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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모른다.
다행히 계집아이의 상처는 걱정했던 것보다는 가벼워 보였다.
그러나 내 작품이 연약한 어린아이의 발등을 찍다니...........
지난 이틀간은 참으로 황당하였다.
내 앞에 갑자기 벌어진 해프닝은 과연 무슨 뜻이었던가.
「아가씨였어? 어설프게 돌멩이를 각목 위에 얹어 놓은 작가가?
뭐? 바다미술제라구? 그게 무슨 미친 짓들이야! 」
뒤늦게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간 내가 정형외과의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그 사내,
계집애의 아버지는 피우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비벼 끄더니 노발대발 길길이 날뛰었다.
「죄송해요. 상처는 심한가요?」
나를 압도하는 사내의 격한 흥분으로 미루어보건대
틀림없이 사내의 딸아이는 영영 불구가 되겠다 싶었다. 눈앞이 캄캄하였다.
「아니 그래, 아침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산책하는 해변에다
괴물단지 같은 것으로 가로막는 짓들은 대체 무슨 심보요?」
병실의 침대 위엔 초등학교 3,4학년쯤 돼 보이는 계집아이가
큰 소리를 지르고 있는 제 아빠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왼쪽 발에 갓 깁스를 한 석고의 하얀 색상이 눈이 부셨다.
「죄송해요. 저........, 치료는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 , 완치는 된답니까?」
스물아홉 해를 살아오면서 내 자신이 가해자가 되어 보긴 처음이었다.
계집아이의 눈망울이 유독 검고 맑아서 죄책감은 더욱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일이었다.
지난 3개월 동안 고심하여 제작한 작품이 어린아이의 발등을 찍는 상처를 내었고,
그 결과로 나는 작가가 아니라 가해자가 되어
낯선 무뢰한으로부터 망발에 가까운 비난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무지막지한 비난을 사기 위해 지난 3개월간 땀을 흘린 건 결코 아니었다.
굳이 퇴적암을 고집하는 나에게
장 교수는 검은빛이 도는 대리석이라도 상관없다며 서두를 것을 종용하였다.
지층의 표층이 눈에 띄도록 형성된 퇴적암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바다의 연령을 표상하는 상징물을
아무런 연관성도 없이 처리하기란 마음이 내키는 것도 아니어서
장 교수의 반 강압적인 종용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적거렸다.
바다미술제 준비위원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장 교수에 의하면
이번에도 전국에서 다양한 오브제들이 선보일 추세라고 하였다.
애드벌룬에다 철제 구조물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웬만한 가건물이나 모델하우스 규모의 오브제도 계획되고 있다고 하였다.
바다는 모든 생명체의 고향이다.
우리는 언젠가 생명의 고향으로 귀환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살아간다.
바다에서 생성된 암석에는 그 귀환의 당위성이 담겨있다.
고기 뼈 모양의 목제 구조물 위에 머리 부분만큼은
바다의 역사가 쌓여 있는 퇴적암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나의 작품 '생명의 시원(始原)'은 이렇게 해서 제작되었다.
사고의 발단은 무게의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한 것 때문이었다.
경사진 목재 위에 설치한 대리석 조형물이
불시에 떨어져 어린아이의 발등을 찍었다.
나무와 돌을 접착하는 기술이 쉬운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첫날 모래를 먼저 파내고 단단하게 수평면을 다진 다음에
그 위에 경사진 물고기 뼈 모양의 각목을 얽어서 조립하는 작업은
매우 튼튼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문제는 물고기 머리 부분의 대리석 조형물을 갖다 얹는 것이었는데
역시 예상대로 미끄러져 내리기를 거듭하였다.
그렇다고 머리 부분이 백사장에 거꾸로 처박히게 전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원하는 작품의 포즈는 피사의 사탑처럼 조형물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바다로 향하는, 어떤 방향성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그때 김이 나에게 와서 매우 긴요한 귀띰을 해주었다.
철사를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철사는 가늘어서 눈에 잘 띄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형물을 튼튼하게 고정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하였다.
나는 즉시 김이 시키는 대로 하였다.
텐트를 치듯이 조형물 주변에 깊이 말뚝을 박고
'생명의 시원'에다 철사를 묶어서 고정시켰다.
그러자 해변에 거대한 물고기의 잔해가
바다를 그리워하는 형국으로 우뚝 솟았다.
