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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암5:18,19)
휴거를 사모하고 기다리는 분들은 세상에 많지만
문제는 진정 자기 스스로 그 놀라운 휴거의 축복 안에 들어갈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의 믿음 상태를 솔직하게 분별하고 휴거를 준비한 신앙인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 어떤 사람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주여, 구원받을 사람이 적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가려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눅13:23,24)
"....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눅18:8)
이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아모스5장16절의 말씀을 지금 오늘이란 시간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해 주심은
이 말씀이 비록 과거 지난 유다 이스라엘의 역사이지만 그 안에는 휴거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에게
마음 깊이 새겨 주고 싶으신 교훈이 있기 때문입니다.
"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히4:7)
오늘이란 이 시간에 들려지는 이 말씀 앞에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고
언제 어디서 주의 음성이 들려올지 모르는 것이니 낮은 마음으로
비록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의 글이지만 마음을 열고 들어 주시길 부탁을 드립니다.
전도서3장 15절의 말씀을 보면 역사는 반복된다고 기록합니다.
"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전3;15)
그래서 역사를 잊어버린 나라와 민족은 반드시 망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반드시 과거의 역사를 장래에 다시 찾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역사를 소홀히 하고 모르면 과거의 잘못을 또 그 후손들이 반복하여 저지르고 말기 때문입니다.
아모스5장 18절을 우리 시대의 말로 바꾸어 말하면
휴거의 날을 사모한다하여 휴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아모스 5장의 말씀을 통하여 교훈을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휴거의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휴거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고 급하다는 것입니다.
잠언30장을 보면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가는 것이 세상을 진동시킬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잠30:21-23)
꺼림을 받는 계집이란 야고보서4장4절을 통하여 재해석하여 보면 이런 말이 됩니다.
"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약4;4)
세상에 속하여 땅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인 세상을 사랑하면서
또 주님을 신랑으로 삼고자 시집가겠다는 것이 세상 교회는 그것을 분별 못하여 허락되고 있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 악한 일이기에 세상이 진동할 일이라고 잠언 30장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참으로 누룩을 많이도 먹고 타락한 상태입니다.
한국 교회는 조만간 다가올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날 가장 많은 매를 맺을 것입니다.
수송아지를 쪼개며 피의 언약(십자가의 복음)을 체결한 한국 교회가 그 언약을 파기하고(십자가의 복음을 변질 시킨 죄악)
세상을 사랑하며 음녀와 짝한 이 배도의 일은 송아지를 둘로 쪼개며 언약을 체결하신 그 언약대로
쪼개짐의 십자가 고난과 고통을 당한 후에 남은 자만 사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 곧 송아지 두 조각 사이로 지난 유다 고관들과 예루살렘 고관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내가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렘34:18-20)
정결한 참 신부는 골로새서3장의 기록 같이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찾는 자 곧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라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성도(참 휴거 신부)는 "세상은 나를 향하여 죽었다"라고 말하고,
"나는 세상을 향하여 죽었다"고 고백을 하게 됩니다.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3:1-3)
"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나의 옛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연합하여 죽은 그 십자가의 믿음으로 멸하지 못한 채
주의 날을 사모한다는 것은 "화 있을진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하신 말씀이
그 같은 자들에게 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짜 휴거를 준비하고 사모하는 자는 반드시 첫째 것(첫째 언약 & 첫째 아담에 속한 옛사람)을 폐하고
둘째 것을 세우러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하여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나는 부활의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 태어난 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10:9,10)
예수 그리스도는 첫째 것에 속한 이 세상을 물로, 불로 침례하여 멸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재창조 하시기 위하여
말씀이신 하나님이 물과 피를 가진 육체로 오시어 십자가에서 그 첫째 언약을 멸하고
둘째 새 언약 곧 영원한 복음으로 이 세상을 다시 재창조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3:6,7)
이사야 4장은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으로 주의 백성 죄를 사하게 해 주신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 같은 이치입니다.
"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물)과 소멸하는 영(불)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사4:4)
이 땅과 이 하늘이 물과 불로 침례를 받아 사라지며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거듭 태어나듯이
우리 타락한 인생들 역시 반드시 물과 불 성령으로 십자가에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연합하여 심판을 받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 태어나야만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영원히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휴거를 사모하는 자는 반드시 물과 불 성령으로 옛 사람이 십자가 번제단에서 주와 함께 쪼개지고 태워져야 합니다.
