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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
이 홍사
또아비 뺜라매!
갔다가 올 게! 라는 미얀마 말이다.
그 말을 현지 발음이 어눌한 홍랑이 했으니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얼굴을 마주하기가 왠지 껄끄럽고 부담스러워 그 말을 흘리고 오토바이에 올라앉았다. 마땅히 정해둔 곳이 없었지만,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만만한 오토바이 시장에나 가볼까? 거기에 가서 노닥거리며 커피나 한잔하고.
싹이었다.
부담으로 작용했다.
얼굴을 마주 보고 있기가 부담스러웠다.
조심스럽고 죄스러운 마음이 이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 작자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부담을 지우고 갔다. 어쩌면 그건 저 젊은 미망인을 볼 때마다 짊어져야 할 멍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람을 옭아매다니? 나쁜 족속 같으니라구.
아장아장 걷는 딸아이의 이름은 묻지 않았다.
속으로 싹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싹수가 노란 작자가 틔워놓은 싹이니, 싹이라고 불러도 좋다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이제 겨우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이름으로는 적당했다. 이제 머리카락이 제대로 자라 단발머리가 된 여아였다. 그 여아는 한국인 김수철의 딸이니 엄연한 한국의 핏줄이다.
홍랑은 그 작자가 살아있을 때, 말론네라고 속으로 불렀다. 이름 대신에 늘 속으로 그렇게 불렀었다. 말론네라는 말은 미얀마 말로, 하지 마! 라는 뜻이다. 홍랑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짓만 골라서 하는 작자라 그렇게 불렀는데 작년 가을, 밤에 자다가 죽었다. 현지인들은 심장마비라고 했지만 홍랑의 추측으로는 복상사다. 아직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홍랑이 파타야를 사흘 다녀오는 동안, 대문의 공사를 끝낸다고 했었다. 그러나 돌아오니 손도 대지 않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비워둔 집이라 전기가 없어서 공사를 못 했다고 했다.
옆집에 전기를 좀 빌려서 하면 되지?
홍랑이 그쪽에 지은 집은 다세대주택이었다. 지주와 공동개발을 한 것이다. 한 층에 횡으로 세 세대씩 오 층으로 열다섯 세대를 지었다. 지주인 할머니에게 한쪽 라인 다섯 세대를 주고 나머지 열 세대는 홍랑이 분양을 하기로 계약을 하고 공사를 시작했었고, 중간에 미얀마가 시장경제를 개방하면서 달러가 급등을 해서 공사를 마쳐도 남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공사를 그대로 강행했다. 계약할 당시와는 달리 건축이 거의 끝날 무렵 전기 설치시설비가 엄청 올랐다. 엄청 오른 정도가 아니라 거의 열 곱 가까이 되도록 폭등을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계약에 없는 사항이니 각자의 몫은 각자가 부담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지주인 할머니가 다섯 세대분을 내고 홍랑이 열 세대분을 내야 공평한 거다.
노처녀가 된 딸을 둘이나 데리고 사는 할머니는 당장 돈이 없다고 하며 홍랑에게 먼저 전기를 가입하면 나중에 주겠노라고 했다. 전기 설치시설비가 그렇게 비싸진 이유는 설치비가 오른 것도 오른 것이지만, 단독주택에서 사용하던 전선을 그대로 쓸 수가 없었다. 열다섯 세대라 그 가는 선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변압기가 있는 앞 골목에서부터 굵은 선으로 다시 깔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전력공사에서 몇 번을 나와서 체크를 하고 전기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설치비부터 내야지 공사를 한다고 했다.
미얀마는 한국의 한전 같은 곳이 있지만, 그 공사에서 전기를 직접 설치하지 않는다. 사설 업체에 위탁해서 설치하는데 그 사설 업체에서 따로 공사비부터 요구했다. 홍랑은 할머니를 또 불렀다.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당장 수중에 돈이 없으니 전기부터 가입하고 나중에 얘기하자고 했다.
전기를 넣고 준공 검사를 받았다.
준공 검사를 내는데도 상당한 뒷돈이 들어갔다.
차 떼고 포 떼고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보아도 남는 게 없는 적자공사였다.
