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영적인 0의 발견” 霊的0の発見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우선 몇 가지 말씀의 비교를 해볼까 합니다. 영화에서 병원 같은 곳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여러 명의 의사들이
모여서 엑스레이 필름을 환한 보드 위에 몇 장을 꽂아 놓고 회의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마치 그와 같이 오늘은 말씀 몇 구절을
엑스레이 필름처럼 꽂아 놓고 비교하고 분석을 함으로써 이 말씀 속에 담긴 놀라운 은혜를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은 모두 네 가지입니다.
첫 번째 말씀은 마태복음 13장 44절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天の御国は畑に隠された宝のようなものです。その宝を見つけた人は、それをそのまま隠しておきます。そして喜
びのあまり、行って、持っている物すべてを売り払い、その畑を買います。
두 번째 말씀은 마태복음 7장 13절~14절입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狭い門から入りなさい。滅びに至る門は大きく、その道は広く、そこから入って行く者が多いのです。
いのちに至る門はなんと狭く、その道もなんと細いことでしょう。そして、それを見出す者はわずかです。
세 번째 말씀은 구약성경 하박국 3장 17절~18절
하박국 3장 17절~18절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ハバクク書 3章17節~18節
いちじくの木は花を咲かせず、ぶどうの木には実りがなく、オリーブの木も実がなく、畑は食物を生み出さない。羊は囲いから絶え、牛は牛舎にいなくなる。
しかし、私は主にあって喜び躍り、わが救いの神にあって楽しもう。
그리고 마지막 말씀은 다시 신약으로 돌아와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5장 20절~21절
“20.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エペソ人への手紙 5章 20節~21節
20.いつでも、すべてのことについて、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名によって、父である神に感謝しなさい。
21.キリストを恐れて、互いに従い合いなさい。
이처럼 얼핏 보기에는 각각 다른 말씀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오늘은 차근차근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은, 서로 모순이 없습니다. 서로 모순이 없다는 것은 한 쪽에서는 A가 옳다고 했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B가 옳다는 식으로 서로 대립되는 부분이 하나도 없이, 모두가 일관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네 가지 말씀 또한 얼핏 보기에는 서로 다른 내용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말씀 역시 일관된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정말 그런지 어디 한 번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天の御国は畑に隠された宝のようなものです。その宝を見つけた人は、それをそのまま隠しておきます。そして喜
びのあまり、行って、持っている物すべてを売り払い、その畑を買います。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의문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고, 이를 숨겨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그 때까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팔아서 그 보화가 감추어져 있던 밭을 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밭에 감추어져 있던 보화가 있었다면, 그리고 그 보화가 이 사람이 그 때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팔고도 남을 만한
보화였다고 한다면, 이는 분명 대단히 값어치가 있는 보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까지 다른 사람들은 왜 그 보화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두 번째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狭い門から入りなさい。滅びに至る門は大きく、その道は広く、そこから入って行く者が多いのです。
いのちに至る門はなんと狭く、その道もなんと細いことでしょう。そして、それを見出す者はわずかです。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두 가지 문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요, 또 하나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문으로 들어가야 하겠습니까.
그렇죠. 당연히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는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神は、実に、そのひと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ほどに世を愛された。それは御子を信じる者が、一人として滅びることなく、永遠のいのちを持つためである。
우리가 하나님의 독생자 되신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장차 영광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고,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두 말 하면 잔소리죠. 좁은 문으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말씀을 보겠습니다.
세 번째 말씀은 구약성경 하박국 3장 17절~18절입니다.
하박국 3장 17절~18절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ハバクク書 3章17節~18節
いちじくの木は花を咲かせず、ぶどうの木には実りがなく、オリーブの木も実がなく、畑は食物を生み出さない。羊は囲いから絶え、牛は牛舎にいなくなる。
しかし、私は主にあって喜び躍り、わが救いの神にあって楽しもう。
여러분, 그래요. 뭐 하나님을 믿는 것도 좋고 예수님을 믿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아멘>으로 받아들여지시나요?
우리는 이 17절과 18절 사이를 유심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다고 해요.
いちじくの木は花を咲かせず、ぶどうの木には実りがなく、オリーブの木も実がなく、畑は食物を生み出さない。羊は囲いから絶え、牛は牛舎にいなくなる。
오랫동안 정성 들여서 나무를 심어도 열매를 맺지 못했어요. 그 이유가 가뭄 때문인지 홍수 때문인지, 벌레 때문인지, 지진 때문인지,
화산 때문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무화과 나무를 심어도 포도나무를 심어도 감람나무를 심어도 거둘 양식이 없습니다.
이제 가축을 길러보려고 했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어야 해요. 가축을 치면 젖을 많이 얻을 수 있으면 그것을 팔 수 있고, 양 같으면
그 털을 깎아서 수익을 얻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서로 해가 갈수록 새끼도 낳고 그러면 가축들도 들어나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 말씀에 보면 어떻대요? 이건 무슨 질병 때문인지 아니면 천재지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 또 역시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다고 합니다.