김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몰려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야, 이건 김우환씨의 즐거운 표류를 능가하는 기발함인데?」
「생선뼈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기막히게 발굴한 날카로운 감성이야!」
「모뉴멘탈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군. 마치 노인과 바다의 기념비 같은.....」
바다미술제가 개막된 다음 날부터 나의 작품 '생명의 시원' 앞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 든 취재진들로 복작거렸다.
각양각색의 카메라들이 동원되어 다양한 각도로 나의 작품을 필름에 담았다.
또한 그들은 김이 연출한 '즐거운 표류'도 놓치지 않았다.
김의 작품 '즐거운 표류'는 정교한 부표들로 만들어진 수천 개의 인형들이
바다를 뒤덮은 채 파도를 따라 출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바다야말로 진정한 삶의 터전인 것처럼
안락해 보이는 장관이었다.
따라서 김의 '즐거운 표류'와
나의 '생명의 시원'은 단연코 올해 바다미술제의 화제가 되었다.
김과 나는 우리들의 작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앉아서
뿌듯한 자부심이 녹아 있는, 달콤한 칵테일을 즐겼다.
알근해오는 취기는 진정한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들끼리 나눌 수 있는
고매한 향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세상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 하나는 전적으로 의식주가 규정하는 삶의 냄새에 찌들린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김이나 나처럼 예술의 향기를 음미할 줄 아는 후각을 지닌 사람들이다.
예술의 향기는 모든 것을 초월하여 퍼져 나간다.
상식이나 일상을 뛰어넘는다.
의식주에 얽매인 사람들이 신봉하는 윤리나 도덕 따위도
자연스럽게 초월하여 퍼져나가는 것이 바로 예술에서 묻어 나오는 향기인 것이다.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김의 눈빛 속에는
내가 그에게로 향하는 뜨거운 열정과도 똑같은 것이 흘러 넘쳤다.
우린 서로가 감지하고 있다.
걷잡을 수 없도록 두근거리던 심장의 박동은
사랑이나 애정의 속성에 준하는 그 어떤 것도 아닌,
그대로 예술에 심취한 황홀한 리듬인 것이다.
「내 아이의 치료 때문이 아니오. 문제는 미친개한테 물린 것 같아서 불쾌하단 말이오.」
사내가 극도로 흥분하고 있는 원인이 딴 데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안고 있던 혼돈은 서서히 분노로 바뀌어졌다.
치료가 문제가 아니라면 부상은 심한 것은 아니다.
하기야 어린아이들의 골절상은 대수롭잖은 것이다.
부러진 부분은 강한 접착성에다 죽순과도 같은 성장 속도로 인해
정확하게 접골만 시켜주면 어려움이 없는 것이
어린아이들의 골절상이 아니겠는가.
무례하게도 사내는 딸아이의 다친 경위가 불쾌하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미친개라니! 내 작품이 미친개의 짓거리란 말인가.
「아저씨. 따님의 치료는 전적으로 책임지겠어요.
그런데 말씀이 지나치신 것 아니에요?」
그러자 사내는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눈을 번득였다.
「말씀이 지나치다고?」
「교통사고를 당했더라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법은 아니에요.」
「교통사고? 하하하, 이것 봐요, 아가씨. 당신네들이 만든 괴물단지와
자동차의 정교한 기능을 감히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착각하지 말아요. 차라리 내 아이가 자동차에 치였다면 이러지는 않겠소. 」
상환은 반전되었다.
사내는 어느 사이에 잔인한 가해자가 되었고
나는 어이없는 피해자로 전락하였다.
일찍이 상상조차 못해 본 모욕이 거침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감히 예술과 기계를 함부로 저울질 해대는 사내의 무지는
경멸스럽다 못해 궁금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속물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오로지 돈밖에 더 있겠는가.
손해를 보더라도 더럽고 치사한 악연은 시급히 청산해버려야 한다.
「방금 하신 말씀은 농담으로 치고 못 들은 걸로 하겠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는데 치료비는 얼마면 되겠어요?」
그러자 사내는 무서울 정도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아가씬 예상한대로 형편없는 속물이군!」
그리고는 노골적인 경멸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 나의 머리는 갑자기 역류하여 몰려 든 혈액으로 터질 지경이 되었다.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세상에 나더러 속물이라니!
