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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 계획은 '통리역 → 통리재(720m) → 태현사 → 백병산(1259.3m) → 촛대바위 → 병풍바위 → 원통골 체육공원 → 통골 버스정류장 → 통리 초등학교 → 통리 초교앞 버스정류장 → 경동아파트 버스정류장'의 15Km, 7시간 코스로 다녀올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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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산[白屛山]
높이: 1,260m
위치: 강원도 태백시 통동
태백 동쪽 경계에 있는 백병산은 함백, 은대, 금대, 대덕, 덕항, 깃대, 구봉, 백병, 면산의 두리봉, 삼봉, 연화봉, 문수봉, 부소봉, 태백산 천제단까지 원을 그리는 태백시계의 연봉 중에 있으며, 백두대간 작은 피재에서 시작해 다대포에 이르는 낙동정맥 최고봉이다. 고스락 서쪽으로 갈래친 지릉에 병풍을 펼친 듯한 암봉(병풍바우)이 있는데 갈수기에는 흰빛으로 보인다고 하여 백산 또는 백병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산행 들머리는 육지와 바다가 통한다는 옛 소금길, 통동이라는 지명을 낳게 한 원통골 입구의 기차굴 다리다. 그 밑을 빠져나가면 96년 12월 12일 물통이 터져 갱도가 매몰되어 인명을 앗아간 한보탄광 통보광업소 정문초소 앞이다. 이곳은 백병산 원점 회귀 산행의 들머리가 되기도 하므로 눈여겨 보아둔다.
그대로 포장길을 따라 직진하면 잠시에 한보아파트 2단지 앞이다. 다리를 건너서면 서서히 오름길이 시작되는 한가한 수레길이다. 상수원 건물을 지나 구불구불 아리랑고개를 넘는다.
오른쪽 계곡에서는 고비덕에서 발원한 물소리가 들리고, 통골주민들이 매년 정월 초 산메기를 지내는 서낭당도 보인다. 원통골 마지막 폐가 앞에서 뒤를 돌아보면 연화산과 작은 연화산 위로 태백산이 겹쳐있다. 마지막 폐가를 뒤로하고 비에 쓸려 흠집투성이인 계류를 건넌다. 얼마 뒤 산판길이 어지럽게 갈리더라도 표지기가 있는 중간 길을 잘 따르면 된다. 자작나무가 듬성듬성 막골의 평탄한 숲길이다.
통보광업소 입구를 떠난 지 1시간 20분쯤에 낙동정맥 주릉의 헬기장이 있는 고비덕이다. 고비덕이란 양치식물 고비가 많이 있는 언덕이란 뜻인데 봄철이면 각종 산나물과 보호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이곳은 옛날 황지 주민들이 동해로 소금을 구하기 위해 넘던 소금 길인데 여기를 넘어서면 백산마을을 지나 굴피집, 너와집이 있는 빙수촌, 청춘전, 한춘전, 춘밭골, 동활리의 배화천으로 통한다. - 한국의 산하
애초 이번 토요 산행은 몇 번 시도했다가 실패한 문경 황장산을 갈 예정이었다. 두 개 산악회가 황장산 산행 계획을 세웠고, 그 사실을 산행 게시판에 공지했다. 해서 두 산악회 중 그나마 성원을 채울 수 있을 거 같은 산악회에 회비를 입금하고 버스에 자리 하나를 신청했다. 그런데 신청자보다 취소자가 더 많이 발생하는 분위기를 보니 성원 미달로 취소할 확률이 높았다. 해서 Plan B가 필요한 상황이라 다른 산행 계획이 없나 찾아보다가 발견한 산이 태백 백병산이다.