준공 검사를 받자 할머니는 자기가 일 층에 살고 나머지 네 세대를 세를 놓았다. 홍랑 덕분에 그녀는 졸지에 집을 다섯 채나 가진 부자가 된 것이다. 당시에 홍랑의 몫인 열 세대 중에서 맨 위층에 있는 것 겨우 두 세대를 팔아서 밀린 공사비를 주고 나서 홍랑도 자신의 몫이 된 그 일 층으로 이사를 들어갔다. 그러니 할머니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이 되었다. 그 집이 완성되기까지 이사를 꽤 여러 번 다녔다. 물론 허름한 싸구려 임대주택이었다.
이사를 들어가서 매니저를 통해 할머니를 불러오라고 했다. 전기 설치비에 대해서 운을 뗐더니 그렇게 많이 들어갈 수가 없다면서 확인을 해보고 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확인하는 거야 쉽지?
매니저인 때쑤를 불러서 할머니를 데리고 전력공사에 가서 확인하고 확인서를 받아서 오라고 했다. 그곳에는 할머니가 가지 않고 노처녀인 큰딸이 간 모양이었다. 가서 확인을 해보니 그렇게 들어간 게 사실일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서 어느 놈이 장난을 치지 않았다면 당연히 그 금액이 들어간 게 확인이 가능한 일이다. 할머니의 딸, 노처녀를 데리고 전력공사로 찾아간 때쑤는 금세 돌아왔다. 확인서를 받아온 것이다. 홍랑은 임시로 꾸며 놓은 거실의 사무실에 앉아서 할머니를 데려오라고 때쑤에게 일렀더니 할머니가 딸 둘을 대동하고 왔다.
다섯 세대분의 전기 설치비를 요구했다. 한 가구당 얼마가 들었으니 그 금액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한데, 대답을 듣고 기가 막혔다.
여자들만 사는 집이고 돈이 없으니 돈이 많은 한국인이 부담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아들도 없고 여자들만 사는 집이라는 걸 강조했다.
돈이 많은 한국인?
홍랑은 기가 막혔다.
저렇게 많은 집을 세를 놓고 있는 집에 돈이 없다니 말이 안 된다고 하면서 이 건물을 지어서 상당한 적자를 보고 있노라고 했다. 일테면, 너희 좋은 일만 시켰어! 그 입장이었고 적자가 난 이유를 설명하며 꼭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고수했다. 그날은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준다, 안 준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사라지고 홍랑은 쓰린 속에 줄담배만 피워댔다. 그 전기 설치비는 결국 받지 못하고 이 년 가까이 살다가 홍랑은 이사를 나왔다.
공동주택이야 문만 잠가 놓으면 별일이 없겠지만 새로 지은 단독주택을 비워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사이에 집은 더러 팔리고 일 층, 미얀마에서는 우리나라의 일 층을 일 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이 층을 일 층이라고 부른다. 계단을 한 층 올라가니 그게 일 층이란다. 그럼 우리나라의 일 층을 무엇이라고 부르나? 땅바닥, 그라운더 층이라고 G 층이라고 부른다. 아무튼, 땅바닥에 붙은, 일 층 두 세대를 남겨놓은 채 새로 지은, 길 건너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나왔다.
한데, 오래 비워두었던 집에서 하자가 생긴 것이다.
미얀마는 출입문을 여닫이로 된 게 아니고 철로 된 자바라라는 옆으로 밀치는 문을 사용한다. 미닫이인 셈인데 공간을 적게 먹어 마치 우리나라의 벽에 거는 옷걸이처럼 옆으로 밀면 좁혀지고, 당기면 펼쳐지는 구조인데. 이걸 오래 쓰지 않았더니 그 마디마디 핀에 녹이 슬어 열리지 않았다. 매일 사용하는 집에서는 녹슬 짬이 없겠지만 오래 비워둔 집이니 문제가 발생했다. 지금은 가고 없는 가사도우미 퓨퓨에게 수시도 가서 확인하고 청소를 하락고 했지만, 이 계집애는 가보지 않은 게 틀림이 없다.
집을 둘러보러 갔더니 녹이 슨 철문은 혼자서 열기에 불감당이었다. 하여, 평소에 자주 가서 노닥거리는 오토바이 시장에 가서 하릴없이 얼쩡거리는 장정 세 놈을 데려가서 지렛대를 넣어 열기는 열었다. 그런데 너무 뻑뻑했다. 녀석들은 기름을 치라고 했지만 기름을 쳐서 될 일이 아니었다.