내가 가장 혐오하는 속물로부터 도리어 속물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상황에 이른 지금 나의 인내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쯤에서 단호하게 흥분할 줄 아는 이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사내는 마땅히 응징을 당해야 한다.
「아저씨. 나는 작가예요. 보아하니 더불어 작품을 논할만한 인품은 아닌 것 같군요.
더 이상의 무례는 용서 않겠어요.」
속물에게는 그에 합당한 절차가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자존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자존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까닭에
무턱대고 상대방을 헐뜯음으로써
자신들의 자존심이 격상될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비난을 당해 보아야 비로소 자신들이
얼마나 허약하고도 비굴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사내는 자존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불감증 환자였다.
「작가라구? 사람의 발등을 찍는 상처를 내고도 작가라구?
아가씬 지금 제 정신을 가지고 하는 소리요?」
사내의 커다란 소리에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새삼스럽게 남자보다 여성의 붉은 피톨이 ㎤당 50만개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더욱 나의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어째서 여성이 남성에게 힘으로 제압당하도록 설정되었단 말인가.
폭력이 이때만큼 그립고, 또한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인내라는 것이 그렇게도 굴욕과 밀접한 것인 줄도 처음 알았다.
부르르 떨고 있는 나의 팔을 누군가가 잡더니 병실 밖으로 이끌었다.
언제 왔는지 사내의 아내인 듯한 여자가 나를 위로하였다.
「아가씨, 그냥 듣고 흘리세요. 우리 애 아빤 성격이 원래 그래요.
다 운수가 사나워서지 어디 아가씨 잘못이랄 수야 있나요.」
기어이 나의 눈엔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사내로부터 받은 모욕 때문에 우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너무나 무지몽매한 문화적인 불모지대에 갇혀서 살아야 하는
나의 처지가 너무 서러웠기 때문이었다.
도미한 친구의 말이 귓전을 울렸다.
친구는 공항에서 말했다.
나는 진정한 숨을 쉬기 위해 떠난다.
신선하고도 자유로운 공기로 호흡하고 싶다.
유감스럽게도 이 땅은 우리가 호흡하기엔
무지한 자들의 허파에서 오염된 공기로 너무나 많이 더럽혀졌다.
친구의 지적은 통렬하였다.
나는 그녀가 단지 이 땅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별 볼품도 없어 뵈는 미국인과의 결혼을 감행하는,
생각 없는 행동파쯤으로 치부해버렸고,
개인적인 고통 때문에 국적마저 포기하는 그녀의 가치관이
그 때는 썩 달갑잖았던 것이었는데
막상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친구의 도피는 참으로 적절한 것이었다.
나는 지금 친구가 한 점의 미련도 없이 내팽개친 땅에서
말도 안 되는 수모를 감당해야만 초라한 일상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쏟아지는 눈물은 그래서였고,
이런 눈물의 내력을 알 리가 없는 사내 때문에 억울한 눈물은 더욱 쓰라렸다.
「십여 년을 살아봐서 남편을 잘 알아요.
저 이가 흥분한 이유는 따로 있을 거에요.
우리 아이가 다치기 전에도 해변에 전시된 작품을 혹평하곤 했어요.
작품을 보는 관점이 특이해요. 미안해요. 아가씨가 좀 참아 주세요. 」
사내의 아내는 연방 병실 쪽으로 눈길을 주면서
나를 병원 밖으로 이끌어 내었다.
여자는 작품을 대하는 사내의 특이한 관점을 강조함으로써
남편이 저지른 만행을 변명하려들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부창부수라는 것일까.
속물에게 어울리지 않게도 작품을 보는 관점이라니. 그것도 특이한........... .
어쨌든 그녀의 미간에는
괴팍스러운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서 생겨났을 피로가 쌓여 있었다.
잔뜩 흐린 날씨에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시달린 바다는
허연 거품을 물고 백사장에 밀려와서는 그대로 엎어지곤 하였다.
수많은 산책객들은 밀려오는 파도의 끄트머리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걷는 재미를 즐기고 있었고,
혈기 방자한 젊은 축들은 성난 파도의 거품 속에다
일행 중의 하나를 점지하여 빠뜨리는 장난에 열중하였다.
해변에 산재한 바다 미술제의 출품작들과 어울린 젊은이들은
바다를 상대로 그들의 청춘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 작품 앞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익살맞은 표정을 스스럼없이 지었고
김이 파도에 띄워놓은 수천 개의 인형들을 가리키며 경탄해마지 않았다.