백병산은 낙동정맥에 속하기는 하지만, 안내 산악회가 잘 가지 않는 산이라, 대중교통으로 다녀올까 생각 중이었다. 그런데 마침 한 산악회에서 진행한다는 거다. 해서 신청 현황을 보니 이미 성원을 넘었고, 지체하다간 매진으로 자리가 없을 경우도 있을 상황이었다. 황장산은 성원 미달로 거의 취소가 확실시되지만, 그렇다고 백병산에 입금하기는 위험해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자리가 없고 누군가의 옆에 앉아야 한다면 만원이 되기 전에 입금하기만 하면 되는 거라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물론 계속 신청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14일인 화요일 황장산을 계획했던 산악회 상황을 보니 거의 100% 성원 미달로 취소가 확실했다. 해서 더 늦으면 안 될 거 같아 백병산행에 바로 회비를 입금하고, 아무 자리나 하나 달라고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16일 목요일 오전에 황장산행을 계획했던 산악회에서 성원 미달로 취소한다는 문자가 왔다. 황장산을 계획했던 산악회 카페로 가 댓글로 "황장산 가기 참 힘드네요!"라고 한마디 남기고 회비를 이월해 달라고 요청하는 거로 이번 토요 산행은 백병산으로 최종결론이 났다.
이번 백병산행 몇 명이나 가는지 신청 현황을 보니 비 때문에 취소한다는 글이 보였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해서 산악 기상예보를 확인했다. 그 결과 토요일 산행 당일 대부분 산이 비가 오는 거로 예보하고 있었다. 백병산은 직접적인 예보 대상이 아니라 가까운 태백산의 상태를 보니 금요일 오후에 좀 내리고 토요일 산행 당일은 내리지 않는 거로 나왔다. 그렇다고 비가 오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어 우산을 들고 가기로 했다. 뭐 단독 산행이고 날머리에 식당이 있는 거 같으니 산에서는 간단하게 비상식으로 요기하고 내려와서 점심을 먹는 거라, 우산 하나 추가한다고 배낭이 특별히 무거워지지는 않는다. 물론 1인용 비상 디팩은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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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기상해 산악 기상예보를 다시 확인하고 비 소식이 없었다. 해서 기상청을 믿기로 하고 우산은 뺐다. 그래도 혹시 몰라 레인 커버는 챙겼다. 아침을 먹고 냉장고에 있던 디팩을 꺼내 배낭에 넣고 집을 나선 시각이 6시 10분경이다.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건너편을 보다 깜짝 놀랐다. 신사역으로 가기 위해서 매번 여기서 버스를 기다리며 길 건너편을 볼 수밖에 없는데, 주마다 다르게 변하는 모습에 자본주의-돈-의 위력에 놀란다. 건너편에 서너 개의 부동산과 인테리어 업체가 들어선 거다. 대조동 재개발에 대응하기 위해.
그런데 왜 아직 기존 주택 철거조차 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3월 초인가 4월 초에 공사를 시작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집값에 목숨 거는 인물들이 온갖 조롱을 감수하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2번을 찍는 나라에서. 혹시 이번 코로나 사태로 집값 하락에 따라 재개발을 재검토하고 있는가?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고 다만 공사에 따른 소음이나 미세먼지가 영향을 미치면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할 뿐!
마을버스로 불광역으로 가서 지하철로 등산객의 성지 신사역으로 향했다. 6시 55분경 신사역에 도착하니 역 구내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등산객이 붐벼 통행이 불편할 정도였던 곳이. 버스를 타기로한 4번 출구로 나가니 10여 명의 등산객이 산악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들 모두가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백병산으로 향하는 일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버스가 도착하기를 같이 기다렸다. 그런데 소형버스가 와서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에 정차했다.
그 버스는 "자하 산악회[소개]" 소속이었다. 나도 익히 아는 산악회지만, 산행지가 나와 맞지 않아 이용해 본 적은 없었다. 그 버스에서 카페 주인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려 내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등산객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 등산객이 큰 버스를 준비하지 왜 작은 버스냐고 물었다. 그에 대한 답이 적은 수가 움직일 수 있어 취소하는 일이 없다고. 궁금해서 산악회에 들어가 확인해 보니 우리도 한때 검토했었던 쏠라티다! 어쨌든 여성 등산객 둘을 태우고 그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그 버스가 떠나자 바로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버스가 도착했다. 볼 것도 없이 버스 짐칸에 배낭을 넣고 카메라와 패드를 들고 버스에 탔다. 버스는 예정된 7시 10분에 출발했다. 잠을 청해봤지만, 전혀 잠도 오지 않고 게임도 별로고 유튜브도 계속 같은 내용이라 흥미가 없었다. 뭐할까 고민하다가 얼마 전에 패드에 넣어둔 의천도룡기를 읽었다. 읽던 중 첫 장이 곽정의 딸 곽양으로 시작하는 내용이라 내가 신조협려를 읽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90년대 초에 읽었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물론 신조협려는 읽은 적이 없고 대충 내용만 안다. 내가 본 드라마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고.
