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종일 한적한 둑에 앉아 있었다
최백규
어머니는 저문 들녘을 어슬렁거리는 길고양이처럼 하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개숫물을 닮은 시간이었다 산허리에서 밥 짓는 연기가 어슷하니 돌아누웠다 이미 너무 늦은 건 아닌지 곱씹어보았다 고갯마루 묵정밭에 홀로 서 어스름한 송전탑을 보던 때도 있었다
매일 질퍽이는 철공소 앞을 지나 스프링이 망가져버린 침대로 쓰러지면 모든 일이 기나긴 선잠 같기도 했다 이제 와 볕 바른 삶이나 살 요량도 아니었지만 이따금 때늦은 서러움이 밀려올 적마다 쌀을 씻듯이 흘려보냈다 그러나 쓴 입맛을 다시며 둘러보면 무언가 깊이 상해버렸다는 확신이 들었다
색 바랜 바람벽에 밀어놓은 속옷과 양말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누워 있을 터였다 타향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버려져 있던 화장터가 왜 하필 지금 기억나는지 알 수 없었다 사나흘 연신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불편했는데 돌아올 휴일에는 동네 한약방에 들러 맥이라도 짚어볼 참이었다 부러진 묘목을 피해 가며 집으로 돌아오다 가만히 아버지를 불러보았다
― 웹진 『시산맥』 (2022 / 봄호)
최백규
대구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4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