바다를 찾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제작한 작품들은
얼마나 운치를 더해주고 있는가.
단순한 풍경에 그 어떤 의미를 더하는 구조물들이 설치됨으로써
자연과 인간 사이에는 일찍이 없었던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그 사내는 이런 뜻 깊은 행사를
스스럼없이 미친 짓이라고 하였다.
물론 사내의 귀여운 딸아이가 다치는 피해를 당하긴 하였다.
그러나 사내는 딸의 상처를 빌미로
피해자의 영역을 벗어난 극언을 나에게 퍼부었고
지금 나는 사내의 망발에 가까운 헛소리를 기억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좀처럼 분을 삭일 수가 없어 몇 잔째인지는 모르겠으나
독한 칵테일을 마시는 중인 것이다.
얘기를 듣고 난 장 교수는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이 웃고 있었고
김은 사내의 따귀를 올려붙이지 못한 나의 유약함에 더 분개하였다.
「소위 그런 벽창호들과의 대화란
단단한 암벽에 터널을 뚫는 공사보다도 더 힘든 법이지.」
「대화는 무슨....... ,
그 따위 무식한 놈에겐 눈알이 빠지도록 따귀를 갈겨 줄 일이지.」
그렇게 말하고 있는 장 교수나 김의 표정에는
똑같은 종류의 고독의 그림자가 배여 있었다.
우린 그러한 고독을 사랑한다.
어쩌면 우린 그런 당당한 고독을 갈구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무식한 자들이 대중을 이루기 때문에
다수결의 무지막지한 범주-우매함의 폭넓은 보편성-을 구축하고 있었고
결코 그들의 무지에 동참할 수 없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고독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의 대부분은 우리와 공감할 수 없는
자신들의 열등한 자질에 상응하는, 최대한의 겸손으로써
역설적이나마 예술에 최소한의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고독은 또한 당당하고도 화려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자 말처럼 미친개한테 물린 셈 치라고.」
50이 가까워서인가.
장 교수는 아직도 흥분한 김에 비하여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최근 그의 작업 자체가 절대 평정을 요하는 경지였다.
선묘(線描)에서 선을 생략하고도 남을 수 있는
괴체(傀體)의 형상화에 매달려 있는 장 교수는
'절대적인 무(無)'로 보이는 현상에서
'상대적인 유(有)'를 인식하기 위한 수련에 전념하고 있는 중이었다.
언젠가 밤이 늦은 시간에도 불이 켜져 있어서
장 교수의 작업실 문을 가만히 밀고 들어갔더니
그는 미동도 않은 채 화폭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불가능한 명제였다.
애써 소묘해 놓은 에치키스를 화이트로 덮어버린 화폭 위엔
실제로 그 어떤 형상도 감지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심안(心眼)으로
사라진 흔적을 쫓고자 하는 장 교수의 끈질긴 시도는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한밤중에, 사라진 괴체,
양감을 포착하기 위해 순백의 공간을 응시하고 있는 중년 화가.
문득 그의 기약 없는 고독이 내 가슴을 저며 오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장 교수의 등 뒤로 다가가서 가만히 그를 안았다.
「선생님.........」
우리를 감싸고 있는 숙명적인 고독을 함께 품고 있으면
막연하나마 치유가 될 수 있으리라는 한 줄기 기대감이
나로 하여금 대학 시절의 은사를 안도록 하였다.
그는 얼마 동안 등 뒤로 나의 포옹을 가만히 받아들이고 있더니,
이윽고 일어서서는 나를 격렬하게 끌어안았다.
격렬함의 진의는 물론 작업의 어려움-고독-에 대한 반발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로써 재충전이 될 수 있다면 뼈마디가 으스러질 듯한 이 격렬함은
그대로 기쁨일 수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장 교수의 호흡이 격해지는 것을 느낀 나는
그를 급히 밀쳐내었다.
그것은 내가 그를 안고자 한 방향과는
혼선을 빚는 일종의 신호였으므로 어쩔 수 없는 조처였다.
장 교수도 이내 냉정함을 되찾았다.
「내가 그만 깜빡했어. 너한테는 김군이 있었지. 」
김에 대한 장 교수의 오해는 세대 차이 같은 것이다.
