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충원을 현충공원(公園)으로
오늘 새벽은 초겨울에 접어드는 느낌의 쌀쌀한 날씨를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낮의 기온도 14℃ 정도를 예보한 상태입니다. 위짜추 또파파 흐시기 씨모우 조단스 서류바 까토나 일곱명이 3호선 옥수역 4번 출구에서 만났습니다. 먼저 도착한 지기들은 그늘보다는 햇볕이 그리워 출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같은 밴드부원으로 화음을 맞추던 또파파와 흐시기가 처음 함께 합니다.
우리 노객들의 오늘 향하는 곳의 목적지는 서울 국립현충원입니다. 옥수 나들목을 통과하여 한강으로 들어서니 강바람이 제법 싸늘합니다. 바로 머리 위에는 동호대교가 한강을 가르며 남단과 북단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대교 밑에서 바라보는 그림은 교각들이 직선을 이루며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가끔 빠르게 전철의 소음을 동반하며 옥수역에서 신사역으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겨울 산행에 버금가는 옷차림들로 자켓에 달린 모자로 바람막이를 합니다. 걷고 있는 한강 보행로 위로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지나고 있습니다. 햇볕이 차단이 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어깨는 움츠러들며 발걸음은 빨라지고 있습니다. 족저근막염으로 정형외과 신세를 지고 있는 흐시기가 그런대로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 한남대교 밑을 통과하여 반포대교의 잠수교를 넘어섭니다. 앞서 가던 흐시기가 앞으로 꼬꾸라지며 나딩굽니다. 보행로와 차량통행로의 20Cm 정도 높이의 경계석에 발이 걸린 것입니다. 화들짝 놀란 노객 친구들이 겨우 일으켜 세웁니다. 안경은 저 멀리 튕겨져 나가고 이마와 콧등에서는 피물이 맺히고 있습니다. 왼쪽 무릎도 땅바닥에 들이박아서 버얼겋게 부플어 있습니다. 일그러진 안경을 펴주고 얼굴을 깨끗이 닦은 후에 일회용 밴드로 응급처치를 합니다. 머리는 다행히 충격을 받지 않아서 천만 다행입니다. 배낭에 항시 응급약으로 가지고 다니던 소염진통제를 복용시킵니다. 놀란 가슴을 잠시나마 진정시키려고 우황청심환 한알도 씹어 삼키게 합니다. 구급차도 머리에 그렸으나 생각보다는 상처가 심각하지는 않아서 계속 진행하기로 합니다. 점심 먹을만한 장소를 찾느라고 한눈을 팔다가 넘어졌다는 흐시기의 넋두리입니다. 반포대교 중간 부위에서 뿜어대는 분수가 하얀 물보라를 튕기며 강물로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시원스레 쏟아내는 물폭포를 배경으로 강 기슭에 자리를 잡습니다. 서류바 사모께서 손수 만들어 준 김밥 취나물 떡 모시떡 오리알 쑥떡 팥떡 감 초코렛 요구르트등으로 말 그대로 진수성찬의 간식입니다. 실컷 먹고 남은 것은 집에 계시는 아내의 몫으로 챙겨 넣습니다. 동작대교 북단으로 올라섭니다. 차량으로만 스쳐지나 다니던 동작대교를 실제로 걸어서 남단으로 향합니다. 생각보다 상판의 철교각들이 예술 작품처럼 그런대로 보기가 좋습니다.. 남단 끝으머리에는 카페가 노객들의 마음을 끌어 당깁니다. 카페라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우리 노객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로 치부하던 곳입니다. 모처럼 카페로 엘리베이터는 생략하고 계단을 통하여 올라섭니다. 젊은이건 노인이건 손님은 오직 우리 노객들 뿐입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한강의 물줄기가 그림같이 아름답습니다. 물살이 햇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파도가 되어 일렁이고 있습니다. 커피 한잔에 6,000이라고 하며 인원수인 7인분을 주문해야 된다는 퉁명스런 대답입니다. 커피양도 많지만 커피를 생략하는 노객들도 있기에 석잔만 부탁해 보지만 거절당하고 맙니다. 머쓱한 기분으로 다시 현충원 방향으로 내려섭니다. 지하도를 통과하여 나오니 바로 서울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정문 입구입니다. 현충문에서 방명록에 서명을합니다. "조국을 위하여 몸 바쳐 산화하신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충탑 앞에 일곱명의 노객들이 헌향을 하고 잠시 묵념으로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현충탑 내부에 설치되어 있는 위패봉안관으로 들어섭니다. 중앙에는 영현승천상(靈顯昇天像)이 세워져 있으며 헌화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천정에는 영령들의 안식과 승천을 기리는 천국의 모습이 부조(剖彫)되어 있습니다. 내부 모서리 6개소에는 호국영령을 수호하는 의미의 천 지 해 산 목 화를나타내는 수호신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영현승천상 지하에는 무명용사의 봉안실이 있습니다. 후문으로 나오면 호국영령들의 이름과 계급 산화한 장소 날자등이 새겨져 있는 비석들이 좌우 간격을 맞추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한 장병 묘역의 넓이는 한평 남짓하며 앞에는 국화(國花)인 무궁화꽃의 조화(造花)가 울씨년스럽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장병 묘역만 둘러보고 타묘역은 생략한채 서류바 사모가 경영하는 옛날 낙원아구찜 맛집으로 달려가려고 합니다. 