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4. 04
疫病·戰爭의 시대, 財政·物價安定이 최고의 방패
2022년은 102년 만의 팬데믹(코로나19)과 83년 만의 침공 전쟁(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40년 만의 인플레이션과 18년 만의 고금리 등 충격이 중첩된 한 해였다. 올해엔 지난 3년간 사망자 688만 명을 초래했던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가고 있으나 전쟁과 인플레이션과 고금리의 충격은 계속되고 있으며, 최근 금융위기의 불안한 조짐도 어른거리고 있다. 한마디로 현재 우리는 충격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세계 연결되며 위기도 일상화
경제적 충격(shock)은 자원 배분 결정의 기반이 되는 환경의 예상 밖 변화로 정의되며, 정상적인 흐름을 일시에 단절하는 의외의 사건과 그로 인한 치명적인 결과를 특징으로 한다. 공급 측면의 충격으로는 1973년의 오일 쇼크가 대표적이며, 수요 측면의 충격으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위기, 경제 외적 충격으로는 2001년 9·11 테러와 2020년 코로나 펜데믹, 그리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충격들은 공급사슬을 마비시킴으로써 생산 활동을 급격하게 위축시키거나, 금융시장 붕괴로 상품 가격체계와 경제 질서를 혼란 상태로 몰아간다. 그 결과 극심한 인플레이션 또는 심각한 경기침체와 실업을 초래한다. 한편 인터넷과 아이폰 출현과 같은 기술적 충격은 생활과 세상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현시점에서 충격을 새롭게 주목해야 할 이유는 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그 강도 또한 강해져 갈수록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2003년 발생했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인한 세계 사망자 수는 774명에 그쳤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는 3년간 688만 명이 사망했다. 세계 경제성장률은 금융위기 충격으로 2009년 0.1% 떨어졌던 반면 코로나 팬데믹으로는 2020년 3% 하락하였다.
위험의 다원화·복합화·세계화
왜 충격은 갈수록 자주 발생하고, 그 결과는 심각해지고 있는가. 충격의 원인이 되는 위험이 다원화·복합화·세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들어 상품의 생산구조와 금융의 세계화와 디지털 혁명 등으로 세계는 보다 긴밀하게 연결되고, 이에 따라 충격의 전파 속도는 급격하게 빨라졌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다음에 올 충격의 가장 유력한 변수로는 기후 이변이 지목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23년 1월 발표한 ‘글로벌 리스크 리포트 2023’이 제시한 10대 위험 중 다섯 가지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위험이며, 바이러스 확산 등 유행병 위험도 상존해 있다. 또한 디지털 혁명이 고도화됨에 따라 사이버 공격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대체로 충격이 공급 측에서 발생하는 경우, 공급 단절로 세계 공급사슬을 압박함으로써 가격 체계를 교란하고 생산 활동을 위축시키는 한편 상대적으로 전파 과정이 길고 회복 속도도 느리다. 반면에 수요 측, 특히 금융시장에서 충격이 발생한 경우에는 전파 속도가 빠르고 총수요를 급격하게 위축시키는 한편 정부의 신속한 대응으로 회복속도도 빠르다.
팬데믹 때 보조금·감세 잇따라
예상하지 못한 치명적인 충격이 발생하면 정부는 가능한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하여 충격에 대응한다. 2020년의 코로나 팬데믹에 대응하여 대다수 국가가 광범위한 사회적 격리를 하는 이른바 ‘대봉쇄’(The Great Lock-out) 조치를 단행했으며, 경제활동 차단에 따른 보상으로 각국 정부는 막대한 재정지출을 단행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코로나 팬데믹에 대응하여 세계적으로 총 5462개 정책이 발표되었으며, 특히 3월과 4월간에 선진국 그룹은 평균 76개, 신흥국 그룹은 평균 28개 정책을 쏟아부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20년 선진국 그룹은 보조금과 감세 등 재정정책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평균 15.2%를 지원했으며, 신흥국들은 GDP 대비 평균 4.1%를 지원했다. 한편 선진국은 GDP 대비 평균 17.7%의 신용공급과 함께 정책금리를 1.5%포인트 인하했으며, 신흥국 그룹은 GDP 대비 평균 1.3%의 신용공급과 함께 정책금리를 1.25%포인트 내렸다.
