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지에 담은 ‘만행’ 인간이냐 악마냐
어느 동네에나 유독 이웃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이가 있게 마련이다.
서울 성동구 송정동에 살던 김슬기 양(가명·당시 4세)이 바로 그런 아이였다.
얼굴이 인형처럼 예뻤던 슬기 양은 인사성 바르고 애교까지 많아 부모는 물론 이웃주민들로부터도 친딸처럼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2001년 5월 10일 ‘동네 딸’과 다름없던 슬기 양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슬기 양은 모처럼 아버지, 오빠(당시 6세)와 함께 집 근처 중랑천변 방죽 길로 산책하러 나갔다.
그런데 아버지가 오빠에게 슬기 양을 맡기고 조깅을 하는 사이 슬기 양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불과 30여 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놀란 가족들이 인근 동네와 방죽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슬기 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빙성 있는 목격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지만 슬기 양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혹시 유괴된 것이었을까.
하지만 슬기 양이 사라진 후 집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단 한 건의 협박전화조차 걸려오지 않았다.
유괴인지 단순실종인지조차 짐작할 수 없는 답답한 날들이 계속됐다.
그러나 실종 9일째 되던 날 슬기 양은 검은색 배낭에 담긴 채 집 주변에서 발견됐다.
그것도 온몸이 잔혹하게 토막 난 상태로 말이다.
약 6년 5개월 전 우리 사회를 경악케 만들었던 ‘송정동 여아 토막살해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밤낮 없는 수사 끝에 경찰이 검거한 범인은 놀랍게도 변태성욕을 품고 있던 한 이웃 주민이었다.
서울 동부경찰서(현 광진경찰서) 근무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한인선 광진경찰서 강력3팀장은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6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
숱한 살인사건을 다뤄봤지만 네 살짜리 어린 여아를 상대로 한 끔찍한 범행이었기에 더욱 충격을 줬던 사건이다.
악몽’을 꾸고 있다는 생각으로 수사에 임했던 기억이 난다.
사건의 내용이나 범행수법으로 볼 때 내가 형사생활을 하는 동안 과연 이처럼 잔혹하고 끔찍한 사건이 또 있을까 싶다.
여아를 성적 대상으로 느낀 나머지 돌이킬 수 없는 범행을 저지른 ‘소아기호증’ 남자의 만행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한 팀장이 전하는 슬기 양의 실종에서 범인 검거에 이르기까지 숨 가빴던 19일간의 수사기록을 따라가보자.
5월 19일 오전 6시경 송정동 주택가 골목에서 허름한 등산용 배낭이 발견됐다.
배낭이 놓여 있던 곳은 슬기네 집에서 500m, 실종 장소에서 200m쯤 떨어진 곳이었다.
배낭을 발견한 이는 파지 줍는 사람이었는데 무심코 배낭을 열어본 순간 뒤로 나자빠져버렸다고 한다.
가방에 담긴 3개의 검은색 비닐봉지 안에 토막 난 사체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칼과 톱으로 잘려진 사체는 냉동된 상태였는데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하지만 수사팀이 더욱 치를 떨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토막 난 사체가 바로 실종된 슬기 양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사팀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불과 네 살짜리 여아에게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악마’는 대체 누구일까.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토막 난 사체 중 하반신 특정 부위만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틀 후인 21일 수사팀을 또 한 번 경악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난다.
다음은 한 팀장의 얘기.
경기도 광주시 경안동에 있는 한 여관에서 연락이 왔다.
여관 종업원이 한 객실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계속 들려 가보니 변기 안에 검정 비닐봉지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확인 결과 그것은 특정 부위가 있는 여아의 하반신이었다.
그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감식결과 그 사체는 슬기 양의 것으로 판명됐다.
