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값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노 병 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낮에는 꾸벅꾸벅 졸지만, 밤에는 잠이 오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잠시 전에 일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얼굴은 검버섯이 피고 머리는 자꾸 하얗게 서리가 진하게 내리는 증상만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옛날에는 나이 먹으면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고 ‘늙은 말이 길을 안다.’라는 등의 대우도 받았는데 이젠 아니다. 나이 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경험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철 지난 지식이 되고 마는 세상에 우린 살고 있다. 더는 때에 맞춰 씨뿌리고 추수하는 그런 농사짓는 세상이 아니다.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경험치를 능가하고 있다. “Operating System(컴퓨터 운영체제 OS)가 MS(마이크로소프트사)윈도에서 오픈소스로 바뀐답니다.” 젊은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 고위 관료는 말문이 막힌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뭐 그래서 어쩌라고.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더는 액티브엑스를 지원하지 않는답니다.보안상 위험하니 절대로 쓰지 말라고 하는데 대안이 필요합니다.” 이런 말 나온 지가 몇 년째이다. 우리는 아래아 한글을 많이 사용한다. 정부가 매일 생산하는 공문서들도 아래아한글이 많다. 세계적인 경제 대국인 우리나라에서 공무원들이 생산해 내는 아래아한글은 데이터로 변환이 안 된다. 표준 포맷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웃기는 것은 젊은 공무원들이 가장 짜증 나는 일이 양식 그리는 일이란다. 엑셀로 그려서도 안 된다. 나이 먹은 고위 관료들은 아래아 한글 문서를 좋아하기에. 이미 고정화된 정신세계에선 변화를 준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 국기 하강식 한다고 길 가다 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영화 보러 가서도 전부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나서야 영화를 봐야 했던 세대. 일본 ‘교육칙서’를 베낀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서 다녀야 했던 세대와 지금 세대 간의 괴리는 상상 이상이다. 그런데 뭘 가르치고 배운다는 말인가.그래서 급한 김에 향교나 서원을 기웃거려 옛날 풍습이나 좀 배우고, 서예를 통해 어른으로서 조금은 거들먹거릴 요량으로 새벽잠을 설치며 배웠지만, 애들에게는 씨알도 잘 안 먹힌다. '장자'의 '천도' 편에 목수 윤편과 제나라 환공 이야기는 대충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무식한 목수가 성현의 책을 읽는 환공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하는 내용이 떠오른다. 옛날이야기나 책 속에서 말하는 내용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남긴 '경험의 흔적' '찌꺼기'일 따름이라는 교훈 말이다. ‘라떼’라는 말이 있다. 우리 땐 어땠고 하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을 비꼴 때 사용하는 은어이다. 여자들이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 듣는 만큼 젊은 애들이 진저리 내는 말이다. "자네 선친께서 살아계실 때는.“ 그럼에도 이런 세상에 악착같이 어른 대접 받고 살려면 젊은 애들과는 뭔가 조금은 달라야 한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예의’라는 것이다. 어차피 지금 밥상머리 교육 운운해봐야 철 지나간 유행가 소리밖엔 안 되고 삶의 방향성에 대한 약간의 조언을 가르쳐줌으로써 지식보다는 지혜로 승부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인가. 나이 육십이 넘은 친구가 자기 아버지를 남에게 지칭할 때 아직 아버님 어머님이란 말이 나오고 있으니 자신부터 예법이 헷갈려버리면 어른 대우는 물 건너가는 것이다. 심지어는 멀쩡하게 살아계신 자기 아버지를 ‘선친’이라고 표현도 한다. 선친은 남에게 돌아가신 내 아버지를 일컫는 말이다. 그렇기에 남이 내 아버지를 보고 선친이란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데도 버젓이 통용되는 것을 자주 본다. 여태 안 하다가 갑자기 하려니 제정신이 아니다. 하지만 옛날 같으면 기본적인 예법도 모른다고 씨상놈 취급받았겠지만 요즘 다 같이 모르니 그냥 넘어가는 게 비일비재하다. ‘선비’ ‘망모’ '선대인' '선대부인' 이런 용어는 이제 나이가 육십이 넘어도 잘 알지 못한다. 듣는 이도 참으로 기품 있는 용어를 사용하는가보다 싶어 고개 끄덕이고 있고. 차라리 그냥 돌아가신 자네 아버지라고 표현하는 게 더 깔끔할 텐데 말이다.이제 나이 먹는다는 것이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직시하고괜히 왕년에 내가 어쨌다는 쓸데없는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괜스레 으시대다가 귀찮은 존재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 명품 핸드백이든 비닐봉지든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내용물이란 말이 있다. 품격있는 선배를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예의를 갖추게 된다. 하지만 잘난 체 하면서 젊은 후배에게 잔소리나 하고 몽니만 부리다간 대접받지 못한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고, 몇 살인가 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만큼 나이 값을 하며 올바르게 살고 곱게 늙어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 새삼 절감한다. 글쓴이 : 지안 큰스님출처 : 반야암 오솔길 카페,http://m.cafe.daum.net/zee-an
통도사 반야암 오솔길 (지안스님)
불교를 통해 좋은 인연을 맺고, 새로운 만남의 장을 열어 신행을 닦는 지안스님의 인터넷 전법도량입니다. 불교를 공부하며 아울러 인문학적 소양을 높여 불교의 지성화를 도모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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