어떤 소설이든 딱히 할 일도 없어 열심히 읽고 있는데, 차가 덜컹거리며 휴게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치악이다. 버스에서 내려 스트레칭 후 볼 일을 보고 바로 차에 타 다시 읽기 시작했다. 역시 시간 보내는 데는 무협지가 최고다.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지도를 나눠주며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한 얘기를 했다. 잘 모르는 산이라 주의 깊게 들었지만, 별 내용이 없어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다만, 마감 시각이 16시 오후 4시라는 내용만 들어왔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날머리 주변에 식당이 있지만, 문을 열지 않으면 할 일도 없을 테니 빨리 출발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빠트리지 않았다.
열심히 무협지를 보고 있는데 차가 마을을 지나더니 이상한 곳으로 진입했다. 한때 공주님 때문에 화제였던 "태양의 후예" 촬영장이라고. 그 시각이 10시 23분이다. 산행 계획에 의하면 10시 40분에 들머리에 도착하는 거로 나와 있는데, 드라마 촬영장 방문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지만, 거꾸로 얘기하면 이번 코스에 주어진 5시간 20분의 시간이 차고 넘친다는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궁금한 거도 없지만, 스트레칭이나 하려고 버스에서 내려 주변 사진 몇 장 찌고 바로 버스에 탔다. 의외로 날씨가 추워서였다. 싸늘한 기온에 산행이 약간 걱정되기까지 했다. 준비한 여벌의 옷이 없어서다.
드라마 촬영지를 떠나 10시 38분경 들머리인 체육공원에 도착했다. 그 시점이 버스에서 읽고 있던 무협지 1장의 막바지였다. 장군보가 장삼봉으로 변하는 구간이다. 그 부분을 보고야, 아, 내가 의천도룡기를 읽는 게 맞는다는 걸 알았다. 어쨌든 산행 들머리에 도착했으니 이제는 달려야 할 때다. 패드를 꺼서 버스에 두고 카메라를 들고 내려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메고 산행 복장을 갖췄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인솔 대장은 산행 마감은 예정대로 16시, 오후 4시로 한다고 했고, 모두가 일찍 내려온다면 3시 30분경에 서울을 향해 출발할 수도 있으니 가능하면 빨리 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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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흐려 조망이 좋지 않았고, 어제 내린 비로 낙엽은 젖고, 흙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해서 인솔 대장이 특히 바위를 지나는 경우 미끄러울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바위의 물이나, 물에 젖은 낙엽은 문제 될 게 없었는데, 비구름과 비안개, 간혹 부는 차가운 바람에도 몸을 따뜻하게 보호할 게 없다는 것이 고민이었다. 조난하면, 저체온증으로 이승을 떠나기 전에 산에 불을 지를 거라는 평소 신념을 다시 한번 짚어보고 10시 40분 중간 그룹에 속해 낙동정맥 백병산행을 시작했다.
들머리인 체육공원에서 백병산 정상까지는 2.6km로 산악회 기준 소요 시간은 1시간 50분이 걸리는 거로 나왔다. 2.6km에 1시간 50분! 고로 험하지 않으면 급경사로 쉽지 않은 구간이라는 얘기다. 험하다는 얘기가 없었으니, 급경사다! 어쨌든 12시 이전 정상 도착을 목표로 해서 평소 내 스타일대로 산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선두 그룹과 같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주능선 갈림길에 11시 20분에 도착했다. 산악회 계획보다 20분 빠르다.
그런데 안내 산악회와 산행할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초반 이들의 페이스에 말리면 정상적인 산행을 할 수 없다는 거다. 각자 나름의 산행 스타일이 있겠지만, 나는 초·중·후 반 동일한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안내 산악회 출신들을 보노라면, 체력이 있을 때 달렸다가, 후반-하산 시-에 쳐지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내가 가장 꺼리는 부분이다. 뭐 남들이 어떻게 체력 안배를 하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나, 토끼몰이 당하는 기분이 들어, 뒤에 누가 있으면 바로 비켜서서 그를 앞장세운다.
