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언약 갱신과 성벽 재건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남쪽 유다 백성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예언의 말씀은 남쪽 유다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이방 나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포로 기간은 70년 이라고 합니다. 70년 동안 포로로 잡혀가게 해서 그들을 징계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 징계 뿐만 아니라 70년의 기간이 다 차면 다시 그들을 본국으로 돌아오게 하여 회복해 주실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유다 백성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여, 에스라서에서는 성전을 재건케 하고 느헤미야서는 성곽을 중건케 하였다는 것이 말씀의 요지입니다.
성전과 예루살렘 성곽 중건은 그들의 신앙을 회복시켜 주시고, 유다 나라를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다윗으로 이어졌던 하나님의 언약이 중단되지 않고 느헤미야서에서도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1. 포로와 귀환 이후의 구속사
느헤미야서는 바벨론 포로 이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구속의 역사를 이어지도록 남쪽 유다를 보호하시고 지켜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족보를 이야기하면서 구약의 구속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의 족보 가운데 1:12절 이후에서는 바벨론 포로 이후의 족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바벨론 포로 이후의 족보 가운데 1:12의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에스라 3:2에도 보면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 형제들이라는 말씀이 마태복음 1:12의 족보를 잘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참고 학1:1,12).그러나 마태복음 1:13이후 스룹바벨 이후의 족보는 구약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에서의 마태는 이 기간의 족보를 어떤 경로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지 우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족보를 담은 문서들이 유행하였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제사장들이 그들이 제사장 후예라는 증거를 기록된 문서로 제출했다는 것입니다(스2:62). 더욱 각 지파 사람들은 포로 후에도 그들의 정체성을 보존했다고 성경은 지적합니다(눅1:5,2:36,행 4:36,롬 11:1). 그렇다면 족보를 담은 기록이 제사장 말고도 일반인들에 의해서도 간직되어 왔다고 얼마든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바벨론 포로와 그 포로에서 귀환한 사실을 에스라 느헤미야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이 기간동안에도 마태복음 1:12절 이후의 기록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주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하여 바벨론 포로 이후의 구속의 역사(구속사)를 하나님께 친히 인도하시고 주관하셔서 결국 신약 성경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2. 느헤미야를 통한 구원 역사
느헤미야는 포로 중에서 본국 유다 소식을 하나니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본국에 남아있던 자기의 동족과 성전과 성곽이 다 훼파되고 비참한 그들의 소식을 수산궁에서 듣게 됩니다(1:1-3).
느헤미야는 당시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아닥사스다의 아들 때에 술맡은 관원이었습니다. 당시 이름 끝에 야자가 붙은 것은 야훼라는 말의 약자로서 당시 유다인의 풍습이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신앙전통에 충실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는 유다인의 참상을 듣고 왕의 허락을 받아 왕의 조서를 가지고 총독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2차에 귀환했던 에스라보다 13년이 늦은 시기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제 3차 귀환으로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벽공사를 단행하면서 지도자로서의 헌신적인 섬김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느헤미야는 성벽공사를 계획할 때 그 계획이 주변 나라에 알려 집니다(2:17-18). 그러자 성벽공사를 비웃고 업신여기는 자들이 있었습니다(2:19).
그러나 느헤미야는 담대하게 외칩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도 없다.(2:20)라고 외쳤습니다.
예루살렘 성벽 공사는 단순한 공사가 아닙니다. 그 공사는 바로 유다 나라를 죄에서 구속하시고 그 나라를 징계 가운데서 회복시켜 주셨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형통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벽공사를 건축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역사 가운데는 언제나 사탄이 장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장난을 장난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파멸로 심판하고야 맙니다.
성벽공사가 진행될 때 사마리인들의 비웃음이 있었습니다(4:1-3). 사마리아는 과거 북쪽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그들의 죄악으로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그 사마리아에는 앗수르 군대와 앗수르 백성들을 살게 한 땅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지역이었습니다. 그런 앗수르인들이 느헤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방해하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기도로 맞서고 있습니다(4:4-5).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의 앞에서 그 악을 덮어 두지 마옵소서 저희가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니이다.라고 하면서 기도합니다(4:4-5).