김의 존재로 인해 그가 깜빡한 것이 과오가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장 교수가 그의 작업에 걸맞은 품격으로
나를 의연하게 안고 있기를 기대하였지만 그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다.
김을 이해하자면 대단히 까다로운 분류법이 동원되어야 한다.
내가 김에게 결코 묶여 있지 않았지만 김은 더욱 그랬다.
간혹 김의 분방한 여성 편력을 목격했을 때
나도 모르게 격해지려는 자신을 나는 무엇보다도 증오한다.
김과 내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비중은 있는 편이다.
나는 그의 재능을 사랑하고 가끔씩은 자신의 주변을 모조리 망각해버리고
나에게로 몰입해오는 그의 순발력을 사랑할 뿐인 것이다.
비록 찰라에 지나지 않을지언정 김의 열정은 누구 못지않게 뜨거웠고,
나 역시 그러한 열정의 수용에 익숙한 편이었으므로 불편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김이 기억을 되찾고 아내를 떠올리면
나도 그 즉시로 고독한 내 자신으로 귀환해버린다.
끊임없이 창의력을 짜내야 하는 우리에겐 사랑이란
사실상 힘겨운 장르이기 때문이다.
「의료보험 덕분에 생각보다 많지를 않더군요.
자, 치료비는 여기 있어요. 나머지는 아저씨 쪽에서 틀림없이 거론할 것 같아서,
소위 정신적인 피해 조로 더 얹어 둔 것이니까 그리 아세요,
그러나 아저씨가 나한테 준 모욕은 피해 액수로 환산할 수도 없는 비열한 것이었어요. 」
약속한 시간보다 10분이나 늦게 나타난 사내에게 나는 봉투를 집어 던지듯이 건넸다.
사내는 뜨악한 표정을 하고서 내 얼굴과 봉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것 때문에 전화 하셨소?」
사내는 또 다시 나의 비위를 건드리기 시작하였다.
내가 사내에게 전화를 걸었을 땐 치료비 외에 그 어떤 이유가 있단 말인가.
「어떻든 아이를 다치게 했으니 도리는 지켜야죠.」
「도리를 지키겠다? 그게 진정이오?」
김이 일러준 말에 의하면 이 사내 같은 종류의 인간은
오랫동안 누적되어오던 열등감이 급기야는 우월 의식으로 환치된,
말하자면 일종의 도착 증세를 지닌 경우였다.
그러니 정상적인 가치관에 입각한 대화는 아예 포기하라고 하였다.
나 역시 전적으로 동감이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의 비위를 긁어대는 사내의 한마디 한마디는
도저히 외면할 길 없는 독소가 배어있었다.
「아저씨는 어떤 사람들만을 상대한 인생을 살아 왔는지는 몰라도
나는 내가 할 도리는 다 합니다.」
사내는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는듯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좋소. 아가씨의 말을 그대로 믿겠소.
그렇다면 이 돈으로 일간지에다 사과 성명을 발표하도록 하시오.」
「 ? 」
「비록 내 아이 하나가 다치긴 했지만 아가씨의 작품은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할 개연성이 많은 것이었소.
그런 뜻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안겨 준 데 대한
사과 성명을 내도록 하시오. 그것이 내 아이를 치료하는 진정한 도리가 될 것이오.」
황당한 정도가 아니었다.
외계인이라도 이럴 수는 없다 싶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내의 발음은 정확한 우리말이었고 어법상의 하자도 없었다.
단지 어디부터 메스를 갖다 대야 할 지 엄두가 나지 않는 의식의 굴절,
기상천외한 사내의 관점이 필연적으로 안고 있을 모순의 뇌관이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이제 보니 아저씬 참 웃기는 분이군요.
예술품을 마치 무허가 불량 건조물 취급을 하시다니. 」
「예술품이라고 해서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해독성이 용납될 수는 없소. 」
지금 내가 상대하고 있는 외계인의 두뇌 조직에는
분명히 누군가의 실수로 잘못 입력시킴 프로그램이 작동중인 듯 했다.
예술 작품의 해독성이니, 그것의 용납 여부를 거론하는 자체가
기이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컴퓨터가 아니고선 가능한 현상이 아니다.
엉뚱한 어휘의 조합, 그로 인해 빚어진 낯설고 황당한 개념들을
거침없이 조립하여 사내는 나한테 불쑥불쑥 들이미는 것이었다.