이번 산행도 마찬가지라 체력이 넘치는 등산객은 앞장세우고 페이스를 유지하며 갔다. 그리고 11시 30분경 촛대 바위를 지났다. 낙엽 쌓인 능선길을 걷다가 갑자기 등산로를 벗어난 곳에 자그마한 암봉이 나타나 뭔가 이름이 있을 거로 생각해 올라가 봤지만, 이름을 추측할 만한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후에 산악회 지도를 보고 촛대바위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오른쪽으로 암벽이 나타났다. 생긴 모습이 단번에 병풍바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처음 병풍바위라고 했을 때 다른 산의 병풍과 마찬가지로 가볍게 생각했는데 실상은 길이가 100여 미터가 넘는 거대한 암벽이었다. 높이는 백병산 정상보다 높지 않을까 하는 게 병풍바위를 보고 든 느낌이다.
병풍바위를 지나자 바로 마고할미바위가 나타났다. 마고할미면 대야산의 마고할미통시바위[산행기]가 떠오른다. 통시가 화장실이라고 했던가? 뭐든 나보다 앞섰던 등산객이 마고의 절묘한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 찍느라 길을 막고 있었다. 온갖 포즈를 다 잡고 각자 사진 찍는 걸 보고 있노라니, 이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남길 수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뒤로는 등산객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고. 해서 그들을 뒤로 돌아 마고할미바위 정상으로 올라갔다.
마고할미바위(봉우리?) 정상에서 보이는 병풍바위는 절경이었지만, 깊게 낀 비구름으로 사진으로 남기는 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뭔가는 남겨야 할 거 같아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남기고, 내친김에 마고할멈도 찍었다. 그리고 암벽을 내려와 줄 서서 인증 남기기에 정신없는 등산객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백병산 정상을 향해갔다.
11시 48분경 마고할멈을 떠나 10분 후인 11식 58분에 백병산 정상에 도착했다. 목표한 12시 이전에 도착했다. 그리고 산악회 계획보다는 30분 빠르다. 이 글을 쓰면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백병산은 한국의 산하 기준 300대 산에도 끼지 못하는 산이다. 그러다 백두대간이 화제가 되고 이에 이은 9 정맥에 대간꾼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낙동정맥의 최고봉으로 최근에 이름을 알린 산이다. 이 말은 이 산에는 뚜렷이 내세울 만한 게 없다는 거다. 정상이 비좁아 정상 바로 아래에 정상석을 두고 있고 그것도 최근에 세워진 거로 보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높이만 놓고 보면 병풍바위가 높아 보였다. 그건 하산 시 멀리 떨어져 보면 더욱 명확했다. 백병산 정상을 향해 가며 배낭에서 꺼내 준비한 삼각대를 설치하고 주위에서 인증을 찍기 위해 준비하던 등산객의 양해 얻은 후 바로 인증을 남기고 정상을 떠났다. 날이 흐리고 앙상하지만, 울창한 숲 때문에 시야가 좋지 않아 주변을 둘러봐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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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삼거리를 향해 가는데 앞에 정자가 보였다. 그곳에는 두 명의 등산객이 도착해 인증을 찍은 후 점심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계산으로는 날머리까지는 대략 5km 정도 내외의 거리가 남았다. 유유자적 가도 2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삼거리 도착 시각이 12시 5분이니 2시 이전에 도착한다는 얘기다. 특별히 배도 고프지 않고, 비에 젖은 낙엽에 앉아, 라면을 끓여 먹고 싶은 생각도 없어 날머리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해서 그들을 뒤로하고 바로 날머리를 향해 떠났다.
공식적으로 백병산 정상이 제일 높은 봉우리니, 이제부터는 하산이다. 조릿대 지역을 지나 12시 17분에 헬기장이 있는 고비덕재에 도착했다. 고비가 많아 고비덕재라고 불렀다는데 고비는 못 보고 얼레지는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는 나에 앞선 두 명의 등산객이 인증을 찍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밑으로 내려가고 다른 한 명은 등산로를 따라 날머리를 향해 갔다. 왜 밑으로 갔는지 궁금해 하며, 고비덕재에서 얼레지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날머리로 출발했다.
