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서 24절을 마지막 시간입니다. 좀 길게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나눴는데 오늘은 마지막 정리를 하고 이렇게 마치려고 합니다.
성령을 보혜사라고 합니다. 보혜사라는 것은 변호해 주는 분, 도와주시는 분, 상담해 주시는 분 대신 보냄을 받으신 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아버지와 아들이 성도를 위해서 보내신 영을 성령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6절을 요약하면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영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보내신 보혜사를 성령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도 보혜사라고 기록된 부분이 한 곳이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도 아버지를 대신해서 이 땅에 오신 분 그리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을 대신해서 이 땅을 보냄을 받은 분 이게 성령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로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제자들과 또 성도들과 영원히 함께 있을 영이 성령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다시 말씀드리면 성령은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으로 제자들에게 보내신 영인 거예요. 그러니까 아버지와 신학적으로 말하면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난 영 이게 성령인 것이고, 이 성령은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있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보내신 영인 보혜사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이 하는 주된 역할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을 제자들이 생각나게 하고 그리고 생각난 것을 살 수 있도록 살게 하는 영이 곧 성령인 거예요. 성도의 삶과 성령은 떼어놓을 수 없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하고 그 가르치는 대로 살게 하시는 영이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서 24절이 말하는 성령은 열매 맺게 하시는 성령입니다. 성령의 열매 맺게 하심을 막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 말은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하면 반드시 열매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성령의 열매가 없다는 것은 잘못 생각하면 되게 심각한 일이 되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 보내신 그 성령이 관계된 열매가 내 삶에 없다는 것은 믿음의 뿌리와 근본을 흔드는 것과 같은 거예요.
특별히 오늘 본문은 성령이 어떤 사람들 가운데 열매를 맺게 하시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본문을 주보에 보면 십자가의 열매라고 오늘 설교 제목을 붙였어요. 성령의 열매이기도 하지만 성령은 곧 이 성령의 열매들은 곧 십자가의 열매라는 거예요.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열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성령이 어떤 사람들 가운데 이런 열매를 맺게 하시냐 하면 육체와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 가운데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의 열매는 다른 말로 하면 십자가의 열매이기도 한 거예요. 십자가의 자기를 못 박은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열매 우리가 본문을 잘못 보면 그냥 성령 받기만 하면 성령 충만하면 맺을 수 있는 열매라고 착각하잖아요.
근데 실제로 이 성령의 열매는 내가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맺을 수 있는 열매이기도 합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해야 맺을 수 있는 열매가 성령의 열매이고, 십자가의 자신의 육체와 정욕과 욕심을 못 박아야 맺을 수 있는 열매입니다.
여기에서 육은 우리의 육체를 의미해요. 육체 그리고 정은 정욕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성적인 욕망 세력을 우리가 정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욕심 욕심은 욕망이나 갈망을 의미해요.
이런 거죠. 영적인 삶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맺을 수 있는 열매라는 거예요. 여러분 가을에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농부들은 정말 많은 쓸모없는 열매들을 따서 버려야 돼요.
여러분 생각하기는 그냥 농부들이 씨앗을 뿌려놓고 그 비료만 주고 농약만 주면 곡식이 잘 자라고 열매 맺을 거라 생각하잖아요. 근데 많은 열매 예를 들어서 우리가 한 나무에서 100개의 열매를 딴다면 거의 한 900개 이상은 떨어뜨려야 돼요. 그래야 100개의 열매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를 나무가 맺었다는 건 나쁜 열매를 그만큼 버렸다는 것이기도 하고, 좋은 열매에 방해되는 것을 그만큼 따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성령의 열매를 맺었다는 것 여러분 안에 성령의 열매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나쁜 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의미인 거예요.
농사로 비유하면 나쁜 열매들을 그만큼 따서 많이 버렸다는 거예요. 그래 버려야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는 나쁜 열매를 포기해야 맺을 수 있는 열매인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나쁜 열매를 부여잡고 끌어안고는 결코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어요. 고추도 이렇게 키우다 보면 탄저병이 들어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약을 치는 거고 약을 치되 탄저병이 든 고추를 다 뽑아서 뽑아서 버려야 돼요. 그러니까 이 병든 열매를 가지고 좋은 고추를 수확하는 일은 불가능한 거예요. 그러니까 좋은 열매를 교회가 맺고 있다는 건 그만큼 나쁜 열매를 수없이 버리는 작업이 있었다는 거죠.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성도가 맺었다는 것은 성도들이 이 열매를 맺는 데 방해되는 많은 열매들을 수없이 버렸다는 거예요. 그것을 오늘 본문에 말하면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거죠. 십자가에 못 박는 작업들을 수없이 반복해서 나쁜 열매들은 다 그렇게 없애고 그래서 좋은 열매만 남게 됐다는 겁니다.
