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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자유주의) 개인의 자유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이에 대한 보장을 강조
(공동체주의)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공동체 이익의 저해, 이기주의의 만연과 같은 문제를 발생시키므로 공동체를 위한 정부의 역할과 공동체적 연대와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 강조
마이클 샌델교수의 공동체주의 요약
-복지정책을 옹호한다는 점에서는 롤스식 평등적 자유주의 관점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롤스가 말하는 복지의 기초 개념은 불충분하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서 자유주의를 비판하고 롤스와는 다른 논리로 복지를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선(도덕; 좋음) 없는 정의(권리; 옳음)', 바꿔 말하면 비윤리적 비정신적주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논증하여 자유주의를 비판
- 기존의 공동체주의는 사회구성원들이 '도덕적인 좋은 사람'이 되도록 전통적 도덕 가치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일관된 주장인데 반해 샌델은 거꾸로 그 도덕적 가치의 본질은 무엇이며, 여러 본질 중 어떤 본질이 공동선을 증진시키는데 합당한가를 묻는다. 즉, 기존 공동체의 가치와 상관없이, 그 공동체의 선(공동선)을 어떻게 더 합당한 방향으로 개선하는가에 대한 물음
(본문)
마이클 샌델의 공동체주의
1. 개요
마이클 샌델(Michael Joseph Sandel)은 시민공화주의적[4] 완전주의적[5] 공동체주의[6]를 주장하는 미국의 정치철학자이다. 브랜다이스 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27세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에 미국 하버드 대학 교수가 되었다.[7] 29세에는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발표하면서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현재까지 하버드 대학 교수로 재임하며 『Justice』라는 정치철학강좌를 진행하고 있다.[8]
샌델은 영미권 정치철학의 큰 흐름인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학자이다. 대중적으로는 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로 알려져 있고, 학계에서는 정치철학 연구성과로 이름이 높다.[9] 살아 있는 철학자 중 정치철학, 윤리학과 법률학에서 손꼽히는 권위자이며,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철학자이자 미국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중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10]
3. 사상
3.1. 존 롤스(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샌델은, 존 롤스의 논리가 '무연고적 자아'에 해당된다고 말한다. 현실의 구체적인 인간의 다양한 특징을 전혀 모른다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존 롤스의 주장은 추상적이고 허구적이다. 현실의 인간은 다양한 연고, 문맥, 상황이 있는 자아이기 때문에 '연고적 자아'일 수 밖에 없으며, 존 롤스의 무연고적 자아는 현실성이 없는 논리라는 것.
또한 존 롤스는 사람들이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자신의 합리적인 공익을 추구한다는 가정에 따라 정의의 원리에 합의한다며 복지를 정당화했다. 잘 생각해보면 복지는 부유한 사람의 돈을 징수해서 국가권력을 통해 재분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롤스는 타인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복지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은 롤스의 논리 속에서도 공동체의 발상은 있다.
다만 샌델은 롤스의 복지의 정당화라는 정책적 결과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 논리를 비판한다. 샌델은 롤스의 자유주의[16]와 노직의 자유지상주의[17]를 모두 비판하지만, 복지정책을 옹호한다는 점에서는 롤스식 평등적 자유주의 관점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롤스가 말하는 복지의 기초 개념은 불충분하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서 자유주의를 비판하고 롤스와는 다른 논리로 복지를 정당화하려는 것이다.[18]
샌델은 이렇게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선(도덕; 좋음) 없는 정의(권리; 옳음)', 바꿔 말하면 비윤리적 비정신적주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논증하여 자유주의를 비판하였고, 이는 1980년대 정치철학계의 세계적인 논쟁인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3.2. 기존 공동체주의자들과 다른 점
기존 공동체주의자들은, 한 사회는 그 공동체의 전통으로부터 널리 공유되는 가치를,[19] 사회의 도덕적 인성교육을 통해 '개인의 가치선택과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체주의나 테러의 위험이 없는 한에서, 공동체는 사회구성원들이 '도덕적인 좋은 사람'이 되도록 전통적 도덕 가치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것이 공동체주의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하지만 샌델은 거꾸로 그 도덕적 가치의 본질[20]은 무엇이며, 여러 본질 중 어떤 본질이 공동선을 증진시키는데 합당한가를 묻는다. 즉, 기존 공동체의 가치와 상관없이, 그 공동체의 선(공동선)을 어떻게 더 합당한 방향으로 개선하는가에 대한 물음인 것이다.