공사진행을 방해하는 세력들의 폭력과(4:6-9) 산발랏이 느헤미야를 해하려고 사람을 보내어 만나자는 궤계와 협박에도 불구하고(6:1-4) 느헤미야는 기도하면서(6:10-14) 성벽공사가 드디어 52일만에 완공됩니다(6:15).
성벽공사가 완공되자 느헤미야와 유다를 대적했던 이방인들이 다 두려워 하게 됩니다(6:16). 왜 두려워 하고 낙담하게 되었느냐면 이 공사가 바로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6:16).
우리는 이런 말씀 가운데서 느헤미야를 자랑해서도 안되고 느헤미야서를 느헤미야의 자서전으로 이해해서도 안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를 높인다거나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모델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 느헤미야를 통하여 구속의 역사를 펼치신 하나님의 능력과 구속과 회복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보면서 그 느헤미야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면 그는 지금 성경을 곡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신앙 회복(언약 갱신)
느헤미야서는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1-7장까지는 포로에서 돌아와(3차 귀환) 예루살렘 성벽 공사를 재건하는 일이고 둘째는 8-13잘까지 율법의 말씀을 통하여 이미 선조들과 약속하시고 언약하신 언약을 소개하므로 그 언약의 백성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신앙 회복 내지는 언약 갱신식입니다.
여호수아 24장에서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 정복을 완료하고 땅을 각 지파별로 나누어 준 다음에 백성들을 세겜이라는 지역에 모으고 하나님의 율법, 즉 하나님의 언약을 환기시켜주는 언약갱식식 처럼 느헤미야는 제사장이요 율법의 학사인 에스라로 하여금 율법을 읽고 가르치게 하여 언약을 갱신합니다.
그렇게 하므로 이제 과거에 우리들의 무슨 잘못 때문에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고 우리가 무슨 이유 때문에 그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다시 재건하고 그 성전을 보호하기 위한 예루살렘 성벽공사가 완공되었는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회개하고 결단하게 하는 그런 시간들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8장 이후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8장은 에스라의 율법 낭독과 백성들의 반응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율법을 듣고 백성들은 아멘으로 화답합니다(8:1-6). 또한 레위사람들이 율법을 해석하자 백성들이 깨닫게 되면서 듣고 회개의 눈물을 흘립니다(8:7-12). 그러면서 율법 책이 명한 각종 절기들을 지킵니다(8:13-18).
그러면서 9장에서는 백성들이 하나님과 견고한 언약을 세웁니다.
특히 7-32절은 창세기에서부터 지금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파노라마 식으로 하나님의 구속사를 증거합니다. 그러면서 33-38에서는 그 말씀 위에서 견고한 언약을 세웁니다. 다시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게 언약을 세우면서 그 언약에 참여한 자들의 명단을 10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증거입니다.
이제 백성들의 각각의 지파와 직분별로 살아가야 할 거처와(11장) 성벽이 완성되어 즐거워 하는 백성들의 모습과(12장) 이제 구체적으로 백성들이 어떻게 성별되고 구별되고 있는가를 마지막 13장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손길이 죄악으로 인한 심판속에서 그들을 어떻게 이끄시고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의 풍요속에서 하나님의 축복된 백성으로 살게 하시는지를 느헤미야서는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말씀에로 초대
우리는 지금 어떠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고 그 일을 어떻게 진행시키고 있는가를 우리들은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을 하시고 그래서 우리들을 그 언약의 백성, 약속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습니다. 그런 백성의 참된 도리를 다하지 못했을 때를 죄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죄는 반드시 죽음과 사망이라는 심판이 따릅니다. 마치 유다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가듯이 말입니다.
그런 심판과 징계 가운데서도 우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우리 앞에 펼치셨습니다. 그런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자명해 졌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된 도리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