 덩어리가 될 수 있다. 세균(細菌)을 관리하려면 1주일에 한 번 베이킹소다 반 스푼 정도를 녹인 물에 칫솔을 10-20분 단가 소독하며, 칫솔은 3개월마다 교체하는 것이 좋다. 치약(齒藥)도 자신의 잇몸 상태에 따라 선택하여야 한다. 치주질환이 있으면 연마제(鍊磨劑)가 많은 치약은 피하도록 한다.
우리나라는 1946년에 치아와 구강(口腔)의 위생을 계발(啓發) 선전하기 위하여 6월 9일을 ‘치아(齒牙)의 날’로 정했다. 대한치과의사협회(Korean Dental Association) 는 2012년 치아의 날을 맞아 다문화(多文化)가정 어린이들을 위한 국내 최초 정규 사립대안초등학교인 ‘지구촌학교’에 구강보건실을 마련해 주었다. 건강한 치아와 치주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구강건강(口腔健康)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다.
글/ 靑松 朴明潤(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서울대학교 보건학박사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