이젠 비위가 상하거나 자존심이 다치는 것을 염려할 계제는 아니었다.
문득 사내의 증세를 좀 더 관찰하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사내의 관점에 짐짓 동조하는 양 어조를 바꾸었다.
「좋아요. 그럼 어떤 내용으로 성명을 발표하면 되죠?」
「그거야 뻔한 것 아니겠소. 우선 통행이 빈번한 장소인줄 익히 알면서도
거대한 제작물을 설치하여 보행에 불편을 끼친 점,
기초 역학적인 안정성도 무시한 채 위험한 구조물을 제작 방치한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부터도 잘 알지 못할 난해한 표현물로써
많은 사람들을 기만 내지는 우롱한 위선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사죄해야 되지 않겠소? 」
사내가 감염된 바이러스의 정체가 어쩌면 밝혀질 것도 같았다.
표현의 난해성을 문제 삼는 작태로 미루어 보건대,
지금은 한 풀 꺾인 추세이나 민족 미술이니, 민중 예술이니 하는 기치를 내걸고
한때 법석을 피우던 궤변성 논객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낌새가 엿보였다.
그러고 보니 시대착오적인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사내의 몰골은
어딘지 모르게 초췌해 보였고 그 자신을 틀림없이 압박하고 있을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치료비를 외면하고 있는 사내의 오기는
도리어 연민스러운 허세로 보였다.
결핍은 언제나 보상을 바라기 마련이다.
때문에 결핍의 감옥에 영원히 수감된 채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의식은
저항이라는 무기를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항으로 무장된 절박한 삶은 예술적인 향기가 스며들 여지가 없다.
그들 스스로도 투쟁 의지를 무력화시키는 향기를 거부하였다.
대학시절 내내 그들은 돈 많은 애비 덕으로
졸업과 동시에 프랑스로 날아갈 것으로 단정하고 나를 비난하는 횡포를 부렸지만
그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저항은 빈곤층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아버지의 집요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국내에 남아 있는 내 고집의 본질 또한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저항인 것이다.
해외 유학이라는 프리미엄을 보태지 않고 나는 그들과 정면 승부를 하고 싶었다.
그들이 그림을 무기 삼아 정권과의 추상적인 투쟁을 일삼는 동안
나는 아버지와 실질적인 투쟁을 벌여 독립을 쟁취하였다.
아버지는 독신녀가 가질 수 있는 적극적인 인생관과
해외 유학을 거치지 않고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 외동딸의 예술관을
마침내 인정해주었다.
이제 나는 화단의 신예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중이며
그들은 동구권의 몰락과 구소련의 해체라는 시대적 조류와 함께 침몰하는 중이었다.
지금 눈앞의 초라한 사내는 아무래도 그들이 파견한 협상사절로만 보였다.
사내가 제안한 사과 성명서는 사실상의 항복문서였고,
이런 파렴치한 요구를 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야심작에 우연히 사내의 딸이 골절상을 당하는 해프닝이 있었을 뿐이었다.
비열하게도 사내는 자식의 부상을 계기로
목적을 관철하고자하는 치사한 음모를 드러내었다.
「아저씬 아무래도 정신 감정을 받아야겠어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다 작품을 전시하는 거 상식 아니에요?
더구나 바다미술제를 위한 작품인데 인파가 들끓는 해변을 두고
산 속에다 설치해야 옳단 말이에요?」
사내의 관점은 누군가에 의해 교정을 받아야만 하였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상식에도 못 미치는 논지가 한심스러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사내는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쏘는 눈빛으로 주시하였다.
「정신 감정을 받아야 할 쪽은 당신들이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도 그것이 놓여 질 장소는 따로 있는 법이오.
설사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라도 서면 로터리 한가운데에다 전시를 했다면
그것이 지닌 세기적인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교통 체증 때문에
당장 철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오.
해변에 즐비하게 깔린, 소위 당신들의 작품이
매일 아침 산책객들에게 얼마나 큰 통행 방해가 되고 있었는지 생각이나 해보았소?
한적한 해변은 얼마든지 있었소.
하필이면 복잡한 해수욕장이어야 할 이유는 뭐였소? 」
「무슨 말씀이세요? 힘들여 만든 작품을
기왕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야지 아무도 없는 곳에다
전시를 해야 옳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되도록 여러 사람들에게 작품을 보이고 싶다 그 말이오?」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사내는 또 잠시 뜸을 들이는 듯하더니
마침내 미소까지 머금었다.