우리는 나쁜 열매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잖아요. 나쁜 열매가 있어도 그게 방해가 될까 이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실제로 나쁜 열매는 방해를 엄청나게 많이 합니다. 그래서 굳이 굳이 비교하면 좋은 열매를 맺으려고 하기보다 그냥 나쁜 열매를 따서 버리기만 해도 좋은 열매는 자동스럽게 맺어지는 거예요.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만나게 되는 내 안에 있는 나쁜 열매들이 수없이 많죠. 이 열매들만 잘 제거하고 십자가의 무엇을 받기만 해도 우리는 좋은 성령의 열매를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쁜 열매를 포기하는 결단이 필요해요. 포기하는 결단 보통 이 나쁜 열매들은 좀 미련을 갖게 해요. 조금 돌려내면 돌려내면 정말 맛있겠는데 이거 조금 어떻게 해서 잘 키우면 훨씬 결과가 좋겠네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근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요.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서 기존에 건강하고 싱싱하던 열매들도 병이 들어서 결국 농사를 망치게 되는 거죠.
영혼의 이 농사 영혼의 결실들은 나쁜 열매를 제거하는데 얼마큼 제거하느냐에 따라 달려져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안에는 지금 어떤 나쁜 열매들이 있습니까? 성령의 열매란 그 나쁜 열매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맺을 수 있는 열매인 거예요. 우리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고 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고 우리가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됩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는 곧 십자가의 열매인 거죠. 십자가의 이 잘못된 열매들을 못 박을 때 맺을 수 있는 열매라고 해서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좋은 열매 맺기 위해서 얼마나 나쁜 열매를 포기하셨습니까? 그 나쁜 열매를 얼마나 버리셨습니까? 포기하고 벌이는 일들이 반복해야 결국 좋은 열매만 내 삶에 남게 됩니다.
근데 이 나쁜 열매들이 미련을 갖게 해요. 좋아 보이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우리가 삶에 내 나쁜 흔적들을 이렇게 포기하기가 되게 어려워요. 이건 뭔가 막 끈끈하게 나와 연결되어 있어요. 나의 어떤 추억과도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요. 이 나쁜 열매들은 뭔가 내 삶의 곳곳에서 이렇게 연결고리들이 있어서 못 버리게 만들어요.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좋은 열매 맺는 맺기를 맺는 것을 먹지 못하게 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우리가 오늘 내 안에 어떤 잘못된 열매들이 있을까 그리고 나는 이 열매들을 기꺼이 포기했는가 포기하면 이제 맺게 되는 게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되는 겁니다.
오늘 이렇게 새 가족분이 오셨는데 제가 오기 일주일 전에 이제 이 교회를 오신 분이에요. 16년 전의 일이죠. 일주일 전이니까 그때 아마 이제 목사님이 마지막 인사를 하시고 가시고 이제 그다음 주에 이제 제가 왔으니까 아마 그때쯤이었던가 봐요.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제가 되게 기쁜 마음이 있었어요. 그때의 교회와 지금의 교회는 참 많이 바뀌어 있대요. 그래서 그때는 우리 교회를 다닐 결심을 못하시다가 이제 다시 주변에서 소개해줘서 와본 우리 교회는 정말 많이 바뀌어 있대요.
그러니까 어때서 가능할까요? 우리가 내 안에 있는 나쁜 열매들을 우리가 조금씩 본 거죠. 보고 그 열매를 버렸기 때문에 그나마 좋은 열매들을 조금씩 맺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목장 교회가 정말 좋은 영적인 열매들을 결실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열매들로 주변의 사람들을 풍족케 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곧 열매인 거예요. 여러분의 삶이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 안에 영적인 풍요, 물질의 풍요를 보고 우리와 함께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과 저 안에 있는 영적인 풍요를 보고 우리와 신앙을 함께하기로 다짐하고 맹세하는 일이 많아지기를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