철문을 여닫이로 바꾼다고 마음먹고 홍랑이 도면을 직접 그려서 이웃에 있는 철공소에 견적을 받았다. 그리 비싼 건 아니지만 보기에도 그렇고 언제 팔릴 집인지 모르는데 그건 하자보수가 아니라 재투자라고 생각해야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래야 속이 덜 쓰린 법이다. 철공소에서 문을 제작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어떻게 설치하라고 일러주고는 파타야를 사흘 다녀왔다.
공사가 끝날 줄 알았는데 갔다가 오니 손도 대지 않은 것이었다.
“미친 자식들! 옆집에 좀 빌리면 되지 그런 융통성도 없나?”
홍랑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어제 아침, 철공소에 가서 전기를 빌려줄 터이니 일을 하자고 했다. 인부들을 다 데리고 지난번에 살던 집으로 오토바이를 세 대에 나눠타고 갔다. 가서 확인하니 전기료가 밀렸다고 전기 계량기를 전력공사에 떼어가고 없었다. 그렇다고 요금을 내고 당장 살릴 일은 아니었다. 또 비워두어야 하는 집인데 요금을 내고 전기를 살리더라도 머지않아 또 끊기는 이치다. 살 사람이 나타나면 그때 가서 살릴 셈이었다.
옆집 할머니 집의 문을 두드렸다. 자물쇠가 안에서 잠긴 것으로 미루어 안에 사람이 있지 싶은데 대답이 없었다. 하여, 할머니와 계약을 주선하고 공사를 한 망망쪼에게 전화를 했다.
망망쪼는 본래 고향이 그 동네이지만 지금은 시내에 살고 있다. 홍랑이 지은 건물의 바로 옆에 있는 빈 공터도 망망쪼의 소유다. 망망쪼가 어릴 적 살았던 집인데 그 나무로 된 집은 뜯어내고 지금은 공터이지만 공동주택을 지어 세를 놓을 거라고 했다.
망망쪼에게 전화를 해서 아침 일찍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하며 이렇고, 이런 상황이 생겼으니 할머니가 아직 자는 모양인데 전화를 좀 해달라고, 전기를 좀 빌려 쓰자는 통역을 부탁했다. 그러니 망망쪼는 전기를 사용하면, 사용하는 값을 주느냐고 물었다. 쩨쩨하게 얼마나 쓴다고? 그런 생각이 문득 일었지만, 이곳은 외국이다. 하여, 대답은 달리 나왔다.
그럼 당연히 줘야지!
망망쪼는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오 분이 넘게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인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홍랑은 기다리다 못해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때 가서야 할머니가 나왔다. 나온 게 아니라 철문 안에서 내다본 것이다. 사람이 왔는데 현관문은 열지 않고 방문을 붙들고 내다봤다.
홍랑은 망망쪼의 전화를 받았느냐고 물었다.
받았단다.
그럼 전기를 좀 빌려달라고 하며 인부에게 전기 코드를 받아서 문틈으로 들이밀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안 된단다.
뭐가 안돼?
전기는 빌려줄 수가 없다고 했다.
전기 사용료를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안 된다며, 아니 싫다면서 들어가더니 전기요금 고지서를 들고 나왔다. 홍랑 집의 것인데 모아두었던 모양이다. 전기요금을 내고 전기를 살려서, 공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인부들이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홍랑은 오늘 공사를 마쳐야 한다고 사정했다. 일요일이라 전기요금을 낼 수도 없고, 그래도 안 된단다. 아니, 싫다고 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이런 할마씨가 다 있어? 이 할마씨가 정신이 있나 없나? 전기 설치할 적에 내 돈으로 다 해주었는데?”
홍랑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그건 한국말이었으니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당장 전기 설치비를 청구할 거야!”
물론 한국말이었다.
밑에서 그 난리를 부리고 있으니 삼 층의 말론네의 미망인이 베란다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쩌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홍랑은 손짓을 하여 좀 내려오라고 했다.