여기서 '(기존) 공동체의 가치'와 '공동체의 선(공동선)'은 다르다. 공동체의 가치 중에는 공동체의 선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좋지 못한 면'도 있을 수 있다.
1)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를 통해서 여러 본질들을 찾아내고,
2) 시민들의 활발한 토론을 통해 이런 본질 중 어떤 본질이 우리 사회의 도덕을 증진시키는 지를 파악하여,
3) 공동체의 공동선을 개선시킴과 동시에 '공동체의 불합리한 부분'은 자연스럽게 소외시켜 계승하지 말자는 것이 샌델의 생각인 것이다.
요약하자면, 샌델의 정치철학은 도덕적 가치의 본질파악과 그 중 어떤 본질이 공동선을 개선시키는데 보다 더 합당한가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기존 공동체주의자들이 '공동체의 불합리한 점마저 계승할 수 있는 다수의 가치'에 도덕적 함의를 두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21]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샌델은 '다원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스승 찰스 테일러와 마찬가지로 다원적 가치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가치판단을 개인의 선택(자유주의)이나 공동체 다수의 선택(공동체주의)에만 맡겨둘 수는 없지 않느냐는 질문인 것이다.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22])
샌델은 예를 들어, 언론의 자유를 빙자해서 나치옹호의 집회를 여는 경우라도,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되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공동체주의에 대한 비판[23])
또한 미국 남부에서 다수 백인들의 공동체의 가치에 반하여 소수 흑인들이 인권집회를 하는 경우에,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지 말아야 되느냐고도 반문한다.
이 같은 경우에는 도덕 가치의 본질 파악이 중요하며, 전자는 나치 집회를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후자는 흑인 집회를 인정하는 쪽으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샌델은 주장한다.[24]
그렇다고 샌델이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케이스에 따라서 어떤 본질이 더 합당한가를 따져봐야 된다고 주장할 뿐이다.
'어떤 본질이 보다 더 합당한가'에 따라서, 자유주의적 관점이 될 수도 있고, 공동체주의적 관점이 될 수도 있으며, 둘다가 아닌 관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25] 즉 구체적인 각각의 케이스에 대해서, 대립되는 각자의 입장이 가르키는 본질은 무엇인지 그 근거가 되는 원칙은 무엇인지를 오가며 서로의 도덕적 입장들을 충분히 검토하자는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정립한 원칙에 비추어 특수한 판단은 수정하기도 한다. 때로는 원칙을, 때로는 구체적 사안에 대한 판단과 직관을, 케이스에 맞게 수정하는 것이다. 이를 반성적 평형[26]이라고 하며 '어떻게 우리사회에 알맞는 도덕의 본질을 찾을 것인지'에 대한 샌델의 결론이 된다. 이에 따라, 한 사회의 도덕적 가치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를 통해 '판단'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서로가 정치적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론의 장소'가 센델의 철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해진다.[27] [28] 샌델은 '시장'가치가 이러한 '공론의 장'을 침범하고 있으며, 우리의 도덕적 가치판단을 시장(돈의 가치)에만 맡겨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3.3. 능력주의 비판[편집]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 등을 불러온 포퓰리즘 열풍은 전문가가 말하듯 이민자에 대한 혐오나 세계화에 대한 불안 때문만은 아니다. 포퓰리즘 열풍은 기술관료(technocracy)의 가치중립태도가 불러온 공공 담론의 공동화[29]와 승자와 패자를 능력주의(meritocracy)적 돈의 가치로 나누는 오만한 사회분위기에 대한 반발(backlash)로 생긴 것이다. 기술관료시스템을 통한 세계화는 그 과실을 불균등하게 배분하였지만 사람들은 세계화가 초래한 불평등을 참아왔다. 그것은 '누구나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기회가 평등하면 재능과 노력에 따라 누구나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하지만 수많은 통계는 (한 때 그것을 가능하게 했었던) 능력주의 사회가 더이상 사회적 상승(계층 이동)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진단한다. 이에 따라 능력주의에 대한 희망은 사라졌다. 이를 능력주의 신화라고 하며, 능력주의 신화에서 깨어난 대중들은 기존 엘리트에 대한 반발로 포퓰리즘 투표를 하게 되었다는 것.
