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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조춘숙
말 씀 시편 116편 1-6절
제 목 감사의 자리에서 본 고난
저는 요즘 젊은이들의 고민을 들으면서 아 이 친구가 인생의 어디쯤을 지나고 있구나 제가 알고 있는 것을 보니까 이제 인생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젊은이들의 얼굴은 너무나 진지하지만 그걸 듣고 있는 저는 모두 지나갈 것을 알기에 미소를 짓고는 합니다.
젊은이들은 진흙탕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리며,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이 슬퍼 보입니다.
하지만 그 길을 지나봐야만 어른이 되기 때문에 스스로 나올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밖에는 해 줄 것이 없어 도리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들 생각에는 절대로 이 진흙탕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두렵겠지만 조금만 더 걸으면 단단한 길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길을 건너본 사람은 진흙길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진흙 길을 만났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신발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신발이 진흙속에서 벗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생 길을 떠날 때는 항상 신발끈을 단단히 매는 습관을 들여야만 하나밖에 없는 신발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흙탕에 발이 빠지면 천천히 걸어야 합니다.
그 길을 벗어나기 위해서 급한 마음에 발을 빼다 보면 발도 잘 안 빠지고, 힘만 들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진흙 길을 벗어나야 안전할 수 있다면, 멀리 보면서 천천히 걷는다면 신발도 잃어버리지 않고, 두려운 마음도 사라질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을 만났을 때 그 고난만 벗어나려고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서두른다면 도리어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모두 잃어버린 후에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난과 맞서야 하는 것입니다.
헌데 젊은이들은 아직 진흙 길이 많이 남았는데도, 급히 가려다가 신발도 잃어버리고, 넘어져서 옷도 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온 몸을 더럽히게 되면 깨끗하고 단단한 길을 만나도 신발이 없어서 빨리 걸을 수 없고, 옷이 더러워서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음을 꼭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의 인생도 그렇지만 성도들도 본향인 천국을 향해 가다 보면 오아시스를 만날 수도 있고 산과 계곡 그리고 진흙탕도 만날 수 있습니다.
성도라고 해서 편안한 길만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성도들은 복음의 신을 신고 있기 때문에 진흙길을 만났을 때 복음의 신이 벗겨지지 않도록 천천히 걷지 않는다면 믿음까지 모두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고난을 만났을 때 천천히 걷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성숙하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이므로 지혜롭게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때 많은 성도들은 자신만 정체되어 있는 것 같고, 하나님을 위해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힘들어 합니다.
자신만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아서 교회에서 부끄러워하고, 하나님을 잘못 믿어서 고난을 만난 것 같이 당당하지도 못하지만, 누구나 진흙 길을 만나게 되어 있고, 그 길에서는 천천히 가야 하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생각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단단한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선 자들 역시 모두 진흙 길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신발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앞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누구나 고난을 만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축복의 단단한 길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도 시간이 지난 후에 여러분의 뒤를 따라오는 청년들에게 자신들이 건너본 고난의 길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잘 말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시편 116편은 저자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다니다가 다시 궁으로 돌아왔을 때 죽음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 드린 찬양시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왕권을 빼앗고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쫓아다녔을 때 다윗의 처참한 심정과, 또 압살롬이 죽고 왕궁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을 잃은 그 아비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이 기도문을 읽는다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윗의 마음까지 고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1절에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말씀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 음성과 간구를 듣고 계신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큰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큰 믿음을 가진 자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의지하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어떤 말이든 귀를 기울여서 듣고 계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인데 자녀들에게 부모의 말만 들으라고 한다면 자녀들은 부모에게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자녀들이 왜 그런 말과 생각을 하는지 들어준다면,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부모를 존경하고 의지할 것입니다.
다윗도 하나님께서 자기의 음성과 간구를 듣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고난에 빠져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당면한 문제는 너무 컸지만 자기 앞에 서 계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네가 신중하게 그리고 천천히 한발 한 발 내 딛기만 하면, 틀림없이 이 고난을 벗어날 수 있다"고 응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내 음성과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당장 단단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 위해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진흙 길은 끝이 있을 것이고, 그 끝에 내 음성과 간구를 들어주시던 하나님께서 새 신발과 새 옷을 가지고 기다리실 것을 믿는다면 진흙위에 주저앉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부모를 신뢰하는 자녀는 모든 고난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인생은 자녀 혼자서 가야 하기 때문에 고난을 만났을 때 이길 수 있는 지혜와 힘을 길러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자녀가 스스로 해야 하는 일도 부모가 모두 다 해 주고, 자녀가 세워야 하는 계획과 결단도 부모가 다 해 준다면 진흙길을 걸어본 적이 없는 자녀들은 인내가 무엇인지 몰라서 결국 실패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도 고난의 길을 걷게 하십니다.
