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월)
호텔에서 나오니 구름이 해를 가려주어 걷기에 아주 좋은 날씨다. 버스 정류장 옆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버스 600번을 타고 어제 도착했던 7코스 종점 월평으로 갔다. 오늘은 8코스를 걷는다. 오전 8시 15분이다. 마을 길을 들어서니 대포리 언덕길에 자그마한 할머니 한 분이 무거운 상자를 들고 나온다. 한라봉 만원 어치를 사서 둘이서 배낭에 나누어 넣었다. 아침 첫 손님이라 덤을 얹어 주신다. 연세를 물으니 90세라고 한다. 연세에 비해 정정하다. 4km 정도 걸어가니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가 나온다. 올레 중간 스템프를 찍고 계단을 조금 내려가니 해안 절벽 검은 현무암 바위 사이로 주상절 리가 바닷물 속에 줄지어 서 있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흐르다가 바다와 만나면서 육각기둥 모양으로 굳어 생긴 지형인데 지표로 분출한 용암이 천천히 식으면서 수축작용에 의해 균열이 발생하고, 그 균열들이 수직으로 발달하면서 현무암층은 수천 개의 기둥 모양으로 절리가 만들어진다. 이곳 대포주상절리는 약 2km에 걸쳐 있는 규모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고 한다. 멋진 경치를 한참 보고 올라와서 막걸리와 한라봉주스로 목을 축였다. 해안공원을 지나니 오른편으로 중문관광단지 리조트가 해변을 바라보며 늘어서 있다. 중문리조트 끝부분 언덕에서 멀리 아래 백사장이 보인다. 중문색달해수욕장이다. 이곳까지 약 3시간 정도 걸었다. 언덕 위 카페 ‘바다바라’ 벤치에 앉아서 해변과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한참을 쉬다가 중문리조트를 돌아 나오니 관광버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도로를 따라 한참 걸어 나오니 길은 예래생태마을로 이어진다. 예래마을은 약 2천 년 전 바닷가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하는데 바위그늘집 자리와 고인돌 등 선사유적지가 남아 있다. 박석들이 곱게 깔린 공원길을 지나 열리해안길을 따라가면 하예포구 논짓물이 나온다. 논짓물은 마을에서 논물을 모아 바닷가에 노천수영장을 만든 것이다.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그니 시원하기 그지없다. 피로가 싹 풀린다. 논짓물을 지나 왼편으로 바다를 보며 오른쪽으로 펼쳐진 밭 사잇길을 걷다 보면 어느듯 호젓하게 안쪽으로 들어앉은 8코스 종점 대평포구에 이른다. 대평마을의 옛 이름은 ‘난드르’인데 바닷가 한켠에 숨은 듯 자리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군산과 안덕계곡, 서쪽으로는 예래동 월라봉과 박수기정 등이 감싸고 있어 이 지역이 4.3의 참상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약 18km를 걸어왔다. 인근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아직 한낮이라 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9코스를 걷기로 했다.
올레 9코스
대평포구 서쪽에 병풍처럼 우뚝 솟은 박수기정을 오르는 것으로 9코스가 시작된다. 기정은 벼랑이라는 뜻의 제주어로, 기정 아래 지상 1m 암벽에서 사시사철 솟는 샘물을 바가지로 떠 먹었다 하여 ‘박수기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기정 위로는 밭농사를 짓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이어서 보리수가 우거진 길로 지정을 내려오는데 제주어로 보리수를 ‘볼레낭’이라 하여 볼레낭길로 불린다. 볼레낭길을 따라 봉수대를 지나면 월라봉으로 오르는 숲길로 들어선다. 이를 다래오름 또는 돌오름이라 부르는데, 도래(다래)나무가 많은 오름이라는 설과 돌(달)이 떠오르는 오름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한참을 가파르게 올라가니 이윽고 정상에 다다른다. 정상에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서쪽으로 해변마을과 넓은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오른쪽 아래로는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군사목적으로 파 놓은 군대진지가 있는데 모두 7개가 발견되었고, 주진지는 폭 4m, 높이 4m, 길이 80m로 규모가 아주 크다. 올레길 표지를 따라 급한 경사길을 내려오니 안덕계곡이다. 안덕계곡을 따라 바다로 이어지는 황개천은 유채꽃철이면 온통 노랗게 물든다. 안내지도에는 9코스 총 길이가 7km 남짓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 거리는 훨씬 길다. 나중에 올레사무실에 확인하니 얼마 전에 코스가 바뀌어 11km로 늘어났다고 한다. 안덕계곡이 끝나고 도로를 따라 한참을 더 가서야 9코스 종점 화순해수욕장 주차장에 다다른다. 시각은 오후 6시 반이다. 오늘 오전 8시 반부터 8시간 동안 5만보 약 34km를 걸은 셈이다. 화순금모래해수욕장은 소금막 해변 백사장이 금빛으로 반짝인다 하여 그렇게 부른다. 규모는 작지만 모래가 부드럽고 수심이 완만하다. 가까이에 산방산이 병풍처럼 서 있고 가파도와 마라도, 형제섬이 한눈에 보여 피서지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