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4장
7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8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13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14 그는 자기의 나라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을지라도 감옥에서 나와 왕이 되었음이니라
15 내가 본즉 해 아래에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다음 자리에 있다가 왕을 대신하여 일어난 젊은이와 함께 있고
16 그의 치리를 받는 모든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설교
전도서 4장은 이웃을 대하는 지혜를 가르쳐줍니다. 1절부터 6절에서는 이웃을 미워함으로 삶을 낭비하는 것을 말했다면, 7절부터 16절에서는 이웃을 사랑함으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인간’으로 창조되었습니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도록 지어졌다는 말입니다. 함께 살도록 지어졌으니, 서로 돕고 협력하고 교제하며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입니다. 전도자는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 다른 사람과 함께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거부하는 것은 미련하고 헛된 삶이라고 가르칩니다.
8절에 보시면, 어떤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마치, 대기업 사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부유하고, 항상 바쁩니다. 그의 수고는 끝나지 않습니다. 수고하는 만큼, 많은 돈을 벌어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습니다. 그는 혼자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은 전혀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남을 위해 사용할 때, 참으로 헛되지 않고 의미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삶의 의미와 가치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느냐가 아니라, 가진 것을 어떻게 남을 위해 쓰느냐에 있다는 것이죠.
9절을 보시죠. 전도자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이 더 낫다고 가르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은 것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두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냅니다. 너무 당연하죠. 10절에도 보시죠. 혼자 지내는 사람은 넘어지면,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 넘어지는 것, 길을 가다 넘어지는 것도 말하지만, 삶의 고비와 어려움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비와 어려움을 만날 때, 당연히 함께 극복하는 것이 훨씬 낫죠. 사람은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11절을 보시면, 당연히 결혼도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꼭 결혼이 아닐 수도 있지만, 함께 눕는 것은 결혼에 어울리죠. 사람이 함께 누우면 혼자 눕는 것보다 따뜻합니다. 몸은 물론이고, 마음도 따뜻합니다. 함께 있으면, 혼자서는 이길 수 없는 일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12절 끝에서,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죠. 실제로, 한 줄은 힘으로 어떻게든 끊을 수 있지만, 세 겹줄은 웬만해서는 끊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혼자보다는 함께가 낫다고 가르치는 겁니다.
이처럼, 혼자보다 함께가 더 나은 것은, 동등한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상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하 관계는, 사장과 직원, 선생과 제자, 부모와 자녀, 주인과 종처럼 동등하지 않고 위 아래가 있는 관계를 말합니다. 13절 보시면,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낫다고 합니다. 왕이 있는데, 그 왕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직언과 경고를 듣지 않습니다. 항상 자기가 최고이고, 자기만 옳고, 자기밖에 모릅니다. 그런 왕은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경고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미련하고 어리석습니다.
반면에, 가난하지만, 아직 어리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신분이 낮고 비천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지혜로운 사람은, 경고를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더 낫습니다. 아직 그가 남의 경고를 듣기 때문입니다. 아직 자기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을 돌아볼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이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과 대조가 되고 있습니다.
남의 경고를 받고, 겸손한 사람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승승장구할 것입니다. 이 젊은 사람은 이내 왕이 될 것이고, 많은 사람이 이 지혜로운 젊은이와 함께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지혜로운 사람도, 왕의 자리에 앉으면 이내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이 됩니다. 13절에서, 이 늙고 둔한 왕이 ‘더 받을 줄 모른다’고 하죠. 이 왕도 예전에는 지혜로워서 경고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젊고 지혜로운 사람도 결국에는 경고를 듣지 않게 되고, 미련한 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의미가 없고,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보다 함께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사는 것은, 혼자 사는 길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의 모습과 다르기 때문에 불행합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내 마음과 내 생각과 나의 유익만을 위해 사는 것은, 결국에는 이웃 사랑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또한 불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비롭게도, 이 세상에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이 있다”는 원리를 심어 두셨습니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내가 최고이며, 항상 내가 맞고 다른 사람들이 잘못됐다는 교만한 생각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정해두신 방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다른 사람의 입으로 우리를 책망하기도 하십니다. 그것은 나보다 어리고, 경험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번 이웃 사랑의 구체적인 교훈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웃을 위해 사는 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웃에게 나눠주고, 이웃을 위해 살고, 이웃을 더 사랑하는 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이웃의 입으로 우리를 책망하실 때, 겸손하게 듣고 우리를 돌아보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주신 이웃을 위해 살아가고, 이웃과 함께 살아가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목사님 전도서4장 말씀 묵상 설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집사님. 감기 조심하시고, 한 주간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