그런데 앞에 있는 봉우리를 오르는 데 예상외로 체력을 요구했다. 해서 정상에 올라 고도를 확인해보니 1,200m가 넘었다. '아니 하산이라며, 왜 앞에 봉우리가 막고 있는 거야?' 속으로 투덜거리며 길을 계속 가 12시 35분에 면안동재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앞에 또 봉우리가 가로막고 있었다. 슬슬 짜증이 나고 배도 고파왔다. 해서 배낭 허리 벨트 주머니에 넣어뒀던 미니 에너바를 꺼내 먹으며 길을 계속 갔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 다시 고도를 확인하니 1,100m가 넘었다. 역시 강원도다 많이 내려왔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1,000m가 넘는다.
계속 길을 가며 벨트 주머니에서 미니 에너지바를 꺼내 먹다가 갑자기 이 상태라면 이번 산행에서는 배낭을 한 번도 벗지 않고 산행을 마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이 더 멀리 미처 이런 식이라면 굳이 배낭을 짊어지고 다닐 필요도 없다는 거에 이르렀다. 몇 년 전 물통 하나에 사과 하나 들어가는 작은 사이드 백만 짊어지고 종횡무진했던 기억이 났다. 과거에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별짓을 다 했는데 언제부터 무게를 우습게 알게 됐는지도 궁금해졌다. 최종 결론은 귀차니즘이다. 배낭을 다시 꾸리기 귀찮아 있던 그대로 들고 가는 거!
관목지대를 지나 1시 9분에 통리재에 도착했다. 어느 산악회에서 나무에 명패를 달아놓아 알게 된 거다. 문제는 거기서 날머리까지 1.8km에 불과했다. 내 목표는 2시까지 날머리에 도착하는 거다. 이 속도라면 1시 30분이면 도착한다. 그럼 곤란하다. 혼밥과 혼술은 1시간이면 충분하다. 혼술에 1시간이 넘으면 집에 가지 못하는 수도 있을 수 있다. 3시 30분 출발이라고 했으니, 준비하고 이동하는 시간 30분을 고려하여 역산해보면, 2시 이전에 도착하며 쓸데없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혼술에 푹 빠지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해서 2시 즈음에 도착할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하며 갔다.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낙동정맥답게 길목 나무에는 온갖 산악회의 상징 달려 있었다. 그것들을 구경하며 유유자적 길을 가 400m 지점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정표가 가리키는 길과 리본이 달린 길이 달랐다. 산악회의 리본은 직진을 이정표는 오른쪽을 가리켰다. 리본 우선주의자인 나야 당연히 이정표를 무시하고 리본이 달린 길로 갔다. 길이 없어져도 만들면 되니 문제 될 게 없었지만, 문제는 1시 37분인데 날머리까지 400m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다. 페이스 조절에 실패했다.
내가 택한 길이 낙동정맥 정규 코스가 맞았다. 문제는 그 지역이 벌목으로 잘린 나무가 길을 막고 있어 길의 방향을 바꾼 거였다. 어쨌든 쓰러진 나무를 헤치고 사실상의 날머리인 태화사에 도착한 시각이 1시 46분이다. 태화사에서 시원한 물 한 모금하고 내려가니 주차해 있는 산악회 버스가 보였다. 그리고 여기가 삼척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어쨌든 이거로 이번 산행은 끝났다. 그 시각이 1시 50분이다. 간신히 10분 전에 마감할 수 있었다. 10분을 어떻게 보낼 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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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문은 닫혀 있었고, 기사를 방해하기 싫어 카메라만 빼고 버스 짐칸의 문을 열고 배낭을 넣고 문을 닫자 버스 문이 열렸다. 기사를 방해한 거 같아 미안한 마음으로 문으로 가 "식사하셨냐?"고 물어보았다. 이에 대해 "저 밑으로 300여 미터 내려가면 식당이 있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철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식당을 향해 내려갔다. 기사 말대로 300여 미터를 내려가니 설렁탕집과 칼국숫집이 나란히 붙어 있는 식당이 나타났다.