말론네라는 홍랑이 부르는 김수철이라는 작자는 태국과 미얀마를 오가며 무슨 사업이라고 했다. 눈치로 미루어 태국에도 여자가 있는 모양이었다. 없을 리가 없다. 홍랑이 한국에 머물 적에 전화가 와서 집을 사겠노라고 해서 전화로 집을 판 작자다. 단지 조건이라면 할부로 좀 해달라고 했다. 명의 이전은 할부가 끝나면 해주어도 무방하다고 했다. 집값으로 얼마를 주겠다고 했는데 홍랑은 그때 그가 말하는 집의 정확한 가격을 몰랐다. 서른 채 가까이 되는 집이 층수에 따라,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다 다른데 그걸 외우고 있기는 힘든 실정이다.
전화로 매니저인 때쑤가 옆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바꾸어 달라고 해서 그가 요구하는 대로 해주고 선금을 받으라고 했다. 계약서는 홍랑이 들어와서 쓰기로 했다.
그렇게 전화로 한 채를 팔고 들어와 컴퓨터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책정가격이 얼마인데 엄청 깎아서 할부에 한다고 이사를 들어와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홍랑은 계약서를 쓸 적에 자신에게 엄청 유리하도록 계약서를 작성했다. 지금은 다 받고 명의 이전을 해주었지만, 할부가 두어 달 남았을 적에 말론네는 복상사를 했다.
말론네는 홍랑이 눈에 거슬리는 짓을 골라서 했기에, 하지 마! 라는 뜻으로 말론네라고 속으로 불렀다. 그 말론네가 언제 시간이 나면 저녁이나 한 그릇 하자고 누누이 말했지만 홍랑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같이 밥을 먹어주지 않았다. 홍랑은 누구와 식사를 하는 자리가 불편한 점도 있지만, 특히나 그런 말론네 같은 족속과 함께 밥을 먹다니? 그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말론네에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너무 어린 현지처를 데리고 산다는 점이었다. 나이 차이가 서른 살이 넘게 난다. 그런 여자는 노래방에 가서 하룻저녁 데리고 놀면 된다. 따분한 외국 생활에 그런 정도라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만, 이 작자는 임신을 시키고 장인 장모와 한집에 사는 것이다. 이곳이 미얀마가 아니고 유럽의 어느 나라라면 그런 일이 가능할까? 홍랑은 그 점이 늘 못마땅했다.
매달 할부금을 당시에 임신해서 배가 잔뜩 부른 어린 현지처가 들고 왔기에 그녀의 얼굴은 안다. 아기를 낳아서 아기를 안고 다니던 그 말론네를 골목에서 만나면 홍랑은 기분이 결코, 유쾌하거나 아기가 예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기가 한 여자의 인생을 망치는 애물단지로 여겨졌다.
저 나이에 아기를 낳아서 어쩌자는 거야?
마주칠 때마다 늘 그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무튼, 급한 김에 내려다보고 있는 그 말론네의 미망인을 좀 내려오라고 했는데 그 젊은 과부는 혼자서 내려오지 않고 제 엄마를 데리고 내려왔다. 그 젊은 미망인에게 설명했다. 이렇고 이래서 전기가 필요하다. 요금은 줄 터이니 전기를 좀 빌리자고 했다. 젊은 미망인의 엄마는 홍랑에게 언제나 인사를 먼저하고 유난히 살갑게 구는 아줌마였다.
야라뽀!
‘물론’이라는 미얀마 말이다. 그 말이 미망인의 엄마라는 여자 입에서 나왔다.
홍랑은 전기 이용비는 먼저 주겠다고 하며 메고 있던 작은 배낭의 지갑을 꺼내서 이만 원을 그 미망인의 엄마에게 건네주었다. 그 돈을 건네는 모습을 일 층 할마씨가 보고 있는데 주었다. 할마씨는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얼마를 주었는지. 그 금액이면 그 집의 한 달 전기요금이 될 것이다.
할마씨가 문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돌아서 들어가는 걸 보고 홍랑은 소리쳤다.
“전기 설치비 다시 청구할 거야!”
역시 한국말이었다. 인부 하나가 젊은 미망인과 함께 삼 층으로 올라서 전선을 연결하고 일은 시작되었다.
