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군 부산면 기동리에 위치한 운암종중 선조님께 합제(合祭)를 모시는 저존각(著存閣)의 기와지붕이 노후화로 인해 누수가 발생하여 내부 목재와 제단 등에 부식을 초래할 염려로 노심초사 걱정을 하는 중 종중집행부에선 절치부심(切齒腐心)하다가 숙의를 거듭하여 올해 4월 총회와 시제에 안건을 상정하여 승인을 받아 장마 전에 시공을 서둘러 최근에 새롭게 단장하고 완성하여 큰 근심을 해소하게 되었다.
저존각의 위치는 탐진강 변의 8대 정자의 하나인 노송과 수립이 어우러진 빼어난 경관을 자 랑하는 경호정(鏡湖亭; 장흥군 향토문화제 제16호)과 나란히 이웃하고 있어 더욱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우리 선조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경호정은 파조(派祖) 운암공의 3대孫인 벽우당(碧憂堂, 諱 世彬), 육화당(六和堂,諱世翰)께서 시인 묵객들과 교유하는 터에, 1912(壬子)년에 증조부 죽와공(竹窩公 諱榮質)의 뜻에 따라 10대손 행은(杏隱諱 啟動)께서 정자를 건축했으며, 건물이 노후화됨에 1964년 11대손 회은공(晦隱公諱元良)께서 송암정(松岩亭)을 이건(移建)하여 노송과 풍치가 어울려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내가 어렸을 적호연지기의 꿈과 희망을 키워왔던 마치 어머니 품속 같은 고향의 명물이다.
옛날 고향에서는 어르신들이 늦가을에는 그동안 땀 흘려 열심히 키워왔던 농작물로 떡과 술 을 빚고 과일과 음식을 준비하여 조상님의 묘전에 경건한 마음으로 시제(時祭)를 봉행(奉行) 해왔으며, 어린 시절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철없이 시제 후 음식을 먹을 욕심으로 부지런히 따 라다녔던 기억이 있다. 세월의 흐름과 산업사회의 발달과 함께 집성 촌락의 종원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지고, 분파별(分派別) 봉사(奉祀)는 직계만 참여하게 되고, 제관 분정 및 제수 준비 등의 많은 문제점이 야기되어 종중에서는 파별 시제를 없애고 종중을 모두 아우르는 합제(合祭)로 모시기 위한 제각(祭閣)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제각 건축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종중 모두가 십시일반 건축비의 마련과 고향을 떠남 종인의 협조 등의 각고한 노력 끝에 1994년 10월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오량한옥(五梁韓屋)의 건물이 신축되어 저존각(著存閣) 으로 명명되고, 세일제합사(歲一祭合祀)의 쾌거를 이루어 내고 타 종중의 부러움도 많이 받고 있다.
저존각에서는 파조(派祖)이신 21세(世) 운암공(雲巖公諱德寬)를 주벽(主壁)으로 31세 계자 항(啓子行)까지 169주(柱), 362신위(神位)로 모셔 오다가 매년 신위 수를 넓혀 현재는 33세 환 자항(煥子行) 일부까지 256주 520여 신위까지 확장하여 매년 4월 첫 일요일에 전국 각지에서 후손들이 종중 어르신들을 뵙고 종원들의 만남의 장과 조상님의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건축된 지 30년이 지나 기나긴 세월과 함께 건물은 노후화되고 기와지붕 또한 헤어져 누수 의 피해가 염려되어 종중집행부는 숙의를 거듭하여 주도면밀한 계획과 비교 견적 및 발주 진 행하여 계속해서 공사 감독에 참여하여 산뜻하게 시공되어 더욱 웅장한 모습의 위용을 되찾 게 되었다. 교체공사를 위해 4천여만 원의 비용과 고향 원로 어르신 및 중중집행부의 헌신적 인 노고에 종중의 한 사람으로서 무한한 찬사를 드린다. 또한, 연이어 집행부에서는 주변의 정화사업으로 기단의 재시공, 물매가 잡히지 않은 마당 바닥의 시공도 아울러 계획하고 있지만 열약한 종중의 재정 형편으로 앞으로 더욱 심도있는 논의로 시공이 되어 더욱 세련된 종중의 명문 제각으로 보존되기를 기대한다. [운정 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