그 첫째 것이 벗겨지고 멸해지는 그 십자가의 믿음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혼(Soul)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사53:10)
죄로 인하여 첫째 아담에 속하여 사망의 종노릇하는 옛사람을 그대로 입고서
휴거를 사모하며 거룩한 하늘나라로 올라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진정 신앙의 착각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옛사람의 허물을 벗고, 새 사람을 입지 않으면 절대로 휴거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그런데 정말 큰 문제는 현대 교인들 중에 참으로 많은 분들이 그것도 휴거를 기다린다는 분들 중에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말은 이해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성경 공부는 많이 해서 머리에 지식은 많지만 진정 그 물은 무엇이며, 성령은 무엇이며 ,
물과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는 그 과정을 물으면 머리에 아는 것과 다르게 전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그 영적 과정은 무지한 것을 보게 됩니다.
직분을 받았다고, 심지어 목사의 직분을 가져도 그들이 다 알고도 주님을 배반하고 배도하는 이 시대를 보시면
현대 교회에서 주는 그 직분이 거듭 태어난 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분별할 사람은 분별할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지난 세월과 다른 시절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수학 문제를 선생님이 내주었는데 학생이 답을 맞힌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직접 풀고 설명해 보라할 때 그 문제를 풀지 못하는 학생이라면
이 학생은 그 문제를 아는 자가 아닙니다.
동일합니다.
거듭 나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수많은 교인들이 답은 제출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갈라디아서2장 20절을 암송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는데 왜 그들의 삶에 항상 자기가 왕이 되어 있고 , 자기의 삶에 주인이 되어 살까요?
예수 그리스도에게 묻고 사는 무익한 종들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중심의 왕이 되고, 주인이 되어 살면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공부하여 머리에 알고 있다 하여 그것을 믿는 자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답은 알아도 그 문제를 풀지 못한 학생의 상태처럼
많은 현대 교인들이 분명 지식적으로는 거듭 났다고 말하면서도 새사람이 아닌
옛 사람 상태에 그대로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은 그래서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거의 없다고 기록하여도
나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대다수인 것입니다.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4)
"Because narrow is the gate and difficult is the way which leads to life, and there are few who find it."
few(적음) : 거의 없다라는 뜻입니다.
만약 성경에 a few라고 기록하셨다면 조금은 있다고 해석하겠지만
성경은 이렇게 좁고 협착한 길로 들어가는 자가 거의 없다 하심에 두려워할 때입니다.
누가 무엇이라 하여도 성경이 기록한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큰 문으로 넓은 길로 가라는 자의 말은 듣기 쉽고 가기 쉬워 보여도 멸망의 길입니다.
안일하게 휴거의 날을 대처하시다가는 곧 진정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자기에 대하여 솔직해야만 하는 때입니다.
모르면 이제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먼 거리라도 달려가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 보아야 할 그런 급한 시간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비록 그날과 시간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해도 그 정한 날이 너무나 가까이 다가옴은 깨어 기도하는 종들은
감각을 하도록 주의 성령이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왜 계시록 7장에 수를 셀 수 없는 흰 무리가 큰 환난에서 나오지 아셔야만 할 때입니다.
"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7:13,14)
협착하고 좁은 이 생명으로 들어가는 길에 대하여 이 마지막 은혜 시대에 안일하게 대처한 신자들이
큰 환난에서 순교를 당한 모습이 계7장의 모습입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그 안에 들어가게 될지 이렇게 분명하게 계시록 안에 기록해 놓았는데도
단지 나는 휴거를 사모하며 기다린다고 그 휴거의 자격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는 서울 대학교 들어가는 것을 사모하기에 그 서울 대학에 합격자 될 것이라 "
착각하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상한 방법으로 합격이 가능하게 일어날지 몰라도
하늘나라는 절대 다른 곳으로 넘어가지 못합니다.
이제는 솔직하게 자기 자신이 이미 복되게 휴거의 좁은 문 안으로 들어간 자인지
아니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 하는 자인지
아니면 넓은 문 , 넓은 길로 가고 있는 자인지 분별해야만 할 때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돈이면 미쳐 돌아가 단 한푼이라도 손해를 보려 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의 영혼의 문제는 너무나 하찮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돈은 귀하게 여기면서 자기 생명을 건지는 십자가 복음의 비밀을 교회 안에서조차
소홀히 여기는 분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것입니다.
마지막 때 성도들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환상을 보는 것도 좋고, 꿈을 꾸는 것도 다 좋지만 기록된 말씀으로 분별하며 받아 믿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전4:6)
지금은 주의 날이 너무나 가까이 다가오는 때입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자기의 신앙에 대하여 솔직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무작정 휴거를 기다린다고 그것이 좋은 믿음도 아니고
높은 직분을 가졌다고 그것이 휴거를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환난이 시작되면 휴거 되지 못한 신자들이
자기 담임 목사 멱살을 잡을 일이 많이도 일어날 것입니다.