젊은 과부의 엄마는 올라가지 않고 홍랑과 한참이나 얘기를 나누었다. 홍랑은 전기를 설치할 적에 모든 비용을 자신이 다 부담을 했는데 아직 그 돈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더니, 할머니가 사는 집, 현관을 가리키며 무까웅델루라고 했다. 그 말은 나쁜 사람이라는 말인데, 지독하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홍랑은 기분이 엄청 상했고 괘씸했다. 이렇게 적자를 보며 부자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걸 모르는 것이 못내 서운했고 반드시 다시 청구서를 들이밀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못 받는 한이 있어도 부담으로 작용하도록 다시 거론할 거야.
속으로 그 생각을 하며 경멸의 조소를 보냈다.
일은 하루 만에 끝나지 않았다. 헌 문을 뜯어내고 새 문으로 달았는데 뜯어낸 자리에 표시가 나지 않게 타일을 붙이는 작업이 오늘 시작되었다. 타일 작업도 전기가 필요했다. 타일을 크기에 맞게 자르려면 전동커터를 써야만 했음으로, 마땅히 전기가 필요했다. 젊은 미망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전기선을 위에서 내려주고 일을 시작했다. 홍랑은 이틀간 꼭 현장에 붙어 있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타고 자주 가는 오토바이 시장에 가서 거간꾼들과 노닥거리며 커피를 마시다가 수시로 둘러보러 가는 정도였다.
들락거리며 할마씨도 마주쳤고, 그 노처녀 딸들도 마주쳤지만 먼저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거기서 삼 층 젊은 미망인의 엄마, 그러니까 말론네의 장모를 만나서 오늘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많은 얘기를 했지만 말론네의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인부들이 마실 물도 사다 주면서 정을 냈다.
그녀의 나이를 물었다가 귀를 의심했다.
마흔여섯? 마흔여섯이라고 했다.
그러면 장모가 사위보다 열두 살이 적은 거 아니야? 이 작자가 죽을 짓을 했구만.
남편의 나이를 물었다.
쉰넷이라고 했다.
정말 죽을 짓을 했구만!
장인보다도 네 살이나 더 처먹은 작자였다.
이 자식! 완전히 철면피였군! 그런 가계인데 어떻게 한집에 같이 살면서 장인 얼굴을 대하기가 껄끄럽지 않았나?
홍랑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홍랑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 젊은 과부의 엄마는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를 하라면서 전화번호를 일러주었다. 홍랑은 그녀의 전화번호를 저장시키며 이름을 물었다. 때때라고 했다. 때때?
미얀마 여자들의 이름은 보통 헷갈리는 게 아니다. 빼빼, 퓨퓨, 포포, 또또, 꾸꾸, 꼬꼬 등으로 입력을 시키면 누가 누구인지 헷갈린다. 그래서 이름 앞이나 뒤에 특이사항을 형용사로 붙여야 헷갈리지 않고 전화가 와도 누구인지 알 수가 있다. 홍랑의 핸드폰에는 다 그런 식으로 이름을 표시해 놓았다. 검둥이 또또. 파마머리 포포, 인디언 뚜뚜, 부동산 꾸꾸, 이런 식인데 이번에는 미스터, 까지 타이핑을 하고 한 칸을 띄우고 김장모 때때라고 이름을 적었다.
김장모라고 부르면 되겠군!
왠지 미스터킴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어려운 건 홍랑 뿐만이 아니라 상대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미스터 리라고 하면, 미얀마 사람들은 백발백중 웃는다. LEE, 리라고 흔히 쓰는 우리나라의 이씨 성씨다. 그걸 미얀마말로 풀이하면 자지란 말이다. 가끔 양곤의 후진 곳에 가면 담벼락에 LEE라고 낙서를 해놓은 것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그게 미스터리를 환영한다는 말이 아니고 욕설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미스터리라는 말은 하지 않고 홍랑이라고 한다. 홍랑? 홍랑이라고 하면 현지인들은 발음에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혼란? 정말 듣고 있으면 혼란스러운 발음이다. 전화번호를 일러주고 이름을 말하면 몇 번 불러보다가 거의 코리안이라고 표시하는 모양이다.
오늘 오후에서야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 간다.
타일을 잘라서 붙이고도, 그 사이에 흰색 시멘트로 간격을 메꾸어야 했기에 손이 생각보다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공사를 끝내고 청소를 할 무렵, 젊은 미망인이 아이를 안고 세발자전거를 들고 내려왔다. 출신이 한국의 핏줄이라 현지 아이들과는 달리 입성이 깔끔했다.