미워서가 아니라 자녀가 그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서 다른 믿음의 형제를 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도 자녀를 사랑하시거든 하나님께서 너의 음성과 간구를 듣고 계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진흙 길에서는 부모도 도울 수 없고, 물질로도 건질 수 없지만 오직 하나님께서 너의 발이 깊이 빠지지 않도록 손으로 받쳐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려줘야만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의지 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음성과 간구를 듣고 계신다는 것은 정말 가슴 설레고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어리면 감사보다는 현실이 더 두려울 것입니다.
저는 젊은 시절 연단을 받을 때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에 힘들어 하는 한 청년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웬일로 하나님께서 고난 가운데 앉아서 울던 저의 젊을 때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현실이 그저 두렵고, 어쩌면 내 평생 이 험한 길에서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마다 울고 또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현실이 너무 두려워서 우는 제 얼굴을 들여다 보시며 "눈을 감고 울지만 말고 네 앞에 서 있는 나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저는 눈도 뜨지 않고 계속 울기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같지만 실은 기도하지 않고 제 현실만 들여다보면서 하소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는 저의 모습을 비췄던 카메라가 뒤로 빠지는 것처럼 화면이 멀어지더니 이번에는 울고 있는 저와 제 앞에서 안타까운 얼굴로 저를 보시는 하나님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제가 보였습니다.
지금의 제가 하는 말이 "저 때 저렇게 간절하게 말씀하셨는데도 나는 듣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도와줄 것이라고 말씀하셔도 저는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그 때 제가 하나님을 깊이 사랑했다면 하나님의 간절한 음성을 들었을 것이고, 그 말씀에 힘을 얻어 진흙 길에서도 낙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낙심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음성 즉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의 저는 젊었을 때 울면서 하소연하던 그 모든 기도까지 하나님께서 다 듣고 응답하셨다는 것을 아는데, 그 때는 지금 우리 청년들처럼 앞이 막막했던 것입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특히 제가 도와줄 수 없는 일을 당하면, 이제야 제가 아이들의 인생에서 빠지는구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자녀들을 직접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듣고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물론 부모가 도울 수 없는 일을 자녀들이 만나는 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진흙 길을 건너야만 부모 없이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어른이 되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부모의 곁을 떠나야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겠구나 하는 뿌듯함과 진흙 길을 잘 건너주기를 바라는 어미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참 열심히 기도를 드립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복음의 신발을 잃지 않고 잘 견뎌내 주기를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곳인지, 사람들이 웃고 있지만 겉과 속이 얼마나 다른지도 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 청년들도 세상이 크게 보일 것이고, 힘겨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길을 잘 건너고 나면 아마도 지금의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웃게 될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만 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힘겨워 울고 있을 때 자녀에게 "울지만 말고, 너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해줘야 할 것입니다.
부모의 신앙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처음 만난 일세대는 결국 삶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영육간의 힘든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부모를 만난 이 세대는 부모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았고, 앞에서 부모와 하나님께서 함께 이끌어 주기 때문에 훨씬 쉬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진흙길을 건너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노력보다는 진흙길을 잘 건너서 강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자녀들이 자신의 음성과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이 길을 건너게 하셨다는 확신을 가져야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런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평생 기도하겠다는 서원을 했습니다.
아들인 압살롬에게 쫓겨 다니면서 다윗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지 여러분은 다윗의 마음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며 수많은 고통과 연단을 받았던 그가 이번에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쫓겨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군사를 동원했습니다.