하지만 이보다 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능력주의는 돈의 가치로 직업과 대학을 서열화함으로써 승자와 패자를 나누며,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굴욕감을 심어준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능력이 직업과 사회적 역할의 배분에 아무 역할도 못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능력이 직업과 사회적 역할 배분을 맡되, 대중들에게 굴욕감을 선사하는 '너의 성취는 너의 능력 덕분이다',[30] '당신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능력주의적 미덕 가치관 자체를 바꾸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샌델은 주장한다. 이러한 생각 바꾸기는 능력주의적 성공 개념의 핵심인 두 가지 인생 영역, 즉 '교육'과 '직업' 부분에서 능력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스스로를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성공관이 되어 버렸는지 알아보는 데서 시작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능력주의 교육은 더이상 사회계층이동에 기여하고 있지 않다. SAT 점수는 응시자 집안의 부와 매우 연관도가 높으며, 소득 사다리의 단이 하나씩 높아질수록 SAT 평균점수는 올라간다. 이런 상황에서 고등교육의 승자독식형 재선별[31]이 나타나며, 이는 학업 지원에 대한 능력주의적 군비 경쟁을 유도하고, 재능과 부의 대물림을 심화시킨다. 이로서 더더욱 계층이동은 사라지고 엘리트층은 굳어진다. 경쟁을 통과한 엘리트들 또한 조금의 실수도 허용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통제를 벗어나는 것에 대해 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해지는 정신적 심리적 변화를 겪는다. 이를 '완벽주의'라고 한다. 이 습관은 그들이 승리자가 된 이후에도 그들을 괴롭히며 한편으로는 통제되지 않는 삶에 대한 불안감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여기는 우울증에 빠지게 만든다. 여기서 샌델은 대학 입시에 있어서 운(luck)적 요소의 도입이 '내 성취는 나의 능력 덕분이다'는 능력주의적 사명을 깨뜨리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제언한다.[32]
또한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시험 점수에 따라 직업이 결정되고 그 직업은 돈의 가치에 따라 서열화된다. 이는 "당신이 하는 일은 돈 잘 버는 전문직업인들의 일에 비해 시장에서 별 가치가 없다"는 메세지를 사회에 던진다. 저학력자들은 그들이 종사하는 직업이 더이상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함을 깨닫고는 엘리트들에 대한 백래쉬로 포퓰리즘을 선택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직업에 있어서 '돈을 얼마나 벌고 쓰느냐'는 '소비자의 역할'에 존중을 두지 말고, 우리 사회에 '생산자로서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를 두고 그 직업을 존중하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고 샌델은 말한다.
조건의 평등- 모든 계층이 공동선에 대한 공감,고민, 평등의 눈, 민주적 접촉
샌델은 능력주의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는 해답이 '조건의 평등'에 있다고 주장한다. 샌델이 말하는 '조건의 평등'은, 능력주의에서 말하는 '기회의 평등'이나, 모든 사람이 동일한 임금과 부를 가져야 된다는 '결과의 평등'이 아니다.[33] '조건의 평등'이란,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계층일지라도 공공의 삶 속에서 이해관계를 공감하며 공동선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민주주의적인 평등의 눈으로 고개를 들고 서서 동료 시민들을 바라 볼 수 있는 존재 방식과 문화를 배우는 것에 대해, 충분한 민주주의적 접촉 기회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34] 즉 공공의 삶에 대해서 민주주의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그래서 공동체 속 자신과 다른 구성원들을 이해할 수 있는 문화 사회적 역량을 길러주는 그런 시민교육에, 계층과 상관없이 사람들이 충분히 접촉하고 있는가에 대한 평등을 뜻하며, 이는 서로 다른 삶의 영역에서 온 시민들이 서로 공동의 공간과 공공장소에서 만날 것을 요구한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의 다른 의견에 관해 타협하며 우리의 다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공동선을 기르는 방법이다.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센델