홍랑은 오늘에서야 아이의 얼굴을 세심하게 볼 수가 있었다.
여태까지 그 김수철이라는 작자가 안고 다니는 것을 보았지만 홍랑이 애써 외면했었다. 아기는 피부가 뽀얀 게 핏줄의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플라스틱으로 된 세발자전거를 타고 걸음을 아장아장 걷는 정도였다.
젊은 미망인은 홍랑을 보면 수줍어한다. 한국인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어딘지 모르게 수줍어하는 얼굴이다. 그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죄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죽은 작자가 원망스러웠다.
홍랑의 아이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냥 싹이라고 부를 요량이었다.
그 싹수가 노란 작자가 뿌린 씨앗이니 싹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분명 한국의 이름을 지었을 것인데 그건 궁금하지 않고 그 엄마의 수줍어하면서도 비애가 서린 웃음이 자꾸 눈에 밟혔다.
아이가 무슨 죄가 있는가?
홍랑은 아이를 유심히 보았다. 그렇게 유심히 보는 건 처음이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아이도 그 세발자전거의 뒤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밀어주는 젊은 미망인도 보기에 서글펐다. 결코, 행복해 보이거나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다. 알 것을 다 알아버려서 그런지 슬펐다. 저 모녀가 장차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생각도 잠기기도 했다.
홍랑은 젊은 미망인을 불렀다.
그녀의 눈은 항상 우수에 젖어 있었다. 홍랑이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슬픔에 젖은 눈이었다.
아기에게 불쑥, 돈을 내밀기는 송구한 짓이다. 그것은 얼마짜리라고 금액에 규정되기 때문이다.
젊은 미망인이 다가왔다. 역시 우수에 젖은 눈동자다. 할부금액을 가지고 왔을 때와는 또 다른 눈매였다.
홍랑은 아기를 데리고 슈퍼로 가자고 했다. 아기에게 비스킷을 사주고 싶다고 했다. 과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과자를 현지어로 무엇이라 부르는지 홍랑은 몰랐던 까닭에 비스킷이라고 했다.
그 골목에서 빠져나와 도로를 건너면 대형슈퍼가 있다. 골목에 있는 점방에서는 조잡스러운 과자 나부랭이를 팔고 있었기에 슈퍼로 가자고 한 것이다. 젊은 미망인은 짧게 웃어 보이고는 세발자전거의 아기를 안고 따라나섰다.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홍랑은 미스터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기가 예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 모습을 그 말론네라는 작자가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것을 생각하고 젊은 미망인과 나란히 걷기가 어색해서 한발 앞서서 걸었다. 골목을 빠져나와 백여 미터쯤 가면 슈퍼가 있다. 그 거리가 상당히 길게 여겨졌다. 그사이에 물은 것이라고는 젊은 미망인의 이름을 물었다.
루루, 라고 했다.
의외로 자신을 밝히기에 소탈했다. 나이는 묻지 않았다.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 말론네와 서른 살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것을.
싹은 제 엄마 품에 안겨 뭐라고 옹알이를 하고 있었다.
아직 말은 익히기에 이른 나이인 모양이다.
이 아기의 국적은 법적으로 한국인가, 미얀마인가? 그것도 궁금했지만 묻지 않고 앞장을 섰다.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죄스럽지?
홍랑은 줄곧 그 생각을 했다.
슈퍼에 들어가니 계산대에 있던 젊은 아가씨가 아는 척 눈인사를 했다.
메뚜이야다 짜비!
오랜만이라는 말이다. 그 골목에서 이 년이나 살았으니 주위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건 당연한 이치. 그렇게 인사를 하고 젊은 미망인 품에 안긴 싹을 보고 과자를 고르라고 했다. 싹은 홍랑의 얼굴을 다시 보고는 제 엄마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직 낯을 가리는 모양이다. 과자는 주섬주섬 홍랑이 골랐다. 한국의 과자도 들어와 있었다. 여태 과자를 살 일이 없었고 유심히 살피지 않아서 여태 몰랐지만, 한국의 과자도 여러 종류가 들어와 있었다.