우리는 종업원으로부터 ‘아침에 어떤 남자가 그 방에 투숙했다가 나갔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수사팀은 슬기 양 부모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원한관계 등을 조사하는 한편 송정동과 인근 군자동 일대 동일수법 전과자, 어린 아이를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 유사 전과자 등 수백 명의 리스트를 뽑아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범인의 윤곽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유일한 단서는 얼어 있던 슬기 양의 몸통에 남아 있던 의문의 줄 자국이었다.
수사팀은 몸통이 꽁꽁 얼려 있었던 점으로 보아 그 자국이 냉장고 내부의 플라스틱 줄 문양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문제의 문양이 한 전자제품 회사에서 나온 구형 냉장고 모델의 것이라는 것을 확인한 수사팀은 송정동 일대의 가정집과 업소들을 일일이 탐문하며 해당 냉장고를 사용하고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이어지는 한 팀장의 설명.
그 무렵 용의선상에 올릴 만한 요주의 인물들을 샅샅이 훑은 결과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인물들이 몇 있었다.
슬기네 집 인근 2평짜리 반지하 방에 살고 있던 최달수(가명·당시 40세)도 그중 하나였다.
최달수는 98년 2월에도 서울 황학동에서 5세 여아를 강제추행해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실형을 살았던 인물로 당시 출소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수사팀이 최달수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하지만 집안을 수색한 결과 우리는 최달수가 범인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우선 그의 집에 있던 냉장고가 슬기가 냉동됐던 냉장고와 동일한 모델이었다.
또한 최 씨의 방에서는 슬기 양의 멜빵과 머리핀, 피가 묻어 있는 이불, 칼과 톱, 도마 등 범행을 말해주는 증거품들이 속속 발견됐다.
벽면 곳곳에는 혈흔이 묻어 있었고 사체가 담겨 있던 ○○슈퍼마켓의 비닐봉지도 나왔다.
두 번째 사체 토막이 발견된 지 꼭 일주일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수사팀은 즉시 최달수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조사 결과 최달수는 공장에서 비닐·플라스틱 사출공으로 근무했던 인물이었는데 작업 도중 왼손의 둘째, 셋째 손가락을 잃은 3급 지체장애자였다.
최달수가 근무하던 하남시에 위치한 △△상사를 찾아갔는데 예상대로 그는 그곳에 출근하지 않는 상태였다.
회사 관계자는 ‘최 씨가 21일 찾아와 밀린 월급 170만 원을 수표로 받아서 돌아갔다’고 하더라.
우리는 수표번호를 역추적하는 동시에 최달수가 하월곡동에 소재한 단란주점에서 24만 원을 사용한 카드내역 등을 확인했다.
또 수표에 적힌 전화번호를 토대로 그의 동선을 바짝 뒤쫓았다.
수사팀은 최달수가 은신해 있을 만한 여관촌 골목골목을 일일이 탐문했고 그 결과 5월 29일 하월곡동의 한 여관에 은신해 있던 최 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
최달수의 자백으로 드러난 범행 과정은 이렇다.
평소 술을 즐기던 최 씨는 사건 전날에도 화양동의 주점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그 다음날 오후 송정동 동부간선도로변 방죽에 앉아 있던 그는 혼자 있던 슬기 양을 보고 범행을 마음먹는다.
최 씨는 슬기 양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겠다’며 접근해 자신의 반지하방으로 데려갔다.
슬기 양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최 씨는 실제로 아이스크림을 사줬고 이로 인해 슬기 양을 수월하게 유인할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막상 반지하방으로 데려오자 슬기 양은 울기 시작했다.
최달수가 집 전화번호를 물어봤으나 슬기 양은 울기만 했다.
급기야 최 씨는 슬기 양의 목을 조르게 되는데 아이는 코피를 흘리고 입에서 거품을 토해내며 발작을 일으킨다.
이에 당황한 최 씨는 화장지로 슬기 양의 입과 코를 막아 살해하고 만다.