" 너희 목자들아 외쳐 애곡하라 너희 양 떼의 인도자들아 잿더미에서 뒹굴라
이는 너희가 도살 당할 날과 흩음을 당할 기한이 찼음인즉 너희가 귀한 그릇이 떨어짐 같이 될 것이라
목자들은 도망할 수 없겠고 양 떼의 인도자들은 도주할 수 없으리로다
목자들이 부르짖는 소리와 양 떼의 인도자들이 애곡하는 소리여 여호와가 그들의 초장을 황폐하게 함이로다
평화로운 목장들이 여호와의 진노하시는 열기 앞에서 적막하게 되리라"(렘25:34-37)
휴거는 추수와 같은 사건입니다.
추수는 오직 익은 곡식만 거두게 되는 자연의 이치처럼
휴거를 받는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잘 익은 곡식처럼 고개가 숙여진 자
곧 꼿꼿한 교만의 목이 꺾이고 잘려나간 자를 거두게 되는 추수 사건입니다.
자기 옛 자아가 십자가에 죽지 않은 자들은 아직도 스스로 왕이 되어 자기 삶의 주인이요, 머리요,
왕이 되어 있기에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이 자신의 몸인 교회를 데리어 오실 때 자기가 머리가 되어 있고 ,
또 왕이 된 자하고는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은 그런 자들과 하나의 몸이 될 수 없어 그들은 환난에 남겨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6장에는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신
이 말씀을 반드시 휴거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분들은
이 말씀에 대한 참 진리의 답을 얻은 믿음을 가져야만 할 때라는 것입니다.
'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마16:24)
" Then Jesus said to His disciples, “If anyone wants to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 부인하다 ( aparneomai: ) = To deny, to disown, to renounce. (의절하다, 거부하다, 부인하다, 포기하다)
자기 옛사람과 의절, 부인, 포기 되는 관계를 자기 부인이라 합니다.
평생 함께 붙어 살아온 옛사람 곧 자기의 생각과 마음을 버리고 , 비우고, 부인한다는 것은
인간의 힘과 능으로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함으로 자기 부인을 이룰 수가 있는데
그 거듭나는 첫 과정을 여러분들 자신은 진정 직접 겪고 지금은 자기 부인을 하고 있으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좁은 생명의 문 안으로 들어간 믿음을 소유한 확실한 믿음을 가졌는지
스스로에게 답을 해보아야 할 급하고 급한 때입니다.
당신은 진정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을 이해하고 그 것을 이룬 상태인지요?
타인에게 답할 필요도 없고 자신에게 묻고 답해 보시길 바랍니다.
과연 자기 옛사람을 부인하는 길을 스스로 자기는 확실하게 알고 거듭나 휴거 준비를 마친 상태인지
스스로에게 만큼은 솔직하게 물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오늘이란 시간에 다른 자에게 솔직할 것이 아니라
나와 하나님 앞에 이제는 나의 신앙에 대하여 솔직해야 할 때입니다.
마음으로 사랑하는 형제자매분들에게 호소합니다.
점검하시길 바랍니다. 이제는 자신의 신앙을 철저하게 점거할 때입니다.
우리 인생을 성경은 이렇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17:9,10)
타락한 인간은 자기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너무나 모른다는 것입니다.
인간보다 더러운 존재가 없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지만 인간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을 부르러 오셨지만 십자가에 죽을 만큼 자기를 죄인의 괴수라고 말하는 인생은
참으로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렵습니다.
입으로는 무슨 소리를 못할까요? 입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며 주여 주여 하여도
조금만 심기를 건들어도 자존심을 부리며 " 내가 바로 내 인생의 왕인데 나를 건드냐!며
옛사람의 의로움을 나타내는 것이 현대 교인들입니다.
주 앞에 아무 할 말 없는 막달라 마리아 같은 낮은 심령의 소유자를 주님은 지금 이 시대에도 찾고 있지만
그런 가난한 심령, 무너진 심령 찾기가 너무나 귀한 시대입니다.
휴거를 원하신다면 심령이 무너지고 다 부서지고 애통한 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진정한 긍휼을 입습니다.
이리 저리 돌아다니기 보다 이제는 말씀붙들고 골방에 들어가 주 앞에 불쌍히 여겨 달라고 애통해 하며 기도할 때입니다.
부르짖으면 주님이 분명 찾아 갑니다.
잃어버린 자가 되면 =잃어버려진 어린양처럼 부르짖으면 반드시 목자는 그 골방의 기도 소리를 듣고 찾아가
그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짧은 공간에 질문만 던지고 가는 것이 안타깝지만
올해는 감추어진 종들이 세상 밖으로 나타나 골방에서 하던 말들을 지붕에 위에 올라가 외칠 때가 되었습니다.
"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것이 광명한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눅12:2,3)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소리가 들려올 때이니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의 신앙을 점검하는
지혜로운 분들이 한국 교회 안에서 많이 나타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