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바위 둘레길
“나는 인적 드문 길을 걸으면서 파란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곳을 물색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구산 갯가로 나가 해안선을 따라 걸으면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마산역 광장으로 나갔다. 역 광장 모퉁이는 구산 갯가와 진동 산간으로 나가는 농어촌버스 출발지였다. 역 광장에 이르니 옥계로 가는 녹색버스가 출발을 앞두었다. 번개시장 입구에서 김밥을 두 줄 마련했다.”
앞 단락은 지난가을 한글날 구산면 옥계에서 해안선 따라 난포까지 걸었던 날 출발 즈음 이야기다. 그날 남긴 글의 제목이 ‘청자빛 하늘’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니 계절이 바뀌어 겨울 들머리 십이월 둘째 토요일이었다. 역시 바닷가를 찾아 마산역 광장 농어촌버스 출발지로 갔다. 구산면 원전으로 가는 62번 버스를 탔더니 어시장과 댓거리를 지나 밤밭고개를 넘어 현동을 거쳤다.
지난번은 가을 한복판이었는데 이제는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되었다. 덕동하수종말처리장부터 올망졸망한 해안선이 드러났다. 사계절 가운데 겨울바다가 가장 짙은 쪽빛이다. 구산 갯가는 홍합을 양식하는 하얀 부표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면소재지 수정을 거쳐 백령고개를 넘었다. 내포를 지나 반동삼거리에서 난포로 향했다. 난포는 지난번 옥계에서 걸었던 해안선 답사 종점이었다.
내가 탄 버스는 꼬불꼬불한 산모롱이를 돌아 용호갯가를 둘렀다. 고령층 주민들이 몇 가구 사는 한적한 갯마을이었다. 고개를 넘으니 심리였다. 아득히 깊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고 심리였다. 내가 목표해 가는 곳은 62번 종점 원전마을이었다. 그곳은 바다낚시꾼들이 즐겨 찾았다. 나처럼 낚시와 인연이 닿지 않는 사람이 원전마을을 찾아간 경우는 드물 것이다. 나는 산을 오를 셈이었다.
아까 마산역 광장을 출발한지 한 시간이 지났다. 웬만한 농어촌버스는 출발지에서 종점까지 한 시간 이내가 대부분인데 원전마을은 달랐다. 용호마을 산마루로부터 심리를 지나 원전까지는 아직 십여 분 남짓 더 가야 했다. 마산역에선 낚시꾼이 둘 탔고 어시장에선 김장 재료를 마련한 할머니가 둘 탔었다. 중간에 몇 사람이 타고 내리긴 했지만 그들은 나와 종점까지 가는 손님이었다.
심리부터는 앞바다가 탁 트였다. 어촌계 홍합양식장 부표가 하얗게 줄지어 떠 있었다. 일부 구역은 개인 양식장도 있는 모양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작은 암자 장수암을 돌아 원전 종점에 닿았다. 아무리 근동에서 알려진 낚시터라지만 태공들은 으레 여름이 붐비지 겨울을 한산했다. 그래도 아마추어급 몇몇은 방파제에서 낚싯대를 던져 놓고 용궁 소식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용궁과 인연이 닿을 일이 없는지라 갯가로 나갈 일도 없었다. 마을 골목길을 들어 볕바른 비탈로 올랐다. 논이 없는 갯가인지라 계단식 밭에는 갖가지 푸성귀를 가꾸었다. 덜 거둔 무와 배추가 토실하게 자라 있었다. 해안가라 그런지 된서리가 내리지 않았는지 고추이랑엔 시들지 않은 고춧대가 파릇한 잎을 달고 있었다. 같은 행정구역이라도 해안가 식생은 내륙과 무척 달랐다.
나는 수 년 전 벌바위 둘레길을 걸은 적 있었다. 그해 가을 천둥산 둘레길을 갓 개설할 즈음이었다. 그때도 혼자서 도시락을 싸 왔었는데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둘레길을 뚫어 놓아도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은 듯했다. 길바닥에 쌓인 가랑잎은 누가 밟고 지난 흔적이 드물었다. 야트막한 산자락 두 곳 암반 앞엔 진해만 일대를 부감하는 조감도가 세워져 있었다. 그곳이 벌바위인 듯했다.
산마루를 올라 쉼터 평상에서 챙겨간 보온도시락을 비웠다. 몇 지인에게 문자를 넣어 내가 있는 현 위치를 알렸다. 저만치 가까운 곳이 천둥산이었다. 정상에 올라 단축 코스가 아닌 장거리 코스로 내려섰다. 해안선 따라 산기슭을 돌아가니 원전마을 포구는 낚시꾼을 태워가지 못한 배들이 여러 척 묶여 있었다. 진해에서 통영으로 이어진 거제만 바다는 가녀린 햇살에 윤슬이 반짝였다. 16.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