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너더리통신 76/180319]‘천의 목소리’ 권희덕님의 소천(召天)에 부쳐
성우(聲優) 권희덕. 일요일(18일) 아침, 그녀의 아들(그러니까 상주喪主)이 어머니의 별세 소식을 카톡문자로 알렸다. 처음엔 그녀의 모친상인 줄 알았다가 뭔가 이상해 다시 들여다보니 그녀가 세상을 떴다는 것이다. 순간, 그녀와 개인적인 인연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언제 만난 게 마지막이었더라? 2015년 가을쯤이었나? 불광동 어느 일식집에서 시각․척수장애 학생들에게 CM송 연습을 시켜 라디오에 등장시켰는데 주변의 반응이 아주 좋고 본인들도 그렇게 보람있어 한다며 즐거워했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02/2015010200108.html. ‘장애인 방송문화센터’ 설립이 꿈이었는데. 언제 그녀와 처음 만났더라? 2003년초였을까? 그녀를 소개한 지인은, 목소리를 비롯해 재주가 많은 ‘커리어 우맨’이 ‘기특한 일’(장애인들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목욕 버스’를 운영하는 등)까지 많이 하는 데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해서였다. 중앙 일간지에 그녀의 휴먼스토리를 소개했다. 고맙다며 식사를 대접한다기에 그녀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처음 만났다. 그가 대표이사로 있는 녹음업체 ‘소리사냥’도 그곳에 있었다. 상당히 헤비한 외모의 그녀는 56년생으로 나보다 한 살 많아 “친구하자”며 처음부터 말을 편하게 하는 등 이무럽게 대해 좋았다. 몇 번이나 만났을까? 20여 차례는 되리라. 불쑥불쑥 직장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천안여고 출신인 그녀는 나의 만만한 '사회 여자친구'였다. 그가 지은 '목소리도 디자인이다'는 책이 어디에 있을 터인데, 선물받은 그 책을 찾으면 더욱 생각이 나리라.
그녀는 이미 성우로 이름을 날렸지만, 가수(歌手)이기도 했다. 언젠가 일요일 ‘열린음악회’를 보는데, 조영남의 동생인 조영수와 듀엣으로 노래를 부른 것을 본 적도 있었다. ‘시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겠다’며 ‘시세아’라는 시전문잡지 창간과 관련해 자문을 하기에 여러 번 응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객(歌客) 장사익 씨를 3시간 동안 자택에서 인터뷰하여 ‘시세아’에 싣기도 하고, 짧은 시에 돼먹지 못한 해설을 덧붙여 여러 번 싣기도 했다. 목소리 하나는 타고 났다. 그녀는 ‘3살 애기 목소리부터 80대 할머니 목소리까지 자유자재로 낼 수 있는 성우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도 했다. 천부적인 재능에 노력까지 곁들이니, 그녀는 분명코 ‘천의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2008년 12월 혜화역 근처 허름한 대중식당에서 있은 <나는 휴머니스트다> 출판기념회에서 그 목소리로 “백만불짜리 목소리로 최모씨를 위하여 공짜로 덕담을 해준다”하여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녀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마음이 그만큼 여리고 심성이 고운 사람이었다. 잘 나가다 졸지에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PD의 재기(再起)를 위하여 대규모 뮤지컬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60624009006). 본인에게는 아무런 득도 없으면서. 어린이날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극‘두비둥 덕이둥’을 무료로 선사하기도 했다http://news.joins.com/article/133165. 언젠가는 구약․신약성경을 그 예쁜 목소리로 모두 낭송하여 100장의 '소리성경‘ CD전집을 제작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심금을 울리는 시들을 매주 낭송, 이메일로 3년여 동안 지인들에게 169편을 배달하는 등 오직 ‘목소리’ 하나로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데 앞장섰는데, 그 방면에는 ‘아이디어 선수’이기도 했다. 비운의 탤런트 최진실씨의 목소리를 대역한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맥 라이언이 출연한 외화 등 1500여편을 더빙했다. 기억하시리라.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샐리 목소리, '닥터 지바고'의 라라 목소리.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5000여편의 광고도 했다. '슈퍼 보이스 탤런트대회'를 열어 제1회에서 ‘배칠수’를 탄생시켰다던가. 성우를 영어 'voice talent'라고 맨처음 옮긴 이도 그였다고 들었다.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참석하는 것이 그녀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예의였다. 마땅히 문상(問喪)을 갔어야 했다. 그런데, 그녀 말고는 그녀 주위의 어떤 사람도 알지 못하기에 가기가 좀 거시기했다. 처음 소개해준 지인과는 소식이 두절된 지 오래. 지인의 전화가 오면 모처럼 해후도 하고 문상을 같이 가려 했는데 끝내 불발. 정말 부지런했던 그녀는 향년 62세로 유명을 달리 했다. 지난 목요일 어떤 다큐물을 보는데, 끝장면 자막에서 ‘녹음 소리사냥’을 보고, 그녀의 근황이 궁금했는데, 곧이어 부음소식을 듣다니 속이 상한다. 그 꾀꼬리같은 목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다니, 너무 안타깝고 아쉽다. 그녀가 이동원과 함께 부른 '어머니여, 늙지 마시라'라는 노래를 아시는가? 북한의 오영재라는 시인이 지은 시에 곡을 붙였다. 삼가 그녀의 명복을 빌고 또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