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 수 없는 Question Mark!!
먹거리가 풍부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엿장수가 가위소리를 절거덕거리며 동네로 들어오면 아이들은 엿을 바꿔 먹으려고 집안을 뒤져 못 쓰는 고물을 주어 들고나옵니다.
저도 마침 집에서 깨진 양은 냄비가 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가지고 나갔는데, 이미 시골 아이치고는 유난히 희고 뽀얀 얼굴을 지닌 영옥이가 놋수저를 하나 달랑 들고 먼저 나와 있었습니다. 엿장수는 그 아이를 보자 벙글거리며 “영옥이 왔구나!” 하면서 놋수저를 받아들고 엿판에서 엿을 크게 떼어주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적어도 저것보다는 많이 주리라 기대하면서 양은 냄비를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뜻과는 달리 영옥이와 비교하면 반도 되지 않게 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억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영옥이보다 왜 조금 주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이 “야! 이놈아 내 마음이여~~”그러는 것입니다. 비록 아주 어렸을 때 기억이었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미뤄 그때의 충격이 꽤 컸던 모양입니다.
제가 목회의 길을 걸어오면서도 하나님께서 그 엿장수 같은 분이 아닌가 느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은 어떤 기준도 없이 그분의 뜻을 따라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신년 목회자 모임을 가지면서 그런 의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엿장수 같은 하나님이시라는 Question Mark를 말입니다.
은퇴를 3년여 남겨 놓은 한 목사님이 설교하셨습니다. 십수 년 전에 교역자 수련회에서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퍽 은혜를 받았는데 오늘 설교는 두 번째 듣는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저도 수 없는 설교를 작성하고 전하였기에 이제는 누구의 설교를 들으면 좋은 설교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한복음15:16절을 근거로 <택하여 세워진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는데 도입부에서 잔잔한 미소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본문의 해석으로 들어갔습니다. 본문의 해석은 성서적 이해와 문화적 배경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이해를 도왔고, 이에 따르는 실례를 들어 말씀을 도드라지게 하였습니다.
저는 좋은 설교란 자기의 삶에서 배어 나오는 진실함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설교에는 체험적인 고백뿐 아니라 결단이 있었습니다. 말씀이 이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가 무엇인지 또한, 참 포도나무 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전할 때 마음 깊은 곳에 흘러들어 은혜의 깊이를 더하게 하였습니다.
설교자로서 다른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누리면서 제 마음에 Question Mark가 일어났습니다. 저렇게 훌륭한 목사님이 어떻게 농촌 목회를 여태껏 해오면서 미자립교회를 벗어나지 못했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제가 지켜본 목사님의 모습은 끈질긴 기도와 전도의 열정을 쏟으며 말씀대로 실천하는 흠 잡을 데 없는 목사인데 하나님께서 저런 목사를 더욱 높여 사용하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도 엿장수같이 마음대로 종들을 다루는 것 같은 Question Mark가 떠나지 않는 하루였습니다.
전 9:1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