사체 처리 방법을 고심하던 최달수는 자신의 방에서 사체를 여러 토막으로 절단한 후 냉동실과 냉장고에 나눠서 보관했다.
그리고 며칠 후 4개의 비닐봉지에 사체를 나눠 담고 유기하려던 중 사체가 배낭에 다 들어가지 않자 일단 3개만 담아 이른 새벽 송정동 주택가에 놓고 사라진다.
그리고 이틀 후 남아 있던 비닐봉지 1개를 배낭에 넣고 경기도 광주의 한 여관으로 가서 변기 속에 유기하고 잠적했다.
이후 최달수는 청량리와 하월곡동의 사창가 여관을 전전하며 숨어 지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최달수의 범행은 여기서 그친 게 아니었다.
수사팀을 더욱 분노케 한 것은 최 씨가 어린 여아를 상대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몹쓸 짓을 벌였다는 사실이었다.
다음은 한 팀장의 얘기.
조사과정에서 최달수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지만 ‘성폭행만큼은 절대 안 했다’고 완강히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검찰 송치 후 국과수에서 사체 감정결과가 나왔는데 이게 웬일인가.
신체 특정 부위 두 곳에서 모두 최달수의 정액반응이 나온 것이었다.
네 살짜리 여아를 상대로 행해진 변태적인 범행에 수사팀은 일대 충격에 빠졌다.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럴 수는 없었다.
나는 최달수를 다시 데려와 성폭행 부분에 대해 추가 조사를 했다.
감정결과를 들이대자 최달수는 고개를 숙이며 ‘여러 번 시도를 했는데 아이가
너무 어려서 ….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울어대니 겁이 나서 그만…’이라고 털어놨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었다.
정말 그때 수사팀 전체가 느낀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도대체 최달수는 어린아이를 상대로 왜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게 된 걸까.
다음은 한 팀장의 설명.
범행동기에 대해 최달수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벌이도 시원치 않은 데다가 두 손가락이 없는 장애인으로서 살기가 막막해 아이를 납치해 부모에게 돈 500만 원을 요구할 생각이었다는 거다.
하지만 조사결과 이것도 순전히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내가 볼 때 최달수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 ‘아이의 몸’이었다.
최달수는 어린아이를 성적 대상으로 보고 성적 욕구를 느끼는 소아기호증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이는 그의 전력에서도 쉽게 확인되는 부분이다.
최달수는 98년에도 5세 여아를 상대로 성폭행을 시도하다가 검거돼 실형을 살았다.
슬기 양 사건 당시 최달수는 의정부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열 달밖에 안된 상태였다.
돈이 목적이었다는 주장과는 달리 최달수는 범행 후 슬기 양 부모에게 단 한 차례도 돈을 요구하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또 사건 당일 아이를 살해한 것도 수면제 5알을 먹이고 아이를 상대로 몹쓸 짓을 시도하던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한 팀장에 따르면 보통 유괴살해범들은 우는 아이의 목을 졸라 죽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달수는 아이에게 몹쓸 짓을 시도하고 죽인 것도 모자라 사체를 토막으로 잘라 유기했다는 점에서 여느 살인사건들에 비할 수 없는 충격을 줬다는 것이 한 팀장의 얘기다.
그렇다면 최달수는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조사 결과 최 씨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인물로 제대로 된 사회화 과정을 밟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종학력도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다.
어린 시절 가출한 최 씨는 76년경부터 공장을 전전하며 간간히 생계를 꾸려왔다.
최 씨는 수년 전 작업도중 손가락 두 개를 절단당하는 사고를 입었으나 제대로 보상조차 받지 못한 채 2평 남짓한 월세 20만 원짜리 반지하방에 홀로 기거해왔다.
가족은 물론 가까이 지내는 친구나 여자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슬기 양 사건을 계기로 사회 각계에서는 성범죄자 특히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삼는 성범죄자에 대한 국가의 체계적인 관리와 감시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현재 최달수는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