완전히 다 망했어요. 예수님을 믿지 사람이면 또 모를까. 예수님을 잘 믿었는데 이렇게 되었으면 어떻게 해야 정상입니까. 그렇죠.
하나님 탓도 하고 예수님 탓도 해야죠. 내가 지금까지 교회에 다닌 게 몇 년인데, 내가 교회에서 봉사를 얼마나 많이 내고 내가 헌금을
얼마나 많이 내고, 내가 전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 주변에서는 내가 예수 믿는다는 것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 거야…… 이게 정상 아니에요? 제가 이상한가요?
그러니까 이 말씀은 17절에서 18절에 넘어갈 때 우리가 가진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이 정상이겠습니까.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기 때문에 내가 여호와를 원망하고 슬퍼하리로다……
いちじくの木は花を咲かせず、ぶどうの木には実りがなく、オリーブの木も実がなく、畑は食物を生み出さない。羊は囲いから絶え、牛は牛舎にいなくなる。
だから、私は主を恨み、悲しもう。
이게 우리가 가진 상식 아닙니까.
그런데 본문에 보면 17절과 18절이 어떻게 연결됩니까.
하박국 3장 17절~18절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ハバクク書 3章17節~18節
いちじくの木は花を咲かせず、ぶどうの木には実りがなく、オリーブの木も実がなく、畑は食物を生み出さない。羊は囲いから絶え、牛は牛舎にいなくなる。
しかし、私は主にあって喜び躍り、わが救いの神にあって楽しもう。
여러분, 이게 정상입니까. 아니에요. 저는 아무리 읽어도 이건 이해가 가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이해가 안 간다고 성경이 바뀝니까.
사실 좀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마태복음 5장 18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天地が消え去るまで、律法の一点一画も決して消え去ることはありません。すべてが実現します。
그렇습니다. 내가 이해를 하든 못 하든, 나한테 불만이 있든 없든, 성경에 적힌 하나님의 말씀은 단 일점 일획도 바뀌지 않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서 잠시 수학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합니다. 서기 5세기 경의 인도에서는 대단히 큰 수학적 발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0의
발견이었지요.
그 전까지는 0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세요. 0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지요.
100에 0을 더해도 100이고, 100에서 0을 빼도 100 그대로입니다. 0에 0을 더해도 0이고, 0에서 0을 빼도 0이에요.
이게 뭐예요? 이런 숫자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인도에서 0이 발견된 이후에 수학은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아무 것도 없는 0, 아무런 의미도 없는 줄 알았던
0이었지만, 이제는 이 0이 없이는 수학은 고사하고 산수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해진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15장 22절~25절 중반부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2절~25절 중반부
22.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モーセはイスラエルを葦の海から旅立たせた。彼らはシュルの荒野へ出て行き、三日間、荒野を歩いた。しかし、彼らには水が見つからなかった。
彼らはマラに来たが、マラの水は苦くて飲めなかった。それで、そこはマラという名で呼ばれた。
民はモーセに向かって「われわれは何を飲んだらよいのか」と不平を言った。
モーセが主に叫ぶと、主は彼に一本の木を示された。彼がそれを水の中に投げ込むと、水は甘くなった。
당시에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들이 몇 명 정도였지요? 그렇습니다. 약 20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약 200만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사리를 하고 있던 애굽을 탈출해서 광야를 헤매고 있을 때 목이 말랐는데 물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어떻게 해서
간신히 물을 찾아냈는데, 이게 써서 도저히 못 마시겠어요. 그래서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무 하나를 가리키셨대요. 그래서 그 나무를 그 쓴 물에 던졌더니 그 물이 달게 되어서 마실 수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내가 지금 0을 가지고 있어요. 거 참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0 투성이에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는데도
어찌 된 게 0밖에 없어요. 주머니들 뒤져도 0밖에 없고, 서랍을 열어도 0밖에 없습니다. 통장에도 0이요, 가방 속에도 0입니다.
나한테는 온통 0 투성이에요. まみれ、だらけ、ずくし
그야말로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는 격이겠지요.
いちじくの木は花を咲かせず、ぶどうの木には実りがなく、オリーブの木も実がなく、畑は食物を生み出さない。羊は囲いから絶え、牛は牛舎にいなくなる。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절망을 합니다. 좌절을 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넓은
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이 넓은 문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 문은 어디로 통한다고요? 그렇습니다. 멸망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지옥으로 통하는 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그 문으로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들어가야 할 문은 좁은 문입니다. 생명으로 이어지는 문입니다. 그 문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박국 3장 17절~18절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ハバクク書 3章17節~18節
いちじくの木は花を咲かせず、ぶどうの木には実りがなく、オリーブの木も実がなく、畑は食物を生み出さない。羊は囲いから絶え、牛は牛舎にいなくなる。
しかし、私は主にあって喜び躍り、わが救いの神にあって楽しもう。
이것이 좁은 문입니다. 내게 있는 것이 온통 0일지라도, 이럴 때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야말로 좁은 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좁은 문을 많은 사람들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좌절하고 맙니다. 포기하고 맙니다.