자그마한 가게이지만 일전에 먹었던 그 맛이 식욕을 자극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래도 대통령 묘소를 한 군데라도 보고 가자는 의견으로 최근에 안장된 고(故)김영삼 대통령 묘소로 올라갑니다. 도중에 장군들의 묘역들도 볼 수가 있습니다. 장병들의 묘역과는 다르게 비석이 클 뿐만이 아니라 차지하고 있는 넓이도 넓습니다. 고(故) 김영삼 대통령의 묘소는 다른 묘소가 없는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입구에는 방명록도 갖추어져 있으며 커다란 비석에는 생전의 약력과 공적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봉분에는 잔디가 가득히 채워져 자라고 앞에는 헌화등을 할 수 있는 커다란 상석도 놓여 있습니다. 경비를 담당하는 봉분지기도 한 사람 눈에 띱니다. 조선시대 임금들의 왕릉에 비하면 그렇게 넓은 모양새는 아닙니다. 이처럼 이곳 현충원의 묘역 조성은 국가원수 임시정부요인 애국지사 국가유공자 장군 장병 경찰 외국인등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참배 추모시설 봉안식당등의 시설물들도 곁들여 있습니다. 지형적으로 관(冠)을 쓰고 있는 모양의 관악산 줄기에 있습니다. 붓 끝처럼 뾰족한 문필봉(文筆峰)이라는 산세가 감싸고 있습니다. 이들 산세 중에 펑퍼짐한 지형으로 동작(銅雀)이 알을 품고 있는 듯한 동작포란형(銅雀胞卵形)으로 상서로운 기맥이 흐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관악산 정기가 한강 물줄기에 가로 막히어 용트림하면서 음(陰)과 양(陽)이 합류하여 미관(美觀)을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1954년도에 착공하여 삼년여에 걸친 공사로 1957년도 준공하여 국군묘지로 탄생합니다. 1965년에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군인만이 아니라 국가유공자를 비롯한 민간인들도 안장하게 됩니다. 1996년에야 국립현충원으로 개명하여 서울 국립현충원에 이르게 됩니다. 현재의 현충원의 면적은 약 143만평에 달하며 16만 5천기의 위패가 봉안되여 있습니다. 계급과 지위에 따라서 장병은 한평 장군은 여덟평 국가원수는 팔십여평의 면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로지 파월군 부대의 사령관이었던 고(故) 채명신 장군만이 파월 장병들이 있는 묘역에 있습니다. 본인의 간곡한 유언에 따라 사랑하는 장병들 곁에 같이 하겠다는 뜻에 따른 것입니다. 새파랗게 젊은 20대 장병에게 채사령관은 과연 무슨 말로서 위로를 했을까요. 사령관으로서 끝까지 생명을 지켜 주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했을런지도 모릅니다. 미국의 알링톤 국립묘지에는 케네디 대통령과 부인 자녀들이 겨우 20여평의 묘지에 있습니다. 드골 프랑스 대통령도 가족장으로 고향 땅에 영면하고 있습니다. 작은 거인인 중국의 등소평은 화장을 하여 유골이 바다의 품에 안겨 있습니다. 이처럼 솔선수범하고 있는 외국 지도자들이 훨씬 존경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는 미신에 가까운 풍수지리설에 의존하여 봉건시대의 산물인 장례문화의 틀을 과감하게 개선하고 시정을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여나서 인간으로 한평생 살다가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숙명을 받아드립니다. 헌법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오며 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이 나라의 모든 백성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똑 같은 권리와 의무와 자유와 평등과 행복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 살고 못 살고 잘 나고 못 남을 떠나서 인격체로서 인간으로 똑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살아 생존에는 물론이며 더구나 사후(死後)에는 더욱 그렀습니다. 삼천리 방방 곡곡에는 무수한 묘지들이 국토를 뒤덮고 생활 터전은 침식 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대로 방치하고 방관만 한다면 100백년 후가 아니라 가까운 장래에 전국토가 묘지화가 되는 어처구니 없는 불행이 도래합니다. 묘지의 봉분화를 억제하며 화장을 권장하는 국가의 정책 방향과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묘지를 관리하고 가꾸는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증가합니다. 앞으로 후손들의 사고 방식이나 생활 태도도 지금 우리들과는 엄청난 괴리가 발생합니다. 장례문화를 비롯하여 선조들의 기일(忌日) 제사나 명절에 차례를 올리는 자체가 폐기될런지도 모릅니다. IT 세대이며 인공지능의 로보트 세대인 후손들은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머지 않은 장래에는 달나라 화성 금성등으로도 수학여행이나 신혼여행을 갈 수 있는 세태입니다. 