「중요한 사실을 고백해주니 고맙소.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는데 어째서 당신들은
당신들의 작품을 여러 사람들이 봐 주기를 바라는 거요?」
「이 세상의 작가 치고 자신의 작품을 보이고 싶지 않는 사람이 어딨어요? 」
「아, 그래요? 그렇게 보이고 싶어 하는 이유는 뭐죠?」
사내는 자신만이 아는 종류의 그물을 미리 쳐놓고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능글맞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궤변가들의 전형적인 능청!
카페의 탁자 위엔 제법 묵직해 보이는 유리 재떨이가 내 눈에 띄었다.
저걸로 사내의 이마를 내리찍는다면 궤변은 중단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예 작가이니 이 따위 말장난에 흥분은 금물이다.
「아저씨. 이유를 가르쳐드릴 테니까 납득이 안 되더라도 노력해 보세요.
모든 작품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그것은 문명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고
현대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고통의 모습이거나,
혹은 생명에 대한 찬양일 수도 있어요.
이런 메시지를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그렇게도 이상하게 보여요? 」
「그게 정말이오?」
「뭐가요?」
「방금 당신들의 작품 속에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하지 않았소?」
「내 참 기가 차서....... , 아니 그럼 메시지도 없는 작품이 작품이에요? 」
「나는 전혀 몰랐소. 그런 괴물 단지 속에 메시지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탁자 위의 재떨이는 턱없이 빈약해 보였다.
굴착기나 불도저 같은 중장비로
사내를 납작하게 깔아뭉개고 싶은 적개심을 이기지 못하여 나는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이성을 잃는다면 사내는 쾌재를 부를 것이다.
「이봐요, 아저씨. 지금 극도로 불쾌하지만 억지로 참는 이유는
아저씨처럼 메시지를 읽을 줄도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예술은 혜택을 베풀지 않기 때문에 가엾은 생각이 들어서예요.」
「메시지를 읽을 줄도 모른다고요?」
「후각이 마비된 셈이죠. 예술의 향기도 맡을 줄 모르는.........」
사내의 입가에 감돌고 있던 조소는 걷혀졌다.
사내와 같이 무지한 자들은 그들의 천박한 속물근성이
있는 그대로 까발려지는 수모를 당해야 한다.
「어머, 미술 선생님 아니세요? 저 90년도에 졸업한 선미예요.」
차 주문을 받으러 온 아르바이트 여대생이 깜짝 놀라더니
커피 숍 안에 있던 손님들이 일제히 돌아다 볼 정도로 호들갑을 떨었다.
사내도 지지 않고 반색을 하였다.
「오, 그래? 선미. 네가 여기서 일하는구나.」
「그런데 선생님이 이런 델 어쩐 일이세요?」
「왜? 나는 바다 미술제에 구경 오면 안 되니?」
「참 선생님 댁이 이 근처시랬죠?
그렇지만 저런 작품들을 선생님이 일부러 보러 오시지는 않았을 테고......」
상황이 묘하게 전개되었다.
가증스럽게도 사내의 정체가 미술 교사였다니.
다시금 나의 가슴은 펄떡거리기 시작하였고
탁자 위의 재떨이에 자꾸만 눈길이 끌렸다.
「그래, 선미는 저 바닷가의 작품들을 매일 감상할 수 있었겠구나.
느낌이 어땠니? 」
「느낌이라뇨?」
「어떤 메시지 같은 걸 느끼지 못했느냔 말이지.」
「선생님도 참..... 메시지가 다 뭐예요?
수업 시간에 저희들한테 항상 말씀해 주셨잖아요.
사람을 앞에 두고 귓속말을 나누면 알아들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쾌하다고요.
해변에 있는 저 난해한 작품들은 아무도 모르게
마치 저희들끼리만 속삭이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쁠 뿐이에요.
그런데 선생님, 차는 뭘로 드릴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 」
내가 재떨이를 움켜쥐기 위해 탁자 위로 팔을 뻗는 순간
사내의 손이 먼저 재떨이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어느 새 담배를 빼 문 사내는 느긋하게 연기를 내뱉고 있는 중이었다.▩
<11인의 신예작가 작품선 수록/1993.5/동아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