어디로 들어갈지 고민이 됐다. 설렁탕집에는 안주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칼국숫집은 마땅히 떠오르는 안주가 없어서다. 그런데 위에서는 칼국수를 부르고 있었다. 해서 일단 밖에서 내부의 분위기를 보기로 하고 그 건물 앞으로 갔다. 그리고 설렁탕집 내부를 보자 손님이라고는 테이블 하나가 유일했다. 반면 칼국숫집은 손님으로 빈 식탁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 집이 주변의 맛으로 통하는 거로 보여 하다못해 만두로 안주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칼국숫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자리 없는 빈자리에 앉아 메뉴를 보고 놀랐다. 메뉴라고는 딱 4개가 다였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안주할 만한 게 없었다. 해서 일단 닭칼국수를 주문하고 슬쩍 15,000원짜리 백숙이 궁금해 백숙 주문이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돌아온 답은 예약해야 한다고. 예상대로다! 닭칼국수를 주문했으니 닭으로 안주를 하기로 하고 주문한 음식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주문이 많이 밀려 음식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맛있어 보이는 김치는 이미 나와 있는데. 해서 먼저 소주를 달라고 해 칼국수가 나올 때까지 김치를 안주를 소주를 마셨다.
그렇게 소주를 홀짝이고 있는데 주문한 닭칼국수가 나왔다. 주문한 지 20분이 지나서다. 7,000원짜리 닭칼국수가 이렇게 양이 많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대충 닭 반 마리는 들어있지 않을까 여겨질 정도였다. 백숙이 15,000원이라는 게 이해가 될 정도였다. 칼국수에 들어 있는 닭으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남은 국물에 다대기를 풀어 얼큰하게 해장을 하고 식당을 나온 시각이 2시 55분경이다.
식당에서 버스로 돌아가고 있는데 이제 날머리에 도착한 거로 보이는 팀이 한잔하러 식당으로 가고 있었다. 아니 3시 30분 출발인데 이제 식당으로 가면 어쩌려고? 버스가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가 볼일을 보고 자리에 앉아 졸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3시 30분이 지나도 버스는 반 정도만 찼다. 30분 출발은 틀렸다. 그리고 공식 마감 시각인 4시가 되었지만, 내 옆자리를 비롯해 두 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출발하지 못하자, 버스 내부는 폭동 직전의 분위기가 되었다. "누군 술 마실 줄 몰라서 1시간 전에 도착했음에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니다!"와 비슷한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곤란한 게 인솔 대장이다. 대장의 말에 의하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그러자 버스를 타고 있던 대부분 등산객이 버리고 가자고 소리쳤다. 대장이 다시 전화해 보겠다고 달래고 몇 번 시도 끝에 전화가 됐고, 좀 있으니 저 멀리 등산복 차림의 두 사람이 술집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문제는 그들이 유유자적 버스를 향해 오고 있었다는 거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4시 20분경 그 둘이 버스에 도착했고, 바로 버스는 출발했다. 두 사람의 변명에 의하면 마감 시각을 4시 20분으로 알았다고. 그 자리에서 몇 사람이 큰소리치기도 했지만, 아마 카페 게시판이 초토화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쨌든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해 7시 20분경 출발지인 신사역에 도착했다.
안내 산악회의 계획에 따라 '체육공원 → 주능선 갈림길 → 촛대바위 → 병풍바위 → 마고할미바위 → 백병산 → 낙동정맥 삼거리 → 고비덕재 → 면안동재 → 성터 → 태현사 → 통리'의 8.43km(트랭글 기준), 3시간 11분 58초의 낙동정맥 최고봉 백병산행을 했다. 이동 3시간 11분 38초, 휴식 20초!
낙동정맥 종주를 하거나, 1,000m 이상의 산이 목표가 아니라면 굳이 찾을 이유가 있을까 하는 산이었다.
날이 흐려 주변 산세를 보지 못해 위와 같은 평가를 했을 수도 있다.
한북정맥의 주요 산도 거의 올랐으니, 낙동정맥을?
2017년에 사서, 창갈이를 한 번 한 등산화를 이제는 떠나보낼 때가 됐다.
첫댓글 갈 데가 너무 없었구만
아니지 내게는 딱이지.
1,000m가 넘는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