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세웁시다.
말 씀: 누가복음 23:33-49
설교일: 2025. 3. 16 (주일 낮 예배)
우리나라 사람들은 숫자 4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자로 죽을 사(死)자와 같은 소리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4호실이 없는 병원도 있고,
4층을 4로 표시하지 않고, F 로 표시한 엘리베이터도 있습니다.
4나 Four 나 같은 뜻이지만 일단 4자는 보고 싶지 않다는 거지요 !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1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열두 제자를 합하면 13인데, 그 13명이 모인 자리에서 가룟유다의 배반이 있었기 때문에 이 13이란 숫자를 ‘배반과 불행’의 숫자로 보고, 싫어한다는 겁니다.
우리 나라 사람이나 서양 사람이나 왜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을까요?
어찌되었든지, 불길한 것은 다 싫다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십자가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사실 십자가는 가장 끔찍하고 불길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잔혹한 사형도구입니다.
로마의 사형법 중에서 가장 참혹하고 잔인한 방법이 바로 십자가형입니다.
죄인을 죽이려고 십자가에 매달아 놓으면, 극도의 고통을 겪다가 죽게 되는데,
어떤 때는 까마귀들이 날아와서 아직 살아있는 죄인의 눈을 쪼아 먹었다는 겁니다.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 사형 방법입니까?
그런데도 믿는 사람들은 이 참혹한 사형틀,
예수님이 못박혀 죽으신 이 무서운 십자가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내 걸고 자랑하며 ㅛ좋아합니다.
교회 지붕에도 십자가, 교회 강단에도 십자가, 거실 벽에도 십자가,
그것도 모자라서 목에도 십자가를 걸고 다닙니다.
혹 꿈에 십자가라도 보면 그렇게 기뻐합니다.
찬송할 때도 십자가를 노래하고 기뻐합니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아멘 ♬♬
그러면 도대체 왜 성도들은 이 불길한 십자가를 좋아하고, 자랑할까요?
첫째,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하며 에덴동산, 낙원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다가 죄를 범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 납니다.
그 때부터 사람은 하나님의 관계가 단절되고, 세상에서 죄를 지으며 살게 됩니다.
완전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지은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런데 이 사망은 그냥 죽음이 아니고 영원한 죽음, 지옥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비참한 최후를 불쌍히 여기시고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못박혀 우리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도 없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손에서는 우리 죄를 사하시는 붉은 피가 솟구쳤습니다.
예수님은 그 피 흘리는 한 손으로 하나님의 손을 잡으시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우리 손을 잡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선언과 동시에 우리 인간은 누구든지 우리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죄에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만 믿으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천국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 사건입니다.
오래 전 90년 넘게 하나님을 부인하며 사신 분을 전도한 일이 있습니다.
그분은 90평생 건강하게 사셨습니다. 하나님 없이 아주 큰 소리 치시면서 사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가시기 전에 여러 곳에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너무 연세가 많아 수술은 어렵고 그저 진통제로 견디게 되었습니다. 그분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병갑이 할아버님!
세상에 죄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랬더니 그분이 ”죄없는 사람이 어디있어?“
하시면서 자신도 죄인임을 인정하셨습니다.
병갑이 할아버님, 세상 나라도 사람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 나라는 더 엄격하게 죄를 처벌합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죄의 처벌은 사망, 곧 멸망, 지옥형벌입니다.
세상에 죄없는 사람이 없으니 모두가 다 지옥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옥형벌을 받고 멸망당할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병갑이 할아버님!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데 죄를 가지고 떠나면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죄를 용서 받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선물로 받고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고 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할아버지의 눈을 보니까 얼마나 초롱초롱한지,
이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듣지 않았으면 큰일 날뻔 했다는 눈 빛이셨습니다.
그날 그분은 예수님을 영접하셨고, 몇 달 후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오늘 말씀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구원받은 강도의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좌우편에 두명의 강도도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그 중에 한편 강도는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조롱했습니다.
39절입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아멘
(“당신이 구세주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십자가에서 뛰어 내려와 당신도 구원받고 나도 좀 구원해 보시오” )라고 하면서 마지막 순간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은 거지요!
그러나 또 한명의 강도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40-42절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이 강도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죄를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주님 !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이 강도는 주님을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죄인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가 있으리라”아멘
울어도 안되고, 힘으로도 안되고, 노력해도 안되는 구원이 오직 예수님을 믿자 단번에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임종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심령에 구원의 십자가가 세워지면 그 사람이 가는 곳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의 앞에 그 구원의 십자가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그 구원의 십자가를 높이 세우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이 땅에는 십자가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로 십자가를 보게하고 구원을 얻게 할 사명이 이제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 구원의 십자가를 세워야 합니다.
직장에, 사업장에도 세워야 합니다.
십자가가 없는 곳에 십자가를 높이 세워야 합니다.
이 세상에 할 일도 많지만 십자가를 세우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더 시급한 일이 없습니다.
둘째, 우리가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독생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되게 하시고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사람으로 보내신 예수님을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로마서 5장 8절이하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아멘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자기 독자를 십자가에서 피흘리고 죽게 하셨을까요?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서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증거요,
하나님 사랑의 놀라운 징표입니다.
셋째, 우리가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룬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6:38-39)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이 그냥 지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가혹한 십자가 형벌을 피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리고 기쁘게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이렇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룬 증거입니다.
찬송가 425장 가사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이 찬송은 “폴라드”라는 여자 선교사가 선교단체의 기도회에 참석했는데,
어느 할머니 선교사의 기도에 깊은 감동을 받고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할머니 선교사의 기도는 이렇게 아주 간단했습니다.
“하나님 , 우리 생애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좋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 찬송가 425장을 다 함께 부르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마지막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애 마지막 까지
구원의 십자가,
사랑의 십자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십자가를 자랑하며 높이 세우고
신앙의 경주를 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