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궁극적 의미 추구와 ‘삶을 바라보는 두 시선’
강원도 문막 쉴터를 통한 심산 상호문화 배움 터 사역 이야기를 연재 합니다. 인간은 단순히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삶의 의미를 묻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왜 사는가?” “내가 살아온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고통과 실패에도 의미가 있는가?” 특히 삶의 후반부에 이르면 인간의 관심은 ‘얼마나 이루었는가?’에서 ‘내 삶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 는 질문으로 옮겨갑니다. 이러한 인간의 궁극적인 의미 추구를 빅터 프랭클의 의미치료와 조감도·충감도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삶을 심리학자와 의사의 눈으로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죽음의 수용소』의 작가 빅터 프랭클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에 대하여 ‘의미를 향한 의지’ 라고 보 았습니다. 인간은 단순히 행복이나 성공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 니라 자기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존재라는 것입 니다. 그는 인간이 의미를 발견하는 길을 세 가지로 설명 합니다. 첫째, 일하고 창조함으로써, 둘째, 누군가를 사랑하고 가치 있는 것을 경험함으 로써, 셋째, 피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를 선택함으로써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의미 있는 삶이란 고통이 없는 삶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조차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충감도와 조감도 충감도(蟲瞰圖/蟲瞻圖/仰視圖)와 조감도(鳥瞰圖)- 삶을 바라보는 두개의 시선이 있습니다. 충감도(Worm's Eye View)는 벌레가 땅 가까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것과 같습니다. 가까이 있는 것 은 크게 보이지만 전체를 바라보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실패를 경험할 때는 실패 가 인생 전체처럼 느껴지고, 상실과 고통 가운데 있 을 때는 그 아픔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충감도(Worm's Eye View)적 시선은 “왜 나 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조감도(Bird's-eye view)적 시선은 한 걸음 떨어져 “이 사건은 내 인생 전체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는가?” 라고 묻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의 실패가 새로운 선택의 계기가 되기도 하고, 고통의 경험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장면 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까지 포함하여 자기 삶 전체를 다시 읽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12 인간의 충감도와 하나님의 조감도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간은 시간 속에 살아가기 때문 에 자신의 인생 전체를 볼 수 없습니다. 그렇게 때 문에 우리의 시선은 본질적으로 충감도 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시선은 지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나 상황이 결국에는 삶의 마지막 결론이 아닐 수 있 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흩어진 조각처럼 보이는 사건 들이 하나님의 더 큰 그림 안에서는 다른 의미가 있 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빅토르 프랑클 박사의 자전적 수기인,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원작 그러므로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믿음의 시선은 단 순히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가?”라고 묻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이 일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배우고, 누구 를 사랑하며,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 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오늘이라는 한 지점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한 사건이 인생 전체를 의미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패한 순간이 실패한 인생을 의미하지 않으며, 고 통스러운 한 시기가 불행한 삶 전체를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충감도가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 준다 면, 조감도는 “내 삶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묻게 합니다. 결국 인간의 궁극적 의미 추구란 성공과 실패, 만남 과 이별, 기쁨과 고통까지 자기 삶 전체를 하나의 이 야기로 받아들여야함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그 안에서 사랑과 책임, 그리고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해 가는 과정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시선은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내가 아직 보지 못하는 내 인생의 전체 그림을 하 나님께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