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역사는 있는가"라는
김종윤 선생님의 책을 바탕으로 정리한 글이다.
조선의 서울은 서경과 동경 두 곳에 있었다.
서경은 현 중국 산시성의 서안이라는 곳에 위치한
장안이었고 동경은 허난성에 위치한 낙양이었다.
파주, 연천, 장단은 장안과 낙양 사이에 위치한
산시성과 허난성 일대를 말하는 것이다.
강릉은 지금의 진성을 말한다.
낙양은 신라시대 경주라는 곳이었다.
고려 때에는 개경과 개성으로 불리던 곳이기도 하다.
낙동강은 낙양 앞을 흐르는 낙수를 말한다.
남경, 중경, 북경 등은 그 시대 방위 개념에 따라
그곳에 왕도가 있었다는 말이며,
중국 고지도에 한양이라는 지명이 여기저기 있는 것도
시대마다 서울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는 말이 된다.
조선시대 한성인 장안은 주나라 때 무왕이
도읍한 곳이기도 하며. 고려시대에는 서경이었으며,
고구려의 평양이었고. 근세에 와서 한양과
경성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이성계가 도성 개성을 버리고 조금 북쪽으로 옮겨
온 곳이 장안이고 조선 5백년 서울이며 정도전이
설계한 한성이다.
서경과 동경 두 지역이 조선시대 경기도 땅이었으며.
황제가 머무는 땅인 중국이 경기도 였다.
중국이라는 개념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천자인 황제가 머무는 세상의 중심이라는 말이다.
한양은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다라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적혀있다.
장안뿐 아니라 대륙 전체가 서쪽이 높고 동쪽은 낮다.
그래서 모든 강이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그러나 한반도는 이와 다르다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다.
한강은 한중에서 무한을 통해 양자강으로
빠지는 한수를 말한다. 한반도에 역사를 옮기면서
한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태백산이 장안의 남쪽 산시성 허리를 돌면서
서쪽으로부터 인왕산이(3767m) 있고
남산(2604m) 등이 서에서 동으로 봉우리를 만들며 간다.
동에서 뻗어내린 화산산맥과 진령산맥이 만나
엉키고 설키는 산악지대에 아차산도, 소요산도 있고
불암산도 있고 수락산도 있다
예기라는 책에 의하면 “조선은 1770개의
크고 작은 나라(고을)가 모여 있다”라고 쓰여있다.
옜날의 나라(國)는 울타리 개념이었다.
한자는 동이족이 만들었지만 한자의 발음은
민족마다 다 달라 서로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서울(중국) 말과 같도록
훈민정을을 창제하신 것이다.
즉 훈민정음은 한자를 읽는 발음 기호인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팔도가 경기도 땅을 가운데 두고
별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부채살처럼 팔도의 땅이 한성과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이러한 팔도의 개념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의 한반도는 서울과 멀리 동떨어져 있는 곳이 많다.
조선왕조실록도 원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한반도에 꿰맞추느라 조작된 흔적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의 왕실도서관 지하 같은 곳에
꼭꼭 숨겨놓았을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지금의 몽골 지역에
위치해 있었고 백제가 사천성 부근에,
신라가 저장성 쪽에 있었다.
충청도는 대략 사천 지방과 운남의
일부 지방을 말한다.
동학혁명을 일으킨 전봉준의 거점 지역이었던
전라도 고부군은 운남성 문산을 말한다.
김수로왕의 부인 왕비 허황옥(보주태후)은
사천성 보주 사람으로 지금의 안악에서
전란을 피해 양자강을 타고 동쪽으로 내려가다
김해 지역인 남경(난징)에서 정권을 잡은
김수로왕을 만나 태후가 되었다.
육가야가 있었던 곳이 지금의 남경지방이며.
임나일본부가 있었던 곳 역시 김해라고 불렸던
지금의 남경지방이다.
후에 왜인 혹은 일본의 거점 지역이 된다.
남경은 난징 대학살이 일어났던 곳이다.
