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봄꽃 / 임정자
쉰 넘어 사회복지사 일을 시작했다. 올해로 4년 차, 내 마음 나도 모르게 공허한 기분이 든다. 막상 복지 일을 하고 나니 보호가 필요한 사람과 함께 있다.
장애시설로 이직을 한 지 6개월되었다. 배려하고 양보해야 하는 업무가 반복된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이 힘들어지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현타'(현실을 자각하는 시간)가 왔다. 마음이 지쳐가고 있다. 다시말해 이곳 장애 시설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경험도 없이 규모가 큰 요양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3년을 일했다. 혼자 일 했다면 할 수 없었을 텐데 두 명의 사회복지사와 함께했다. 나는 요양 병동 업무를 맡고 동료는 암 병동을 담당해 분업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사회복지사의 일을 가중하게 했다. 자원봉사자도 병원에 들어올 수 없어 프로그램 계획에서 진행까지 해야 했다. 명절 행사도 우리가 맡아 분주해졌다. 지역 연계 인적자원을 사용할 수 없으니 모든 행사는 우리 몫으로 돌아왔다.
가장 급한 일은 미용이었다. 한 달에 한번은 해야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가위를 들었다. 내 머리카락이나 강아지 털도 잘라 본 적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유튜브를 찾아 머리 자르는 기본을 배웠다. 그렇다고 덥석 어르신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어 자주 가는 미용실에 갔다. 원장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흔쾌히 방법을 알려주었다. 원장은 설명만 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를 손님에게 미용사 공부하는 친구로 소개하고 모델이 되어달라 양해를 구했다. 원장은 내게 이론과 실기를 함께 알려준 셈이다. 그것도 밀착 개인과외다.
동료 직원은 남자 어르신 이발을 나는 여자 커트머리를 담당했다. 어르신들의 짧은 머리가 조심스러웠다. 난생처음 해 본 일이라 손에 땀이 고이고 머리에서 얼굴로 뜨거운 눈물이 흐르곤 했다. 어찌나 긴장했던지 가위 든 손가락이 부르터 물집이 생겼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팠다.
잘못한 것도 아닌데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병동을 갔다. 먼저 병동 간호사에게 어르신들의 반응이 어떠냐고 묻자. "선생님 미용사 자격증까지 있어요?" 어르신들이 모두 맘에 든다고 이젠 복지사 선생한테 이발 해야겠다고 했단다.다행이다. 칭찬받으니 기분은 좋았다. 한 달 두 달 어르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다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미용실 원장에게 찾아가 질문하고 다시 배웠다. 커트할 때 귀 뒤 머리가 삐죽삐죽 길이가 맞지 않는다고 했더니 오른손으로 바리깡(전동 이발기)을 들고 왼손으로 머리빗을 대고 기장을 맞춰 자르라고 말해주었다. 이때 바리깡 든 손은 힘을 빼고 손목 스냅으로 치고가라는 기술을 알려주었다.
원장이 일러준 대로 머리카락을 잘랐더니 숙련된 미용사 못지않은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 후로 한 달에 한 번 하는 미용이 두렵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나에게 이발 하겠다고 줄을 섰다. 다른 병동에 가도 남자 어르신들이 언제 머리 자르러 오냐고, 다음에는 선생님이 꼭 잘라 주어야 한다고 부탁했다. 내게 이런 소질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흥이 나서 춤을 추었다. 원장 도움이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격려하고 칭찬해주는 덕분에 나는 제법 능숙한 미용사가 된 듯 해 어깨가 으쓱했다.
미용뿐만이 아니었다. 외부 강사가 병원에 들어올 수 없어 치매 어르신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고 명절 행사를 기획했다. 노래하는 봉사자를 최소 인원으로 초대하고 병원 내의 직원들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졌다. 작게 또는 크게 열리는 행사를 진행할 때마다 전문가에게 문의해사고 없이 마쳤다. 그럴 때마다 보람이 있었고 만족감이 있었다. 요양병원에서는 소소한 성취가 내게는 일의 큰 즐거움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갈림길과 마주치게 된다.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내 몫이다. 내면에서 힘들다는 목소리가 들려올 때면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너그러운 마음을 따라가 볼까?
첫댓글 코로나 시대 3년 지나는 사이 임정자 선생님의 업무 역량이 돋보였네요.
미용에 재능을 발견하신 선생님의 열정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선생님의 응원 고맙습니다.
기술은 꾸준히 하면 어느정도는 할 수 있는것같아요.
우와, 사회복지사가 하는 일이 정말 많네요. 대단하십니다. 글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이였지요. 그렇지만 과거 방송에 복지사가 업무 스트레스로 죽었다는 뉴스도 나왔어요.
봄꽃같은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졸지에 미용사가 되셨네요. 사회복지사가 그렇게 많은 일을 하시네요.
힘들지만 보람도 크시겠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일이 많았답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열심히 일했던것같았요. 그 외 재활병동상담도 식사봉사까지 .. 하하하.
매번 선생님의 응원 글 고맙습니다.
이러다 미용실 개업하는 것 아니예요?
사회복지사로 열심히 사는 것을 응원합니다.
재능이 있다는 걸 20대 알았다면 아마도요. 하하하. 응원의 글 고맙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만 어려운 일 하고 계시네요.
저도 머리 자르는 것 배우고 싶었는데. 멋지 시네요. 나중에 알바 필요하면 불러 주세요. 하하!
임정자 선생님이 미용실 개업하면 한번은 찾아 갈게요.
노력하니 결과가 척척 나오는 게 신기합니다.
도전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