말론네와는 같이 만났던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홍랑은 지금도 그렇지만, 한 달은 한국, 한 달은 미얀마에서 생활하고 그 작자는 보름은 미얀마, 보름은 방콕으로, 오가며 생활했기에 같은 건물에 살았지만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홍랑은 절대로 그리운 인물이 아니었기에 방콕에서 언제 왔느냐고 직접 물은 일이 없었다. 보이면 마지 못해 인사를 하는 정도였다. 어쩌다 궁금하면 가사도우미 퓨퓨를 통해서 물어도 그의 근황을 알 수가 있었다.
과자를 고르면서 아기를 힐끔 보았다.
천진난만한 얼굴이었다.
싹!
존엄한 생명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지만, 저 아기가 없었다면, 이 젊은 과부는 멍에도, 족쇄도 차지 않았을 수가 있다. 오히려 양곤 시내에 집이 하나 생기는 횡재 할 수도 있었던 일이다. 그 몹쓸 작자는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젊디, 젊은 과부에게 씨를 뿌려 싹을 틔움으로 멍에를 지우고 족쇄를 채운 것이다. 그러나 싹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홍랑은 과자를 고르며 아이를 다시 보았다. 아이는 금세 마음이 풀렸는지 제 엄마 품에서 생글거리고 있었다. 저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 늙은 나이에 현지처를 데리고 살려면 정관수술을 하든가? 홍랑이 알기에는 한국에도 자식과 전처가 있다고 들었다. 어쩌면 젊은 과부는 한국에 있는 딸보다 어릴 수도 있다.
참! 뒈질 짓을 했군!
또 그 생각이 앞섰다.
홍랑의 그의 장례를 치르는 것을 보지 못하고 한국으로 들어갔다. 외국인이고 사인을 파악해서 장례를 치르는데 삼 주 이상이 걸린다고 했다. 홍랑이 한 부조는 고작 육백 원이었다. 그 작자가 죽고 나서 일주일쯤 있다가 젊은 미망인이 홍랑을 찾아왔다. 염을 하는지 시신의 입에 물린 한국동전이 필요하다며 찾아온 것이다. 홍랑은 들고 온 여행 가방을 뒤지니 동전 육백 원이 있었다. 그걸 주었는데 마지막 부조가 된 셈이다. 그의 장례는 홍랑이 뒤집어쓰지 않았다. 미얀마에서 자주 만나는 한국인 중에서 고향의 후배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작자가 한국으로 연락을 하고 대사관에서 시신을 한국으로 옮겨가는 일을 주선했다. 거기까지 진행되는 것을 보고 홍랑은 한국으로 갔다.
한국에서는 그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한 달 정도 머물다가 미얀마로 나와서 장례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한국으로 옮겨 갔느냐고 가사도우미 퓨퓨에게 물었더니 아니란다. 한국의 가족들이 반대해서 미얀마에서 화장해서 양곤강 하류에, 나이가 적은 장인이 뿌렸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말론네라는 작자에게는 동정이 가지 않았고 신세를 망친 젊은 미망인과 싹을 먼저 떠올렸다.
과자는 최대한 아기가 먹을 수 있는 부드러운 것으로 골랐다. 플라스틱 바구니 가득 골랐다. 젊은 미망인이 홍랑이 바구니에 담은 과자가 너무 많다면서 어떤 것은 다시 매대에 얹어놓기도 했다.
비닐봉지 두 개에 나누어 담아서 슈퍼를 나왔다. 싹이 옹알댔는지 젊은 과부는 비닐봉지에 든 비스킷을 뜯어서 아이의 입에 조금씩 잘라 넣으며 홍랑을 따라왔다.
현장에 도착하자 인부들은 연장을 챙기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젊은 미망인은 바로 집으로 올라가지 않고 비닐봉지에 든 과자를 현관문 앞에 두고 싹을 또 세발자전거에 앉히며 홍랑을 돌아보고 웃었다.
저 비애의 미소!
보고 있는 게 힘이 들었다.
눈이 즐거운 풍경이 결코 아니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단단히 뭉친 무언가가 속에서 갑자기 밀고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뭔지는 형언할 수가 없었다.
이런 건 뱉어야 한다. 참고 있으면 병이 된다.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또아비 뺜라매!
홍랑은 서 있던 오토바이에 올라앉으며, 갔다가 오겠다고 젊은 과부에게 현지어로 소리쳤다. 그 말에도 젊은 과부는 미소를 지었다.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보니 이국의 해가 서쪽에서 서글프게 지고 있었다. 홍랑은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진실은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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