여기서 마태복음 13장 44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天の御国は畑に隠された宝のようなものです。その宝を見つけた人は、それをそのまま隠しておきます。そして喜
びのあまり、行って、持っている物すべてを売り払い、その畑を買います。
어쩌면 이 감추어졌던 보화, 사람들이 그 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보화는 바로 이 0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가진
것이 온통 0이었을 때, 바로 그 때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것이야말로 천국이라는 이름의 값진 보화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인데, 사람들은 이를 모르고 모두 지나쳐버렸기 때문에, 모두 넓은 문으로 들어가버렸기 때문에 이 너무나도 귀한 천국이라는 이름의
보화를 발견하지 못했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0을 9를 생각해보십시오. 0은 작고 9는 큽니다. 많은 사람들은 0을 우습게 여기고 9를 귀하게 여깁니다. 한 사람은 비록 내가
가진 것이 0일지라도 그 가진 0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0을 멀리하고 인간의 생각으로, 인간의 방법으로 가장 큰
숫자인 9를 모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나무를 던지십니다.
비록 내 눈앞에 있는 물이 쓰다고 해서, 이를 원망이라는 이름으로, 절망이라는 이름으로 다 엎어버린다면, 이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소망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이 쓴 물을 두고 주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나무를 던지셔서 그 쓴 물을 단번에 달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0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도 0이고 저기에도 0 밖에 없습니까. 바로 이 때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그 앞에 나무를 던지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0 앞에 1이 붙으면 10이 되고 100이 되고 1000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0이 몇 개입니까. 6개쯤 되십니까. 그 앞에 1이 붙으면 1,000,000입니다. 1 다음에 0이 10개
붙으면 얼마가 되는 줄 아십니까. 100억입니다. 이래도 0이 우스우십니까. 이 사실을 아는 것이야말로 영적인 0을 발견하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의 힘을 의지하면서, 사람의 생각으로 0을 버리고 9만 모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9가 10개
모이면 어떤 숫자가 되시는지 금방 아시나요? 자그마치 99억9천9백9십9만9천9백9십9가 됩니다. 대단히 큰 숫자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기서도 나무를 던지십니다. 그 던지신 나무가 만약에 소수점이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9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첫 9
뒤에 점 하나가 붙어버리게 되면 9.999999999가 됩니다. 그 뒤에 아무리 9가 100개 천 개 붙는다 하더라도 10이 못
됩니다. 만약에 제일 앞에 있는 9 앞에 소수점이 붙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0.999999999…… 이렇게 되면 10은 고사하고
1도 채 못 되는 일이 발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게 지금 제가 지어낸 이야기 같습니까.
누가복음 12장 16절~21절
16.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それからイエスは人々にたとえを話された。「ある金持ちの畑が豊作であった。
彼は心の中で考えた。『どうしよう。私の作物をしまっておく場所がない。』
そして言った。『こうしよう。私の倉を壊して、もっと大きいのを建て、私の穀物や財産はすべてそこにしまっておこう。
そして、自分のたましいにこう言おう。「わがたましいよ、これから先何年分もいっぱい物がためられた。さあ休め。食べて、飲んで、楽しめ。」』
しかし、神は彼に言われた。『愚か者、おまえのたましいは、今夜おまえから取り去られる。おまえが用意した物は、いったいだれのものになるのか。』
自分のために蓄えても、神に対して富まない者はこのとおりです。」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세가 나무 하나 던진 것으로 몇 명이 물을 마셨습니까. 2~3명이요? 아니요. 당시 이스라엘 민족 200만 명이
물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생토록 열심히 재산을 모아놓고 몇 십 년 동안 즐기자고 했더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다고요? 예, 몇 십 년은 고사하고 당장
그날 밤 네 영혼은 도로 찾을 수도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에베소서 5장 20절~21절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5장 20절~21절
“20.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いつでも、すべてのことについて、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名によって、父である神に感謝しなさい。
キリストを恐れて、互いに従い合いなさい。
우리 주머니가 9로 넘칠 때만 감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いつでも、すべてのことについて
9가 있으십니까.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이 온통 0 투성이십니까. 그래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좁은 문, 생명으로 이어지는 문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천국이라는 보화를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그 0에 대한 감사가 쌓였을 때
하나님께서 나무를 던지시면 100만이 되고 100억이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무화과나무가 무성하든 안 하든, 포도나무에 열매가 많든 없든, 우리나 외양간에 양이나 소가 많든 없든,
いちじくの木の花が咲こうが、咲くまいが、ぶどうの木に実りがあろうがなかろうが、囲いや牛舎に羊や牛たちがいようがいまいが、
영적인 0의 의미를 깨닫고, 나무를 던지시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범사에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넘치는 축복, 100만의
축복, 100억의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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