고리타분한 사대주의의 산물이며 외풍의 풍습과 습관들을 청산해야 할 시기입니다. 따라서 죽어서도 인간 차별을 하고 있는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을 공원(公園)화하여 국립현충공원(國立顯忠公園)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 넓고 자연 풍광이 좋은 장소를 공원화 하여 온 시민들이 가족과 함께 즐기고 운동할 수 있는 요람으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곳에 위패봉안실을 설치하여 똑 같은 크기의 위패만을 모실 수 있게 하는 혁신이 필요합니다. 이곳에 안치된 80평씩 차지하고 있는 대통령과 영부인들의 묘역을 기록으로 봅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영부인 프란체스카는 가족장으로 이곳에 안치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장으로 영부인 육영수는 국민장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국장으로 김영삼 대통령은 국가장으로 이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국장 국민장 국가장 가족장으로 대통령마다 장례격식이 다릅니다. 오늘날까지의 국가원수들의 면면을 보면 일일이 상세하게 거론할 가치도 없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재임 중에 제대로 된 책무를 수행한 분이 한 분도 없으니 말입니다. 본인 뿐 아니라 친인척 자식들이 저지른 부패와 부정 탈법 횡령 직권남용 공금횡령 군사독재와 인권탄압등의 만행으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오늘날 까지 생존해 있는 그 분들도 더 하면 더 했지 거기서 거기이며 오십보 백보이며 지금도 불통의 막장드라마가 진행형입니다. 한민족의 피맺힌 설움과 핍박과 억울한 분노감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평생 살아오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희생된 호국영령들의 넋을 잠시나마 기리기 위하여 찾아온 현충원이었습니다. 항시 죄책감과 가슴에 품고만 있었던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고 발길을 한 것입니다. 막상 여러 모습의 묘역을 보면서 오직 일등병 이등병의 말단 계급으로 스러져간 젊은 장병들에 대한 추모의 마음만이 더욱 가슴을 적시고 있습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자매와 아내의 이름을 부릅니다. 마지막 안간 힘을 다하여 숨을 헐떡이며 피를 토하며 부릅니다. 부릅 뜬 눈을 감지도 못 한채 마지막 숨을 내뿜습니다. " 어머니 ! 아버지 ! 보고싶습니다, 죄송합니다 ! " 효도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떠나는 불효자식을 용서하라며 숨을 거두워야 했던 절규의 숨소리가 비석 둘레를 맴돌고 있습니다. " 이제는 모든 것을 잊으시고 저 하늘나라에서나마 편안히 잠드소서 " 수 없이 되뇌이면서 무거운 발길로 돌아섭니다. 헤아리기 힘든 애절함만이 노객의 가슴을 일렁이며 강물이 되어 흐릅니다. 언젠가는 어린이놀이터를 비롯한 축구장 배드민턴장 로라스케이트장 야구장 빙상경기장 배구장 농구장 수영장등으로 멋지게 꾸며져 있는 현충공원을 찾아 오렵니다. 어여쁜 증손자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찾아 올 수 있는 꿈속의 그날을 그려봅니다.
2016년 시월 삼십일 무 무 최 정 남
첫댓글 2016년10월30일(일)09시46분 3호선 옥수역4번출구에서 카토나,또파파,흐시기,씨모우,조단스,서류바,그리고 나등7명이 만났다. 오늘은10월날씨치고는 쌀쌀한 낮최고기온이14도 라고하는 일기예보입니다. 강변을 따라가던우리는 반포대교까지 도착하였고 잠수교및을 지나던 흐시기가 돌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안경이깨지고 얼굴에 싱쳐가생겼다. 그러나 카토나의 비상약품과 일사천리의 수습으로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우황청심환도 먹였습니다. 과연 우리백년지기들의 리더로써의
역활이돋보이는,자격이 충분한 대목의일면을 보여주는 좋은장면 이었습니다. 우리는계속진행하여동작대교를거의다 도착할즈음에 다리위에멋있는카패가있어 들어갔으나 사정에의해 다시나와 국립묘지로 향했다. 서울에 오래살면서도 tv로만봤지 현지로직접가는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설례임반 호기심반으로 정문을들어섰으며 진실된맘으로 영영들을위해 묵념을하는 우리들의7명은 숙연한 모습들이였다.이윽고 정리장돈이아주잘된 묘지들을 둘러보았으며 장병들의묘지와 장성, 대통령(김영삼)의묘지들을 두루살펴보았다.
이넓은현충원의 대지는143만평,위패는16만5천기가 봉안되었다고 합니다.한가지특이한사실은 주월사령관을지내신 채명신사령관께서는자기의묘지는사병들과똑같은1평으로 해달라는유언대로 장군의묘지8평을사양하고 사병들과나란히 사이좋게묻혀있다고 합니다. 생전에부하를사랑하고 국가를위하시던 장군께서는승화하셔서도 온국민에게 모범을보이시니 ~~우리의모든 위정자들도 한결같은 채명신장군의 모습을 반에반이라도 닮았으면 하는 상념에 잠기면서~~2016년12월03일 이부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