일본의 천황가는 김해김씨라고도 하며
가야 사람들이라고도 한다.
일본이란 명칭은 백제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하며.
임진왜란은 남경에 거점을 두고 있던 일본이
양자강을 따라 올라가며 조선 수군과 벌인 전투이다.
조선땅 안에서 벌어진 제후국의 전란인 것이다.
임진왜란은 서양세력도 합세한 우리가 알고 있는
규모보다 큰 세계전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의 양자강의 넓이가 지금과는 다르게 상당히
넓었으며 조선은 1만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기록도 있다.
상해는 조선으로 들어오는 대문이었다.
병인양요나 신미양요 등 프랑스함대나 미국 함대가
들어온 것도 바다가 아닌 내륙의 양자강 물줄기를
타고 들어온 것이었다.
일본의 에도시대는 남경시대를 말하는 것이고
남경을 떠나 현재의 일본 열도로 간 시대를
메이지시대라고 한다.
1882년 쯤에 일본은 지금의 일본 열도와 한반도를
손에 넣고 현재의 동경을 수도로 삼아 개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명나라는 고려 공민왕 때 사천성 운남에서
건국된 조선의 변방국이며 조선의 오른팔과 같은
제후국이었다. 청나라는 왼팔로 두 나라는 조선의
가장 든든한 제후국들이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고려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우러 온 것이다.
백두산(장백산, 불함산)은 지금의 몽골고원의
남쪽 변두리를 병풍처럼 길게 두르고 있는
현재 이름의 음산산맥이다.
백두산 너머에는 여진의 무리가 살고 있었으며
항상 백두산을 넘어와 조선을 괴롭혔다.
고려와 조선에서는 이 여진족들을 막기 위해
음산산맥(백두산) 아래로 만리장성을 쌓았다.
청나라는 백두산에서 일어나 건국된 나라다.
지금의 내몽골 수도 호화호특은 이성계의 고향인
함흥이며 일제 강점기 신흥무관학교가 세워지고
청산리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중국 영하성에 있는 지금의 청하수가 청천강이고
살수이며 압록강이다. 두만강은 내몽고 지방을
통과하는 황하의 중 상류를 일컫는다.
제주는 고대 제나라가 있던 지역을 통과하는 강
유역의 땅을 말하며 산동성 넓은 평원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넓은 초원지대라 말을 기르기에 좋은 곳이었다.
한반도로 지명을 옮기면서 섬이 된 것이다.
고려 때는 나라를 10개의 도로 나뉘었다고 한다.
그 넓이가 만리(4000km)나 되었으며.
13세기 원나라에 의해 그 강역이 조금 줄었지만
지금 중국의 강역이 고려 초 강역과 비슷하다고 한다.
금강산은 안휘성 휘주, 흡현지방에 있다.
원래 부처님을 모신 석굴이 있는 산을 금강산이라고
했기 때문에 금강산은 여러 곳을 말하는 것이었다가
아름다운 산을 금강산이라고 불렀다가
대륙의 황산을 금강산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영국, 일본,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 청나라까지
합세해서 세계의 모든 패권을 쥐고 있던
거대한 대한제국을 무너트렸다.
서양이 동양을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 18세기 중반
산업혁명 이후 부터였다. 그들은 유럽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산속에서 동물을 사냥하면 살던
정신적으로 미개한 사람들이었다.
신해혁명을 일으킨 손문은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기
위해 중국의 역사를 다시 만들었다.
그것이 다시 일본에게 전해져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에 의해 조선의 역사 역시
다시 만들어졌다.
동이족의 역사 전체를 제후국들의 역사로
대체하고 조선 5백 년 역사도 전반을 명나라
역사로 후반을 청나라 역사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조선의 역사는 한반도로 옮겨
억지로 끼워 넣었다.
그 역사서를 바탕으로 한반도에 가짜 유적과
유물을 조성하거나 가져다 놓았다.
그 일은 해방 후에도 계속되었다.
경북궁과 같은 궁궐들은 일제시대 때에
모두 건축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