'공정하다는 착각'이란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최신작입니다. 이 책에서 마이클 센델 은 우리가 맹신하고 있는 능력주의가 불러온 소득 불평등과 그 폐해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을 해결하고 연대의식을 강화해서, 공공선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 그러니까 우리모두 다같이 행복하게 잘살수 있으려면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제시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이클 센델은 이러한 능력주의의 폐해를 해결하고 우리 사회에 민주적인 연대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솔루션으로 두 가지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학력주의에 관한 것인데, 대학 입학 시험을 점수를 기준으로 나래비 세울 것이 아니라, 시험점수가 일정 점수, 즉 커트라인을 통과한 지원자들을 추리고 그 지원자들 중에서 합격자 선발은 랜덤으로 추첨식으로 뽑자라고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커트라인만 넘으면 되는 정도로 공부를 할거고 그러면 1등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과도한 지원도 사라지게 될거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일의 존엄성을 확보하자라는 것인 데, 우리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있는 기술직, 그러니까 배관공, 청소부, 엔지니어 같은 4년제 대학을 나오지 않고 기술학교를 졸업해서 기술을 가지고 일하는 직업들이 존중 받아야 하고 그렇게 존중받을 수 있도록 예산을 기술학교 같은 곳들에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라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금융업과 관련해서는 투자와 투기를 구분해서 투기에는 죄악세, 그러니까 투기를 못하도록 방지할 수 있는 세금을 매겨서, 투기보다는 기술직으로 벌어가는 소득이 더 클수 있게 하자라고 얘기 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https://thebluevega.tistory.com/m/43
책은 크게 세 가지 파트로 이루어졌다.
먼저 책의 절반에서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해 설명하며 이에 대한 문제점들을 말한다.
1. 공리주의
2. 자유주의
3. 공동체공화주의
그리고 나머지 절반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한 다른 철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1. 공리주의
다수의 행복을 최대화하는 것이 정의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반박한다.
공리주의는 다수의 행복을 너무 중시한 나머지 개인의 인권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공리를 위해서 소수가 희생할 수 있다는 말로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트롤리 딜레마가 나온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가 직진을 하면 작업 중이던 인부 5명이 죽는다. 하지만 예비 철로로 가면 거기 있던 민간인 한 명이 죽게된다.
트롤리 딜레마
여기서 노선을 바꿀 건지 묻는 게 트롤리 딜레마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철로를 바꾼다고 답한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평한다.
2. 자유주의
자유주의자들에 따르면 국가는 평화유지 정도만 하는 ‘작은 국가’의 역할만 하고 나머지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침해 할 수 없다.
노직은 만약 개인이 소유할 권리가 있다면,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고를 권리 또한 있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경우에 개인은 자신이 갖는 장기를 필요한 자에게 매매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책에서는 모병제와 징병제에 대해 나온다.
공리주의자와 자유주의자 모두 모병제를 선호할 것이다.
강제로 데려가는 것은 공리를 낮추고 개인의 자유를 빼앗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현 미국에서의 모병제의 상태에 대해 비판을 한다.
국방은 시민의 의무인데 병사들 중 대다수가 교육수준이 낮거나 흑인 또는 히스패닉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는 국방의 의무가 한 쪽으로만 쏠려 공평치 못한 상황이라고 한다.
이 다음에는 칸트, 롤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나오며 각자의 주장과 현실에 알맞은 답을 제시하고 반박하면서 샌델 교수는 이를 활용해 ‘공동체주의’ 를 주장한다.
그는 애국심, 시민의식,봉사, 희생이란 숭고한 가치를 중시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마지막에 쓴 부분에 대해 짚고 끝낸다.
공교육과 공공시설의 비활성화 되면 여러 사람들의 교류 가 힘들어지고 사회의 극소수만이 군복무를 담당하는 미국은 어떻게 연대와 상호 책임 의식을 키울 수 있을까?
1. 시민의식, 봉사, 희생
최근에는 전통적 삶의 영역까지 시장이 파고든다.
그렇다면 군범이 타락하거나 질이 떨어질 수 있기에 보호 해야할 원칙들을 명확히 해야한다.
2. 시장의 도덕적 한계
최근에는 전통적 삶의 영역까지 시장이 파고든다.
그렇다면 군법이 타락하거나 질이 떨어질 수 있기에 보호
해야할 원칙들을 명확히 해야한다.
3. 도덕에 기초한 정치
도덕적 이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상호존중의 토대를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
다른이의 주변에서 드러나는 도덕적 종교적 신념에 대해 도전하고 경청, 학습하다보면 더 정의로운 삶을 향해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