이러한 적극적인 정부 대응이 불가피한 조치임에는 분명하나 또 다른 파생적인 충격을 유발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기간에 걸쳐 이뤄진 재정과 금융 양면의 막대한 유동성 살포는 경제에 과잉 유동성을 유발하여 인플레이션 압력을 초래했다. 한편 대봉쇄는 재택근무를 확산시켜 디지털 상품 수요를 폭증시킴으로써 의외의 디지털 호황을 가져와 세계적으로 공급사슬의 압력을 높이는 작용을 했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코로나 팬데믹 충격은 2020년 세계적인 경제활동 위축으로 초반에는 물가 하락을 가져 왔으나, 대응정책이 초래한 수요 압력 증대로 미국의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20년 5월 0.2%에서 2022년 1월 7.5%로 상승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충격이 가중하여 6월 9.1%까지 상승했다.
한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뒤늦게 인플레이션 대응에 나서 2022년 3월부터 9차례에 걸쳐 정책금리를 인상한 결과 금융시장 불안 등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채권가격이 급락한 가운데 발생한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지불불능 사태가 그 일례다.
충격에 대한 국가의 대응은 결국 재정정책이나 금융정책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충격이 가져온 경제 시스템의 손상은 정부의 대응정책으로 회복되지 않으며, 충격의 상처는 상흔효과로 남아 경제 주체들의 행태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경제 시스템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미국의 서비스 산업은 코로나 기간 중 큰 충격을 받았고 인력이 대거 이탈했다. 그에 따른 상흔효과로 여전히 인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더욱 심각해지는 경제 양극화
한편 충격 발생이 잦아질수록 경제활동의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이에 따라 위험 기피 선택이 확산됨으로써 투자와 기술혁신은 침체하고, 그 결과로 경제의 역동성과 성장률은 낮아진다.
세계 경제성장률은 2000~2007년 기간 연평균 4.5%였으나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을 겪은 후인 2010~2019년 기간엔 연평균 3.7%로 0.8%포인트 낮아졌다. 또한 최근 세계은행은 세계 경제의 연간 잠재성장률이 2011~2021년 기간 2.6%에서 2022~2030년 기간 2.2%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한편 충격과 정책 대응이 가져온 파생적인 충격으로 인해 가격체계와 경제 구조가 변화하며, 충격 후 경제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경제주체와 대응에 뒤처진 경제주체 간에 양극화가 발생한다. 특히 기술적 충격은 심각한 양극화의 부작용을 수반한다.
원칙적 대응이 피해 최소화
대부분의 충격은 ‘알려진 미지(known Unknowns)’의 위험 즉, 위험의 존재는 알고 있으나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는 모르는 위험에서 터져 나온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에도 사전적으로 충격의 위험이 간과되는 이유는 충격이 일어날 확률이 낮고, 위험의 구체성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낮은 확률과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위험의 치명성에 주목하여 원칙에 충실한 대비를 단행한다면, 우리는 충격 자체는 피할 수 없어도 충격의 피해는 어느 정도 낮출 수 있다.
지난 2월 튀르키예 지진에서 단 한명의 사망자와 건물 붕괴를 겪지 않은 에르진(Erzin)시의 사례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에서 피해를 보지 않았던 후다이(普代) 마을의 사례는 충격을 피할 수 있는 비결을 보여 준다. 그 비결은 바로 불확실한 위험에 대비하여 비용을 불문하고 원칙대로 대비하는 것이다.
지구촌 미래 결정할 탄소감축
최근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6차 보고서는 향후 10년간 탄소배출 감소에 대한 원칙적인 대비를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느냐의 여부가 인류의 안녕과 지구의 건강을 결정할 것임을 경고한 바 있다.
미지의 치명적인 충격에 대비하는 최선의 경제 대책은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 강한 경제 역량을 비축하는 것이다. 평소 경제의 펀더멘탈(기초체력)을 강하고 튼튼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재정 건전성이 높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낮은 경제일수록 충격을 맞더라도 재정과 금융대책으로 회복 탄력성을 강하게 작용시킬 수 있다.
동시에 정부 대응으로 인해 유발되는 파생적 충격의 위험도 최소화할 수 있다. 미국처럼 돈을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는 기축통화국이 아닌 국가의 경우엔 더 말할 것도 없다. 경제 운용에서 재정 건전성과 물가안정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충격이 일상화된 시대에 최선의 경제 대책이다.
김동원 / 전 고려대 초빙교수
증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