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예수님이 주인인 자의 축복
08/28수(水) 롬 10:9-15, 행 2:36-38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롬 10:13).
신앙의 가장 큰 딜레마는 오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잘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왜 삶에서 ‘신앙 따로 행동 따로’인가?
그런데 어느 날 충격적인 깨달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구원받았다는 믿음은 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자기 주인으로 믿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나를 구원하신 구세주(Saviour)로는 믿는데 그분이 살아서 현재의 나의 주(Lord), 주인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확실히 알아두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행 2:36)
부활의 주님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영접한다는 것은 우주를 바꾸는 것보다 더 위대한 사건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서 예수가 나의 주인이 되면 나의 중요한 것들을 다 빼앗기는 것은 아닐까? 나의 자유, 나의 재산, 나의 가정, 나의 즐거움을 다 빼앗아 가고 얽매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것은 영적 어둠입니다.
실재의 삶에서 부활의 주님이 역사하는 길은 우리가 입으로 말할 때입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세상을 유지하시고 그 말씀으로 통치하십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이 주인인 자의 축복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마음의 주로 영접하면 그분이 주인으로 사십니다.
“당신이 만일 예수는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롬 10:9).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즉 부활의 주님을 마음에 영접하면 그분이 내 속에서 주인의 삶을 사십니다.
내가 죽고 예수가 사시면 주님과 연합하여 말과 행동을 같이하는, 같이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살전 5:10). 주님은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입니다.
▣주님이 하신 일을 입술로 시인하면 실제 구원을 체험합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롬 10:10). 부활의 주님을 모시면 우리의 영 속에 주님이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은 구원받아 거듭난 것입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다”(요 3:6). 우리의 마음과 육신이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마음과 육신은 세상의 어둠에 지배를 받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말은 항상 마음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라 우리가 쉽게 어둠의 생각을 말함으로 자꾸 어둠의 환경을 만들어 불행한 것입니다. 마음속에 주님을 모신 자는 그분의 생각대로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을 인정하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자주 부름으로 부끄러움 없는 부요한 자입니다.
“성경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롬 10:11-12). 세상에는 돈은 많으나 부끄러운 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많은 물질과 권력을 가졌지만, 주님이 없는 부끄러운 삶을 삽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이 마음의 주인인 사람은 이 땅에서도 부끄러움이 없는 부요한 자가 됩니다. 부활의 주님은 영원한 빛이며 영생이며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주를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신 분으로 그분이 주인이면 이미 부끄러움이 없는 부요한 자, 영원한 천국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And...
사람은 절대 안 변하지만, 주님이 주인이 되면 변합니다. 주님을 믿으면서 내가 주인으로 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인 되어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잘 살아내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바보 의사....
그는 “바보라는 말을 들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승리는 사랑하는 자에게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과 환자만 섬긴 ‘작은 예수’ 그 바보 의사가 바로 장기려 박사입니다. 장기려 박사가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 새벽 1시 45분 85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을 때 한국의 언론은 ‘한국의 슈바이처’ 또는 ‘살아있는 작은 예수’가 우리 곁을 떠났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는 어두운 밤과 같은 그 시대에 밝은 빛을 비추며 주님과 병든 사람들을 섬기면서 겸손하고 가난하고 따뜻하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1947년 김일성대학 의과대학 교수 겸 부속병원 외과 과장으로 부임할 때 주일에 일하지 않는 조건으로 부임했고, 환자를 수술할 때 항상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드러나기보다 주님을 높이고 섬기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평생 무소유로 가진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며 사셨습니다. 늘 청지기의 자세로 살아오셨습니다. 평생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월남 후인 1951년 5월부터 부산에서 창고를 빌려 간이병원을 설립하고 피난민들과 전쟁부상자들을 무료로 진료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복음병원의 시작이었습니다. 그의 삶의 철학은 사랑 실천이었습니다. “사랑은 지고선이다. 사랑은 도덕의 도덕이요 생명의 생명이다. 사랑의 철학은 생명철학의 일대 혁명이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 사랑은 영원한 것, 사랑은 생명 자체다” 이런 사랑 실천의 삶은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1950년 12월 평양의대 병원 2층 수술실에서 밤새우며 부상당한 국군 장병들을 수술하고 있을 때 갑자기 병원 3층에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국군들이 모두 재빠르게 철수하게 되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일평생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을 가슴에 품고 아내를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주변에서 재혼을 권유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번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나는 한 여인만을 사랑하기로 이미 약속을 했습니다. 내가 평양에서 결혼할 때 주례하시는 목사님께서 우리 부부를 앞에 세워놓으시고,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백년해로하라.’ 재혼하는 것은 백 년 뒤에나 생각해 볼 일입니다. 나는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영원히 살기 위해서 잠시동안 그저 혼자 살겠습니다!”
그가 부인을 그리며 쓴 편지는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당신인 듯하여 잠을 깨었소. 그럴 리가 없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달려가 문을 열어 봤으나 그저 캄캄한 어둠뿐, 허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불을 밝히려고 이 편지를 씁니다.”
그의 제자 중 하나가 북한당국과 합의하여 중국에서 장기려 부부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했지만, 그는 그런 특권이 다른 이산가족에게 슬픔이 커진다는 이유로 사양했습니다.
그는 결국 빛바랜 사진을 보면서 아내를 그리워하다가 만나지 못하고 작고했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유언은 “내가 죽고 나거든 나의 비문에는 ‘주를 섬기면서 살다간 사람’이라고 적어달라” 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죽고 예수로 산 사람, 주님이 주인이신 분의 삶의 표본입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주님의 그릇으로 잘 살아내신 분입니다. 주인을 잘 나타내는 그릇의 삶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온 땅의 주인
https://youtu.be/To9WjSWeDB0?si=aNHxGUr20c3Ock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