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들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성지(聖地)를 찾듯, 미식(美食)에 뜻을 두고 전국의 유명 빵집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 이들이 있다. 이른바 ‘빵지 순례자’. ‘빵길’따라 장거리 여행도 감내했던 이들이 이제는 가까운 백화점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개성 있는 디저트가 식품관 경쟁력을 높일 새로운 ‘콘텐츠’로 인식되면서, 지역 명물 빵집을 들이는 백화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에서 활약하고 있는 ‘지역 출신’ 빵집들을 살펴봤다.
‘빵 마니아 성지’된 백화점 식품관
유명 빵집 입점 위해 삼고초려 하기도
직장인 안미선 씨는 이른바 ‘빵순이’다. 주로 식사, 때로는 디저트로 빵을 즐긴다. 마니아답게 휴가 때마다 ‘순례’를 떠난다. 목적지는 평소 점찍어둔 지역 유명 빵집들. 빵지순례는 즐겁지만, 문제는 생각날 때마다 쉽게 살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지역에서 이름난 명물 빵집을 유치하는 백화점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불편함이 일정 부분 해소됐다.
“밥은 안 먹을 수 있어도 빵은 못 끊어요. 유명한 빵집들 찾아서 많이 다녔는데, 최근에는 그 빵집들이 집 근처 백화점에 입점해서 너무 좋아요.”
백화점들이 ‘빵 마니아’들의 성지로 거듭나고 있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이 이름난 지역 빵집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2011년, ‘튀김소보루’와 ‘부추빵’으로 유명한 대전 명물 ‘성심당’을 대전점에 입점시켰다. 이듬해에는 부산 유명 빵집 ‘옵스(OPS)’ 매장을 평촌점에서 열었다. 대표 빵은 ‘슈크림빵’과 ‘학원전’이다. 슈크림빵은 큼직하게 구운 슈 안에 듬뿍 넣은 바닐라 커스터크림이 특징. 학원전은 아이들이 학원 가기 전에 먹는 빵이라는 뜻으로 계란과 경주산 토함꿀이 함유됐다. 이후 옵스는 롯데백화점 본점과 인천터미널점에 추가로 매장을 열었다.
군산 출신 ‘이성당’은 2014년 잠실점에 입점했다. 이성당은 우리나라 현존 빵집 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쌀로 만든 단팥빵과 야채빵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롯데백화점은 다양한 중소 브랜드 베이커리 및 제과명장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측은 “현재까지 5명의 대한민국 제과명장과 지역 유명 노포 베이커리 매장을 운영해왔다”며 “앞으로도 국내형 전통 베이커리의 위상을 높이고, 팝업스토어 형태로 ‘빵지 순례 코스’를 지속적으로 선보여 젊은 층을 끌어들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2015년 대구가 고향인 ‘삼송빵집’과 손잡았다. 대구 매장만 운영하던 해당 빵집을 들이기 위해 판교점, 압구정본점, 무역센터점 등 핵심 점포 3곳 동시 입점을 제안했고, 판교점에서 정식 오픈했다.
지난해 8월에는 서울 명동 유명 빵집인 ‘홍만당’을 무역센터점에서 선보였다. 앞서 6월, 압구정본점에서 진행한 7일간의 행사에서 4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한 데 따른 결과다. 해당 기간 대표 메뉴인 과일 찹쌀떡이 하루 평균 2000여 개 이상씩 판매됐다.
판교점에 입점한 강릉 출신의 ‘강릉빵다방’ 역시 팝업 행사를 통해 성공 가능성을 판단한 뒤 정규 오픈했다. 지난 2018년 9월 일주일 동안 진행한 행사 동안 약 1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전라도 광주에 적을 둔 ‘소맥베이커리’를 광주점과 영등포점에 입점시켰고, 부산 명물 ‘이흥용과자점’을 강남, 센텀, 마산, 경기, 본점에서 열었다. 이 외에도 부산 출신 ‘베이커스’를 광주, 대구, 센텀, 영등포점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역시 부산이 고향인 ‘겐츠베이커리’를 영등포점에서 운영한다. 경기 양주 출신 ‘나블리베이커리’는 영등포와 강남점에 입점했다.
신세계백화점 측은 “숨겨져 있던 다양한 지역 맛집을 발굴해 소개하고 있다”며 “백화점 식품 바이어는 ‘신세계 팔도 유랑단’이라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로 쉴새 없이 전국을 다니며 ‘맛집순례’ 탐방을 하는 것은 물론 백화점 입점을 고사하는 매장을 찾아가 삼고초려를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백화점-지역 빵집, 서로 ‘윈윈’
百 ‘매출 증대·분수효과’, 지역 빵집 ‘브랜드 인지도 상승’
백화점들이 지역 빵집 입점 경쟁을 펼치는 데는 변화한 디저트 트렌드에서 기인한다. 과거 독특한 해외 디저트에 쏠렸던 관심이 최근에는 ‘이야기’가 담긴 토종 빵집으로 옮겨갔다. 지역 ‘명물’이라는 점과 SNS 인증문화가 맞물리면서 지역 출신 빵집들이 백화점 식품관의 경쟁력을 높일 콘텐츠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해당 빵집들이 포함된 베이커리류는 백화점 매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경우, 디저트 매출이 전체 식품관 매출의 5분의 1에 달한다. 신세계는 ‘분수효과’를 노리고 있다.
신세계 측은 “한번 SNS나 온라인에서 입소문이 나면 인증샷을 찍기 위해 고객들이 몰려 시너지 효과가 크다”며 “소문난 빵이나 디저트를 먹으러 온 고객이 식품관 혹은 다른 매장의 상품까지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 백화점 입장에서도 동네 빵집 입점은 윈윈”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 역시 디저트 및 베이커리류 매출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2017년 디저트 매출은 25.1%, 2018년 21.4%, 2019년 23.8%를 기록했다. 롯데백화점의 베이커리 상품군 매출은 2016년 12%, 2017년 17%, 2018년 9.6%, 2019년 4.9% 신장하는 등 꾸준한 신장세를 기록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유명 빵집의 경우 고객 반응이 높아 지역 베이커리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유치할 예정”이라며 “SNS에 이슈가 되는 브랜드 등 온라인상에서 인기 있는 빵집 브랜드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주영 롯데백화점 베이커리 치프바이어는 “과거 해외 디저트 브랜드에 집중됐던 관심이 최근에는 국내 베이커리 브랜드로 옮겨가는 추세”라며 “국내 베이커리 브랜드는 매장별 노하우를 담은 다양한 빵을 한 자리에서 선보인다는 장점 때문에 당분간 그 인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