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드’는 우리에게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1. 새로운 백년의 벽두에서 마주한 ‘사드’는 백 년 전 소태산 여래의 ‘개벽의 법음’을 다시 일깨웠습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불멸의 명제를 다시 우리 안에 환기시켰습니다.
지나온 백년을 성찰하게 하였고, 새로운 백년에 우리의 갈 바를 명료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나부터, 우리부터….
‘개벽(혁신)하고 있느냐고?’
2. ‘사드’는 남북이 분단된 현실에서 비롯되었기에, ‘통일’은 지금의 시대과제임이 명백합니다.
‘사드’가 소성리에 오게 되어, 원불교는 ‘성지수호’라는 이름으로 통일이라는 시대과업에 운명적으로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사드’가 바로 그 중심에 있습니다.
‘사드’는 이데올로기와 패권의 상징입니다.
결코 한반도의 안보를 지켜줄 수 없으며, 오히려 평화를 깨뜨리고 전쟁을 불러오는 무기일 뿐입니다.
‘사드’를 철회시키는 것이 바로 남북 분단의 극복을 시작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소성리에서 우리의 사무여한(死無餘恨)의 기도가 계속되어야 할 당위(當爲)가 여기에 있습니다.
3. 우리는 ‘사드’를 반드시 막아내서 ‘세계평화’를 이뤄내야 합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이데올로기와 이해의 첨단이 맞부딪치는 세계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사드’가 바로 그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세계평화’의 시발점이 바로 소성리 ‘사드’의 철회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삼동윤리’의 거룩한 법음이 바로 세계 병란의 치유법이 될 것입니다.
‘사드’와 마주한 지난 1년, 우리는 <개벽(혁신)>을 새로 마주하게 되었고, 시대의 과제인 <통일>과 운명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리고 <평화>의 아젠다를 높이 들었습니다. 개벽의 새 세상을 미리 보시고 펴신 소태산 여래의 일원회상에 함께한 우리는 마땅히 인류를 위한 기도, 세상을 위한 기도에 온전히 나서야 합니다.
‘사드’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소성리 사드를 철회시키는 우리의 기도가 바로 개벽의 실현이고, 통일의 시작이고, 평화의 울림입니다.
#2 ‘‘원불교는 평화입니다!’‘
1. 원불교는 성지가 있기 때문에 사드(THAAD) 반대를 하는 것 아니냐?
사드가 전개되어 있는 달마산 아래 소성리는 원불교 성지입니다. 그래서 원불교가 사드를 반대할까요?
이는 종교의 본지(本旨)를 모르는 몰상식한 이야기입니다. 세계종교자평화회의(WCRP)도 종교의 근본이 ‘평화’에 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종교가에서 생명을 살상하고 평화를 깨뜨리는 전쟁무기를 더구나 성지 인근에 가져다 놓겠다는데, 어느 누가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성지(聖地)와 사드(THAAD)는 병립(竝立)할 수 없습니다. 원불교는 결단코 전쟁무기 ‘사드’를 반대합니다.
2. 국가가 있고 종교가 있는 것 아닌가?
어느 누가 국가안보를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길지 않은 역사에 작은 종교이지만, 원불교는 그동안 국가안보와 정책수행을 하는 데에 필요한 협조를 해 왔습니다. 종교(宗敎)는 그 글자가 가지는 함의(含意)에서 알 수 있듯이, 정의(正義)와 평화(平和)를 위시한 진리의 근본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한 국가(國家)와 정부(政府)만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 모두를 포괄하며,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보편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드는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본질은 이데올로기적 패권과 자본주의 욕망의 쓰레기일 뿐입니다. 정의와 평화라는 종교의 본지가 실천될 때 국가 안보와 세계 평화가 실현될 것입니다.
3. 사드 배치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폐세력은 불법적으로 달마산에 사드 장비를 전개했습니다. 우리는 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만, 아직 우리에게는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원불교 교조(敎祖)이신 소태산 대종사께서 "정의어든 죽기로써 실천할 것이요"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무여한(死無餘恨)의 정신으로 진리를 믿고 모시며,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정신으로 평화 시민들과 끝까지 함께 갑시다.
사드 철거 시키고 함께 어우러지는 평화의 춤판을 열어봅시다.
"사드 가면 평화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