藥徑通幽窅(약경통유요)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조선 후기의 문신·실학자·서화가. 자: 원춘(元春). 호: 추사(秋史)·완당(阮堂)·예당(禮堂)·시암(詩庵)·노과(老果)·농장인(農丈人)·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1819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이조참판 등을 역임. 학문에서는 실사구시를 주장하였고, 서예에서는 독특한 추사체를 대성시켰으며, 특히, 예서·행서에 새 경지를 이룩하였다. 저서에 《완당집》·《금석과안록》 등이 있다.
藥徑通幽窅(약경통유요)
蘿軒積雲霧(라헌적운무)
山人獨酌時(산인독작시)
復與飛花過(복여비화과)
약초 가득한 오솔길은 깊고 그윽한 곳으로 통하고,
덩굴 휘감은 집 누각에는 안개구름 자욱하네.
산중의 사람 홀로 술잔을 기울일 때,
흩날리는 꽃잎과 더불어 함께 지나는구나.
藥徑(약경) : 약초가 심어진 작은 길, 또는 약초가 무성한 오솔길.
幽 : 그윽하다, 깊다. 窅(요) : 아득하다, 깊숙하다.
蘿軒(라헌) : 덩굴(蘿)이 휘감은 누각(軒),
추사는 금석학과 서예, 회화, 시문에 두루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세도 정치 속에서 여러 차례 유배를 당했다. 특히 제주 유배(1840~1848, 약 9년간)는 그의 삶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권력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자연 속에 묻혀 살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학문과 예술,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내면을 더욱 깊게 가다듬었다. 세한도(歲寒圖)도 이 시기의 산물이다.
이 시 역시 유배 시절의 정서를 보여준다.
起句에서 세상과 떨어져 산중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
承句는 외부와 차단된 은둔 생활의 상징.
轉句는 홀로 술을마셔야 하는 고독한 유배자의 일상.
結句는 흩날리는 꽃잎이 벗이 되어 자연과 교감하며 외로움을 승화하는 마음.
즉, 세상과 격리된 상황에서도 자연과 벗하며 고독 속에서 자유를 얻는 초연한 경지를 드러낸 시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