이 고난을 겪으면서 다윗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언제나 진흙 길을 만났을 때 자신의 뜻대로, 그리고 생각과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압살롬보다 더 잔인했던 사울에게 쫓겨 다녔을 때에도 그는 사울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것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진흙 길이기 때문에, 잘 건너달라고 부탁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길이 험하고 고통스러워도 하나님께서 단단한 길을 만나게 하실 때까지 다윗은 절대로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허둥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진흙 길에서 벗어났을 때 언제나 깨끗한 복음의 신을 신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사울왕이 자기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있을 때도, 다윗은 그것조차 하나님께서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으로 알고 옷자락을 잘라 경고했을 뿐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죽으면 차라리 다윗의 인생이 훨씬 편할 수 있겠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 사울을 죽인다면, 사울 대신 하나님께서 직접 자기를 상대로 싸우실 것을 알기 때문에 그 고난을 즐겼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윗의 이런 지혜를 닮기 바랍니다.
사망의 줄이 다윗을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그를 괴롭혀도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속에서 간구하는 자신의 음성을 듣고 역사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9-11절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앞에 행하리로다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 내가 놀라서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아들에게 쫓겨 다니는 다윗을 보고 사람들은 조롱했습니다.
너는 분명 실패했다고, 그리고 네가 그토록 믿는 하나님이 너를 버렸다고 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큰 은혜로 건져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볼 때 하나님께서 성도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훈련하시는 것이 어쩌면 가난하고, 병들고, 힘과 능력이 없어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보다 하찮아 보여서 조롱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가난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세상의 물질을 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힘과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 것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실 때까지 참고 인내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그를 조롱하던 사람들은 다윗을 왕으로 섬겨야 했고, 그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실 때까지 있는 자리에서 준비하는 자로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회가 왔는데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복을 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게으른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하면 이것이 기회인지 욕심인지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다윗처럼 영적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성숙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다니는 다윗을 보고 세상사람들이 뭐라고 조롱을 했을까요?
세상이 지금 교회, 목회자 성도들의 잘못 때문에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 때 사람들이 어떤 말을 했을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조롱하는 세상사람들의 판단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압살롬의 공격에서 막아주시고, 다시 성으로 돌아가게 하실 때까지 복음의 신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만약 다윗이 사울은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셨으니까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지만 아버지를 공격하는 아들은 용서할 수 없다며 압살롬을 바로 공격했다면 그의 신앙은 크게 흔들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압살롬을 제압하실 때까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단단한 땅을 만나게 하실 때까지, 하나님께서 평안한 삶을 주실 때까지 잠잠히 기다렸던 다윗은 마지막 순간에 웃는 자가 되었습니다.
12-14절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다윗은 인생중에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고난을 견뎌내면서 더욱 단단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만약 그가 세상에 소망을 두었다면 지금 다윗이 당한 일들은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문제이기 때문에 실족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연단하시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연단을 잘 견뎌낼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 이 고난을 벗게 해 주시는 분이라고 믿었고,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다윗의 믿음이 그를 위대한 왕으로 만든 것입니다.
다윗은 고난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그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고민 했습니다.
그는 번제물을 바치며, 하나님을 찬양했고, 모든 죄를 회개했습니다.
다윗이 받는 고난은 자신의 죄와 부족함 때문에 겪는 일이지만 그 고난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일방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느냐고 불평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이 되지 않으면 실족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강퍅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난 고난은 우리가 진흙 길을 건널 때 말씀과 믿음의 신발을 지키지 못한 죄 때문에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잘 살아야 하는 것이고, 매 순간 영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해야만 더 큰 문제를 만나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은 고난을 벗고 나서 편안한 자리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은혜를 아는 다윗은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께 드렸던 서원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시 서원하였습니다.
보통 고난을 벗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것이 사람인데, 서원을 잊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을 보면서 다윗은 역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고난만 본 것이 아니라 이 고난은 반드시 지나가고, 감사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모두 감사의 자리에서 바라봤기 때문에 사울의 공격도, 압살롬의 공격도 모두 인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고난에서 건져주셨을 때 하나님께 어떤 서원을 하셨습니까?
성숙한 믿음으로 감사의 자리에서 고난을 보신다면, 그 고난 끝에 평안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다윗처럼 찬양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전에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위로하셨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감사의 자리에서 고난을 보셔야만 쉽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감사의 자리에서 고난을 보셔야만 아무 것도 잃지 않고, 하나님께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윗처럼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음성과 간구를 들으시며, 어떻게 도와야 여러분이 믿음으로 성장할지 고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늘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고 섬기는 자녀가 되셔서 하나님의 신뢰를 쌓는다면 여러분이 충성한 것보다 더 큰 상급과 사랑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만 의지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013,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